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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37화 (37/202)

귀환무관 37화

식구들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무관의 실내수련장에 모였다.

미리 시간과 장소를 공지한 모임이었기에 빠진 사람은 없었다.

“관주님이 왜 모이라고 했는지 알아?”

금태평이 방소유를 팔꿈치로 콕 찌르면서 질문을 던졌다.

방소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모르겠는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박서휘가 자기들을 부른 이유에 대해 추측했다.

친한 사람이 없는 남궁유운은 머쓱한 얼굴로 멍청히 서 있었다.

‘어색해 죽겠네. 도대체 이놈은 언제 오는 거야.’

1초가 1년처럼, 1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남궁유운이 더는 참지 못하겠단 생각을 했을 때, 실내수련장으로 들어오는 미닫이문이 활짝 열렸다.

드르륵!

모두가 문을 열고 들어온 백서휘를 집중해서 쳐다봤다.

백서휘는 시선에 개의치 않고 목패가 달린 목걸이를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건…….”

백은하는 커다래진 눈으로 목패를 바라봤다.

[백은하 / 무공 사범]

“명찰인가 보네.”

백은하는 눈동자를 움직여 슬쩍 다른 사람 걸 봤다.

다른 사람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재료도 같았고, 새겨넣은 필체도 같았다.

다른 건 이름과 담당하는 업무뿐이었다.

“학무관이 완공되고 나서도 쓸 거니까 잃어버리지 않게 잘 간수해.”

목걸이를 목에 건 사람들은 다음에 뭘 해야 할지를 몰라 백서휘를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모두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시작은……. 내 옆에 앉은 방소유부터!”

방소유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저부터요?”

“응, 너부터.”

“제 이름은 방소유에요. 나이는 10살이고…….”

방소유를 시작으로 기존 인원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자하무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운학, 장우량, 남궁유운의 차례만 남았다.

“저는 화산파의 15대 제자 운학입니다. 과분하지만 매화검수란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사범님은 올해 몇 살이에요?”

금태평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이는 스물이야. 더 궁금한 거 있어?”

“사범님처럼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련 시간에 할 테니까 ‘나’란 사람한테 궁금한 걸 물어봐.”

금태평이 고민하는 사이, 남궁유운이 손을 들었다.

운학은 손을 내리라고 한 후에 말해보라고 손짓했다.

“화산파엔 몇 살 때 입문했지?”

“대협의 이름이…….”

“어차피 이따가 소개해야 하니까 내 이름이나 나이는 나중에 듣고, 지금은 질문에 대답이나 해줘.”

“저는 화산파에 열 살 때 입문했습니다.”

“올해 나이가 스무 살이라고 그랬지?”

“네.”

“인생의 절반을 화산파에서 보낸 거군.”

남궁유운이 운학과 이야기를 계속하려던 차에 백서휘가 끼어들었다.

“대화는 그쯤하고 이제 남궁유운 네 소개나 해봐.”

“마지막이 아니라요?”

“마지막은 나야.”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안휘섭 합비(合肥)가 고향인 남궁유운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건 풍류를 즐기는 거고, 싫어하는 건…….”

남궁유운이 아주 잠깐 백서휘를 쳐다봤다.

백서휘를 제외한 모두가 그걸 보고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뭐, 싫어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굳이 여기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다음은 장우량 학사님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하진이 데려온 자라 반말을 할 수가 없어 높임말을 썼다.

“제 이름은 장우량이고, 나고 자란 곳은 호북성의 의창(宜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게 끝입니까?”

“예.”

요 며칠 은밀히 지켜보니 장우량은 원래부터 말이 없고 냉정한 사람 같았다.

“이제 제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름은 백서휘이고 나이는 서른, 좋아하는 건…….”

쿵쿵쿵!

정체 모를 누군가가 대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제가 나가볼게요.”

금태평이 후다닥 달려가 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그가 생전 처음 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누구세요?”

“영진이라고 한다.”

금태평으로서는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때, 영진의 입이 열렸다.

“사람을 찾으러 왔단다.”

“어떤 사람을요?”

“운학.”

“사범님을 찾는 손님이 왔다고 지금 전해드리면 될까요?”

“사범이라고?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그러는데 다시 한번 말해줄 수 있겠니?”

“사범님을 찾는 손님이 왔다고 지금 전해드리면 되겠느냐고 말했어요.”

“운학이 진짜 이 무관에서 사범으로 일한단 말이야?”

“네.”

영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장 운학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거라.”

영진에게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금태평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실내 수련장으로 달려갔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모두의 시선이 금태평에게로 모였다.

“운학 사범님! 운학 사범님!”

“무슨 일인데?”

“어떤 할아버지가 운학 사범님을 찾아왔어요.”

“혹시 그 할아버지란 사람이 자색무복을 입고 있었니?”

“네! 아, 그리고 처음에 문을 열었을 때 누구냐고 제가 물어보니까 영진이라고 그랬어요.”

“결국, 폐관 수련을 마치고 이곳으로 오셨구나…….”

운학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누구길래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백서휘가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스승님입니다.”

“설마 그 영진이……. 참설검(斬雪劍) 영진을 말하는 건가?”

참설검 영진은 쇠락해가던 화산을 부흥시킨 인물로, 강호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십인 중 하나였다.

“네.”

대문 쪽에서 ‘운학! 어서 안 오고 뭐 하느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승이 무관에 해코지할까 두려웠던 운학은 황급히 대문으로 이동했다.

같은 생각을 한 백서휘가 그를 뒤쫓아갔다.

대문에 도착하니 자색 무복을 입은 노인이 있었다.

‘몸이 상당히 좋잖아?’

비슷한 나이대만이 아니라 젊은 무림인 중에서도 몇 없을 정도로 노인의 기골은 장대했다.

심지어 혈색도 좋아서 얼굴에 있는 약간의 주름만 없애면 40대라고 속이고 다녀도 될 것 같았다.

“설명해 봐라.”

인사도 나누지 않고 다짜고짜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영진.

백서휘가 그를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설명이랄 것도 없습니다.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 전부니까요.”

“정말 그게 전부냐?”

“네, 그게 전부입니다.”

“은혜를 입으면 얼마나 입었다고 이런 작은 무관에서 사범 노릇을 해! 그것도 매화검수가!”

“은혜를 몇 번 입었느냐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뭐가 중요하느냐.”

“제가 은혜를 입었고, 지금 그것을 갚으려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스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매화검수’입니다.”

운학은 눈에 힘을 주고 매화검수란 단어에 강세를 담아 말했다.

스승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영진은 충격을 받아 넋이 나간 얼굴로 운학을 바라봤다.

“임구가 진행 중이라면 모를까. 임무를 완수한 상황이면 저는 ‘매화검수’로서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정, 이게 마음에 안 드신다면 장문령부(掌門令符)를 사용하셔서 제게 화산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십시오.”

“도대체 어떤 은혜를 입었길래 내게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이냐…….”

사실 따져보면 백서휘만큼이나 영진이 베푼 은혜도 컸다.

그래서 운학은 스승에게 더욱 죄송하고 할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는 밝혀야겠어.’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말해주는 편이 영진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구명지은(救命之恩)을 입었습니다. 여기 계신 관주님이 그날 제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면 아마……. 저와 스승님은 연을 맺지 못했을 겁니다.”

“연을 맺지 못했을 거라고? 그게 무슨……. 헛! 설마 저 남자가 포…….”

지켜보고 있던 백서휘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기까지만 말해. 더 말하면 내가 민망해져서 얼굴을 들을 수가 없거든.”

영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여태 그는 운학을 구해준 존재가 상상 속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실재한다는 걸 알게 되니 그 충격이 좀 컸다.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었구나……”

“상상 속의 존재?”

백서휘가 운학에게 무슨 의미냐는 눈빛을 보냈다.

“스승님께서는 관주님의 존재를 안 믿으셨습니다.”

“그걸 못 믿을 이유가 있나?”

“약관을 갓 넘어 보이는 남자가 검강을 쓰는 건 말이 안 되잖습니까.”

“진짜 ‘죽도록’ 수련하면 약관이어도 검강을 쓸 수 있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도록 수련했던 날의 기억이 백서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괴로웠던 나날들의 연속이라 하나도 그립지는 않았다.

“웃기는 친구군.”

영진은 재밌는 생물을 보듯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의 표정에 웃음기가 싹 지워졌다.

한 초식도 못 버틸 하수한테 무시 받는다는 건 상당히 열이 받는 일이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 보여주는 쪽? 아니면 보여주지 않는 쪽?’

검강을 쓰는 걸 보여줄지 말지 고민이 됐다.

보여주기엔 괜히 자기 자랑하는 것 같아 민망하고, 보여주지 않기엔 자신의 가치를 후려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이걸 보여줘야 하나…….”

“진짜 검강을 쓸 수 있는 사람처럼 얘기를 하는구나. 멋 모르는 사람이라면 속아 넘어가겠어.”

“이젠 사기꾼 취급을 하네? 내가 진짜 검강을 쓸 수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증명해 보거라.”

“학실한 이득을 내게 준다면 검강을 뽑아내는 걸 보여주지.”

“확실한 이득?”

“서른에 검강을 뽑는 건 무림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니, 구경하고 싶다면 뭐가 됐든 관람료를 내.”

검환에 어검술을 쓴다고까지 말하면 기절할 것 같아 백서휘는 일부러 경지를 낮춰 말했다.

“좋다, 네가 검강을 뽑아낸다면 나는 약식으로 만든 자소단(紫霄丹)을 네게 주겠다. 정식으로 만든 것보단 못하지만, 무림에 떠돌아다니는 웬만한 영단보다는 좋으니 이 정도면 관람료로 충분할 거다.”

영진의 말엔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약식으로 자소단을 만들어도 중소문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단보다 훨씬 더 좋았다.

‘나한테는 큰 효과가 없으니 조카를 주는 게 낫겠지.’

경험 많은 산파가 백은하가 품고 있는 아이는 남자라고 말했었다.

진짜 남자아이가 맞다면, 자신의 내력으로 벌모세수를 하고 이후에 자소단을 이용해 근골을 더 좋게 바꾸어 최고의 무인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그 약속 지켜. 그리고 내가 검강을 쓴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한테 말하고 다니지도 말고.”

“그러마.”

백서휘는 무심한 얼굴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검강을 만들어냈다.

“봤지?”

“이, 이게 검강?”

“검강 맞으니까 자소단이나 내놔.”

“미, 믿을 수 없어!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설마, 사술인가!”

“사술? 날 뭘로 보고 그딴 개소리를 하는 거야?”

“나랑 비무를 해서 화경의 고수가 맞다는 사실을 증명해라.”

“검강을 제대로 뽑는 경지에 올랐는지 증명하라는 거야? 허!”

“그렇다.”

“아니, 그냥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말해. 비무는 뭔 놈의 비무야.”

“피하는 건가?”

“피하는 건 아니고 비무해봤자 나한테는 이득도 안 되니까.”

“이득? 좋아, 그러면 오늘부터 5년 동안 본산에 보내는 기부금을 면제받는 건 어떠냐!”

“자하무관이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모든 교육기관에 해당 되는 일인가?”

“뭐, 몇 개를 운영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두지.”

“좋아, 비무하자. 대신 여기서는 안 돼.”

백서휘와 영진, 운학은 악록산으로 향했다.

큰 도시인 장사와 다르게 사람이 없어 비무를 하기 딱 좋았다.

운학이 규칙을 설명하고 돌멩이를 하늘 높이 던졌다.

돌멩이가 떨어지기 무섭게 검사가 감겨 있는 검이 날아들었다.

‘자색이군.’

화산파의 장문인만 배울 수 있다는 자하신공을 익힌 게 분명했다.

‘별것도 아닌 심법에 신공이란 단어를 붙였네. 진짜 신공은 내가 배운 무공들인데…….’

천의일기공부터 구천현현보까지 신공이 아닌 무공이 없었다.

‘비무는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으려나. 그냥 천강무극을 써서 한방에 끝내? 아니면 살살 상대해주면서 실력을 끌어내?’

천강무극을 쓰면 영진과 운학이 흔적도 없이 죽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백서휘는 다른 초식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본격적으로 무초식의 경지를 보여주면 영진이 버틸 수가 없을 거야. 초식을 써서 시험해보자.’

백서휘는 하늘을 놀라게 할 만큼 빠른 초식인 경천신뢰(驚天迅雷)를 펼쳤다.

극에 달한 쾌검이 영진을 향해 날아갔다.

영진은 백서휘를 공격하다 말고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걸 봤어?’

베이기 직전에 알아차린 거지만 본 건 본 거였다.

우내십존의 수준이 다 이 정도라면 암중단체의 침공을 조금 덜 걱정해도 될 것 같았다.

‘이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

쾌검의 위력이 약하다는 편견이 강호에 퍼져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속도는 파괴력이었다.

쾌검의 경지가 하늘에 닿으면, 웬만한 패검이나 중검을 압도할 위력을 가진 검이 된다.

백서휘는 그 경지에 올랐기에 가볍게 휘두르는 쾌검에 조차 거력이 담겨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영진은 자색 검사가 감긴 검으로 방어했다.

쾅!

피화살을 내뿜으며 영진이 저 멀리 날아갔다.

‘베어내는 걸 실패할 줄이야.’

맹렬한 기세로 휘둘렀지만, 영진의 몸에 상처를 입히긴커녕 검에 이도 빠지지 못하게 했다.

‘우내십존 중 일인이라고 불린다더니 수준이 제법이야.’

영진이 살짝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제부터는 전심전력으로 싸우겠다.”

백서휘는 흥미로운 눈으로 영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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