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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2화 (12/202)

귀환무관 12화

‘잘 있으려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군산에서 보낸 탓에 걱정이 많이 됐다.

정수련과 정하진도 걱정되지만 역시 가장 걱정되는 건 누나인 백은하였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장사를 떠난 시간을 계산해보면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사이에 일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느냐고, 잘못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래도 불안감은 사그라지지를 않았고 오히려 몸집을 더 크게 키워나 갔다.

두 눈으로 가족들이 멀쩡한 걸 봐야 그때야 안심이 될 듯싶었다.

‘곧 도착이야.’

악록산(岳麓山)이 커다랗게 보이는 걸 보면 장사까지는 금방이었다.

‘거의 다 왔어!’

바쁘게 발을 놀리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장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서휘는 숨을 돌릴 만한데도 쉬지 않고 바로 흑웅표국으로 향했다.

흑웅표국이란 글씨가 적힌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깃발의 색이 이전과 다르게 검은색이었다.

거기다 정문에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표사들도 없었다.

‘장례를 치르는 중인가?’

아니나 다를까.

귀를 기울이니 구슬픈 곡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누나는 당연히 없겠지?’

제발 없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게 속으로 기도하며 표국 안으로 들어갔다.

표물을 싣는 마차들이 있어야 할 공터에서 합동 장례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게 아무리 하늘에 달려 있다지만, 누나가 죽는 건 말이 안 돼. 그냥 배에 상처만 좀 크게 난 건데 말이야.’

백서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위패들이 잘 보이는 자리로 걸어갔다.

그다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위패 하나하나를 꼼꼼히 확인했다.

다행히도 ‘백은하’란 이름이 적힌 위패는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으로 백은하를 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상처를 입은 자들로 가득했던 공간에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사환 하나가 바삐 걸어가는 게 보였다.

“여기 있던 환자들 다 어디로 갔습니까?”

“다들 집으로 갔습니다.”

백서휘는 잘못 짚었다고 생각하며 자하무관을 향해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어라?’

무관의 문이 잠기지 않고 열려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연무장을 지나쳐 집으로 넘어갔다.

집 안엔 정하진이 백은하의 피 묻은 붕대를 깨끗한 것으로 갈아주고 있었다.

백은하는 그래도 무인이라고 이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러던 와중에 집으로 돌아온 백서휘를 보게 됐다.

백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생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서휘야!”

“어, 어, 그러지 말고 거기 누워 있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

백서휘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백은하는 뒤늦게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흐윽!”

“항상 환자란 걸 생각하라고.”

“그 생각을 잊을 수밖에 없게 했잖아! 그날로부터 며칠이나 지났는지는 알아!”

“일주일? 아니, 일주일이 좀 넘던가? 하하! 미안. 며칠이나 됐는지는 모르겠네.”

백서휘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군산까지 거리가 있으니 꽤 걸릴 건 생각했어. 그런데 돌아왔어도 한참 전에 돌아와야 했는데 안 오더라고.”

백은하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일이 있었어. 그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싸우다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어렸을 때처럼 납치당한 건 아닐까. 눈만 감으면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떠올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알아?”

“미안. 좋은 기회를 잡았으니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군산에 계속 있었던 거야.”

“도대체 그 기회가 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런 건데?”

백은하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쳤다.

“봐봐. 아! 일어나기가 힘들지. 그냥 내가 보여줄게.”

백서휘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끈을 풀어 덮개를 열었다.

“이, 이건…….”

“엄청나게 많지?”

“후, 훔친 거야?”

“아니야. 거래했어.”

“무슨 거래를 했길래 이런 거금을 얻은 거야?”

백은하는 마음고생 했던 걸 잊고 돈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 나는 쌍겸노라 불리는 낭인을 추적했어. 별호에서 보면 알겠지만, 누나에게 낫을 꽂은 놈이야. 아무튼, 그놈을 추적했는데…….”

백서휘는 히죽 웃으며 제갈세가와 있었던 일을 백은하와 정하진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제갈세가의 일공자랑 거래를 했고, 이렇게 거금을 얻었지.”

백은하는 백서휘와 생이별하고 다시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 반의반쯤은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운이 좋았어. 누나에게 낫을 꽂은 놈이 이런 걸 갖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

“이 돈 어디에다 쓸 거야?”

“무관을 수리하면서 증축도 하려고.”

“그러지 말고 네 결혼 자금으로 쓰는 게 어때? 어차피 무관에는 관원도 없는걸…….”

“그게 무슨 소리야. 관원이 없다니?”

“한 명이 며칠 나오다가 너 없다니까 안 나오더라고.”

“걔는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혹시 따로 등록하러 온다는 사람은 없었어?”

“그건 네 매형이 잘 알아.”

백서휘가 고개를 돌려 정하진을 쳐다봤다.

“등록하러 온 사람 없었습니까?”

“있긴 했네. 그런데…….”

“그런데요?”

“왔다가 무관 건물이 낡았다고 다시 돌아간 자도 있고, 가르칠 만한 사람이 지금 없다고 하니 다른 무관에 간 사람도 있다네.”

“그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됐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다섯 명 정도 됐던 것 같네.”

“꽤 긴 시간 떠나 있었는데 온 사람이 다섯 명밖에 안 됐다는 거죠?”

정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무관 건물이 낡고, 제가 없었다고 해도 그렇게 안 올 리가 없는데. 음……. 저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어디를 가려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어. 이번엔 진짜 금방 올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약속해.”

“알았어.”

백서휘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백은하와 약속한 후에야 무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놈들이 나 없다고 태업을 했나 보네.’

백서휘는 가장 먼저 개방의 호남성 분타에 들렸다.

“여, 여긴 어쩐 일로 오셨는지 물어도 될까요?”

이전에 혼쭐이 났던 일결개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백서휘를 응대했다.

“분타주 불러와.”

“예?”

“내가 저번에 말했을 텐데 못 들은 척하지 말라고? 마지막으로 경고하는 거니까 분타주 얼른 데려와.”

“아, 알겠습니다.”

일결개는 다리 밑에 있는 움막 중 가장 큰 움막으로 달려갔다.

“장사에 있는 거지들 하나하나 다 죽이기 전에 나오는 게 좋을 거야.”

백서휘가 내공을 담아 외치자 나겁개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날이 좀 덥다 보니 옷을 벗고 있어서 옷을 다시 좀 입느라고 늦게 나왔소. 이, 일부러 늦게 나오려던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오.”

“왜 그랬는지부터 말해. 납득 가능한 이유라면 그냥 넘어가 줄 테니까.”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 서, 설명이 필요하오.”

“내가 장사에 없는 동안 태업을 했더군.”

백서휘가 살기 어린 눈으로 나겁개를 노려봤다.

“저, 절대 그럴 리가 없소. 어떻게 우리가 태업하겠소. 분타주인 본인마저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매 시진마다 자하무관을 홍보했단 말이오.”

“그런데 왜 무관에 등록하러 찾아온 사람이 다섯뿐이지?”

“그 이유를 왜 우리한테 찾는 거요. 무관이 낡고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데.”

“그래?”

“그, 그게……. 어쨌든 우리는 매 시진마다 자하무관을 홍보했소! 정 이게 거짓말 같으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되잖소!”

나겁개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확인을 끝낸 후에 찾아올 거니까 그 시간 동안 어떡하면 자하무관을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어.”

“그, 그걸 왜 우리가 해야…….”

백서휘가 다시 한번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봤다.

“해야 하는 게 맞소. 맡은 일을 끝까지 하는 게 옳은 일이니까. 하하하!”

“금방 올 거니까 딴짓하지 말고 있는 게 좋을 거야.”

“그, 그러겠소.”

백서휘는 주루가 모여 있는 거리에서 도화루를 찾았다.

도화루 안으로 들어가니 점소이가 대뜸 질문을 던졌다.

“술입니까? 정보입니까?”

“그것과는 다른 일로 찾았다.”

“지부장님과 만나시려는 겁니까?”

“그래.”

“저 방 안에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저분이 지부장님께 안내해드릴 겁니다.”

백서휘는 전담 점소이가 가리킨 기도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부장에게 무슨 일이 있나?”

“기밀입니다.”

방 안에 냉막함이 감돌았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여긴 건지 기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부장 자리를 정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윗분과 대화 중입니다.”

“지금 그 윗분이란 자와 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밖에 있는 누군가가 문 쪽에 있는 종을 울렸다.

“가시죠.”

백서휘는 기도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이미 처음 왔을 때 길을 외웠지만, 그는 그걸 티 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지부장님이 있을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도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백서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 기도가 부지부장인가?”

“그, 그걸 어떻게……?”

“점소이가 ‘저분’이라고 부르더군. 기세가 이 지부 중에서 두 번째로 강하기도 하고.”

“……맞아요. 이번에 부지부장으로 임명된 자에요. 본단에서 왔죠.”

“감시역인가?”

“그건 아니에요.”

“그럼 왜 부지부장을 본단에서 보내지?”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지부장이 된 게 아니니까요.”

“그렇군.”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내가 없는 동안 태업을 했더군.”

“태업이라면…….”

“자하무관에 대해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것 말이다.”

“……그건 소용이 없어서 그만두었어요.”

화란은 솔직히 고백했다.

“소용이 없다고?”

“귀빈님도 없고, 무관은 다 무너지기 직전이고……. 아무리 좋은 소문을 퍼뜨려도 실체가 별로니까 인식이 바뀌지 않더라고요.”

“그렇군.”

개방과 하오문의 평가가 동일한 걸 보면 노후화된 무관이 심각한 문제이긴 한 것 같았다.

‘빨리 무관을 수리하고 증축하든가 해야겠어. 그런데 누구한테 그 일을 부탁하지? 아, 눈앞에 답을 두고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았군.’

“무관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리랑 증축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부탁을 하실 줄 알고 미리 후보를 뽑아놨어요. 가져다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겠군.”

화란이 두루마리를 여러 개 가져와 앞에 있는 책상에 올려놓았다.

백서휘는 두루마리에 적힌 정보를 읽으며 어떤 자에게 일을 맡길지 고민했다.

“뭐지? 여기 일반 양민의 일도 웬만해서는 맡지 않고, 무림인의 일은 아예 안 맡는다고 적혀 있는데?”

“맞아요. 홍 씨 부자는 무림인의 일은 맡지 않아요.”

“그걸 알면서 가져온 건 날 물 먹이려고 그런 건가?”

“아, 아니요! 절대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무림인이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만약 맡기게 된다면 엄청나게 재수가 좋은 거거든요.”

“실력이 좋은가?”

“아버지인 홍륜은 중원에서 대목장(大木匠)들을 줄 세우면 가장 앞에 서 있을 사람이고, 홍선도 그 나이대 다른 목수들 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 정도로 뛰어나다고?”

“네, 도화루랑 이 밀실도 그 둘이 다른 인부랑 함께 만들었어요.”

“일을 맡기는 게 불가능한 이유가 뭔지 들어봤으면 하는데.”

“들으시려면 남은 두 번의 기회 중 한 번을 쓰셔야 돼요.”

“좋아, 쓰도록 하지.”

“그럼 사연에 대해 말해 드릴게요.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홍 대목장은…….”

무림인에게만 까다롭게 구는 건 5년 전에는 아내가, 3년 전에는 며느리가 무림인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아버지나 아들이나 그런 과거가 있으면 일을 안 맡을 만하지.”

백서휘는 중얼거리고는 다른 목장(木匠)의 정보를 읽어나갔다.

읽는 내내 중원에서 가장 솜씨가 좋다는 화란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홍 대목장에게 일을 맡기려면 원한을 해결해주는 게 좋겠지.’

다시 홍 대목장의 두루마리로 넘어가 원수에 대한 부분을 읽었다.

“음…….”

홍륜의 처를 죽인 놈은 이미 죽었고, 홍선의 처를 죽인 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잔살검(殘殺劍) 적상현이라…….’

백서휘는 두루마리를 보며 고민하는데 화란이 말을 걸었다.

“잔살검 적상현에 대한 정보를 드릴까요?”

“기회를 제해야 하나?”

“아니요. 공짜예요.”

“음…….”

하오문은 상단(商團)만큼이나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기회를 제하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준다?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백서휘는 턱과 볼을 매만지며 화란의 표정을 살폈다.

‘화가 있고, 기대감도 있네. 적상현이 하오문에 뭐 잘못하기라도 한 건가?’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화란이 적상현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다.

“적상현에 대해 설명해드릴까요?”

자신만 보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화란이 이렇게 나서는 걸 보면 확실히 뭔가가 있었다.

“죽이고 싶은 놈인가 보지?”

“네? 네…….”

“왜 죽이고 싶은지 말해줄 수 있나?”

“몇 년 전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저희한테 상납도 안 하고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상납하라고 하면 되잖아.”

“적상현 본인의 무력이 상당한 데다 뒷배가 부담스러워 못 건드리고 있어요.”

“뒷배가 누구지?”

“뒷배는 형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성장한 홍염방(紅焰幫)의 방주에요.”

“혹시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이 그것 말고 더 있나?”

“예.”

“그럼 그것들을 빠르게 알려주면 좋겠군.”

“알겠어요. 적상현의 출신지는 불명이고 어떻게 자랐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어요.”

“아는 정보가 있긴 한가?”

“이, 있어요.”

“뭔데?”

“무력 수위는 일류 초입이고, 주무기는 태도이고…….”

백서휘는 홍 씨 부자와 적상현에 대한 정보를 모두 외운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사는 곳이 악록산 근처라고 했지?악록산이 장사에서 열일곱 마장(馬丈) 정도 떨어져 있으니……. 한 식경이면 갔다 오겠군.”

나겁개가 생각하는 자하무관 부흥 계획도 들어야 하고 집에도 일찍 돌아가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갔다 오는 게 좋겠어.”

목적지인 악록산 인근의 마을을 향해 전력으로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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