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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44화 (44/202)

귀환무관 44화

백서휘는 두 사람과 거리를 두고서 기척을 드러냈다.

천천히 걸어가니 그제야 두 사람이 그를 바라봤다.

남궁유운은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반면, 종리연은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넌 여기 웬일이야?”

“그게……. 음악! 음악을 들으러 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곳이 아니면 평소에 음악 듣기가 힘드니까요. 하하하!”

남궁유운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북북 긁었다.

“음악만 들으러 온 게 아닌 것 같은데…….”

“으, 음악 들으러 온 거 맞습니다. 그러다 여기 계신 분을 관주님이 데려오셨다고 해서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이야기? 흐음…….”

백서휘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진짜 이야기만 했어요.”

종리연은 의심받는다는 사실이 억울한지 울상을 지었다.

그녀의 반응에서 재미를 느낀 백서휘는 짓궂은 짓을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나눴습니다.”

“꼬시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만 나눴다는 거지?”

“네.”

남궁유운은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얘 말이 맞아?”

“네, 맞아요.”

괜한 의심 사기 싫었던 종리연 역시 거짓을 말했다.

“다행이네. 난 또 둘이 눈이라도 맞는 줄 알고 노심초사했잖아.”

“눈이 맞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곧 떠날 사람이라서.”

“그 말씀은 저 소저가 곧 떠난다는 뜻으로……?”

“응.”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선생이 될 수도 있다고 저분이 말했는데요?”

“얘가?”

“네.”

백서휘가 종리연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뭐야, 너 선생 되고 싶어?”

“시, 시켜 주시면 열심히 할게요.”

“어떤 분야의 선생이 되고 싶은데?”

“……무공이요.”

백서휘에게 항상 까여서 그렇지 종리연도 상당히 강한 무인이었다.

거기다 중원 전체를 봤을 때 일류 수준의 고수는 확실히 적었다.

그녀는 당연히 학무관의 선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백서휘가 이제껏 지었던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지우고 심각하게 말했다.

“왜요?”

“검기를 능숙하게 뽑는 게 아니라면 선생은 힘들어.”

아예 무공을 모르는 자들만 받을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들도 관원으로 받을 생각을 백서휘는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기의 수발이 능숙하지 못해 검기가 들쑥날쑥한 사람은 선생으로 받기 힘들었다.

“……그럼 저는 선생이 아예 될 수 없는 거네요?”

종리연의 말을 들은 백서휘는 아차 싶었다.

너무 많이 밀었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를 조금 당겨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예 될 수 없는 건 아니지. 고수가 되면 선생이 될 수도 있고, 수업을 돕는 조교가 될 수도 있거든.”

“그, 그러면 그 조교라는 걸 시켜 주세요.”

“네가 생각한 것보다 월봉이 적을 수 있어. 그래도 할 거야?”

“네.”

“좋아, 계약서 쓰러 가자.”

“저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남궁유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음악 들으러 왔다며. 음악 듣고 있어.”

“그래도 제가 옆에 있으면 이분이 안심하고…….”

“그런 도움 딱히 필요하지 않은데요.”

종리연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남궁유운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내, 내가 까였다고? 그것도 여자한테? 이럴 리가 없는데?’

처음으로 매몰차게 거절당한 터라 충격이 컸다.

넋이 나간 얼굴로 있으니 백서휘와 종리연이 떠났다.

둘의 뒷모습을 보던 남궁유운은 속에서 승리욕이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계약서는 무관에 있으니까 무관으로 가자.”

“네.”

무관에 도착하니 이십사수매화검법 수업이 한창이었다.

“관주님!”

“아니, 수업 계속해. 이야기는 이따 나누자.”

“아, 네.”

운학을 저지시키고 백서휘는 종리연과 함께 침실 겸 관주실로 들어갔다.

“자, 이게 우리 학무관의 기본 계약서야. 한번 읽어봐.”

“네.”

종리연은 한참을 계약서만 읽었다.

‘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바보 취급받고 싶지도 않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종리연은 ‘아는 척’을 하기로 했다.

“궁금한 거 있어?”

“아니요, 없어요.”

“그럼 이제 서로 ‘협의’ 하에 조항을 수정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백서휘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좋아요.”

“자, 일단은 조건부터 변경하자. 너는 그냥 선생이 아니라 조교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여기 월봉에 적힌 은자 40냥을, 이렇게 10냥으로 줄이자고.”

“너, 너무 많이 줄이는 거 아닌가요?”

“의식주는 어차피 학무관에서 제공할 거니까 10냥만 받아도 남아돌 거야.”

“진짜요?”

“그렇다니까. 그다음은 이제 특약을 넣을 차례야. 천재지변이거나 몸이 아픈 게 아닌데 출근을 안 하면 문제겠지?”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에이~ 인간의 삶이란 건 의외로 ‘의외성’이 없어.”

“그래도…….”

“아니, 생각해 봐. 지진이 나거나 홍수가 난 것도 아니고, 몸이 정말 아파서 출근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막 일터에 출근을 안 하거나 늦으면 문제야? 문제가 아니야?”

“문제에요.”

“그걸 방지하고자 이렇게 2회 이상 지각하면 1회 결근으로 처리하고, 1회 결근을 하면 그날의 일급을 모두 제하는 특약을 넣는 거야.”

“그래도 액수가 너무 큰 것 같은데요.”

“그래서 보호자 혹은 다른 사람이 대신 일하거나, 일급에 해당하는 돈을 대납하면 괜찮다는 특약을 여기에 넣을게.”

“알았어요.”

“다음 특약은 네 휴식을 위한 거야.”

“휴식이요?”

“네가 지쳐 보이거나 아파 보이면 일을 해야 하는 날에도 내가 재량껏 네가 쉴 수 있는 날을 만들어주는 거야.”

“제가 괜찮아도 관주님이 일할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쉴 수 있는 날을 만들어준다는 거죠?”

“그래. 그리고 쉬는 날에는 당연히 월봉에서 그날의 일급(日給)을 제해야 돼.”

“제게 너무 불리한 조항 아닌가요……?”

종리연이 미심쩍은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아니. 결코 그렇지 않아. 생각해 봐. 만약 네가 열 때문에 몸을 못 가누다가 넘어져서 운기하고 있는 관원의 몸을 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관원한테 주화입마가 일어날 수 있겠지?”

“네.”

“주화입마가 그래도 세게 안 오면 괜찮지만 세게 온다고 생각해봐. 관원이 반신불수가 되면 너는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네 실수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든 건데?”

백서휘는 평생에 한 번 일어나기 힘든 일을 예시로 들었다.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이런 조항을 넣는 거야. 네 상태가 안 좋은 날에 내 판단하에 쉬게 할 수 있도록.”

“……그럼 그 특약도 넣어야겠네요.”

“동의하는 거지?”

“네.”

“그럼 다음 특약은 정말 중요한 거야. 네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게 아닌데 갑자기 일을 그만둔다고 하는 거야.”

“그럴 일은 없어요.”

“아니, 생각해봐. 학사일정이 다 짜였고 이제 진행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네가 일을 못 하겠다고 그러는 거야. 그러면 내가 곤란해지잖아.”

백서휘는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 과장했다.

“추격자에게 잡힐 걸 걱정하는 거예요?”

“조금?”

“그러면 그런 일이나 기타 여러 사유로 그만두게 될 경우 대신 일할 다른 사람을 이리로 보낼게요.”

“그것도 좋은데 나는 위약금을 무는 쪽이 더 좋을 것 같아.”

“얼마나요?”

“월봉의 6배? 한 학기를 6개월로 잡을 생각이거든.”

“좋아요. 그러면 그 둘 중 하나로 하는 거로 할게요.”

“좋아. 특약 적는다?”

“네.”

“이제 마지막 특약은 이렇게 다 동의해놓고 나중에 다른 말을 할 걸 대비해서 넣는 건데…….”

“저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안 그럴 거라고 자신한단 거지? 그럼 이 특약도 넣어도 되겠네?”

백서휘가 도발하듯 물었다.

“……무슨 특약인데요?”

“계약서에 수결하면 법으로든, 다른 사람을 동원해서든,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된다는 특약. 뭐, 이 특약이 맘에 안 걸리면 빼도 돼. 근데 그러면 내가 널 신뢰하기 힘들지.”

종리연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를 너무 나쁜 여자로 보시는 거 아니에요?”

“일은 철두철미하게 해야지. 그래야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한 거 아니겠어?”

“저도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그렇게 할게요.”

백서휘는 일필휘지로 빠르게 특약을 적었다.

“한번 확인해봐. 틀린 게 있나.”

“없네요.”

“그럼 수결해.”

세상 물정 모르는 종리연은 바로 앞에 있는 종이가 갖는 무게를 모르고 계약서에 수결을 해버렸다.

“자, 이제부터 너도 우리 학무관의 식구니까 기숙사가 생길 때까지는 내가 특별히 네 숙박비를 다 부담할게.”

“고마워요.”

“고맙긴……. 조교 자리에 지원해준 내가 고맙지. 덕분에 걱정을 덜었어. 인력이 필요했었거든.”

“정말요?”

“그렇다니까.”

종리연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미리 일을 체험해보는 게 어때?”

“체험이요?”

“운학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면 네가 대신 관원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무관에서 사람들을 가르쳐보는 거야. 어때?”

“제가 그렇게 큰일을 맡아도 될까요?”

“어차피 조교에서 성장하면 선생도 될 거잖아. 예습한다고 생각하고 한번 체험해봐.”

“좋아요. 한 번 해볼게요.”

“이건 체험이라 일봉은 없어. 대신 의식주는 내가 책임져줄게.”

“네!”

자신의 시간도 확보하고 운학의 수업 부담도 줄였다는 사실에 백서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면 네 선배가 나타날 거야.”

“아까 그 화산파 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그놈이 널 가르쳐주고 평가할 사람이니까 어리바리하게 굴지 말고, 걔가 하는 말도 잘 들어. 알았어?”

“네.”

종리연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을 보였다.

“자, 나가자.”

백서휘와 종리연이 관주실에서 나오니 운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다 끝나셨습니까?”

“응.”

“저도 드릴 이야기가 있는데 안에서 잠깐 저랑 대화를…….”

“아, 휴일을 가지는 문제 때문에 그런 거면 그 문제는 해결됐어.”

“예? 제가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매형이 알려줬어. 요새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해결책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네가 쉬는 동안 얘가 관원들을 가르칠 거야.”

“화산파가 아니라 이십사수매화검법을 가르칠 수 없으니, 관원들은 기초 부분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되겠군요.”

운학은 백서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니까 네가 쉬는 동안 어떤 부분을 강조해서 가르쳐야 하는지, 수업 방식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이런 것들은 얘랑 상의해.”

“이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소개를 안 했구나. 이쪽은 화산파의 운학이고, 이쪽은……. 그냥 여류고수 종리연이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종리연’이란 이름을 들은 운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백서휘는 황급히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사도련 련주의 딸이니까 ‘적당히’, ‘알아서’, ‘모욕적이지 않게’ 가르쳐.』

운학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백서휘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

백서휘는 매서운 눈으로 입 다물라고 몸짓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시간 나면 나누자.』

운학이 눈빛으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럼 두 사람은 교육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이만 사합원으로 가야겠어.”

“사합원이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종리연이 되물었다.

“이곳 장사에서는 사합원 형태로 지어진 집이 드문데, 마침 우리 누나 집이 사합원이거든. 그래서 사합원이라고 하면 누나 집에 간다는 뜻이니까 대충 알아들어.”

“아! 네!”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백서휘는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아직 쟤가 숙식할 곳을 못 찾아서 그러는데 안내 좀 해줄 수 있어?”

“이야기 끝나면 제가 책임지고 소저가 숙식할 곳을 잡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할게.”

백서휘는 두 사람을 무관에 두고 사합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산파 준비반이 궤도에 오르면 다음에는 뭘 해야 할까? 무관 급제반이 나으려나.’

십팔반 무기와 기마술 등을 가르칠 선생을 찾지 못했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무학관이 지어지기 전에 선생도 빨리 찾아야 해.’

무관이 정치질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관직에서 물러난 자인 동시에 현직에 있는 자들에게 강력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 무관을 찾으려면 북경에 한 번 올라가긴 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 하면서 빠르게 걸으니 사합원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백서휘!”

“누나!”

“말도 안 하고 그렇게 갑자기 떠나면…….”

백서휘는 빠르게 달려가 백은하를 껴안았다.

“찾았어.”

“뭘 찾았다는 거야. 잠깐, 설마……?”

“누나가 생각하는 거 맞아.”

백은하는 홍매검을 건네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백서휘는 오른쪽에 차고 있는 검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확인해봐도 될까?”

“얼마든지 해도 돼.”

백은하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는 검집에서 검을 꺼내보였다.

“매화만리향……. 백상훈……. 진짜 아버지가 아끼던 홍매검이 맞구나…….”

“만복상단의 도움이 없었으면 못 찾았을 거야.”

“고마운 사람들이네.”

“내가 그만큼 잘하니까 도와준 거겠지. 하하.”

“어머니 반지도 되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머니 반지? 아! 그 아버지가 결혼을 약속할 때 선물했다던 그 반지를 말하는 거야?”

백은하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내가 찾을게.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 때문에 팔았던 물건들 모두 되찾을 거야.”

백서휘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맹세하듯 다짐했다.

“믿을게.”

백은하가 다 커서 돌아온 동생을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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