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87화
보계(寶鷄)를 샅샅이 뒤졌지만, 3원 28수와 관련된 작은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이쯤에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어.’
백서휘는 서안(西安)을 향해 전력으로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하루가 끝나갈 때쯤에 도착한 그는 객잔을 잡고 방에 들어갔다.
‘여기에 단서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단서를 하나도 찾지 못한다면 섬서성 서안에서 하남성에 있는 낙양(洛陽)까지 가야만 했다.
‘걱정은 그만하고 체력 회복에 집중하자.’
만약 서안에 3원 28수와 관련된 집단이 있다면 전투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손해 보지 않으려면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백서휘는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순수한 내공이 코와 입을 타고 들어와 그의 단전에 차곡차곡 쌓였다.
한참을 그렇게 내력을 순환하는데 정수리에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연기는 자기들끼리 뭉쳤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조금씩 꽃 모양으로 바뀌었다.
운기의 끝이 다가오니 희미했던 꽃 모양이 점점 선명해지고 커졌다.
세 개의 꽃들이 완벽한 삼화취정(三花聚顶)의 형태를 이루었을 때, 백서휘는 운기조식을 끝냈다.
짹짹짹!
참새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백서휘가 눈을 완전히 떴다.
그의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본격적으로 탐문을 시작해야겠어.’
단서라고는 역사에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혼자서 추측한 것들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탐문이랍시고 무작정 발로 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단서를 하나라도 잡고서 그걸 따라서 올라가는 게 최선이었다.
‘하오문이랑 개방 중에 어딜 먼저 갈까?’
섬서성은 정파가 확고하게 자기들 영역이라고 주장할 만큼 정파 강세 지역이었다.
그래서 사파인 하오문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쥐 죽은 듯이 지냈다.
‘개방 먼저 가자.’
백서휘는 개방의 섬서성 분타를 찾아가 기이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는지, 비밀리에 모이는 자들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없는데?”
“없었다고?”
“그래.”
섬서 분타주의 표정과 어조, 눈빛 등을 유심히 살펴봤다.
숨기는 게 있거나 첩자로 심어놓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쪽이 뭐 때문에 이런 일을 묻는 건지 알려주면 더 조사해볼 수도 있긴 한데.”
은근하게 유도를 하는 걸 보니 개방은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서안에 진짜로 없는 게 분명했다.
‘하오문도 같을까?’
의문을 품고 하오문의 섬서성 지부를 찾았다.
개방에서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을 던지니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진짜 없나?’
직감은 3원 28수와 관련된 집단은 서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러한 느낌이 들었을 때 백서휘가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오문과 개방 모두 이상하게 느껴졌다.
암중단체가 없는 곳에서도 비밀리에 모이는 자들이나 기이한 일은 있기 마련인데 아예 없다고 단언하듯 말하는 건 조금 수상했다.
‘일단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자.’
소득 없이 다시 객잔으로 돌아온 백서휘는 1층의 빈자리에 앉아 소면과 만두를 주문했다.
시킨 요리가 나올 무렵, 남자 두 명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껄렁껄렁하게 생긴 것하고 다르게 아주 정중히 식사를 주문했다.
선입견이 역시 무섭다며 소면을 입에 넣는데 힐끔힐끔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시선이 느껴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두 남자는 다른 곳에 관심을 두는 척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거두는 그들의 모습에서 감시하는 법을 훈련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감시하는 이유가 뭐지?’
다짜고짜 패서 뒤에 있는 놈이 누군지 알아내기엔 때가 좋지 않았다.
아예 단서를 찾지 못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알아보는 게 좋을 듯싶었다.
‘다 먹고 객실로 올라가 보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던 백서휘는 시선이 있다는 걸 모르는 척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남자들은 은근한 시선으로 끝까지 그를 쳐다봤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겠지?’
백서휘는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
밖엔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던 거지가 뚫어져라 객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거지는 개방 쪽에서, 껄렁껄렁한 두 남자는 하오문 쪽에서 자신에게 붙인 인물로 보였다.
정보를 의뢰한 개방과 하오문에서 자신을 감시한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3원 28수 집단과 관련이 있거나 자신의 질문이 수상해서 사람을 붙였거나.
‘둘 중 어느 쪽일까.’
백서휘는 천천히 기감의 범위를 넓혀갔다.
영물 때처럼 범위를 넓게 하지 않아도 돼서 감각증폭제는 복용하지 않았다.
잠시 후, 객잔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할 거냐.’
껄렁껄렁한 두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다가 바로 옆방에 들어왔다.
‘한 놈이 벽에 귀를 대고 있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남자는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거지는 구걸하며 이쪽을 간간이 쳐다봤다.
‘이제부터는 인내심 싸움이군.’
백서휘는 셋 중의 하나가 어서 움직이길 바랐다.
‘껄렁한 쪽이 제일 먼저 움직일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서너 시진이 지나니 남자 중 한 명이 또 한 번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민을 끝내고 결심한 그는 동료에게 이야기하고 객실을 빠져나왔다.
백서휘는 은형잠종술을 펼치고 그를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하오문의 섬서성 지부에 도착했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자 백서휘도 따라 들어갔다.
“왜 왔어?”
“중간 보고차 왔습니다.”
“어떤데?”
“표적은 객실로 들어간 이후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은밀하더군요. 그런데 이 자는 왜 감시하는 겁니까?”
“그냥 하고 싶어서.”
“예?”
“몰라, 그냥 감시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
“음……. 그럼 저는 잠깐 쉬다가 교대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남자가 사라지고 방에 백서휘와 섬서성의 지부장이 남았다.
“이상하네. 왜 자꾸 그놈을 감시하고 싶어지지? 아무것도 아닌 놈 같은데…….”
섬서성 지부장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거 몇 번 겪었던 일인데?’
기시감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에 기억을 찬찬히 살펴보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가지 있었다.
‘혈교의 주술사들이 펼쳤던 주술이랑 유사한데?’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열쇠가 되는 말을 할 때만 발동되는 주술이었다.
정기적으로 점검해줘야 하고 피시술자가 강한 의지를 품으면 발동되지 않기 때문에 주술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주술사를 추적해보자.’
주술을 펼치지는 못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백서휘는 섬서성 지부장의 훈혈을 짚어 기절시켰다.
그다음 앞으로 고꾸라지는 그를 잡아다가 눈동자를 확인했다.
눈동자엔 별을 상징화한 작은 문양이 은은하게 빛을 바라하고 있었다.
문양을 보자마자 백서휘는 3원 28수 쪽 집단과 관련이 있다는 걸 확신했다.
‘목닦고 기다렸으면 좋겠군.’
백서휘는 양손을 눈꺼풀에 올리고 진기를 불어넣어 주술의 구조를 살폈다.
따로 연구하지 않고 혈교 주술의 파훼법을 그대로 적용해도 될 것 같았다.
백서휘는 일정한 박자와 세기로 진기를 눈동자의 문양에 집어넣었다.
문양이 눈동자에서 떨어지더니 빠르게 어딘가로 날아갔다.
백서휘는 그 문양을 쉬지 않고 쫓아갔다.
‘서안 안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양은 서안을 빠져나가 계속 이동하더니 보계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으로 들어갔다.
‘사람 사는 곳만이 아니라 산도 뒤졌어야 했나.’
서안에 가지 않았으면 이쪽으로 오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태백산을 올랐다.
중턱쯤 올라왔을 때 문양이 길이 없는 곳으로 갔다.
빠르게 날아가던 문양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다가 아예 멈추었다.
백서휘는 긴장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문양이 멈췄다는 건 근처에 주술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근방에서 여러 사람이 말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형잠종술을 쓰고 목소리로 몇 명인지 구분해보니, 최소 여섯 명 이상이란 결과가 나왔다.
그때 거친 목소리를 가진 자가 입을 열었다.
“구망님, 하오문의 섬서성 지부장에게 건 주술이 풀렸습니다.”
‘구망’이라고 불린 사내는 허리 끝까지 백발을 기르고 있었다.
구망은 느껴지는 기세로 보면 무인이 아니라 주술사로 보였다.
“영구적으로 주술을 거는 연구는 아직도 지지부진한가?”
“죄송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할 말이 있다는 건가?”
“……주술은 자연적으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군가 파훼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술을 파훼한 자가 이쪽을 역추적해 공격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곧 오겠군.”
“……이미 와 있습니다.”
“와 있다고? 아! 저기 있군.”
구망은 백서휘가 있는 곳을 정확히 가리키며 말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백서휘가 은형잠종술을 풀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서휘!”
“내가 꽤 유명해지긴 한 모양이네. 처음 봤는데도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하늘이 내게 복수할 기회를 주는구나!”
구망이 원독 어린 눈빛으로 백서휘를 보며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떤 주술을 펼칠지 알 수 없으므로 최대한 빨리 그의 목을 쳐야만 했다.
마음이 급했던 백서휘는 검도 뽑지 않고 일단 구천현현보부터 밟고 봤다.
그가 근접한 거리까지 오니 청룡 7수가 다급한 얼굴로 튀어나와 구망을 감쌌다.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구망님과 너희들을 지키겠다. 그러니 어서 강신(降神)해!”
여인은 양손에 끼고 있는 호조(虎爪)로 백서휘를 할퀴려 했다.
백서휘는 몸을 옆으로 젖혀 피한 후, 강기가 휘감겨진 손으로 난화만천수를 펼쳤다.
그의 쌍장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여인의 복부를 가격했다.
퍼버버벅!
회피는커녕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복부가 터져 여인은 죽었다.
그 모습을 본 구망의 부하들의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기회다!’
백서휘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 채 전력으로 구천현현보를 밟았다.
단 한 걸음 만에 거리를 좁힌 그가 검을 빠르게 뽑아 경천신뢰를 펼쳤다.
쐐애액!
백서휘의 검이 맹렬한 기세로 구망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가장 몸이 크고 세 보이는 무인이 구망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항금용!”
백서휘는 항금용이란 이름을 가진 사내를 베어버리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표범처럼 얼굴이 변한 여인이 궁신탄영으로 앞으로 튀어나오며 손톱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느리다.’
괴물 같은 감각과 심즉동으로 반응이 빨라진 몸이 결합한 덕분일까?
원래도 피하기 쉬웠던 하수들의 공격이 훨씬 더 쉬워졌다.
‘보법을 밟지 않고 그냥 목만 젖혀도 되겠어.’
백서휘는 슬쩍 피하며 표범 여인의 복부에 난화만천수로 때리며 검을 구망에게 던졌다.
백서휘의 검은 고속으로 회전하며 날아갔다.
그때 여우 얼굴을 한 사내가 검을 향해 몸을 던졌다.
검이 여우 사내의 복부를 뚫고 들어가 구망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여우 사내가 검을 잡고 놓지 않는 게 아닌가.
백서휘는 짜증 나는 얼굴로 여우 사내의 이마에 지풍을 날렸다.
퍽!
수박통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우 사내가 죽은 순간, 구망이 진언을 모두 외우는 데 성공했다.
쩌저저적!
주변 공간이 금이 간 거울처럼 갈라지면서 구망과 이제는 세 명밖에 안 남은 그의 부하들이 사라졌다.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지.’
백서휘는 구망이 만든 이공간 안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