귀환무관 94화
백서휘가 마지막 남은 역귀의 목을 베어버림으로써 전투는 끝났다.
“용호단과 오룡단은 관청 내에 살아 움직이는 역귀가 있는지 살핀다!”
오룡단은 다 같이, 용호단은 세 명씩 무리를 지어서 관청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들은 완전히 죽지 않았거나 미처 잡지 못한 역귀들을 죽여나갔다.
‘일이 끝난 후에 쉬는 걸 방해받지 않으려면 주변 청소를 해놓는 게 좋겠지.’
백서휘는 주변에 있는 모든 역귀를 죽이고 다시 관청으로 돌아왔다.
“역귀들의 시체를 한곳에 모아놓고 뒷문 쪽 인원들 시신 좀 잘 수습해봐.”
“네!”
명령을 내린 백서휘는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지붕 위엔 붉은빛 역귀의 시체가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놈은 일반적인 역귀가 아닌 것 같은데…….’
처음 마주쳤을 때를 돌이켜보면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았다.
잠깐 상대했는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붉은빛 역귀는 힘과 민첩성이 뛰어났다.
거기다 혼자 있는 자신을 노린 걸 보면 지능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다.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능력까지 종합한 후에 평가하면 못해도 일류 무사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반짝임과 역귀의 능력 간에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백서휘는 손가락에 강기를 둘러 반짝임이 있었던 부위를 잘라냈다.
잘라낸 걸 조심스럽게 뜯어내니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은 자주색 결정이 보였다.
자주색 결정에서 아주 오래전에 대해본 적이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게 언제였더라.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떠오른 것은 불쾌했던 일이었다.
운학을 감방에서 꺼내기 전에 동남동녀의 정기를 뽑아내는 진을 부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었던 기운과 자주색 결정에 담긴 기운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남동녀에게서 뽑아낸 정기보다 조금 더 혼탁하다는 것과 결정화되어 있다는 거였다.
이번에 수주에 일어난 일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놈이 특별한 놈일 수도 있으니까 다른 역귀들도 한번 살펴보자.’
백서휘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니 기다렸다는 듯 우보가 보고를 올렸다.
“역귀들 시체 모두 모았고, 뒷문 쪽 인원들 시신 수습도 다 끝났습니다.”
“그래? 그러면 역귀 머릿속에 있는 결정들 좀 모아봐.”
“결정이요?”
“이렇게 생긴 것들.”
백서휘는 가지고 있던 자주색 결정을 우보에게 던졌다.
우보는 결정을 받아쥐고는 조사단이 모인 곳으로 갔다.
‘잡은 역귀들의 수가 많으니 느긋하게 기다려야지.’
결정을 찾는 일은 해시(亥時, 밤 9시∼11시)쯤 시작해서 축시(丑時, 새벽 1시∼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러니까 이게 그 결정이다?”
“다른 결정을 만나면 합쳐지면서 크기가 커지더군요.”
역귀의 머릿속에 정기가 뭉친 결정이 있고, 그 결정이 다른 결정과 만나면 합쳐진다?
아무리봐도 수주에 일어난 일은 인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짓이 분명했다.
백서휘는 결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짓을 생각해봤다.
‘인간의 정기가 집약된 물건이니 술법을……. 잠깐, 수주에 있는 모든 결정을 합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림짐작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다 합쳐지면 도시 두어 개 날리는 수준의 대단위 술법을 펼치는 게 가능해진다.
백서휘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막아야 돼.’
이미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은 놈 혹은 놈들이었다.
여기서 결정을 얻게 되면 더 악독한 짓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그때 눈치를 보던 우보가 백서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결정의 정체를 아십니까?”
“정체까진 몰라도 이 결정으로 뭘 할 수 있는지는 알아. 여기에 담긴 기운이랑 비슷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있거든.”
“뭘 할 수 있는 겁니까?”
“인간의 정기가 집약된 물건이라 술법 구동에 필요한 기운으로 대체 가능하고, 더 위력적이고 쉽게 술법을 쓸 수 있게 해줘.”
“별 게 아니었군요. 다행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닙니까?”
“지금 이 정도로도 너 정도의 무림인은 즉사시킬 수 있는 술법을 쓸 수 있어. 그런데 조금 전에 네가 말했던 대로 다른 결정을 만나서 더 커지면 어떻게 될까?”
“더 높은 경지의 무림인도…….”
“그래. 네 말처럼 더 높은 경지의 무림인도 죽일 수 있게 되겠지.”
“그것보다 더 커지면 어떻게 될까? 아! 참고로 이거 커지면 커질수록 술법의 범위도 커져.”
우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느낌이 오지?”
“예.”
“거기서 한 번 더 가볼까? 수주에 있는 모든 역귀를 죽여서 결정을 합쳐내면 어떻게 될까?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감이 와?”
“……무조건 막아야겠군요.”
“그래, 막아야 돼.”
“지금 당장 세가로 전서구를 보내서 지원요청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럼 너무 늦어.”
“이틀이면 됩니다.”
“내가 정리할 테니까 용호단 시켜서 그 결정을 모아.”
“부수지 않고요?”
“그럼 이 짓을 한 놈을 유인할 수가 없잖아.”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우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내가 죽이는 것들 대가리에서 결정을 빼낸 다음에 크기를 키워놓는 거다?”
“네!”
백서휘는 수주에 있는 모든 역귀를 죽여 자주색 결정을 모았다.
“이 크기가 한계야?”
“네, 그 이상 더 커지지도 않고 흡수되지 않았습니다.”
백서휘는 사람 머리통만 한 자주색 결정 덩어리들을 바라봤다.
“빼돌린 놈 없지?”
“없습니다.”
“확인해서 나오면 어떡할래?”
“제 목을 베십시오.”
우보가 당당하게 말했다.
“난 그쪽보다 빼돌린 놈을 죽이는 게 더 마음에 들어.”
“맘대로 하셔도 됩니다. 빼돌린 인간은 절대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좋아, 찾아본다.”
백서휘는 조사단 모두의 몸과 짐을 뒤져 확인했지만, 결정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바로 작전에……. 으윽! 제기랄!”
왼쪽 눈 쪽이 또 타오르는 것처럼 아파져 왔다.
백서휘는 인상을 찡그리며 괜찮다고 손짓했다.
눈을 깜빡거리며 관자놀이를 지압하는데 용호단원 둘의 뱃속에서 반짝임이 보였다.
저건……!
붉은빛 역귀를 상대했을 때의 상황과 흡사했다.
그때의 경험에 의하면 지금 겪는 건 환상도, 착각도 아니었다.
두 명의 용호단원은 결정을 집어삼킨 게 분명했다.
“너하고 너 나와.”
“네?”
“이 앞으로 나오라고!”
두 남자가 쭈뼛거리면서 앞으로 걸어나 왔다.
“열을 셀 동안 자기 잘못을 시인하면 왼팔 하나로 끝낸다. 열, 아홉, 여덟…….”
백서휘는 홍옥빛 왼쪽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두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
“셋, 둘, 하나! 시인 안 한다, 이거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눈치챈 우보가 말리려고 달려가는 순간, 백서휘는 반짝임이 보이는 곳을 강기를 두른 관수로 찔렀다.
“크허억!”
“커컥!”
백서휘는 결정을 집자마자 바로 양손을 회수했다.
피 묻은 그의 양손에는 사람 눈동자만 한 결정이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헛!”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다들 놀란 얼굴로 숨을 들이켰다.
백서휘는 두 개의 결정을 한계가 약간 못되는 결정 덩어리와 합쳤다.
“여기에 묻어놓은 거 빼돌리다 걸리면 그놈만으로 안 끝내고 다 죽여버릴 거니까 다 같이 죽고 싶으면 한번 빼돌려 봐.”
백서휘는 광장 중앙에 결정 덩어리들을 다 묻어놓고 고각대루의 지붕에 자리를 잡았다.
* * *
여러 가지 빛깔을 띤 역귀 여덟이 커다란 가마를 메고 광장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됐다.
보자마자 수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과 관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공 필승!’
백서휘는 가마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며 검을 쏘아 보냈다.
쾅!
검에 의해 마차가 부서지면서 키가 작은 노인이 튀어나왔다.
“누구냐!”
“수주에 있는 역귀들을 만든 거 너지?”
“역귀?”
“머리에 자주색 결정이 있는 것들.”
“자강시(籽僵尸)를 말하는 거냐?”
괴질을 전염시켜 역귀(疫鬼)라 불렀는데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었던 모양이다.
“네가 한 짓이 맞구나?”
백서휘가 검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검이 빠르게 날아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수주는 내가 한 짓이 맞다.”
“수주는? 설마 다른 곳에도 이런 짓을 벌어졌다는 거냐?”
“그걸 내가 말해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걱정 마. 조금 이따가 살려달라면서 말하게 될 테니까.”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옷을 입은 두 구의 자강시는 노인의 곁에 남은 반면, 헐벗은 여섯 구의 자강시가 백서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워어어!”
백서휘는 코웃음을 치며 강기가 휘감긴 검을 휘둘렀다.
‘광풍번천!’
여섯 구의 자강시는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후두두둑!
노인은 비산하는 여섯 자강시의 육편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절정 고수급의 자강시 여섯을 일 수에 죽이다니……!”
“겨우 이따위 것들로 자신한 거야?”
“이, 이번엔 다를 거다! 가랏!”
옷을 입은 자강시 둘이 양쪽에서 백서휘를 덮쳤다.
쐐애액!
왼쪽에 있는 자강시는 상체를, 오른쪽에 있는 자강시는 하체를 노렸다.
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시기에 공격을 내질렀다.
합격술로 유명한 무당파의 고수들도 이렇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놀랍긴 하지만 약해.’
백서휘는 경천신뢰의 초식을 빠르게 두 번 펼쳤다.
스각! 스각!
자강시 둘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땅바닥을 굴러다녔다.
“히이익!”
기겁한 노인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 했다.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신속하게 밟아 노인의 앞을 막아섰다.
궁지에 몰린 노인은 각기 다른 색깔의 손톱을 세워 백서휘를 할퀴려고 했다.
‘남만의 십독단혼조(十毒斷魂爪)랑 비슷한데? 이놈들 근거지가 운남성 쪽인가?’
백서휘는 몸을 옆으로 젖힌 후 노인의 왼쪽 정강이를 걷어찼다.
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노인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악!”
“늙으면 뼈가 잘 안 붙는다던데.”
“끄윽! 이 개 같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지?”
백서휘는 노인의 오른쪽 발목을 있는 힘껏 밟았다.
우드드득!
“끄아악!”
“이제부터는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노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연방 끄덕거렸다.
“아는 거 다 말해봐.”
“아, 아는 거라면 어떤 걸 말해야 하는지…….”
“내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
“이, 이름은 목연승이고 나이는 일흔하나…….”
백서휘가 인상을 쓰며 오른쪽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목 노야, 자꾸 이렇게 어리바리하게 굴면 더 아픈 거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마, 말하겠소. 소속은 불사림(不死林), 근거지는 운남성에 자리를 잡고 있소.”
백서휘가 노인의 왼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뭐 때문에 그런 건지 눈치챈 노인이 황급히 말을 계속 이어갔다.
“우, 운남성의 려강(麗江)에 자리를 잡고 있소! 불사림의 목표는 이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사는 것이오!”
“도시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 거랑 영원히 사는 게 무슨 연관이 있는데?”
“한계 크기까지 키운 결정이 100개가 있으면 인간을 벗어나 영원히 사는 신선이 될 수 있소.”
“신선? 하!”
고강한 자신의 스승조차도 우화등선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겨우 인간의 정기를 모으는 거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다니.
불사림에 소속된 것들은 미친놈들이 틀림없었다.
“가만두면 안 되는 놈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