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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68화 (68/202)

귀환무관 68화

오대세가는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보니 다른 사람에겐 말 못 할 속사정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 속사정은 거의 모든 경우 인간 그 자체가 문제였다.

연을 끊고 싶어도 부모이고 형제자매라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백서휘는 이 점을 이용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좋은 일이지. 나도 좋고, 오대세가도 좋고, 인간으로 ‘개조’될 것들도 좋은…….”

백서휘는 답장을 쓰면서 답답하게 이리저리 꼬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종이에 쓱쓱 적었다.

“됐다.”

백서휘는 똑같은 내용의 서신을 오대세가에 보냈다.

* * *

“서신에는 뭐라고 적혀 있더냐?”

당가의 가주는 결재해야 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며 물었다.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으면 가치 없는 서신 나부랭이를 보내지 말고 자기에게 돈을 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당가의 소가주는 열중쉬어 자세로 가주에게 보고했다.

“돈을?”

“대신 문제 있는 인간을 개조해주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만……. 아버님이 말씀했던 것과 그자의 성격이 같다면 폭력을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보다는 주먹, 주먹보다는 칼이 더 가까운 사내긴 했지.”

“그런 위험한 자와 교류를 꼭 해야 합니까?”

“무림에서 강자와 친해지는 건 언제나 옳다.”

“그자가 그렇게 강합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하백상을 상처하나 입지 않고 잡아 왔다고.”

“진짜 그렇게 강하다면 그놈을 그쪽에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기준이를?”

“날이 갈수록 그놈 단전 안에 봉인한 독령(毒靈)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놈이 독령을 제어하기라도 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음…….”

“후천적이긴 하지만 살성(殺性)까지 지닌 놈이니 언젠가는 대형 사고를 칠 겁니다. 그때 우리 손에 피를 묻히느니…….”

“기준이에게도 당가의 피는 흐른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천하제일인에게 맡기면 최소한 우리 손으로 같은 일족을 죽일 일은 없지 않습니까.”

당가의 가주에겐 소가주의 말이 꽤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래서 그는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고민했다.

“그놈이 독령을 손에 넣으면 인세에 지옥이 펼쳐질 겁니다. 그걸 바라시지 않는다면 백서휘란 자에게 보내는 게 백번 천번 옳습니다.”

“확실히 우리 밑에서 터지는 것보다는 그 백서휘란 자 밑에서 터지는 게 책임 소재면에서 낫긴 한데, 음……. 그자에게 보낼 수밖에 없겠구나.”

“진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놈도 이해해줄 겁니다.”

“그렇겠지?”

“예.”

“그자에게 보낼 돈은 네가 적당한 액수로 준비하거라. 나는 기준이에게 한번 가봐야겠다.”

“알겠습니다.”

당가의 가주는 장원의 중심부로 향했다.

중심부에는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 건물을 지키던 자들이 당가의 가주에게 물었다.

“그놈을 보러 오신 겁니까?”

“그래.”

“잠시 자리를 비켜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래 주면 고맙겠다.”

“반 각 후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건물을 지키던 자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당가의 가주는 문에 달린 수십 개의 자물쇠를 일일이 열쇠로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왜 오셨습니까.”

당기준이 누운 채로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는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널 보러 왔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절 찾아오신 겁니까. 평소에는 악귀 취급하며 멀리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당가의 가주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오늘이 제 멱을 따는 날이라 찾아온 거면 그냥 가십시오.”

“예부터 손이 귀해 대역죄인이 아니고선 일족의 목숨을 끊는 일이 없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 있는 걸 테니까요.”

“네가 ‘당’ 씨로 계속 산다면 네 목숨을 끊을 일은 없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라.”

“그럼 뭐 때문에 이곳에 오신 겁니까?”

“보고 싶기도 하고 해야 할 말도 있어서 찾아왔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악귀 취급하실 땐 언제고……. 해야 할 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빠르게 하고 가십시오.”

“알겠다.”

“나는 너에게 한정된 자유를 주려고 한다.”

“자유?”

당기준은 바로 앉으며 처음으로 당가 가주를 똑바로 봤다.

흉포한 포식자가 가질 법한 눈이 그의 안와에 자리하고 있었다.

“보, 보름 후에 내보내 줄 테니 그날을 고대하고 있거라.”

당가의 가주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 * *

오대세가에서 보낸 남자들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날에 백서휘를 찾아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주머니를 손에 들고 있었다.

“주머니는 다 저랑 얘한테 주세요.”

금태평과 서강호가 다섯 남자가 건네는 주머니를 받아 한곳에 모아뒀다.

“그 백서휘란 새끼는 어디 있냐? 여기 오면 있다고 그런 것 같은데.”

“예의를 갖추십시오.”

“예의? 너 내가 누군 줄 아냐? 어? 난 누군가한테 예의를 갖출 만큼 신분이 낮은 사람이 아니야.”

“그쪽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모용진은 어이없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색하더니 서강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때 기척 없이 나타난 백서휘가 그의 주먹을 낚아챈 후 뒤로 확 꺾어버렸다.

“아아아악! 놔! 안 놔? 씨발 좀 놓으라고!”

백서휘는 모용진의 발뒤꿈치를 툭 하고 찼다.

그러자 모용진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자빠졌다.

“으억!”

“네가 어느 집안의 애새끼인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서도 모가지에 힘주고 다니면 나한테 죽어. 알아들었어?”

백서휘가 모용진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모용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서휘는 그의 머리채를 놔주고 주머니를 모아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이게 전부인 거 맞지”

“네, 받은 건 이게 전부예요.”

“음…….”

백서휘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 건지 모르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에 서강호가 보여준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강호한테 좀 더 신경을 써볼까?’

자신 같은 고수가 시간을 내서 봐준다는 건 아주 큰 혜택이었다.

이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시험할까 고민하던 차에 세가에서 준 돈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이 돈을 가지고 도망치면 거부가 될 수 있는 돈이야.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전장에 맡길까?’

금태평이야 집안에 돈이 많은 놈이라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서강호는 달랐다.

지금까지도 그는 빈민가에서 궁핍하게 살고 있었다.

‘사람 인성을 이렇게 시험하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해봐야겠어.’

백서휘는 품에서 철전을 꺼내 두 사람에게 주었다.

“이거로 만두나 하나씩 사 먹고 주머니들 금와전장에 맡기고 와.”

“감사합니다. 그런데 꼭 만두를 먹어야 합니까?”

“딴 거 먹어도 돼. 아예 안 사 먹어도 상관없고.”

“알겠습니다.”

서강호와 금태평이 돈주머니를 가지고 금와전장으로 떠났다.

백서휘는 몸을 돌려 다섯 남자를 바라봤다.

“다들 주머니랑 함께 지참한 서신 나한테 줘.”

다섯 남자에게서 걷은 서신은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백서휘는 밀랍을 떼어내고 안에 든 것들을 확인했다.

안에 들어 있는 건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신과 신상명세서였다.

‘와! 진짜로 처치 곤란인 놈들을 보냈네.’

다들 화려한 전적과 심각한 문제를 보유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빡세게 임해야겠는데? 이놈이…….’

가장 덩치가 크고 졸린 눈을 한 자의 이름은 황보정석으로 정말 ‘모든 것’에 내기를 거는 도박중독자였다.

‘그 옆에 있는 게 모용진? 깝죽댔다가 혼난 이놈이 그나마 나을 정도라니…….’

모용진은 가문의 권세를 믿고 약한 놈들만 두들겨 팬 놈으로 교정이 제일 빨리 될 놈으로 보였다.

‘가운데는 제갈선우?’

제갈선우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 거나하게 취해서 온 자라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어머니를 잃고 그날 이후로 매일 술을 마셨고 취해 있지 않으면 힘들어한다?’

이해가 갈듯하면서도 안 갔다.

백서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음 놈의 신상명세서를 읽었다.

‘이놈의 이름은……. 남궁민? 남궁혁? 뭐야, 왜 이름이 두 개야? 어떤 게 진짜 이름인 거지?’

신상명세서를 보니 왜 이름이 두 개인지 답이 나왔다.

‘마음속에 또 하나의 인간이 있다고? 귀신이 빙의라도 한 건가?’

대체로 착하면서 소심한 남궁민이 주로 활동하지만, 간간이 온종일 분노한 상태로 있는 남궁혁으로 바뀌기도 한다고 신상명세서에 적혀 있었다.

‘무당을 찾아가야 할 놈인 것 같은데…….’

백서휘는 한숨을 내쉰 후에 당기준의 신상명세서를 읽었다.

‘차가운 성격에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다.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데다 무언갈 죽이는 걸 좋아한다? 살성을 타고난 놈인가?’

살성을 타고난 놈이면 좀 골치가 아프긴 했다.

‘무공 수련 잘 안 하고 여자들이랑 시시덕거리는 놈들 정도만 올 거라 생각했는데…….’

백서휘는 한쪽 손으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압하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삼매진화를 발휘해 서신을 태웠다.

“오늘은 처음으로 모인 시간인 만큼 서로 인사하며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갖겠다. 누구 먼저 할래?”

“그쪽부터 하지 그래?”

제갈선우가 술병을 든 손으로 백서휘를 가리켰다.

“자, 소개를 하기 전에 할 말이 있다. 나한테든 다른 사람한테든 건방진 모습을 보이면…….”

백서휘의 모습이 순간 사라지더니 제갈선우의 앞에 나타났다.

퍽!

이동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타격하는 모습까지 놓치자 당기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처맞게 될 테니까 주의를 좀 해라.”

“우웩!”

제갈선우가 속에 있는 모든 걸 게워냈다.

먹은 거라고는 술밖에 없는지 액체뿐이었다.

“토한 거 책임지고 깨끗이 닦아놔.”

“내가 왜…….”

토하던 도중에 제갈선우가 올려다보며 말했다.

백서휘는 그대로 팔꿈치를 아래로 내려쳐 제갈선우가 토사물에 얼굴을 처박게 했다.

“여기 오기 전에 했던 것처럼 굴면 인생이 아주 고달파질 테니까 눈치껏, 잘, 알아서 행동해. 알았어?”

“네!”

남궁민과 모용진만이 겁먹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자, 이제 다시 원래 하던 거로 돌아가자고. 어디까지 했더라?”

“자, 자기소개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좋아, 너부터 해봐.”

“제, 제 이름은 남궁민……. 이 아니라 ‘남궁혁’이 내 이름이다. 헷갈리는 새끼들 있으면 다 대갈통을 깨부술 테니까 주의하는 게 좋아.”

“다음은 너.”

“저, 저는 요녕성에서 온 모용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누가 할래?”

무관의 실내수련실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먼저 소개한 둘과 다르게 나머지 셋은 백서휘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되도록 인간 대접을 해주면서 일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백서휘의 몸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기준은 모든 감각을 증폭시켜 그의 기척을 잡아내려 했다.

퍼버버벅!

‘저기인가?’

강기준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봤지만 백서휘는 없었다.

토사물 위를 나뒹구는 제갈선우만 있을 뿐이었다.

‘이번엔 반드시 잡아낸…….’

휙휙휙!

거구의 몸을 가진 황보정석이 앞으로 쓰러졌다.

‘다음 차례는……. 컥!’

당기준만이 유일하게 백서휘의 공격을 맷집으로 버텨냈다.

“오! 이 정도를 버텨내?”

“죽어!”

백서휘는 당기준이 날린 주먹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냈다.

“재밌는 사실 알려줄까? 네가 살성을 타고났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인물인 것 같고 그렇지?”

“죽으라고!”

당기준은 우모침을 쏘아 보냈지만 백서휘는 고개를 젖혀 피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너는 좀 반성을 해야 돼. 살성이란 거 정말 아무것도 아니거든. 노력만 하면 보통 사람처럼 살 수도 있고. 아! 이런 말을 왜 하는지가 궁금할 것 같네.”

“죽으라니까!”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는지 알려줄까? 네가 살성이면…….”

퍽!

당기준은 백서휘가 가볍게 날린 주먹에 기절하고 말았다.

“난 그 살성들을 잡아먹는 놈이거든. 아, 기절했네. 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내심 도망가길 바라며 오대세가에서 보내온 놈들에게 추종향을 은밀히 묻혔다.

그때 문이 열리며 금태평이 실내수련실 안으로 들어왔다.

“강호는 어디 가고 너만 왔냐?”

“강호랑은 전장에 돈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헤어졌어요.”

“왜?”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갔어요.”

“그래? 음…….”

서강호의 아버지는 처음 만났을 때 각혈을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

그런 자에게 편찮다고 할 정도면 오늘내일하는 상태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조만간 부고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군.’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를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강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백서휘는 바로 서강호에게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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