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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54화 (54/202)

귀환무관 54화

“서휘? 백서휘 맞느냐?”

우염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누구겠어.”

“다시는 널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날 신강에서 헤어지고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

백서휘는 마지막으로 우염상을 봤던 날을 회상했다.

두 사람은 크게 특별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서로에게 사정이 있어 함께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고,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빌었다.

그렇게 작별의 인사를 나눈 후에 자신은 암중단체를 쫓으러 신강을 떠났고, 우염상은 그대로 남아 서역으로 갈 준비를 하다가 금의위에 잡힌 것 같았다.

“여긴 안전한 곳이냐?”

“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안전하다는 사실 잊었어?”

“이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하는 말이다.”

“걱정하지 마. 위협만 해도 내가 다 죽여버릴 테니까. 우 노괴 구하러 가던 길에 이미 그러기도 했고.”

“누굴 죽였다는 거냐? 너 설마 날 구하면서 금의위를…….”

“금의위는 안 죽였어.”

“그러면 누굴 죽였느냐?”

“동창을 결딴냈지.”

“뭐?”

“사정을 말하면 기니까 묻지 마.”

“아니, 사정이 뭐 얼마나 길면 묻지 말라는 거냐.”

“짧게 요약해서 말할게.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다시 묻지 마.”

“알았다.”

“동창의 그 환관 놈들이 암중단체 중 하나랑 붙어먹어서 근거지에 있던 놈들 다 죽여버렸어.”

“맙소사! 대형 사고를 쳤잖아! 내가 죽을 자리를……. 아니, 내가 온 게 아니잖아. 서휘야, 날 금의위 감옥으로 다시 돌려보내 놔라.”

“왜?”

백서휘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우염상을 바라봤다.

“네가 날 죽이려고 하니까 그러지!”

“동창 죽인 거 때문에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마. 무공 흔적 같은 거 안 남겼으니까.”

“그래도 살아남은 동창 놈들이 추적하기 시작하면…….”

“나한테 크게 신경 못 쓸 거야. 그놈들 앞으로 바쁠 거거든.”

백서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바쁘다니?”

“근거지에 앉아서 붓이나 놀리던 윗대가리들이 사라졌으니, 그 자리 차지하려고 안 싸우겠어? 그것도 환관 놈들이?”

“아!”

“내가 왜 여유만만한지 이제 이해가 되지?”

우염상이 고개를 계속 끄덕이다가 살짝 갸웃거렸다.

“금의위에서 들어오는 추적은 어떻게 하려고?”

“금의위에게서 구해준 것만으로 내 역할은 충분히 했어. 도주 같은 건 알아서 하라고.”

“그렇구나.”

“뭐, 날 도와주면 나도 도주를 도와주긴 하겠지만…….”

우 노괴가 아는 천하제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백서휘’였다.

천하제일인이 도주를 도와주면 서장을 넘어 서역까지 도망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느냐?”

“만년한철로 갑옷을 만들어줬으면 해.”

“중원 전체와 전쟁이라도 치르려는 거냐?”

“혹시 몰라서 만들어놓는 거야.”

백서휘가 오해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음……. 만년한철을 재료로 뭔가를 만들려면 일반적인 대장간에선 무리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쪽에 말하면 장비 빵빵한 대장간을 수배해줄 거거든.”

“이쪽?”

“이 집 주인 말이야.”

“이 집 주인이 누군데?”

“금와전장의 주인.”

우염상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 금와전장의 주인이라면 천하에서 금과 은을 제일 많이 가진 사람 아니냐.”

“소문이 그렇게 퍼지긴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엄청난 부자인 건 변함없지 않으냐.”

“웬만한 부자들보다 더 부자이긴 하지. 말 나온 김에 인사나 하러 갈까?”

“이, 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아!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그럼 내일 인사하는 거로 하고, 여기서 잠 좀 자고 있어.”

“어딜 가려고?”

“이왕 피곤한 김에 하려던 일을 마저 처리하려고.”

“알았다.”

백서휘는 방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황일승의 침실에 갔다.

“콜록콜록!”

황일승의 기침 소리에 백서휘는 괜히 불안해져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소단으로 고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약식으로 만든 터라 영기가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가 장담이 안 됐다.

백서휘는 일단 말을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할아범, 나야 서휘.”

“이 시간에 콜록콜록! 무슨 일로 왔느냐? 콜록!”

“폐병 고쳐주러 왔지.”

“어떻게?”

“자소단이 있잖아.”

“그걸로 되겠느냐?”

“시도해서 나쁠 건 없잖아.”

“네가 먹는 게 나을 텐데?”

“나한테는 아무런 효과도 없으니까 할아범 주는 거야.”

황일승은 시원하게 웃다가도 다시 거칠게 기침을 했다.

“들어갈게.”

“콜록콜록! 그래라.”

백서휘는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촛불에 비친 황일승의 안색은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죽어가는 건 아니지만 완연한 병색이 느껴졌다.

불안으로 인해 마음이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흔들렸다.

‘약식이라도 웬만한 영단보단 낫다는 자소단이야. 자소단의 영기를 이용해 치료하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야.’

굳게 마음을 먹은 백서휘는 황일승에게 가부좌로 앉을 것을 요구했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는지 황일승은 별 무리없이 가부좌를 틀었다.

“예전에 몇 번 이렇게 해봤으니까 주의사항에 대해선 알 거야. 그렇지?”

“그래.”

“그럼 설명 안 하고 바로 실전에 돌입할게.”

백서휘는 품속에서 자소단을 꺼내 황일승에게 건넸다.

“셋에 먹는 거야.”

“알았다.”

“하나, 둘, 셋!”

황일승이 손에 들린 자소단을 꼭꼭 씹어 먹었다.

백서휘는 그의 명문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이 악물어.”

황일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자소단은 위장에서 저절로 소화되는 동안, 백서휘는 황일승의 명문혈로 진기를 조심스럽게 불어넣었다.

그때 자소단에 뭉쳐져 있던 영기(靈氣)가 이리저리로 퍼져나가려 했다.

‘모든 기운을 놓치지 않고 포집해야 돼.’

백서휘는 불어넣은 진기를 그물 모양으로 만들어 자소단의 영기가 딴곳으로 새지 못하게 만들었다.

‘됐다. 이제 이 기운으로 수태음폐경을 치료하기만 하면 돼.’

폐의 기운이 모인다는 중부혈(中府穴)에 자소단의 영기를 보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기(邪氣)를 치워야 돼!’

폐를 병들게 했던 사기를 자소단의 영기로 모두 밀어버렸다.

그다음 다시는 사기가 침입하지 못하게 중부혈에 커다란 방벽을 만들었다.

‘다음은 운문(雲門), 천부(天府), 협백(俠白), 척택(尺澤)…….’

수태음폐경을 타고 내려갈수록 황일승의 호흡기는 점점 더 건강하게 변해갔다.

마지막으로 소상(少商)까지 회복시키니 기운이 쇠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수태음폐경이 튼튼해졌다.

‘됐다.’

백서휘는 수태음폐경을 변화시키고 남은 자소단의 영기를 전신에 퍼트리는 것으로 치료를 마무리했다.

“이제 입 열어도 돼.”

황일승은 진이 빠졌는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입 모양으로 겨우 고맙다고 전할 뿐이었다.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황일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백서휘는 피식 웃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황일승은 잠을 푹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고?”

기침 때문에 잠에서 깨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적이 몇 번이던가.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원인을 따져보면 단순히 영단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폐병에 걸린 이후부터 지금까지 못해도 영단을 다섯 개는 먹었지만, 몸 전체적으로는 건강해졌어도 폐병엔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었다.

“설마, 서휘 덕분인가?”

사람 하나가 붙고 붙지 않았을 뿐인데 이런 차이를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역시 고수라 다르긴 한가 보구나.”

백서휘에 대한 고마움이 샘솟았다.

“보답을 해야겠구나.”

생일선물로 너무 큰 걸 받았다.

이런 건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됐다.

“뭘 주는 게 좋을까.”

백서휘는 그냥 무인도 아니고 고절한 수준의 무인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칼로는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강호 12대 명검 중 하나를 구해 봐? 아니다, 그건 너무 늦어. 음…….”

그때 밖에서 백서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범!”

“무슨 일이냐?”

“문안 인사 겸 사람 소개?”

“사람을 소개한다고? 이 시간에?”

“지금 아니면 둘이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더라고.”

“음……. 알았다. 대충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마.”

“그럼 이쪽도 채비를 할게.”

황일승은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못 말리는 놈이라니까.”

시비가 가져다준 세숫물로 씻고 대충 옷을 입고 나오니, 백서휘와 처음 보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이 소개한다는 사람이냐?”

“어.”

“금와전장의 주인이자 황가장의 장주인 황일승이라 합니다.”

황일승이 포권을 하며 말하자 상대도 포권으로 대답했다.

“우염상이라고 합니다. 본인은 쇠를 만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염상? 어디서 많이……. 헉! 강호 12대 명검 중 두 자루를 만들었다는 화령철장이십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그때 황일승의 머릿속에 백서휘에게 줄 만한 선물로 괜찮은 것이 떠올랐다.

“……서휘와 어떤 관계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은 서휘 이놈을 동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서휘에게 뭐든 만들어줄 수 있겠습니다?”

황일승이 떠보듯 물었다.

“안 그래도 어제 만년한철로 갑옷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잠깐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저 갑옷을 만들려면 엄청 좋은 대장간이 필요하거든? 그 대장간 좀 수배해주겠어?”

백서휘가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을 했다.

“대장간 수배해주도록 하지. 그리고 특별한 것도 자소단의 보답으로 주고.”

“특별한 것?”

“금고에서 꺼내야 돼서 지금은 없지만 네게 운철(隕鐵)을 주려고 한다.”

우염상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게 귀한 게 있습니까?”

운석에서 채취할 수 있는 운철은 만년한철보다 더 귀한 재료였다.

만년한철이 그래도 운이 닿으면 평생에 진짜 딱 한 번쯤은 만질 수 있는 재료라면, 운철은 삼생(三生)의 덕이 쌓여야 허락이 되는 재료였다.

“하하, 천하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제게 운철을 구하는 일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물건을 만들 정도로 모았으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황일승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질문 하나만 해도 되나?”

백서휘가 손을 살짝 들으며 황일승과 우염상의 눈치를 봤다.

황일승과 우염상이 그를 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년한철에 운철을 섞으면 어떻게 돼? 더 좋아져?”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냐. 더 좋아지다마다. 네가 원하는 대로 갑옷으로 만든다면 그 누구도 꿰뚫을 수 없고, 부술 수도 없는 그런 갑옷이 될 거다.”

“강기나 강환에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도 꽤 많이 견뎌낼 거야. 그런 놈에 네 진기가 주입된다면 그때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진짜 엄청난 거였구나!”

백서휘의 입꼬리가 찢어질 것처럼 올라갔다.

황일승과 우염상은 서로를 봤다가 다시 그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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