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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34화 (34/202)

귀환무관 34화

‘여기가 황학루인가.’

무한에 여러 번 와봤지만, 그때마다 암중단체들을 추살하느라 바빠 황학루에 들른 적은 없었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명소라고 하는 황학루 앞에 오게 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살짝 가빠져 왔다.

‘올라가볼까.’

안으로 들어가니 점소이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천하강산(天下江山) 제일루(第一樓) 황학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늘 아래 제일가는 탑이라는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백서휘는 흥미로운 눈으로 점소이를 바라봤다.

“몇 층에 식사하실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식사는 안 하고 꼭대기 층에서 주변 경치만 보려고 하는데…….”

“4층과 꼭대기 층인 5층은 오르는 것만으로도 돈을 내셔야 합니다.”

“얼마를 내면 되지?”

“은자로 세 냥입니다.”

“뭐? 은자로 세 냥?”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이 갔다.

“네, 은자로 세 냥을 주시면 됩니다.”

기계적으로 말하는 걸 보면 후려치려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세 냥을 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망부석처럼 굳은 백서휘는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언제 다시 무한에 올 것이며 그때 황학루에 있을지 생각해보니, 은자 세 냥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백서휘는 품속에서 은자 세 냥을 꺼내 점소이에게 건네주었다.

점소이는 꼭대기층인 5층까지 그를 안내해주었다.

5층에 도착한 백서휘는 은자 세 냥을 받은 값어치를 해주길 바라며 난간 앞에 섰다.

‘거지 같기만 해……. 와! 엄청나군.’

무한의 전경과 흐르는 장강을 보니 최호와 이백, 백거이 같은 시인들이 아름답다고 칭송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들 이걸 보고 시를 지은 걸까?’

눈에 보이는 광경은 가히 천하절경이라고 해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

비싼 돈을 내고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올라오는 데만 세 냥을 냈는데 제갈세가는 여길 통째로 빌린다고 했지?’

제갈세가가 가진 저력에 진심으로 감탄이 나왔다.

‘일주일 후에 열릴 연회가 기대되는군.’

백서휘는 한참을 바깥 전경을 바라보다 짐을 풀어놓은 근처 객잔으로 갔다.

* * *

일주일이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백서휘는 남궁유운에 대해 조사했다.

결과를 보면 남궁유운은 좋게 보면 풍류를 즐기는 사내고, 나쁘게 말하면 난봉꾼이었다.

그러한 사내를 선생으로 뽑는 게 말이 되나 싶어 닷새간 고민했었다.

실력이 되지 않았으면 가차없이 딴 사람을 찾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남궁유운의 음악과 그림 실력은 중원에서 수위로 꼽혔다.

엿새 째 되는 날, 백서휘는 남궁유운을 선생으로 뽑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 이레째되는 오늘, 백서휘는 그 남궁유운을 만나러 가려고 하고 있었다.

백서휘가 황학루 안으로 들어가니 저번에 봤던 점소이가 반겼다.

“천하강산(天下江山) 제일루(第一樓) 황학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5층에 올라갈 수 있겠나?”

“5층 전체를 빌리신 분이 있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음……. 그러면 1층에서 식사하는 수밖에 없겠군. 소면 하나랑 회과육 하나, 화주 한 병을 주게. 자리는…….”

“자리는 제가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백서휘는 계단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올라갈 기회를 엿봤다.

점소이가 그에게서 눈을 떼자마자 변소에 가는 척하며 위로 올라갔다.

막는 자들이 중간중간 보였지만 당당하게 행동하니 올라가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5층에선 통하지 않았다.

“배첩(拜帖, 초청장)을 주십시오.”

“배첩이 없으면 못 들어가나?”

“예.”

“그렇군.”

엿새 동안 고민할 시간에 배첩을 구했다면 지금 같은 일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띵했다.

‘여기서 임기응변을 발휘해야 하는데…….’

일단, 지금은 부탁하러 온 것이라 피를 볼 수는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데, 제갈진천이 백서휘를 발견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사람인데?’

체형과 코끝부터 하관의 생김새가 묘하게 익숙했다.

누군가 싶어 계속 머리를 굴리다 삿갓을 푹 눌러쓴 백서휘를 떠올리게 됐다.

“아!”

“왜 그래, 갑자기?”

남궁유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갈진천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제갈진천은 계단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제가 아는 그분 맞습니까?”

“이야! 오랜만이네!”

목소리를 들으니 ‘은인’이라는 걸 제갈진천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은인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부탁을 하려고.”

“신패를 쓰시려고 오신 겁니까?”

“아니, 너 말고 네 친구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어떤 친구를 말씀하시는 거고 어떤 부탁인지 말씀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저기 있는 쟤.”

제갈진천은 백서휘의 입에서 나온 ‘분’이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요? 정확히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남궁유운. 그리고 부탁은 개인적으로 할 말이라 그쪽한테는 못 말해주겠어.”

“알겠습니다. 일단은 올라오시죠.”

제갈진천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도 역할을 하던 자가 몸을 옆으로 비켜주었다.

“뭐하는 사람이지?”

“제갈세가의 소가주랑 아는 사이로 보이네요. 어? 아는 정도가 아니라 되게 극진히 안내하네요?”

“제갈세가의 높은 사람 중 하나인가?”

지금 황학루의 5층은 오대세가와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중소문파의 구역이었다.

그런 곳에 생전 처음 보는 인간이 등장하니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오빠, 그 사람은 누구야?”

“은인.”

“은인이라면……. 헉! 그 사람?”

제갈소미의 물음에 제갈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인? 뭘 했는데 은인이라고 하는 거야?”

당채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리 오빠의 오랜 지병을 고쳐준 사람이 저분이야.”

“진짜? 대단한 의원인가 보네.”

“의원은 아니고 음…….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겠다.”

제갈소미가 백서휘의 정체를 설명할 수가 없어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강해.”

음식을 우적우적 먹던 황보연화는 딱 한 마디를 하고는 그릇에 고개를 파묻었다.

“연화가 강하다고 하면 진짜 강한 건데.”

오대세가의 여자들 사이에서는 황보연화의 직감이 굉장히 뛰어난 거로 유명했다.

“맞아.”

“대단한 무인인가 봐.”

오대세가 소속의 여자들은 백서휘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남궁유운은 여자들의 관심이 백서휘에게로 향하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백서휘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와 물었다.

“남궁유운, 나랑 이야기 좀 하지?”

남궁유운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백서휘를 빤히 바라봤다.

“이야기라…….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거지?”

“제안할 게 있다.”

“제안이라고 하니 궁금하네. 말해봐.”

주위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시선.

꼭 광대가 된 것 같았다.

백서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그건 개인적으로 자리를 따로 만들어서 말했으면 하는데…….”

“아니, 여기서 말해.”

“전음으로 말하는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

“내가 말한 내용이 퍼지면 다른 곳에서 따라 하는 자가 나올 수 있다. 나는 내가 말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지.”

“가문의 명예를 걸고?”

남궁유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문의 명예까지 걸어야 하나?”

“싫으면 듣지 않는 쪽으로…….”

“아니, 가문의 명예를 걸게. 그런데 네 입에서 시시껄렁한 말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좋을 거야.”

“그러지.”

“좋아, 전음으로 말해봐.”

백서휘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인 학무관에 대한 설명과 남궁유운이 선생이 됐을 때 받을 수 있는 봉급, 복지 등을 전음으로 설명해주었다.

“흥미롭긴 한데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이득이 없군.”

남궁유운에게 돈은 얼마를 쓰든 상관없는 것이었고, 명성은 충분히 높았다.

거기다 남궁가의 직계라 어딜 가서 푸대접받지도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남궁유운을 사로잡을 만한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없지? 시시껄렁하지는 않으니 여기서 식사나 맛있게 하고 가.”

남궁유운은 제갈소미를 비롯한 여자들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서휘는 입술을 깨물며 어떡할까 고민했다.

그때 제갈진천이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저랑 잠깐 얘기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떠나면 다시는 남궁유운과 만날 기회를 못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5층에 붙어 있는 게 좋았다.

백서휘는 명분을 만들게 도움을 준 제갈진천에게 고마워하며 그와 구석으로 갔다.

『실례가 되는 질문일 수 있지만, 물어봐야겠습니다.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제갈세가의 직계라면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머리가 좋을 터였다.

백서휘는 그 좋은 머리의 도움을 받기 위해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남궁유운에게 학무관의 선생 자리를 부탁하러 왔다.』

『선생이요?』

지금 운영 중인 자하무관과 새로 만들려는 학무관 등에 대해 말해주니 제갈진천은 금방 답을 내놓았다.

『유운을 꼬시려면 자존심을 깔아뭉개서 승부에 응하게 한 후에 제안을 들어줄 수밖에 없게 해야 합니다.』

『그놈한테 도발하란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도발을 하란 거지?』

『죽마고우인 제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유운이 자신 있어 하는 건 그림이나 음악이 아닙니다.』

『더 뛰어난 재주가 있다는 건가?』

『네.』

『그게 뭐지?』

『여자를 꼬시는 재주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얘기가 쏟아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백서휘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걸 짓뭉개서 조건이 걸린 내기를 걸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어떤 식으로 도발할지 물으려던 차에 갑자기 남궁유운이 제갈진천을 불렀다.

『제가 은인께 드릴 실마리는 여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제갈진천은 미소 띤 얼굴로 인사한 후 자리를 떠났다.

백서휘는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남궁유운을 향해 걸어갔다.

“새로운 조건으로 제안이라도 하려는 건가?”

남궁유운이 심드렁한 얼굴로 영혼 없이 물었다.

백서휘는 고개를 조금 빠르게 가로 저었다.

“그럼 뭐 때문에 왔는데?”

“나랑 어떤 조건을 하나 걸고 내기를 했으면 한다.”

“어떤 조건? 소원 들어주기 이런 걸 말하는 건가.”

“비슷하다.”

“그럼, 그쪽이 이기면 소원으로 내가 그 학관인지 뭔지의 선생으로 3년 동안 일하면 되는 거고…….”

선생이란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다시 두 사람에게로 모였다.

“선생을 제안했대.”

“미친 거 아니야?”

“남궁세가를 우습게 아는 거네.”

“저놈을 내가 확 죽이면 저분한테 눈에 띌 수 있을까?”

중소문파들이 중얼거리는 게 다 들렸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한 줌의 힘만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내가 이기면 다시는 나한테 집적거리지 말고 꺼지는 거로 하지.”

남자와 대화를 오래 한다는 걸 꺼린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 남궁유운은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백서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내기의 종목은 뭐지?”

『여자 꼬시기.』

남궁유운은 갑자기 배를 잡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진짜 그걸 하길 원하나?”

『그래.』

“내가 진짜 우습게 보인 모양이긴 한가 보다. 날 이길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놈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걸 보면…….”

『할 건지 안 할 건지나 말해.』

“하겠다.”

『내일 유정시(酉正時, 오후 6시 30분)까지 황학루 앞으로 나와. 그때 어떤 식으로 승부를 볼지 설명해주지.』

백서휘가 무게감이 가득 느껴지게 전음을 날리고는 황학루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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