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25화
‘이번에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무려 ‘매화검수’가 무관의 사범이 되는 일이었다.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 관심을 최대한 이용해 관원을 끌어모으려면 지금과는 다른 전략을 취해야만 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한참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중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금강무관이 망하면서 대체재로 자하무관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태극무관을 선택하거나 아예 무관을 다니지 않는 길을 선택한 사람도 존재했다.
백서휘는 태극무관을 선택한 쪽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둘 모두를 노릴 계획이었다.
‘태극무관이나 금강무관의 무관복을 가져오면 자하무관의 무관복으로 교환해주고 수강료도 할인해준다면…….’
지금 자하무관은 규모 면에서 태극무관과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극무관의 관원과 무소속인 사람들을 다 흡수할 수 있다면?
장사 최고의 무관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무관복이 많이 필요하게 되겠지.’
백서휘는 포목점에 무관복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고, 거지들을 통해 무관복 교환 행사를 홍보했다.
* * *
행사 당일, 일출까지 한참 남았을 무렵에 누군가가 무관의 문을 두드렸다.
백서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 쪽으로 갔다.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여니 운학이 서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사범이니까요.”
“수업 시작하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거야.”
“딱 좋네요. 관원들을 어떤 식으로 가르칠지 연습해보려던 참이었거든요.”
“어떤 무공을 가르칠지 정한 모양이네.”
“네.”
“어떤 무공인지 말해줄 수 있어?”
“그건 이따 직접 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백서휘와 운학은 실내수련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가르치면 되나요?”
“일단은 그래.”
“‘일단은’이라면?”
“사람이 많이 몰리게 되면 연무장으로 가는 게 나을 거야. 그쪽이 넓어서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거든.”
“연무장을 한번 둘러볼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두 사람은 실내수련장을 나와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 넓네요?”
집을 부수면서 생긴 대지를 실내수련장과 연무장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
그 덕분에 웬만한 무관은 감히 비비지도 못할 만큼 넓어졌다.
“화산파만 못 하지만 무관치고는 넓은 편이지.”
“그렇군요.”
운학이 걸음을 멈춰 서서는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여기쯤 서서 가르치시는 거죠?”
“보통은 그러지.”
운학은 자리를 잡고 서서 체조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몸을 푸는 걸 보면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백서휘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흡!”
운학이 검으로 매화노방(梅花路傍)의 초식을 펼쳤다.
‘가르친다는 무공이 이십사수매화검법이었나 보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기초무공인 매화검법에서 더 발전된 형태의 무공으로 속가제자들이 가르칠 수 있는 것 중 가장 위력적이었다.
‘꽤 하는군.’
운학은 괜히 매화검수가 아닌 듯 힘 있고 매끄럽게 검을 썼다.
‘자신 있는 초식만 펼치려는 게 아니라 순서대로 펼치려나 보네.’
매화노방 다음으로 매화접무(梅花蝶舞), 매화토염(梅花吐艶), 매개이도(梅開利導) 순으로 운학의 손에서 초식이 펼쳐졌다.
‘이제 매화낙섬의 순간인데…….’
원본을 모르는 백서휘가 손을 대는 바람에 백은하의 매화낙섬은 원래 초식과 조금 달라졌다.
그래서 운학이 어떤 식으로 매화낙섬을 펼칠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흐압!”
백서휘가 손을 댄 초식이 상대를 미혹한 후에 나오는 일격의 위력에 신경을 썼다면, 운학은 일격보다는 상대를 미혹하는 데 더 집중했다.
그래서일까?
운학의 매화낙섬은 백은하의 매화낙섬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했다.
‘괜찮네.’
장사로 돌아온 이후 본 사람 중에 운학은 가장 무인 다운 무인이었다.
억지로라도 사범을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뜰 무렵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관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기감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했음에도 무관의 문을 열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야.’
지금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일 때.
사람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강력히 요구할 때.
그때 무관의 문을 열고 행사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기다린다.’
원래 문을 열기로 했던 시간보다 반 시진을 더 기다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문을 안 여는 거야!”
“매화검수가 사범으로 왔다는 거 다 거짓말 아니야?”
“매화검수는 무슨 매화검수야. 이럴 줄 알았다니까.”
사람들 입에서 거친 소리가 나오자 무관 식구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는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 손짓한 후 속으로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무관으로 몰려들었다.
“매화검수! 매화검수는 어딨어!”
“매화검수를 보여줘!”
“저기 있다!”
누군가가 운학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운학에게로 모여들었다.
“매화검수라기엔 너무 젊잖아. 사기 아니야?”
“이번에 운학이라는 도명을 가진 자가 최연소로 매화검수가 됐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 있어.”
“설마 그 자겠어.”
“생김새나 무복 색깔, 소매에 있는 매화를 보면 매화검수 맞는 것 같은데?”
“그, 그럼 진짜로 매화검수가 무관에 사범으로 왔다는 거야?”
“그런가 봐.”
진짜란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무관에 등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백서휘와 무관 식구들은 웃는 낯으로 등록 관련 서류를 확인하고 돈을 받으며 무관복을 교환해주었다.
“관주님! 서류랑 무관복이 다 떨어졌어요!”
“여기도 다 떨어졌어!”
금태평과 백은하의 말에 슬쩍 운학을 보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두의 서류와 무관복이 떨어진 것이다.
‘어떡하지?’
무관의 최대수용인원 수만큼만 무관복과 등록 관련 서류를 가져다 놓았다.
여기서 관원 등록을 더 받는 건 욕심이었다.
이쯤에서 행사를 종료하는 쪽이 무관을 위해 좋으리라.
백서휘가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외쳤다.
“죄송하지만 행사는 이쯤에서 종료하겠습니다! 오늘 수업은 오시초(午時初, 9시~10시)와 신시초(申時初, 15시~16시)입니다. 무관의 수용 인원이 다 차면 문을 닫을 것이니, 늦지 않게 와주시길 바랍니다.”
뒤늦게 온 사람들이 왜 관원으로 받아주지 않냐고 말하는데도 백서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관의 문을 닫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어느새 오시 초가 되었다.
무관의 문을 여니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던 신입 관원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수가 심상치 않아 보이자 백은하와 금태평은 그들을 연무장에 갈 것을 유도했다.
“다들 여기 있지 말고 저쪽에 있는 연무장으로 가주세요!”
매화검수라는 이름에 붙은 위명 때문인지 신입 관원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좀만 더 받고 그만 받아야겠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면 간격이 좁아져 사범의 동작을 따라 움직이는데 지장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무공 수업의 질이 떨어지게 되고 불만 섞인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중원 최고의 무관을 꿈꾸는 백서휘의 입장에선 절대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정도가 한계군.’
누구에게 말을 전하는 게 좋을까 싶었을 때, 사람들을 안내하는 금태평이 보였다.
“금태평!”
“네, 관주님!”
“백 사범님한테 이제 관원들 그만 받으라고 전해라.”
“예? 더 안 받으시고요?”
상가의 피가 섞였다고 해도 아직 어린아이라 그런 걸까?
자신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관원이 늘어 기분이 좋았던 백서휘는 평소와 다르게 친절한 목소리로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여기서 더 받으면 수업 진행을 못 한다.”
“알겠습니다.”
백은하는 칼같이 무관의 문을 닫았다.
늦게 온 사람들이 불평했지만 그들의 수는 소수였다.
대다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신시초에 있을 다음 수업을 노렸다.
백서휘는 신입 관원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수준별 수업은 당분간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지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된 건 모두 매화검수란 이름 덕분이었다.
매화검수에게 수업을 바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이 무관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운학인데…….’
운학은 무인으로서는 고수이나, 사범으로서는 아직 하수였다.
계속된 수업은 그의 피로도를 증가시킬 터였다.
수업의 질을 꾸준하게 유지하려면 그 피로도를 덜 쌓이게 만들어야 했다.
‘모든 시간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하루에 한 번만 특강으로 가르치면 어떨까?’
지금의 기세를 유지해야 하니 일주일 정도만 모든 시간을 운학이 가르치고 이후부터는 하루에 한 번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공지해두는 게 좋겠지.’
마침 운학이 수업을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백서휘는 그에게 양해를 구한 후 신입 관원들 앞에 섰다.
“다들 주목해주십시오. 수업 전에 신입 관원분들에게 공지할 것이 있습니다.”
연무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백서휘에게 집중되었다.
“운학 사범의 수업은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만 매시간 진행되고, 이후부터는 하루에 한 번 술시초(戌時初, 오후 7시∼8시)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수업의 질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인 만큼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불만 섞인 소리를 내려고 할 때 백서휘는 운학에게 자리를 넘겼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화산파의 ‘매화검수’ 운학입니다.”
눈치 빠른 운학은 매화검수란 사실을 강조했다.
감히 매화검수에게 불평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오늘부터 제가 가르칠 무공은 매화개화공(梅花開花功)과 이십사수매화검법입니다. 매화개화공은 대화산파의 제자들이 익히는 기초 무공으로…….”
신입 관원들이 운학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며 수업에 집중했다.
‘사범으로서는 하수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중수는 될 것 같아.’
젊은 나이 꽤 높은 경지에 이르러 가르치는 기술은 부족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편견이었다.
운학의 강의 기술은 백서휘만 못해서 그렇지 웬만한 무관의 사범들보다 나았다.
“……매화개화공은 짧은 수업 시간 안에 가르치기 힘든 무공인 만큼 제가 시간을 따로 내서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설명만 들어보면 운학은 막무가내로 가르치지 않고 학습 과정을 짠 것 같았다.
‘어떻게 가르칠지 생각을 많이 한 티가 나네.’
백서휘는 흐뭇한 시선으로 운학을 바라봤다.
“자, 이제 제가 앞으로 가르칠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운학은 사람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같으니 바로 시범으로 넘어갔다.
‘완급 조절까지 할 줄 알잖아?’
백서휘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매화노방! 매화접무! 매화토염……!”
신입 관원들은 앞으로 배우게 될 초식들을 보며 고수가 되는 미래를 꿈꾸었다.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꽃잎 모양의 연분홍빛 검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며 매화 향기가 연무장에 진동했다.
감격한 신입 관원들이 운학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다.
‘이로써 장사 최고의 무관은 자하무관이 된다!’
백서휘는 다시 한번 운학을 영입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