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27화 (27/202)

귀환무관 27화

“서휘야, 너 그거 알아?”

“그거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사람들 다 아는데 너만 모르면 어떡해.”

“뭔데?”

“태극무관이 폭삭 무너졌대.”

“뭐?”

백서휘는 생전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의 반응에 신난 백은하는 이야기를 주르륵 늘어놓았다.

“정말이야. 나도 그 이야기 듣고 믿기지 않아서 가보니까 무슨 철거된 건물처럼 변해 있더라.”

“왜 그런지는 모르지?”

“이야기들이 많아. 천벌이다. 고수들이 싸우다 그랬다. 처음 무관을 지을 때 부실하게 지어서 그런 거다.”

“관주는 어떻게 됐대?”

“몰라, 실종 상태인가 봐. 근데 아직도 발견 못 한 거 보면 죽었겠지.”

사람들이 조금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백서휘는 안도했다.

“진짜 무슨 큰일이라도 나려고 이러나. 올해 들어서 장사가 조용할 날이 없네. 흑사방도 그렇고, 이번에 태극무관도 그렇고…….”

백은하는 팔짱을 끼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하오문 사람들한테 뭐 들은 건 없어?”

“딱히 없는데 왜?”

“그냥 궁금해서.”

“그 문제는 그만 신경 쓰고 누나 몸을 더 신경 쓰는 게 어때?”

“내 몸? 내 몸이 왜?”

“조심해야 할 때잖아.”

백서휘가 살짝 부풀어 오른 배를 가리켰다.

“조심하고 있어.”

“그거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지.”

조카가 하나 더 태어난다는 사실이 못내 신경쓰였다.

자신이 없던 사이에 태어난 정수련보다 지금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똑똑!

“누구지?”

문 너머에서 방소유의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관주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누군데?”

“접니다, 금태풍.”

금태평의 형이자 만복상단의 대방, 금태풍이 백서휘를 찾아왔다.

백은하는 방소유와 함께 연무장으로 나가고 실내수련장에 둘만 남았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태평이와 관련된 문제로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저번처럼 무공을 배우는 게 문제인 건가?”

“아!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게 문제인데?”

“무공을 배우는 건 좋은데, 기본적인 배움을 소홀히 해서, 그걸 상담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따로 공부할 시간을 마련해주면 되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학관을 자주 빠지니, 학관에 꼭 가게만 만들어주시기만 해도 됩니다.”

자신이야 스승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기본적인 상식부터 알면 좋은 지식까지 배웠다지만 금태평은 그게 아니었다.

금태평이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려면 학관에 빠지지 않게 주의를 좀 줄 필요가 있었다.

“태평이랑 이야기해서 왜 학관을 다니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들어보고, 합당하지 않다면 학관에 매일 출석하도록 만들게.”

“감사합니다.”

금태풍이 물러나고 실내수련장엔 백서휘 혼자 남았다.

백서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상념에 빠졌다.

‘그렇게 무심했던 사람이 금태평을 애지중지하며 챙기네.’

자신에게 죽을 뻔한 이후로 사람이 좀 바뀌었다고 들었다.

괜찮은 쪽으로 변화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왜 안 가는 거지? 괴롭힘은 더는 없을 텐데?’

괴롭힌 애들은 금태평을 피해 다니면 피해 다녔지 절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성 문제라기엔 아직 어리고……. 모르겠다. 쉬는 시간에 잠깐 불러서 얘기해보는 수밖에 없겠어.’

운학과 자하무관의 관원들이 연무장에서 수련을 마치고 들어왔다.

백서휘는 그사이에 껴 있는 금태평을 불렀다.

“금태평! 나랑 얘기 좀 하자.”

“예? 얘기요? 어떤…….”

자신이 혼을 내려 한다고 여긴 걸까?

금태평은 곧장 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혼내려는 거 아니고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빨리 와.”

“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이야기 할 문제가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무관 한 편에 있는 골방으로 갔다.

“너 요즘 학관 출석 잘 안 한다는데, 사실이야?”

“그, 그걸 어떻게…….”

“너희 형한테 들었다.”

“혀, 형이요?”

“그래, 걱정이 많더라고. 무공은 열심히 배우는데 기초적인 학문은 나 몰라라 한다고.”

잘못한 걸 아는지 금태평이 고개를 푹 숙였다.

“혼내려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얼른 고개 들어.”

“네.”

백서휘는 고개를 든 금태평과 눈을 맞추었다.

금태평의 눈가엔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왜 이렇게 학관을 자주 빠지는 거야?”

“……재미도 없고, 학관을 다녀야 할 필요성도 못 느껴서요.”

“재미라…….”

납치된 이후엔 그리워해서 그렇지 자신도 이맘때쯤엔 학관이 재미없게 느껴지긴 했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자신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엔 자신의 경우가 너무 특수했다.

납치를 당하고 무공을 배우느라 학관을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도대체 몇이나 있겠는가.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해줘도 금태평은 공감할 수 없으리라.

‘그럼 설득은 됐고 학관에 재미를 느끼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일단 지금 당장은 답을 내놓기 어렵단 생각에 백서휘는 금태평을 실내수련장으로 보냈다.

‘어떻게 하면 태평이가 학관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한참 동안 머리를 싸매고 방 안에서 고민하던 와중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태평이가 재미를 느끼는 건 무공이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학문이야. 잠깐! 이걸 합치면 어떨까? 무공도 배우고 학문도 배울 수 있도록!’

일반적인 아이들의 경우 무관이나 학관 중 한 곳만 다닌다.

두 군데 모두를 다니게 할 정도의 여유가 학부모 대부분에게는 없었다.

문제는 아이의 적성이 둘 중 어느 곳에 맞는지 모를 때 발생한다.

문재(文才)가 있다 싶어 학관에 보냈는데 무공에 더 소질이 있는 경우.

무재(武才)가 있다 싶어 무관을 보냈는데 글에 더 소질이 있는 경우.

두 경우 모두 부모나 아이에게나 비극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적성을 빨리 알아차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적성을 알아낼 방법이 필연적으로 돈과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명문가라면 그 두 가지를 무한정으로 쏟는 게 가능한 반면, 일반적인 재산과 직업을 가진 부모들은 그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만약에 학관과 무관이 합친 곳이 존재해 시간과 돈이 낭비되는 걸 최소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학무관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존재가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실력파 학사라면 부모들은 더더욱 끌릴 수밖에.

‘중원제일은 모르겠지만 호남성의 학관과 무관을 모두 제칠 수 있어. 문제는 나 혼자서는 이 계획을 진행할 수 없다는 건데…….’

믿을 수 있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며, 폭넓은 지식이 있고 실력파 학사인 사람이 필요했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은……. 매형밖에 없어! 매형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설득을 한 번 해보자.’

백서휘는 냉정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대주천을 몇 번이고 했을 무렵, 기감에 남자 어른 하나와 여자애 하나가 잡혔다.

‘매형이랑 수련이다!’

백은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관을 찾은 것 같았다.

백서휘는 운기조식을 그만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매형!”

“처남?”

“혹시 지금 시간 됩니까?”

“딱히 약속은 없네만,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수련이랑 놀아주기로 했네. 급한 문제가 아니라면 다음으로 미루는 게 어떻겠나.”

“급한 문제는 아니지만, 최대한 빠르게 이야기를 해뒀으면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하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네,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

“안쪽에서 이야기하시죠.”

백서휘는 정하진을 자기 방까지 데려갔다.

“무슨 이야기길래 이렇게 깊숙이 온 건가?”

“사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업?”

“저는 지금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건가?”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무관과 학관을 합칠 겁니다.”

“무관과 학관을 합친다? 그렇게 되면 학관을 다니는 인원을 무관에 흡수할 수 있겠군.”

자세히 말하지 않았는데도 바로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 알아듣는 걸 보면 역시 정하진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네.”

“발상은 좋네만, 이걸 내게 말하는 이유가 뭔가.”

“매형이 학관 부문의 책임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음…….”

생각에 잠긴 정하진은 심각한 얼굴로 턱수염을 계속 매만졌다.

그러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 또렷이 백서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실패하면 나는 지금 다니는 학관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네. 그때는 어떡할 텐가?”

“제가 낭인이 되어서라도 매형과 누나, 수련이, 앞으로 태어날 조카까지 모두 먹여 살릴 테니 뒷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서휘가 목소리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음……. 좋네. 학관을 그만두겠네.”

“아, 지금 바로 그만두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됐을 때 그때 그만두시면 됩니다.”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조금 전에 나눈 이야기는 누나한테도 하시면 안 됩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네.”

정하진이 단호한 얼굴로 거절했다.

“예?”

“부부는 일심동체라네. 그리고 이건 생계가 달린 문제이지 않은가. 서로 상의를 해야지.”

“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누나에게 절대 다른 곳에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꼭 좀 부탁해주십시오.”

“이야기는 이게 끝인가?”

“예.”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백서휘는 누나 부부와 조카를 보내고 어떤 식으로 교육기관을 만들지 고민했다.

‘일단 사람들 인식이 문제인데…….’

중원 최고의 인재양성소가 될 ‘학무관’은 사람들에게 낯선 형태의 교육기관이었다.

낯설다는 감정을 뿌리까지 깊숙이 내려가 보면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두려움을 없애고 사람들이 학무관에 등록하게 하려면 확실한 이득을 제시해줘야만 했다.

문제는 교육기관에서 그러한 이득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뛰어난 시설과 이름 높은 선생님이란 것에 있었다.

‘돈 없이는 힘든 일이야.’

등록비와 수강료로 번 돈 있지만 새로운 교육기관을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무관을 만들 재원을 마련하려면 거액의 투자가 여러 번 필요했다.

‘내 주위에 그런 거액을 투자할 만한 사람이……. 금태풍밖에 없군. 투자를 받기 전에 매형과 한 번 더 상의를 해봐야겠어.’

다음 날.

백서휘는 학관 앞에서 정하진과 정수련이 나오길 기다렸다.

기다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니, 아이들이 학관 밖으로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금태평도 있었다.

‘표정이 좋지 않군.’

문득 금태평이 공부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재미를 못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금태평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금태평은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백서휘 쪽으로 뛰어왔다.

“관주님!”

“왜?”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거에요?”

“너 학관 제대로 다니느지 감시하러 왔어.”

“지, 진짜요?”

“농담이야. 매형이랑 수련이 기다려.”

“시험 문제 채점하느라 늦으실 것 같은데…….”

“그래도 기다려야 돼. 그럴 사정이 있거든.”

“그러면 저도 관주님 옆에서 계속 있어도 돼요?”

“왜?”

“그냥요.”

금태평은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금태풍이 챙겨준다고 하지만 그 대부분이 물질적인 경우가 많았다.

‘정서적인 욕구가 충족이 안 되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백서휘는 안타깝다는 듯한 눈으로 금태평을 바라봤다.

“기다리는 건 좋은데 계속 너랑은 있을 수 없어.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일과 관련된 문제라.”

“……알았어요.”

“그럼 마보 시작해.”

“예?”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한데…….”

“그럼 집에 가든가.”

“아, 아니요. 마보할게요.”

이제는 제대로 된 자세로 마보를 펼치는 금태평을 보며 백서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놈도 성장하긴 하는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