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66화
제갈중헌은 ‘하백상’이란 이름만 들었는데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선천진기를 소진했나 보오?”
“어.”
“당신한테는 이상이 없소? 맹주가 저 모양인 걸 보면 싸움이 굉장히 격렬했을 것 같은데…….”
“다행히 없어.”
제갈중헌과 그가 모은 자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서 백서휘는 내상을 작게 입었단 사실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다행이구려.”
“시간이 없으니 잡담은 이쯤 하자고. 지금은 이놈 고문해서 정보를 뽑아내는 게 더 급하니까.”
“고문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요?”
“분근착골.”
“정상인 사람도 버티기 힘든 고문 아니오? 맹주가 그걸 받으면 정보를 다 토해내기 전에 죽을 거요.”
“그럼 어쩌잔 건데?”
“우리에게 맡기시오.”
“어떻게 할 건지 들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맡길게.”
“당가에 비전으로 전해지는 약침이 있소. 그걸 쓴다면 하백상을 죽이지 않고 정보를 뽑아낼 수 있소.”
“음…….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따라오시오.”
백서휘는 하백상을 둘러업은 채로 제갈중헌을 따라 지하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어두컴컴했고 집기라고는 손잡이와 다리에 가죽끈이 달린 의자와 협탁 하나뿐이었다.
“저기에 앉혀놓으면 당가 사람이 와서 약침을 꽂을 거요.”
백서휘는 하백상을 의자에 앉히고 가죽끈을 묶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중년 남자 넷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대세가의 가주거나 그와 비슷한 급인 사람들로 보였다.
‘구파일방 사람들은 왜 없는 거지? 설마…….’
설명하라는 눈빛으로 슬쩍 제갈중헌을 쳐다봤다.
제갈중헌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행동을 보니 의도적으로 오대세가 사람들만 모은 게 맞는 것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제갈중헌이 어떤 생각으로 계획을 짰는지 보였다.
하백상은 무림맹에 속한 중소 문파 파벌의 수장이었다.
그를 쳐내고 그의 수족들인 중소 문파들을 찍어내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이권들을 먹어 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혼자 할 수 없으니 다른 세가를 모은 거겠지.’
백서휘는 진심으로 제갈중헌의 계획에 감탄했다.
그때 사천당가의 가주가 백서휘와 제갈중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침을 놓아도 되겠소?”
“놓으시오.”
사천당가의 가주는 자백제가 묻어 있는 금침을 하백상에게 놓았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사천당가 가주의 뒷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한 식경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을 때, 사천당가의 가주가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아봤다.
“다 끝났소.”
“그럼 이제 궁금한 걸 물어보면 되는 거요?”
“그렇소.”
제갈중헌은 품속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냈다.
뭔가 싶어 슬쩍 보니 그 종이에는 하백상에게 할 질문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다행히 비자금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
처리해야 할 일을 잊을 정도로 막 나가는 건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백상.”
하백상이 초점 잃은 눈동자로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의 이름은?”
“하유성.”
“어머니의 이름은?”
“손지희.”
“형제 관계는?”
“형이 둘 있었지만 죽었다.”
“어쩌다 죽었지?”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죽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남궁세가의 가주에게로 향했다.
“크흠.”
남궁세가 가주가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하는 걸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다시 하백상을 바라봤다.
“혈루단에 들어간 건 뭐 때문이지?”
“나 같은 피해자를 다시 만들지 않으려면 무공을 배운 무뢰배들을 모두 죽여야만 했다. 그래서 들어갔다.”
혈루단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해낼 수 있단 생각을 하백상은 아예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혈루단의 본거지는 어디지?”
“적송상단.”
“혈루단의 단장은 적송상단의 대방인가?”
“그렇다.”
“적송상단에서 일하는 자 중에 혈루단 소속인 자를 말해.”
“적송상단에서 일하는 모두가 혈루단 소속의 사람들이다.”
“무림맹에는 혈루단 소속의 사람이…….”
질문과 대답이 계속될수록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마지막 질문이다. 정말 무림을 멸절시키려고 했나?”
“그렇다.”
제갈중헌이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눈짓했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기다렸다는 듯 걸어와 하백상의 목을 베었다.
“혈루단 본단과 무림맹 내부 정리 중에 어떤 걸 택할래?”
백서휘는 제갈중헌의 속내를 확실하게 떠보기 위해 함정 질문을 던졌다.
“그쪽보다는 우리가 무림맹에 대해 더 잘 아니 내부 정리는 우리가 맡는 게 좋을 것 같소.”
“겸사겸사 그 내부 정리를 당할 놈들이 가졌던 이권도 다 먹어 치우고 말이지?”
“그, 그건…….”
정곡을 찔린 제갈중헌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권 다툼하는 거야 무림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까 내가 뭐라고 안 할게. 근데 내 몫을 안 빼놓는다? 그때는……. 지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아, 알겠소”
“내 믿음을 배신하지 마.”
백서휘는 제갈중헌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안가를 빠져나갔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총군사가 이렇게 저자세로 구는 거요?”
“말도 안 되게 강한 자라 그렇소.”
“그래도 우리 다섯이 함께면 죽이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그, 그런 생각 꿈에도 하지 마시오.”
제갈중헌이 다급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황보세가의 가주와 남궁세가의 가주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그 하백상을 상대하고도 생채기 하나 안 입은 자요. 우리가 덤비면 백 초식은커녕 한 초식도 버티지 못할 거요.”
다른 가문의 가주들은 제갈중헌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백서휘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그 사이, 백서휘는 전력을 다해 응룡비천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뒤로 휙휙 밀려나는 풍경 사이로 적송상단이라고 적힌 깃발이 보였다.
잘못 봤나 싶어 속도를 줄이고 뒤를 돌아봤다.
‘제대로 봤군.’
적송상단의 커다란 대문으로 사람과 짐마차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백서휘는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시작해볼까.’
백서휘는 설렁설렁 달려가다 있는 힘껏 검을 투척했다.
무섭게 날아간 검이 현판이 달린 대문의 상단부를 완전히 박살 냈다.
쾅!
대문을 지키고 서 있던 위사들과 출입을 통제하던 사환이 대문의 무너진 잔해에 깔렸다.
“으아악! 대문이 무너졌다!”
“사람이 깔렸어!”
“사람 살려!”
공황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백서휘가 검이 있는 쪽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휘이익!
잔해 속에 있던 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다시 백서휘의 손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 기감을 최대한 넓히고 오감을 증폭시켰다.
그러자 이 근방의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졌다.
‘오는군.’
상단에 소속된 무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백서휘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투창처럼 던졌다.
“누구냐. 정체를 밝……. 크헉!”
상단에 소속된 무사들은 등장과 동시에 배에 구멍이 꿰뚫려 죽었다.
백서휘의 검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러다 핏빛 옷을 입은 사환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사, 살려주세요!”
서걱!
잘린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핏빛 옷을 붉게 물들였다.
‘다음은 저놈, 그다음은…….’
백서휘는 핏빛 옷을 입은 자를 발견할 때마다 죽였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백서휘가 적송상단의 사람들만 골라 죽이고 있단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여기! 여기 적송상단의 사람이 있소!”
휘익!
푹!
“여기 이놈 살려고 옷을 갈아입고 있소. 빨리 죽이시오!”
쐐애애액!
스각!
적송상단 소속의 사람들을 거의 다 죽였을 때, 혈루단의 단장이 나타났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 많은 사람을 죽인 거요! 내가 모르는 원한이 당신에게 있는 거요?”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
“원한이 없는데 이리도 지독하게 사람을 죽였단 말이오? 그것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을?”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무림을 주유하면서 느낀 건 약자라고 선하고, 강자라고 악한 게 아니란 사실이었다.
“죄? 무슨 죄를 말하는 거요?”
“무림을 멸절하고 황실을 전복시키려 한 죄.”
“그, 그걸 어떻게…….”
혈루단의 단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림을 멸절한다? 뭐, 당한 게 있으니 이거까지는 그래도 봐줄 만한데, 황실을 전복하는 건 너무 많이 나갔지.”
당한 만큼 복수하는 건 무림의 그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그런데 황실의 전복은 혈루단이 선을 넘은 것이었다.
백서휘에게 혈루단은 복수라는 명분을 전가의 보도 삼아 뭐든지 하려고 하는 놈들일 뿐이었다.
“황실을 전복하는 게 잘못됐다고?”
“그래.”
“세금이란 세금은 있는 대로 다 걷어가면서 백성을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그놈들을 그냥 가만히 두고만 보란 말이오? 나는 그렇게 못 살겠소. 절대 그렇게 살 수 없소.”
“그럼 죽어야지, 뭐.”
“죽이시오.”
혈루단의 단장은 눈을 질끈 감고 양손을 옆으로 쭉 펼쳤다.
백서휘는 고민하지 않고 그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었다.
“커억! 세상이 지금 같다면 제2, 제3의 혈루단은 계속해서 만들어질 거요…….”
“귀찮으니까 당대에는 더 만들지 마. 알았지?”
백서휘는 혈루단 단장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서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컥!”
혈루단 단장이 눈을 부릅뜬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백서휘는 강환을 날려 적송상단의 전각들을 무너뜨린 후,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죽어라! 맹주의 개!”
“이 자라같은 놈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림맹 밖까지 싸움을 치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서휘는 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은형잠종술을 쓰고 무림맹 안에 들어갔다.
‘내 판단이 맞았군.’
무림맹 안에서는 오대세가와 중소 문파의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은형잠종술을 쓸 생각 없이 진입했으면 중소 문파 파벌의 사람으로 오해받아 전투에 휘말릴 뻔했다.
‘중원 무림의 무학을 감상해볼까.’
백서휘는 지붕에서 전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압도적인 강자가 없으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네. 해 질 녘에나 전투가 끝나겠어.’
예상했던 해가 질 때쯤이 되어서야 전투가 끝이 났다.
백서휘는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모여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갔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논공행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총군사 말은, 그자의 몫을 우리와 똑같이 치자는 거요?”
남궁세가의 가주는 말을 하는 내내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육 등분 해야 하는 게 맞소. 가장 강한 적인 하백상을 잡은 건 그자 아니오.”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그자는 개인이고 우리는 집단이오. 피해를 입어도 우리가 피해를 더 입었소. 꼭 줘야 하는 건 알겠는데 우리 피해가 너무 크니…….”
“적게 주자?”
백서휘가 아무것도 없는 구석에서 불쑥 튀어나와 말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화들짝 놀라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너희들 다 죽이고 모든 이권을 다 가져갈까? 어? 그러길 원해?”
“차, 참으시오.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닐 거요. 전투로 입은 피해가 너무 크다 보니 볼멘소리를 한 것뿐이오.”
“그날 안가에서 한 놈을 죽이고 봤어야 하는데…….”
백서휘의 진득한 살기에 겁을 먹은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다급하게 사과 인사를 했다.
“미, 미안하오.”
“초, 총군사가 말했듯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오. 가문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오.”
“이번만 넘어갈 줄 알아. 또 한 번 내 몫 탐내다 걸리면 그때는 ‘오대세가’란 말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날이야. 알아 들었어?”
백서휘가 엄포를 놓자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 * *
백서휘는 자신의 몫으로 떨어진 것 중 관리하기 힘든 전답과 주루, 객잔 등을 여러 세가에 나눠 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이야! 이 짓 몇 번만 하면 중원 1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겠는데?”
“얼마나 받았길래 온종일 싱글벙글한 거냐?”
“볼래?”
“한번 보자꾸나.”
백서휘는 우염상의 손에 사람 머리통만 한 주머니를 들려주었다.
우염상은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 이거 전부…….”
“금원보야.”
“맙소사!”
“저도 보면 안 돼요?”
종리연이 백서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는 금원보 많이 보지 않았어?”
“은원보야 많이 봤지만 금원보는 저도 몇 번 못 봤어요.”
“그럼 한번 봐봐.”
백서휘가 손짓하자 우염상이 주머니를 종리연에게 건넸다.
종리연 역시 주머니 안에 든 금원보들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 엄청나네요.”
“진짜 안에 든 금원보들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왜 있는지 알 것 같다니까.”
“……돈 많이 버셨으니까 부탁드리는 건데요.”
“월봉 인상은 없어.”
부탁이 단박에 거절당하자 종리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서역으로 도주하는 일은 언제쯤 도와줄 생각이냐?”
“돈도 받고 했으니 지금 바로 떠나도 돼. 당장 출발할까?”
“그럼 바로 떠나자꾸나.”
“그래.”
백서휘와 우염상, 종리연은 마차를 타고 장사를 향해 달려갔다.
* * *
핏빛 옷을 입은 자들이 폐허가 된 적송상단을 돌아다니며 생존자를 찾아다녔다.
“여긴 없어요.”
“제가 있는 쪽도 없어요. 아저씨 쪽은 어때요?”
“내 쪽도 없다. 크흑!”
늙은 남자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른 이들도 그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처럼 외부로 나간 인원 말고는 모두 죽었나 봐요.”
“그렇게 단정 짓지 말자.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약관의 청년이 늙은 남자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 아직 생존자가 있을 수 있어. 더 찾자. 흑흑흑!”
“네.”
핏빛 옷을 입은 이들은 열심히 수색활동을 했다.
덕분에 몇 명의 생존자를 찾고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의원! 의원을 불러와!”
약관의 청년이 부리나케 뛰어가 의원들을 데려왔다.
“미안하외다. 내 의술로는 이들을 살릴 수 없소.”
“화타, 편작이 돌아와도 이들을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오.”
“내 생각도 다른 두 사람과 같소.”
모든 의원이 생존자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만큼 생존자들이 입은 상처는 중했다.
“이럴 순 없다! 이럴 순 없어! 우리가 무얼 잘못했다고 다시 한번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느냔 말이다. 크흐흑!”
늙은 남자의 눈에서 피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모두가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그들은 무림인에 의해 가족, 연인, 친구를 잃은 자들이었다.
다시 한번 아픔을 겪었단 사실에 그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뒤에서 마력이 깃든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수하고 싶은가?”
“누, 누구냐!”
“다시 한번 묻겠다. 너희들의 형제와 자매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하고 싶은가?”
“……복수하고 싶소.”
늙은 남자는 분루를 참으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 밑으로 들어와라.”
“우리?”
“우리는 혼천회(混天會), 수호문이 만든 질서를 파괴할 검(劍)이다.”
하얀 반가면을 쓴 자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핏빛 옷을 입은 자들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