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84화
백서휘는 축융을 향해 검강이 휘감긴 검을 날려 보내놓고 구천현현보를 밟았다.
축융이 날아오는 검을 막기 위해 팔 전체에 붉은빛을 띤 열양강기(熱陽罡氣) 를 둘렀다.
쾅!
검첨이 그녀의 교차된 팔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거리를 좁힌 백서휘가 난화만천수를 전력으로 펼쳤다.
막강한 내력이 실린 그의 양손이 축융의 팔뚝을 여러 차례 가격했다.
축융의 방어는 철통같아서 뚫리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틈을 보일 거라 생각하며 때리는데 손을 통해 무언가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제기랄! 화기다.’
열양강기에 접촉이 길어질수록 몸에 침투하는 화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오래 때리면 때릴수록 손해다.’
백서휘는 축융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리면서 천의일기공으로 화기를 제거하는 한편, 어검술로 검을 조종해 축융을 견제했다.
그때였다.
축융이 홍염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백서휘를 향해 날아갔다.
‘무공인가? 아니면 주술?’
경험 많은 백서휘도 처음 보는 형태의 힘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축융의 장심에서 화염이 기다랗게 뿜어져 나왔다.
백서휘는 당황하지 않고 검이 있는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공을 떠다니던 검은 그의 손에 빨려들어 가듯 쥐어졌다.
‘검막을 만든다.’
백서휘는 검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화염을 막았다.
공중에서 쏟아지는 화염이 검막에 저지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화염 방사는 안 통한다는 걸 깨달은 축융이 공격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그녀는 양손에 화염구를 만들어낸 후 지상을 향해 날렸다.
화염구는 황군이 쓰는 포나 벽력문(霹靂門)의 벽력탄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밟아 축융의 공격을 피했다.
애꿎은 땅이 파헤쳐지고 죄 없는 사합원이 새까맣게 탔다.
‘시간이 없다.’
음기를 제때 진기도인해서 양기를 뚫어내지 못하면 조카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백서휘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고 축융에게 반격할 기회를 노렸다.
‘견제해서 틈을 만들어야 돼!’
계속 화염구를 맞추지 못하자 축융이 분노로 몸을 떨었다.
“쥐새끼 같은 놈! 무공을 배울 때 도망치는 법만 배운 거냐!”
백서휘는 대꾸하지 않고 들고 있던 검에 검강을 깃들여 다시 쏘아 보냈다.
축융은 검을 피해다니며 지상에 화염구를 계속 날렸다.
이기어검으로 견제한 덕분에 이전보다 화염구를 쏘는 간격이 줄어들었다.
‘틈이 보인다.’
백서휘는 땅을 박차고 도약해 손을 뻗었다.
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그의 손에 들어왔다.
‘제발 통하기를……!’
백서휘는 어검비행으로 빗살처럼 날아가 검강이 휘감긴 검으로 축융을 내리쳤다.
깜짝 놀란 축융이 열양강기로 이루어진 호신강기를 황급히 만들어냈지만 그의 검이 훨씬 더 빨랐다.
쾅!
굉음과 함께 축융이 바위 속에 처박혔다.
어검비행으로 뒤따라 날아가 더 공격하려 했지만, 축융이 정신을 차리는 게 빨랐다.
‘또 손해를 봤어.’
이번 한번의 공격으로 또 다시 화기가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아직 제거되지 않은 화기와 합쳐지더니 혈맥과 혈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직접 타격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많은 화기가 침투하다니…….’
천의일기공을 발휘해 계속 제거해나가고 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본녀가 오늘 일로 큰 손해를 보더라도 너를 죽여야겠다.”
갑자기 유형화된 화기가 축융의 몸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열양강기와 기로 이루어진 날개의 색이 검붉은 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가 강해졌다.
백서휘가 그녀를 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상대하기 힘든 상대가 한층 더 까다로워졌다.
조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걸 생각하니 답답했다.
축융이 오연한 시선으로 백서휘를 바라보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왔다.
‘호신강기를 만들어야 돼!’
화기를 제거하는 걸 멈추고 천의일기공을 이용해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방어 자세까지 완벽히 취한 후에 축융을 맞이했다.
쾅!
축융은 백서휘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방어를 뚫고 큰 피해를 입혔다.
앙다문 백서휘의 입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진탕된 속을 달랠 새도 없이 축융의 공격이 연이어 들어왔다
그녀는 백서휘의 상체에 짧게 삼연격을 끊어친 후 오른발로 백서휘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쩌적!
백서휘의 오른쪽 다리에서 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가뜩이나 축융의 공격을 피하기 힘든 상황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은 건 타격이 좀 컸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겠어.’
백서휘는 뒤로 몸을 날리며 축융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리고 천의일기공을 순천(順天) 방식에서 역천(逆天)의 방식으로 바꾸어 진기를 움직였다.
입에서 주르륵 검은빛을 띤 피가 흘러나왔지만 괜찮았다.
금이 간 뼈가 다시 붙고 몸에 생긴 자잘한 외상들이 치료되었다.
전신에서는 힘이 넘치다 못해 몸이 터질 것만 같았고, 모든 감각이 증폭제를 먹은 것만큼이나 좋아졌다.
지금 정도의 힘이면 하늘을 가르고 땅을 부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축융은 백서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를 느끼고 흠칫 당황했다.
“잠력을 폭발시킨 건가?”
지금은 말할 시간도 아까웠다.
백서휘는 대꾸하지 않고 바로 축융을 향해 달려들었다.
축융이 놀란 얼굴로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게 보였다.
그녀가 보이는 동공과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어느 곳에 빈틈이 생길지 보였다.
백서휘는 빈틈인 축융의 왼쪽 하복부에 거침없이 검강이 휘감긴 검을 찔러넣었다.
축융이 만들어낸 호신강기가 깨져나가며 검이 살을 두부처럼 부드럽게 뚫고 들어갔다.
“커헉!”
축융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기회다!’
백서휘는 지금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역천의 방식으로 진기를 운행하느라 상태가 안 좋은 혈도와 혈맥에 화기가 더 많이 침투해 들어왔다.
내공을 쓰면 쓸수록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과 칼로 난도질당하는 듯한 통증이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백서휘는 공격을 멈추지 안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더 검을 휘두르고 내질렀다.
방어하던 축융의 입에서 피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호신강기가 완전히 깨졌다.
축융의 몸은 절상과 자상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졌고, 그녀는 결국 백서휘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백서휘는 숨을 헐떡거리며 하늘 높이 검을 들었다.
축융이 원독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 죽어서도 너를 저주하…….”
백서휘는 축융의 목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축융의 머리는 몸에서 분리되어 땅에 떨어졌다.
백서휘는 황급히 천의일기공을 순천의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래도 혈도와 혈맥이 걸레짝이 되고 단전이 우그러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백서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더니 검붉은 피를 한 양동이나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는 비틀거리며 조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정하진과 백은하가 다가왔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가오는 걸 막았다.
‘기회는 한 번 뿐이야. 내 몸 상태와 상관없이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백서휘는 조카의 상태를 먼저 살펴봤다.
조카의 몸은 어떤 곳은 용암처럼 뜨거웠고, 어떤 곳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게 불길한 징조란 걸 아는 백서휘는 황급히 조카의 기해혈에 소량의 내공을 주입했다.
혈맥을 틀어막으며 자리를 잡은 양기와 다르게 음기는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음기가 득달같이 달려와 백서휘의 내공을 공격했다.
백서휘는 내공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여 음기를 길들였다.
‘일단은 이걸로 양기와 싸움을 시작한다.’
백서휘는 통제가 가능한 음기를 임맥으로 몰고 갔다.
임맥을 막고 있는 양기와 백서휘가 조종하는 음기가 강하게 부딪혔다.
쾅쾅쾅!
계속 때리니 양기가 무너지는 만큼 음기가 줄어들었다.
백서휘는 다시 음기를 길들여 가져와 양기를 때렸다.
이 짓을 수십 차례 반복하니 임맥이 뚫렸다.
이후로 독맥을 비롯해 대맥, 충맥, 양교맥 등을 막고 있는 양기도 때려 부드럽게 만들었다.
막힌 상태에서 고여있는 물처럼 있던 양기를 뚫으니 조카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음기와 양기의 양만 비슷하게 맞추면 조카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터였다.
백서휘는 조카의 단전에 음기와 양기를 끌고 와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이제 과다하게 남은 음기만 빼내면 끝이야.’
문제는 조카의 혈도와 혈맥이 미발달된 터라 이렇게 거대한 양의 음기를 빼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기해혈로 몰고 와서 내 몸으로 빨아들인다.’
백서휘는 음기의 움직임을 유도해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였다.
‘이제 빼내기만 하면…….’
장심을 통해 음기가 들어왔다.
‘끄윽!’
자신의 상태를 상정하고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그래서 걸레짝으로 변한 혈맥에서 지금처럼 격통이 일어날 걸 생각지 못했다.
찰나 동안 정신을 놓았을 뿐인데 음기의 통제를 놓쳤다.
음기는 미쳐 날뛰는 용처럼 혈도와 혈맥을 할퀴고 물어뜯었다.
다발적으로 격통이 일어나니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밖에서 들어온 음기가 우그러진 단전 안에 다른 음기가 있단 걸 발견했다.
‘정신을 차려야…….’
밖에서 들어온 통제 불가능의 음기가 단전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가만히 잘 있는 음기를 자극했다.
두 마리의 용이 단전에서 날뛰며 우그러진 단전을 내부에서 깨뜨리려고 했다.
‘이, 이대로 가면 죽는다 방법을 생각해내야 돼.’
그나마 다행인 건 조금 전에 내공을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단전에 여유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밖에서 들어온 음기가 여유 공간을 거의 다 차지했다.
‘이, 일단 통제 가능한 진기를 압축해서 공간을 만들자. 시간이라도 벌어야지.’
백서휘는 통제 가능한 모든 진기를 꾹꾹 눌러 최대한 압축하면서 날뛰는 음기들을 제어하려 했다.
‘돼, 됐다. 조금이지만 음기를 움직일 수 있게 됐어.’
통제 가능해진 소량의 음기는 혈맥에서 오는 격통을 참으며 밖으로 내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의 작업이 익숙해졌다.
‘이것만 내보내면 끝이야.’
마지막 음기를 밖으로 내보낸 후 긴장이 풀린 백서휘는 기절했다.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 내공은 스스로 탁기(濁氣)를 없애 밀집도를 더 높여갔다.
그리고 점점 더 나아가 내공이 완전한 순수를 이루었을 때 그의 정수리에서 3개의 꽃봉오리가 피어났다.
* * *
백서휘가 정신을 차린 건 축융의 습격이 있던 날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후였다.
‘몸 상태를 확인하자.’
가부좌를 튼 후 조심스럽게 내면을 관조했다.
혈도와 혈맥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음기를 계속 빼냈던 노궁혈(勞宮穴)이 제일 심했다.
‘운기요상을 몇날 며칠을 해야 할지 감도 안 오네.’
혈도와 혈맥에 대한 관조가 끝났으니 가장 중요한 단전을 봐야 했다.
신기하게도 우그러진 부분이 조금이지만 나아져 있었다.
‘왜, 왜 내공이 왜 이것밖에 없지?’
예전이 넘칠 듯이 차 있었다면 지금은 단전이 휑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내공이 적었다.
‘아무리 생사의 고비를 넘었다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면 내공이 거의 없는 수준이잖아?’
삼류 무사 수준일 때도 지금보다 많은 내공이 있었다.
‘젠장!’
속으로 수십, 수백 번 욕을 지껄이고 스스로에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조카를 구한 걸 후회하냐?’
답은 아니었다.
자신은 조카를 구한 것을 절대 후회 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가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냥 운기요상으로 내상이나 치료하자.’
단전 밖으로 움직이겠다는 마음을 먹자마자 진기가 이동했다.
‘뭐야? 이건 또 왜 이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상태가 가장 심각한 노궁혈로 진기를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품었다.
그러자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진기가 노궁혈로 이동했다.
‘생각의 속도랑 진기의 수발 속도가 같아졌다고?’
백서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