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40화
백서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만복상단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건지 금태풍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며?”
“말씀드리기 전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슨 부탁?”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그건 약속할 수 없어.”
“그러면 저도 홍매검의 행방에 대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정보를 쥐고 있는 금태풍이 ‘갑’인 만큼 그의 뜻을 따라주는 게 맞았다.
백서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좋아, 화 안 낼 테니까 말해.”
“홍매검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행방이 묘연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마지막 소유자의 말로는 두 달 전에 누군가가 집에 침입해서 홍매검을 훔쳐 갔다고 합니다.”
“안 팔려고 수작질 부리는 게 아니라?”
“저도 그게 의심스러워서 조사해봤는데 진짜로 누군가 훔쳐 간 게 맞았습니다.”
“누가 훔쳐 간 건지는 모르겠지?”
“모릅니다.”
“그럼 아버지의 검은 영원히 못 찾게 된 건가……?”
백서휘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직 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도둑은 홍매검만 정확히 노려서 가져간 게 아니라 그림이며 도자기, 돈을 다 가져갔습니다.”
“무영신투처럼 기벽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돈 때문에 물건을 훔치는 도둑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돈 때문에 훔친 거라면 물건들을 현금화하기 위해 암상을 만나겠군.”
“그래서 저희 측 사람들이 암상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게 되면 바로 나한테…….”
띠리링!
밖에서 종소리가 들리자 금태풍의 표정이 급변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인가 봅니다.”
“내가 나가야 하나?”
“아니요. 안에 있으셔도 괜찮습니다.”
금태풍은 문 너머를 향해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문이 열리고 다급한 표정을 한 사환이 뛰어 들어왔다.
“그, 급보입니다. 대방께서 말씀하셨던 물건들이 암상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모든 물건이 나온 건가?”
“그림이랑 도자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검은 어떻게 됐지?”
“검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
금태풍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물건들 어느 지부의 암상에 나온 거지?”
사환은 말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 금태풍의 눈치를 봤다.
금태풍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사환은 입을 열었다.
“절강성 항주의 암상에…….”
백서휘는 위치를 듣자마자 만복상단의 본단을 뛰쳐나왔다.
무관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장비들을 챙겨 절강성으로 향했다.
* * *
백서휘는 암상의 위치를 들은 날부터 지금까지 최소한으로 쉬고 달렸다.
그 덕분에 열흘을 조금 넘겼을 때 항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암상을 찾아야 하는데…….’
암상은 여러 집단이 하나의 이름 아래 뭉친 군집으로 이루어져 있어 성마다 찾는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불행히도 백서휘는 다른 성들의 암상을 찾는 방법은 알지만, 절강성의 암상을 찾는 방법을 몰랐다.
‘일단은 하오문부터 찾아서 암상에 대해 물어보자.’
음지에 있고 여러 집단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같지만 그래도 하오문은 하나의 명령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하나의 명령체계는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에 접선 암호와 방법을 통일했다.
그래서 암상보다는 하오문을 찾는 쪽이 좀 더 쉬웠다.
‘문제는 여기가 항주라는 건데…….’
하오문이 거점으로 주로 삼는 기루와 주루가 항주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이 있었다.
‘일단 찾아보기나 하자.’
백서휘는 하오문의 표식을 찾아 항주의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 지나가는 남자의 손등에 하오문을 뜻하는 표식이 그려져 있는 걸 발견했다.
‘어? 저건?’
백서휘는 도망가지 못하게 남자를 잡은 후 벽으로 밀쳤다.
쿵!
남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으악! 씨발! 너 뭐하는 새…….”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귀빈만 아는 암호를 날리자 남자는 순식간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리로……!”
남자가 골목 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따라오십시오.”
남자는 굳은 얼굴로 백서휘를 하오문의 절강성 지부로 안내했다.
복잡하게 설계된 미로를 거쳐 지부장실로 가니 처음 보는 여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오……. 이런, 귀빈이라고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서휘님이셨군요.”
“누구지?”
“유소화에요.”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 없다. 다시 묻겠다 누구지?”
“기억 못하시는군요.”
“하오문에서 날 아는 사람은 문주와 장로 몇 명뿐이다. 그들이 반로환동한 건 아닐 테니 나를 안다는 건…….”
스릉!
백서휘가 검을 뽑아 유소화의 목에 겨누었다.
“그쪽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거지. 어떻게 내 이름까지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죽기 싫다면 아는 정보, 모르는 정보 다 토해내는 게 좋을 거다.”
“이름은 귀빈께서 이야기해주셨어요.”
“내가? 이야기했다고? 말도 안 되는…….”
운학과 있었던 일이 백서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포달랍궁에서 구해낸 세 아이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한 기억이 있었다.
“너 설마 그때 그 꼬마 중 하나?”
백서휘는 겨누었던 검을 밑으로 내려놓았다.
“기억하시는군요.”
“아니, 원래라면 기억 못 했을 거다.”
“백성현 아니, 운학을 만나셔서 알게 된 거군요.”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지? 날 감시라도 한 건가?”
백서휘는 유소화의 목에 다시 검을 겨누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대답 잘하는 게 좋을 거다. 옛 인연이나 하오문의 지부장 자리가 널 지켜주지는 못할 테니까.”
“귀빈이시면서 ‘하오문’이란 조직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나 보네요.”
“내가 알아야 할 게 따로 있나?”
“수도 지부 다음으로 큰 곳이 절강성 지부에요. 그리고 절강성 지부는 전통적으로 문주의 제자가 맡죠.”
“그러니까 네가 하오문 문주의 제자다? 그러니까 건들면 큰코다칠 거다, 이건가?”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유소화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뭐지?”
“귀, 귀빈님에 대한 정보는 초특급이라 제가 받아볼 수 없어요. 대신 몇몇 정보에 대해서는 스승님께서 일러주셔서 알고 있고 거기에 다른 정보들과 합치면…….”
“몇몇 개? 어떤 걸 말하는 거지?”
“전음으로 말해도 될까요? 듣는 귀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좋아, 해봐.”
유소화는 백서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귀빈님이 수호문의 문주로서 중원을 지킨 것과 저희 스승님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사실, 귀빈님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 알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게 설명이 되지 않는데?』
백서휘가 겨눈 검은 유소화의 목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스승님이 일러주신 정보만으로는 그렇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 다른 정보가 합쳐지면 알 수 있어요! 호남성 지부장의 목을 날렸는데 그 사람을 추살하지 않고 계속 귀빈으로 대하라는 스승님의 명령이나, 그 귀빈의 말에 따라 장사 지부장이 정해진 것들이 합쳐지면 귀빈의 정체가 어느 정도 특정돼요!』
작은 정보들을 합쳐 큰 정보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일품이었다.
‘화란보다는 이 애를 지부장으로 두는 게 나한텐 더 편하겠어. 정보가 넘어갈 가능성도 적고…….’
정보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건 두렵지 않았다.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커 꺼릴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운학에게 붙여둔 사람들이 알려준 정보까지 합치면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은 그냥 알 수 있죠.』
백서휘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살았다는 생각에 유소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암상에 대한 정보를 내놔.”
“암상은 왜 찾으시는 건지…….”
“여기 오는 사람들이 사정을 다 말하던가?”
“그, 그게 아니라 암상의 절강성 지부는 저희와 협력 관계라…….”
“협력 관계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겠군?”
“왜 암상을 찾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정을 알려주신다면 귀빈이신만큼 특별히 정보를 알려드릴 수 있어요.”
“내가 꼭 가져야만 하는 물건이 있는데 그걸 도난당했다. 그런데 이쪽 암상에 내가 가져야 할 물건과 같이 도난당한 물건이 매물로 나왔다더군.”
“그 물건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가져야만 하는 물건은 검이고, 같이 도난당한 물건은 그림이랑 도자기다.”
“그림이랑 도자기를 동시에 내놓은 놈을 찾으면 되나요?”
“그래.”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러지.”
정보를 기다린 지 반 시진이 조금 안 됐을 때, 유소화가 염소처럼 수염을 기른 자를 데리고 왔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협박을 받아서…….”
퍽!
“제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아셨어요?”
“네…….”
“이름과 하는 일 말하세요.”
“이름은 사길승이고 직업은 양상군……. 아니, 도둑놈입니다. 두어 달 전쯤에 의뢰를 받아 부잣집을 털었고 거기서 도자기와 그림, 돈, 검을…….”
“의뢰를 받았다고?”
백서휘가 잡아먹을 듯 무서운 눈으로 사길승을 노려보며 살기를 쏘아 보냈다.
“컥컥컥!”
사길승은 시뻘게진 얼굴로 컥컥거리며 목을 미친 듯이 긁었다.
“귀빈님, 살기를…….”
유소화의 말에 백서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살기를 거두었다.
사길승은 바닥에 손을 짚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말해요, 누구한테 의뢰를 받았어요?”
“누구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냥 돈을 강제로 쥐여주면서 검을 훔쳐 오라고 했어요. 안 훔쳐 오면 가족들을 다 죽인다고…….”
“의뢰한 자의 아는 걸 다 말해봐요.
유소화는 품에서 종이와 작은 붓을 꺼내 기록할 준비를 했다.
“새, 생김새는 잘 모르겠습니다. 천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있어서.”
“천으로 칭칭 몸을 감고 있었다고?”
백서휘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그리고 말투는 평범했고, 버릇은 모르겠습니다. 아! 그자가 나중에 이렇게 잡히게 되면 전하라고 한 말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데?”
“기다리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고, 얼른 자기를 찾아오라고. 이래도 안 오면 당신이 흑철방(黑鐵幇)을 파괴했던 것처럼 자신도 자하무관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그랬습니다.”
백서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생존자가 있다고?’
암중단체 중 하나인 흑철방.
그곳을 멸문시킬 때 분명 모든 이의 목숨을 끊었었다.
백서휘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놈 일단 가둬놓고, 그놈이 아직 항주에 있나 찾아봐.”
“잡아다 올까요?”
“찾는 데 성공하면 너희들 수준으로는 미행하는 것도 위험하니까 발견하는 대로 나한테 말해.”
“더 부탁하실 건 없으신가요?”
“없다.”
“최대한 빨리 찾아오겠습니다.”
유소화와 사길승이 나가고 방에 백서휘만 남았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흑철방과 연관이 있는 자들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다 죽였다.
생존자가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자식과 만나보는 수밖에 없겠어.’
백서휘의 몸이 만전의 상태로 돌아왔을 때, 문이 활짝 열리며 유소화가 뛰어 들어왔다.
“찾았어요!”
백서휘는 반개했던 눈을 완전히 떴다.
“어디 있지?”
“운해객잔이요!”
백서휘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밑으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