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39화
잠시지만 화산파 장문인이 자하무관에 기거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 소문을 믿지 못하고 반신반의했다.
목격담이 하나둘씩 나올 때부터 점점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화산파 장문인이 무관 근처를 거니는 모습을 다수가 발견하면서 소문이 진짜라는 게 확실해졌다.
그때부터 장사만이 아니라 호남성 전체에서 구름떼처럼 자하무관으로 몰려왔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이제껏 지원했던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이번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
‘많네.’
입관 관련 서류들이 실내 수련장에 곳곳에 쌓여 있어 발을 디딜 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게 화산파 장문인이라는 직함이 가진 힘인가!’
이번 일을 통해 백서휘는 ‘구파일방’이라는 이름에 사람들이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무관을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키우면 그때는 구파일방도…….’
쨍그랑!
쨍그랑!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며 점점 가까워져 왔다.
백서휘는 청각을 증폭시키고 기감을 살폈다.
‘누구? 아! 누나랑 매형이구나.’
백은하와 정하진은 지금 입관 추첨권을 팔고 받은 돈을 가지고 오는 중이었다.
거리가 있는데도 이렇게 소리가 들릴 정도면 모인 돈이 꽤 많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나 들었을지 기대되네.’
잠시 후, 실내 수련장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백은하와 정하진이 들어왔다.
그들의 양손에는 포대 자루가 한 개씩 들려 있었다.
“자, 이거 받아.”
백서휘는 누나 부부에게서 네 포대를 받아 땅에 내려놓았다.
“액수는 포대 자루에 든 종이에 적혀 있어. 확인해보고 안 맞으면 얘기해줘.”
“알았어.”
“우린 이만 가볼게.”
“도와줘서 고마웠어. 내가 나중에 크게 한턱낼게.”
“크게 한턱낼 돈으로 이번에 태어날 네 조카가 쓸만한 물건을 사줘.”
“알았어.”
누나 부부가 집으로 돌아갔다.
백서휘는 홀로 앉아 돈의 액수가 종이에 적힌 것과 같은지 확인했다
틀리지 않으려고 천천히 세다 보니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금원보 2개 정도 되겠군.”
다행히 기록된 것과 액수가 틀린 포대 자루는 없었다.
백서휘는 흡족한 표정으로 침실로 향했다.
침실의 천장에 있는 돈을 꺼내 포대 자루에 넣었다.
‘가볼까.’
백서휘는 돈이 든 포대들을 들고 금와전장으로 향했다.
‘원보로 바꿔서 내가 따로 보관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웠다.
자신이 어디 가지 않고 무관에만 있다면 모를까.
학무관 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나가는 상황이었다.
지금 같은 때엔 전장에 돈을 맡기는 게 제일이었다.
‘간 김에 자금 흐름에 이상한 점이 없는지 물어봐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와전장에 도착했다.
“지점장 안에 있나?”
“네, 있습니다.”
“여기 있는 돈 전부 내 이름으로 입금하고 지점장한테 내가 왔다고 전해.”
“네!”
포대 자루를 맡기고 조금 앉아 있으니 금와전장의 호남성 지점장이 후다닥 뛰어나왔다.
“아이고! 관주님, 오셨으면 바로 지점장실로 들어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하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바로 들어가시죠.”
“그래.”
백서휘는 지점장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 가장 상석에 앉아 지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인네는 잘 있지?”
“마지막으로 정기 보고를 했을 때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음…….”
먼 옛날부터 금와전장은 수호문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금와전장은 수호문이 맡긴 돈을 굴려서 더 크게 불려주고, 암중단체의 자금흐름을 쫓는 일을 도와줬다면, 수호문은 다른 이들에게서 금와전장을 보호해주고, 방해되는 이들을 처리해주었다.
역사가 오래된 관계인 만큼 수호문의 문주와 금와전장은 굉장히 가깝게 지냈다.
천하에서 돈으로는 따라갈 자가 없다는 금와전장의 주인을 노인네라고 부를 만큼.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지?”
“자세하게 얘기해주질 않으셔서 잘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앓았던 폐병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노인네 나이 생각하면 아프기만 해도 위험한데……. 다음에 연락할 때 내 안부 전해주면서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좀 알아봐 줘.”
“그러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내가 찾아온 건 자금 흐름에 이상한 점이 없는지 물으려고 온 거야.”
“호남성 지역 한정이라면 없습니다.”
“다른 지역은?”
“암중단체들이 타격을 입어서 그런지 특이사항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게 있긴 합니다.”
“어떤 거지?”
“황궁으로 들어가는 돈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조사 중입니다.”
“아직 천지회의 잔당이 황궁에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줘.”
백서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갔다.
호남성 지점장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결과 나오는 대로 무관으로 사람을 보내면 될까요?”
“아니, 평소랑 같이 깃발로 알려줘. 그럼, 나는 간다!”
백서휘는 금와전장을 빠져나와 자하무관으로 돌아갔다.
자하무관에는 운학과 영진, 장우량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로 나를 아니, 저를…….”
백서휘는 장우량을 보고 황급히 말을 고쳤다.
멀리서 백서휘를 지켜보는 영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학무관 일로 건의할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공사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장우량은 학사여서 그런지 말을 바로 하지 않고 빙빙 돌려 말했다.
“어떤 문제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 두 사람만으로 충분한 것 같은데…….”
“운학 사범님의 몸이 두 개가 아닌 만큼 무관과 학무관을 병행해서 가르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몸이 그리 튼튼한 편이 아니라 수업을 많이 맡을 수 없습니다.”
“아직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의 교육기관이 아니라 수업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장우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는 뜻입니까?”
“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겁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오늘 무관을 등록하러 온 사람들을 보고, 교육을 갈망하는 사람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확실히 오늘 온 사람은 백서휘가 예상한 것보다 많았다.
‘각양각색이기도 했지.’
푸줏간에서 바로 달려온 것 같은 아줌마도 봤고, 자신과 같은 또래의 남자도 봤다.
그 중엔 본인이 다니기 위해 등록한 사람이 있다면, 자식을 다니게 하려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백서휘가 장우량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공감하고 있는 바였다.
“그들이 무공만이 아니라 학문까지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다니는 무관이 아니라 학무관으로 옮기려는 사람도 나올 거고, 새로 학무관에 입관하는 사람도 생길 겁니다.”
“그때 가서 사람을 뽑는 건 너무 늦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예.”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사람들이 많이 온 건 모두 저기 있는 분과 운학 때문일 겁니다. 그만큼 ‘화산파 장문인’이란 ‘매화검수’의 명성은 엄청나거든요.”
운학은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멀찍이 있는 영진은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걸 억지로 참았다.
“설사, 이 두 분 덕분에 많이 왔다고 해도 사람을 더 고용하긴 해야 합니다.”
장우량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많은 수의 사람이 입관되면 사범이 맡아야 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서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겁니다. 그러면 불만스러운 사람이 나올 거고, 그만 다니게 되는 사람도 꽤 나올 겁니다.”
“음…….”
무관은 정기적으로 돈을 벌어다 줄 자금원이었다.
그런 무관에서 사람들이 이탈한다는 건 매달 벌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버는 돈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건비가 조금 들더라도 사람을 고용하는 쪽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럼 무공 사범만 더 구하면 되는 겁니까?”
“미래를 생각하신다면 글을 가르칠 사람도 뽑는 게 좋을 겁니다. 저는 학문을 배울 이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들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글과 무공 두 분야 모두에서 선생을 구하고 수업을 도와줄 이들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의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백서휘가 장우량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걸 보고 영진의 얼굴이 또 굳었다.
“그럼 저는 건의사항을 잘 전달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장우량이 떠나고 운학과 영진이 남았다.
“여기서 계속 있을 건가?”
“궁금한 게 있다.”
백서휘가 말하라는 뜻으로 턱짓했다.
“왜 저 학사에겐 공대를 하고 나한테는 하대를 하는 게냐?”
“그거야 당신은 매형이나 누나와 친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거 물어보려고 지금 이렇게 남아 있는 거야?”
“내 제자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남았느니라.”
백서휘가 운학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운학이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화산파의 일원으로서 건의할 일이 있어서 남았습니다.”
“어떤 일인데?”
“무관을 지금보다 더 흥성하게 만들고 ‘화산파 준비반’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재능 있는 아이들이 필요합니다.”
“아직 결정 안 떨어졌잖아. 그거.”
“그래도 미리미리 준비해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설령 일이 잘못되어도 재능 있는 아이들을 계속 키우면 무관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습니다.”
“틀린 소리는 아니군. 그런데 무관 다니는 애 중에는 재능 있는 애가 없나 보지?”
“……냉정하게 말하면 없습니다.”
“태평이나 소유는?”
“둘 다 속가제자로는 받을 수 있겠지만 본산 제자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왜지?”
“태평이는 만복상단 소속이 될 거고, 소유는 본산제자로 삼기엔 무재가 부족합니다.”
본인이 소속된 문파의 일이라서 그런 걸까?
운학은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에 냉기가 감돌았다.
“음……. 나도 그 말을 들으니 재능 있는 아이들을 구하고 싶긴 한데, 당장은 힘들어.”
“그 이유가……. 아! 학무관 일 때문에 강호행을 할 수가 없군요.”
“그리고 가봤자 지금으로서는 호남성이나 그 근방이 한계야. 그러니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는 건 힘들 거야.”
“호남성과 그 근방을 뒤지는 거로도 충분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은 힘드니 나갈 일이 생기면 그때 찾아보는 거로 하자고.”
“알겠습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금태평과 방소유가 서 있었다.
“헉!”
조금 전 냉정하게 평가를 했던 게 생각났는지 운학은 진심으로 당황스러워했다.
“못 들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운학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사이 백서휘는 금태평과 방소유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로 왔어?”
“집에서 좀 쉬다가 이 시간에 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온 건데요.”
금태평의 말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두 아이 모두 입관 추첨권을 파는 일을 도와줬었다.
일이 끝나고 기진맥진하는 것 같아 쉬고 오라고 자신이 말했었다.
“그냥 가서 나중에 올까요?”
“아니, 가지 말고 저기 중앙에 가서 몸 풀고 있어.”
금태평과 방소유가 실내 수련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백서휘는 도와준 게 고마워 두 아이에게 줄 당과를 사러 가려고 했다.
“아! 맞아! 형이 관주님한테 전하라는 말이 있었어요. ‘매홍검’인가 ‘홍매검’인가를 찾았대요.”
백서휘가 미닫이문에 다다른 순간, 금태평의 입에서 전혀 예상도 못 했던 말이 나왔다.
“뭐?”
“아! 맞아! 홍매검이었지. 아무튼, 그 홍매검을 찾았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홍매검이 무슨 검인지 아는 영진과 운학이 금태평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무슨 문제?”
금태풍이 아버지의 물건 중 하나인 홍매검을 찾는다고 했을 때, 상단 차원에서 나선 만큼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라니!
백서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형한테 물어보세요.”
“운학! 애들 좀 봐줘!”
백서휘는 만복상단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