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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79화 (79/202)

귀환무관 79화

“그 개자식이 무관에서 일한다는 거 확실한가?”

흑뢰문의 문주가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확실합니다.”

“우리가 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나?”

“무관의 관주나 그 밑에 놈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 해봐야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놈들은 우리의 존재조차 모를 겁니다.”

“좋군.”

흑뢰문의 문주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제남과 장사 사이에 거리가 꽤 있다 보니 시장 풍경부터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다른 게 많았다.

“그놈이 일한다는 무관은 어디 있는데?”

“그것까지는 조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알아볼까요?”

“그래.”

흑뢰문의 부문주가 같이 온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인들은 산개했다가 다시 합쳐지면서 단체로 당기준을 둘러쌌다.

“자하무관 사람인가?”

흑뢰문의 문주는 당기준이 입은 관복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직은 그렇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데 그곳까지 안내해줄 수 있나?”

“만날 사람? 누굴 말하는 거지?”

“황보정석이라는 자인데, 아나?”

당기준은 백서휘와 황보정석의 대화를 곁에서 들었기에 이들이 흑뢰문 사람이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관주가 말한 대로 하면 되겠지.’

지시한 그대로를 행하였으니 잘못돼도 당기준의 탓이 아니었다.

“……안다.”

“그 자식이 어디 있는지 안다면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따라와라. 안내해주지.”

흑뢰문의 무인들은 의외라고 생각하며 당기준의 뒤를 따라갔다.

당기준은 그들을 학무관의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없는데? 우릴 속인 건가?”

“데려올 테니까 여기서 조용히 기다려라.”

당기준이 사라지고 연무장에는 흑뢰문의 무인들만이 남았다.

“조금 전 그놈이 정말 황보정석을 데려올까요?”

“눈에 살기가 어린 걸 보면 그놈한테 원한이 있는 놈인 게 분명해.”

흑뢰문의 문주는 사람을 죽이지 못해 욕구불만으로 터져 나온 당기준의 살기를 다른 의미로 오해했다.

“그럼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준비? 무슨 준비?”

“황보정석을 안 잡으실 겁니까?”

“하하하! 그놈을 잡는데 그렇게 거창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다. 소가주 후보 시절에서 조금도 나아진 게 없을 테니까.”

당기준이 사라지고 일각쯤 흘렀을 때, 저 멀리서 백서휘와 황보정석이 걸어왔다.

“오랜만이구나.”

흑뢰문의 문주가 원독이 담긴 눈으로 황보정석을 바라봤다.

“잘 지내셨습니까?”

황보정석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렇게 잘 지내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내 유일한 혈육을 죽였거든.”

“저런……. 고인이 좋은 곳에 갔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제남에서 이곳까지 거리가 상당한 거로 아는데요.”

“모르는 척하는 거냐? 아니면 우리를 놀리는 거냐?”

“둘 중 어느 쪽도 아닙니다. 진짜 몰라서 그런 겁니다.”

“좋아, 그렇다면 말하도록 하지. 우리는 너를 죽이러 왔다.”

흑뢰문 문주의 온몸에서 검은색 뇌기(雷氣)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파지지직! 파지직! 파파지직!

“정말 이놈을 죽이고 싶어?”

백서휘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황보정석을 쿡쿡 찔렀다.

“넌 뭐하는 놈이냐.”

“이놈 목숨의 권리를 가진 놈이지.”

“목숨의 권리?”

흑뢰문 문조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백서휘는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검을 뽑아 황보정석의 목에 겨누었다.

“쉽게 말하면 이놈 목숨은 내 거란 소리야. 그러니 이놈을 죽이고 싶으면 주인인 나한테 흥정을 해.”

흑뢰문의 문주는 처음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냉정함을 되찾았다.

“검은 뭐하러 겨눈 건지 모르겠군. 어차피 부하라 죽이지도 못할 텐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하하하하하!”

백서휘가 검을 겨눈 상태에서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미친놈처럼 웃던지 콜록거리기까지 했다.

흑뢰문의 문주는 자기 예상이 맞았다고 느낀 건지 팔짱을 끼고 그를 비웃었다.

그때 백서휘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황보정석의 몸에 검을 찔러넣었다.

“크헉!”

황보정석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백서휘에게 저항하려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그가 입은 옷에 검붉은 원이 생기더니 점점 커져갔다.

흑뢰문의 문주는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렇게 됐다.

“이래도 내가 이 새끼를 못 죽일 것 같아? 어?”

백서휘는 검을 빼내며 검날에 묻어 있는 피를 혀로 핥았다.

그러고는 다시 황보정석의 목에 다시금 검을 겨누었다.

“이놈 머리를 그쪽 아들 영전에 바치고 싶으면 돈을 가져와. 현금에 만족스러운 액수가 아니면 내가 이놈만 죽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너희들 모가지도 다 날려버릴 테니까 생각 잘해서 가져오는 게 좋을 거야.”

“아, 알았소.”

백서휘가 살기를 있는 대로 뿜어내자 흑뢰문의 무인들이 기겁했다.

그 상태에서 꺼지라고 소리치니 그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갔다.

‘다 갔나?’

기감을 최대로 넓혀 흑뢰문의 무인들이 학무관 밖으로 간 걸 확인했다.

백서휘는 황보정석의 목에 겨누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납검했다.

“너 연기 좀 하더라? 나중에 태도를 들 힘이 사라지면 배우를 해도 되겠어.”

“도박을 잘하려면 연기를 좀 해야 해서 자연스럽게 잘해진 것 같습니다.”

황보정석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백서휘가 턱짓으로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옷은 계속 입고 있을 거야?”

“아, 바꿔입어야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길바닥 돌아다니다 흑뢰문한테 안 다친 거 걸려서 일 망치면 넌 진짜 죽을 줄 알아.”

“저, 절대로 기숙사 안에만 있겠습니다.”

“당기준.”

“네.”

“네 짝패 잘 지켜라. 이번 일 잘못되면 너도 연좌제로 모가지 날려버릴 거니까.”

“딴짓하려고 하면 죽여도 됩니까?”

“그건……. 그래, 죽여도 돼.”

백서휘가 살인을 허락하기 무섭게 당기준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그가 표정을 드러내는 건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일이었다.

황보정석은 그의 미소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기숙사로 가지.”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황보정석은 당기준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가지 마라.”

“안 나갈 거니까 걱정 붙들어 매.”

도박장 이용이라는 포상이 걸려 있는 일이었다.

황보정석은 이번 일을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나 먼저 들어간다.”

“그래.”

황보정석은 방 안으로 들어와 상의를 벗었다.

그 속에는 가죽 주머니를 비롯해 여러 장치가 달린 조끼가 있었다.

“이거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계속 두면 돼지 피 때문에 주머니가 썩을 것 같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 같은데…….”

화령철장 우염상이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만든 거라 그냥 버릴 수도 없었다.

“어쩌지?”

황보정석은 잠깐의 생각으로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상자를 하나 구해 조끼를 넣고 봉인해버렸다.

“몸에 묻은 피도 씻고 관복도 좀 빨자.”

황보정석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엔 당기준이 그의 방문을 노려보며 앉아 있었다.

“어딜 가는 거지?”

“잠깐 씻고 빨래하러 가려는데.”

“확실해?”

“거짓말 같으면 감시라도 하던가.”

당기준은 고심 끝에 황보정석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감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감시할 거야?”

“그래.”

“내가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나?”

“차라리 모용진을 믿는 게 낫지, 도박꾼을 믿는 건…….”

“그 도박꾼이 지금 도박하려고 이러고 있는 거잖아.”

“그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닌가? 관주가 말만 그렇게 하고…….”

“아냐, 관주는 그 말을 지킬 거야.”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그래.”

황보정석은 맹세 때문에 내기를 하지 못한다는 걸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 * *

한 달 후.

흑뢰문의 문주는 하오문의 전서응을 이용해 주거래 전장인 흑산전장의 산동성 지부에 연락했다.

흑산전장은 다시 호남성 지부에 연락해 그가 다량의 돈을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 이 돈 모두를 그 자식한테 드릴 겁니까? 여기서 조금 더 빼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차피 다시 가져올 거니까 얼마를 주든 상관없다.”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황보정석 놈을 죽이고, 그 권리자인지 뭔지 하는 놈의 멱을 딴다. 그럼 돼.”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떤 게?”

“셋 모두를 말하는 겁니다.”

“셋?”

“황보정석을 죽이고 그 권리자를 죽이고 돈을 가져오는 모든 일 말입니다.”

“날 믿어라. 완성을 코앞에 둔 흑뢰기와 문도들의 도움이 있으면 그놈들 모두를 죽일 수 있어. 저번엔 그놈의 미친짓에 당황해서 그런 것뿐이야.”

“음……. 그러면 저는 문주님만 믿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거액의 돈을 인출한 당일에 흑뢰문은 하오문을 통해 백서휘에게 서신을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돈을 가져갈 테니 지난번에 본 곳에서 황보정석과 함께 보자는 게 전부였다.

백서휘가 서신을 다 읽은 후 뒤로 던져버리며 말했다.

“이게 끝이야? 얼마를 가져온다든가 그런 내용은 없었어?”

“서신에는 없었습니다만, 얼마인지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흑뢰문의 문주가 거래하는 전장에 저희 정보원이 있으니까요.”

“그 액수가 얼마나 되지?”

“이 정보는 관주님께서 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참고로 아주 큰 액수니까 들으면 좋아하실 거예요.”

유소화는 하나의 성을 맡은 지부장인 데다 하오문 문주의 제자였다.

그녀가 크다고 말했다면 정말로 액수가 크다는 뜻이었다.

“좋아, 그 정보 사도록 하지. 얼마나 인출한 거야?”

“금자로 이백 냥 정도 된다고 해요.”

“뭐? 금자로 이백 냥? 이놈들이 그렇게 돈이 많은 문파였어?”

“싹 다 긁어서 인출한 걸 보면 아마 다른 계획이 있을 거예요.”

“다시 강탈하겠다는 건가?”

“아마도요.”

“정보 고맙군. 대비를 해야겠어.”

백서휘는 호남성 지부를 빠져나와 학무관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엔 황보정석이 완전무장을 한 채 나와 있었다.

“준비됐나?”

“네.”

“내가 가르쳐준 대로만 하면 돼.”

“알고 있습니다.”

“뒤질 것 같아도 내 말대로 해야 한다?”

“네.”

일각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흑뢰문의 무인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눈빛에는 짙은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돈은 가져왔나?”

“여기.”

흑뢰문의 문주는 팔을 쭉 뻗어 주머니를 보여주었다.

“흔들어 봐.”

짤랑짤랑!

주머니엔 현금이 든 게 맞았다.

“철전은 아니지?”

“금자로 가져왔다.”

흑뢰문의 문주는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살짝 보여주었다.

“틀림없군. 돈 이리로 넘겨. 그럼 바로 이 자식에 대한 권리를 잠시 동안 ‘당신’에게 양도하겠다.”

백서휘는 당신이란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잠시 동안?”

“죽이지도 못하면서 계속 권리를 가지려고 했어? 그렇겐 안 돼.”

“얼마나 되지? 그 시간이?”

“하루.”

“너무 짧은……. 아니, 당신 거래에 응하도록 하지.”

어차피 다 죽일 생각이었기에 하루든, 일주일이든, 일 년이든 흑뢰문의 문주에겐 상관없었다.

“던져!”

흑뢰문의 문주가 주머니를 던졌다.

주머니를 받은 백서휘는 황보정석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재밌게 즐기라고!”

“그러지.”

황보정석이 앞으로 걸어나오자 흑뢰문의 문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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