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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36화 (36/202)

귀환무관 36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아름답다더니, 진짜였잖아?’

예뻐봤지 암중단체 중 하나인 요화궁의 궁주보다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청아루의 루주는 요화궁의 궁주와는 다른 매력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요화궁의 궁주가 관능적이고 퇴폐적이라면 루주는 순수하고 청초했다.

‘그냥 길에서 마주치면 기루의 루주라고 생각 못 하겠는걸.’

총관이 루주에게로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루주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기를 변호했다.

“그러니까 총관의 말은 최대한 친절하게 술을 그만 마실 걸 권했는데, 저쪽에서 거절했고, 어쩔 수 없이 하오문에 도움을 요청했단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 결과가 저거고요.”

“네.”

루주의 시선이 총관에게서 백서휘에게로 이동했다.

“사실인가요?”

“사실이면 어쩔 거고, 사실이 아니면 어쩔 건데?”

“사실이면 더는 손님을 접객할 기녀가 없으니 나가 달라고 친절히 부탁하겠죠.”

“사실이 아니면?”

“저희 측이 미숙해서 일어난 실수이니 손님께 용서를 구해야죠.”

“배상은 없는 건가?”

“원하신다면 오늘 드신 술과 요리의 값을 공짜로 해드릴 수…….”

“아니, 그런 거 말고 다른 걸 원하는데.”

백서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어떤 보상을 원하시는데요?”

“나는 아직 남아 있는 기녀와 술을 대작하고 싶은데?”

“다른 손님과 함께 있는 기녀를 요구하시는 거면 들어드릴 수 없…….”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아직 남아 있는 기녀와 술을 대작하는 거야.”

“접객할 기녀가 없다니까요!”

“내 눈앞에 있잖아.”

“……저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루주가 검지로 본인을 가리키자 백서휘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해요.”

“그럼 나랑 같이 술을 대작할 다른 기녀를 데려오든가.”

루주가 팔짱을 낀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기루에 도움을 청해?’

다른 기루들은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청아루를 경원시했다.

그 때문에 기녀를 잠시만 내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하오문의 고수를 불러야 하나?’

루주가 볼 때 백서휘는 대단한 수준의 고수였다.

하오문의 무인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백서휘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지?’

루주가 뾰족한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지켜보고만 있던 남궁유운이 끼어들었다.

“소저, 나는 남궁세가의 남궁유운이라 하오. 내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서도 되겠소?”

남궁유운은 가문의 이름부터 밝혀 다른 이들이 나서지 못하게 했다.

루주는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술을 먹을 거라면 이름 없는 고수보다는 남궁세가의 고수랑 먹는 게 나을 거야.’

늑대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지금 물러나면 봐줄게.”

백서휘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봐준다고? 나를? 그거 진심으로 한 말이지?”

“진심이야. 네 실력으론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못 내.”

남궁유운은 학무관의 선생으로 예정된 자였다.

자칫 잘못해서 심하게 다치기라도 하면 관원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되도록 싸우지 않고 끝내려는데 남궁유운이 백서휘의 의도를 곡해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싸울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때 제갈진천이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왔다.

그는 일단 남궁유운이 검을 휘두르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구경이나 하지. 뭐하러 왔어.”

“두 사람 다 동의하면 내가 참관인도 하고, 심판도 보려고 하는데.”

“나는 좋아.”

제갈진천이 시선을 남궁유운에게서 백서휘 쪽으로 옮겼다.

“저쪽에 유리한 판정만 내리지 않는다면 동의하지.”

“그럼 둘 다 제가 참관인으로 참여하는 걸 받아드린 겁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그럼 참관인으로서 규칙을 설명하겠습니다. 이 싸움은 생사결이 아니므로 목숨을 노리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고…….”

제갈진천은 일반적인 비무에서 볼 법한 규칙들을 나열했고, 당연하게도 누군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규칙은 없었다.

“여기 있는 이 술잔이 바닥에 떨어지면 그때 비무를 시작하면 됩니다.”

제갈진천이 하늘 높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길게 갈 생각 없으니 한 합으로 끝낼게.”

“창천검룡(蒼天劍龍)이라고 불리는 우리 형도 날 한 합으로 못 끝냈다. 그런데 네가 그러겠다고? 너무 망상이 심한 것 아닌가?”

제갈진천은 두 사람의 말싸움이 심해지는 듯 하자 술잔을 놓았다.

쨍그랑!

사기가 깨지는 소리나는 것과 동시에 백서휘가 모든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궁유운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백서휘를 찾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백서휘가 앞에 나타나더니 남궁유운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뭐, 뭐야.”

깜짝 놀란 남궁유운이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때는 이미 목에 검이 겨눠진 후였다.

“한 합이라고 했지?”

“마, 말도 안 돼. 내가 졌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원한다면 한 번 더 싸워줄 수도 있어. 근데 그렇게 했다가 네가 패배하면 너는 기본 3년이 아니라 6년 동안 선생으로 일해야 돼. 그래도 할래?”

“하겠다.”

“참관인, 들었지?”

백서휘가 제갈진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갈진천은 안타깝다는 듯한 눈으로 남궁유운을 보고 있었다.

“참관인.”

“아, 들었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싸우도록 하지.”

결과는 조금 전의 비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놀라운 건 이번에도 역시 남궁유운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더 싸우자고? 그러면 6년이 아니라 10년이 된다.”

“더 싸울 거야.”

“10년이면 강산이 바뀔 만한 시간이란 건 알고 싸우겠다는 거냐?”

“알고 싸우겠다는 거다.”

지켜보고 있던 제갈진천이 남궁유운을 말리려고 했다.

“유운아, 여기서 끝내. 한 번 더 응하면 네 인생은…….”

“이번엔 이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참관인 자리로 돌아가.”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게 심적으로 충격을 준 걸까?

남궁유운은 바보도 저지르지 않을 판단을 내렸다.

제갈진천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술잔을 다시 높이 들어 올렸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아니, 내가 이기면 이 싸움은…….”

“남궁유운!”

“알았어.”

백서휘는 남궁유운의 멍청함을 비웃으며 다시 한번 검을 들었다.

쨍그랑!

잔이 땅에 떨어지는 동시에 백서휘가 다시 사라졌다.

남궁유운은 검기가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무슨 짓을 해도 백서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걸 알고 그냥 냅다 내리찍고 본 것 같았다.

‘놀려주지.’

백서휘는 가볍게 검을 피하고 남궁유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툭!

남궁유운이 뒤로 돌며 다시 검기가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검을 휘둘렀다.

이런 짓을 수십 차례 반복하니 이제는 남궁유운도 백서휘는 강하고 자기는 멍청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졌다.”

남궁유운은 칼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갈진천이 한참 동안 그의 등을 토닥여 주다가 남궁유운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하하! 아직 끝난 게 아니었구나.”

“유운.”

“알았어. 입 다물게.”

백서휘는 제갈진천이 무슨 말을 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거겠지.’

청아루의 루주와 자신이 술자리를 가져야만 남궁유운이 선생으로 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청아루의 루주와 술자리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면?

애초부터 선생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거니 10년 동안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사라지게 된다.

‘내가 그렇게 안 만들지.’

백서휘는 씨익 웃으며 청아루의 루주를 바라봤다.

“자, 이제 술자리를 가졌으면 하는데?”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세요.”

“겨우 술 한 잔 마시는 거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겨우 술 한 잔이요? 저는 인생이 달려 있다구요.”

“무슨 술 한 잔 마시는 거에 인생을 논해.”

“제가 절벽에 핀 꽃이라 이 기루가 유지된다는 건 알고 계시는 거죠?”

“절벽이고, 적벽이고 내 알 바 아니니까 나랑 대작할 다른 기녀를 데려오든가 아니면 여기 앉아서 같이 술이나 마셔.”

청아루의 루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문을 열고 술을 마시면 당신의 제안에 응할게요.”

“그러지. 오히려 바라던 바야.”

남궁유운이 보는 앞에서 술을 먹는 건 진짜 백서휘가 바라던 일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청아루의 루주는 변태에게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다.

“자, 이리로 와.”

백서휘가 방으로 청아루의 루주를 이끌었다.

청아루의 루주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자, 앉아.”

백서휘는 청아루의 루주를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에 앉히고, 그옆에 자신이 앉았다.

“술잔에 술 따를 테니까 버리지 말고 마셔. 버리는 거 걸리면 오늘로 청아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알았어?”

“네…….”

백서휘는 잔을 다 채울 만큼 분주를 따랐다.

청아루의 루주는 눈을 질끈 감고 잔에 담긴 분주를 다 마셨다.

“자, 이제 당신이 술을 따를 차례야.”

백서휘는 호쾌하게 잔을 내밀며 남궁유운을 봤다.

남궁유운은 우중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랐어요.”

백서휘는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입안으로 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봤지?”

남궁유운과 제갈진천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약속 어기기만 해봐. 그때는 내가 지옥이 현세에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줄 거야.”

“남궁세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어길 일은 없을 거다.”

“좋았어. 가자.”

“어딜?”

“호남성 장사로.”

“지금?”

“그럼 당연히 지금이지.”

“아, 아니 가문 사람들이랑 같이 온 다른 문파 사람들한테 인사를 해야…….”

“그래서 언제 가겠다는 건데?”

“내일?”

백서휘의 표정이 좋지 않자 남궁유운은 답을 급히 바꾸었다.

“여섯 시진 후? 아니, 세 시진……. 그, 그냥 인사만 하고 바로 나올게.”

“가자.”

기루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세 사람이 황급히 숙소로 돌아갔다.

청아루의 루주는 넋이 나간 얼굴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 *

“남자는 자고로 세 끝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

남궁유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들어봤다고? 딱 너를 두고 하는 말인데?”

“세 끝이 뭔데?”

“뭔데? 고용주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 말이 짧네.”

“……뭔데요?”

“학무관 열릴 때까지만 봐줄 거니까 그때까지 말투 교정 해둬. 학무관 열린 이후에 한 번이라도 지금처럼 반말하면 그때는……. 알았지?”

“네.”

“자, 이제 다시 조금 전에 하던 말로 돌아가면 세 끝은 손끝, 혀끝, 거기끝이야. 이걸 조심해야 인생을 안 망칠 수 있다.”

남궁유운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지금 세 끝을 모두 조심하지 못해 호남성의 장사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아니, 10년 후에 자유로운 몸이 되면 저 세 개를 조심해.”

“명심하지.”

“이번에도 말이 짧다? 그냥 여기서 한 푸닥거리할까?”

“명심하겠……. 와! 저기가 장사입니까?”

“그래. 네가 앞으로 10년 동안 있을 곳이지.”

말을 마친 백서휘가 조금씩 지어지고 있는 학무관의 건물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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