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8화
금태평이 성의를 보여줬으니 이제 자신도 성의를 보여줄 때가 되었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어떻게 성의를 보여주느냐였다.
백서휘는 잠시 고민하더니 앞으로 배우게 될 기술들에 대해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시범은 밖에서 보여주는 게 낫겠지.’
그래도 무관이라고 연무장이 조그맣게 있었다.
그곳에서 보여준다면 건물이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따라와라.”
백서휘는 금태평과 함께 집과 무관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연무장으로 나왔다.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시범을 보여주려고 이리로 왔다.”
“연무장이 아니라 여기서요?”
“여기가 연무장이야.”
금태평이 문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사이에 격차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연무장이라고 봐줄 만한 건데…….’
무관 건물이 다 낡아서 그렇지 부지 자체는 꽤 넓었다.
그 덕분에 실내와 실외 모두에 수련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출 수 있었다.
‘우리보다 영세한 무관을 보면 말도 안 되게 놀라겠네.’
백서휘는 잡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면서 다 들리도록 헛기침을 크게 했다.
그제야 금태평이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네가 앞으로 배우게 될 기술들이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거다. 두 눈 크게 뜨고 잘 봐라.”
지금 백서휘는 절정 고수가 펼칠 수 있는 딱 한계까지만 금태평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시범으로 보여줄 기술들도 냉정하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었다.
그런데도 보여주려 하는 것은 금태평이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등대가 되었으면 해서였다.
“여기서요?”
“그래, 거기.”
백서휘가 안전을 위해 거리를 벌리고 금태평을 바라봤다.
“위험하니까 지금 정도의 거리는 항상 지켜.”
“네.”
백서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한 후 싸움 자세를 취했다.
“가장 처음에 보여줄 건 견제용으로 쓰는 기술이다.”
“견제용이요? 그럼 약한 거예요?”
“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배우면 견제용 기술도 절대 약하지 않아.”
금태평이 미심쩍은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시작한다.”
백서휘가 달걀을 쥐듯 왼손을 쥐고는 가볍게 내뻗었다.
빠르게 나아간 그의 주먹은 공기를 찢어발기며 허공을 때렸다.
말도 안 되는 위력에 놀란 금태평이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이, 이게 견제용이라구요? 그, 그러면 타격용은…….”
“얼마나 강한 위력의 공격을 하느냐에 따라 시간 조금 걸려서 그렇지 견제용보다 더 위력적이야. 잘 봐.”
백서휘는 다리를 단단히 땅에 고정하고 발끝에서 경(勁)을 만들었다.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경이 다리와 고관절을 지나쳐 허리에 이르렀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보다 경은 더 커져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더 위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허리를 크게 비틀어 회전시키자 경이 말도 안 되는 크기로 증폭됐다.
등을 통해 어깨까지 올라간 경에 힘을 더 보태기 위해 팔을 비틀었다.
‘이제 쏟아내기만 하면……. 간다!’
백서휘는 처음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증폭한 경을 주먹에 담아 허공을 때렸다.
귀청을 울리는 굉음이 들리자 깜짝 놀란 금태평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백서휘는 그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참고로 조금 전에 보여준 견제용이랑 타격용 기술 모두 내공 없이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만 펼쳤다.”
“헉! 저, 정말요?”
“네가 지금부터 내공을 열심히 모아봤자 단전에는 쥐꼬리만큼의 진기도 안 생기기 때문에 육체의 힘만 쓰는 걸 배우는 게 나아.”
“그래도 내공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네가 어른이고 상대도 어른이라면 모르겠는데 너나 그 세 놈이나 다 꼬맹이잖아. 꼬맹이 싸움에선 내공보단 육체의 힘과 그 육체를 움직이는 기술이 중요해. 그리고 나는 너한테 그 힘을 기르는 법을 알려주고, 기술을 가르쳐줄 생각이다.”
“그 기술이란 거 조금 전에 보여준 두 개가 전부인 거예요?”
“아니, 조금 전에 보여준 건 중점적으로 배워야 할 기술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러면 배워야 할 게 다른 것도 있다는 거예요?”
금태평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백서휘를 보며 물었다.
“다른 것도 있어.”
“어떤 건데요?”
“공격 흘리는 법, 보법 쓰는 법, 거리 재는 법, 약점을 찾는 법 이런 것들도 다 배워야 해. 그래야 복수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언제쯤에 복수할 수 있는데요? 6개월 후?”
“일주일.”
백서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생각했던 것보다 재능이 더 없어. 내가 한 시진도 안 되어서 깨우친 경을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데도 쓰지 못할 줄은…….’
백서휘의 생각과 다르게 금태평은 제법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구파일방 같은 명문거파에서도 그처럼 뛰어난 근골과 오성을 지닌 자는 몇 없었다.
그럼에도 백서휘가 금태평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본인을 기준으로 삼아서였다.
백서휘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몰랐다.
그가 자만할까 싶어 스승은 항상 재능이 없다고 말했었고, 암중에서 싸웠던 강자들은 그만은 못해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래서 백서휘는 자신의 재능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자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금태평을 딱 범재 정도로 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기술을 가르쳐야 하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인간도 곰을 잡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술이 유술(柔術)에 존재했다.
그 기술을 알려준다면 금태평은 한 명에겐 무조건 복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두 명한테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는 건데……. 일단 가르치고 보자.’
“금태평.”
금태평은 경을 익히는 데 집중하느라 호명하는 걸 듣지 못했다.
다시 한번 부르자 그제야 그는 백서휘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이리 와봐.”
“왜요?”
“새로운 기술을 알려주려고.”
“가르쳐주신 것만 알아도 세 놈을 잡는 데 문제없다고 하셨잖아요.”
“기술엔 문제가 없다.”
“그러면…….”
“문제는 부족한 시간과 덜떨어진 네 재능이다.”
백서휘는 악의 없이 사실만을 말한 거지만, 금태평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상인의 피를 타고난 금태평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익히는 게 늦으면…….”
“이걸 못 익히면 그냥 무공 따윈 때려치우는 게 나을 정도로 간단한 기술이다.”
“어떻게 펼치는 건데요?”
백서휘는 말과 몸 모두를 이용해 기술을 설명했다.
“앞 팔의 근육이랑 팔의 상박 앞쪽 근육을 삼각형으로 만든 다음 목을 조여서…….”
“이렇게요?”
“나한테 써봐.”
“어, 어떻게 관장님 몸에…….”
“실전으로 익히는 게 제일 빠르다.”
금태평은 전완근과 이두근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집게처럼 경동맥 쪽을 조였다.
“흐으읍!”
있는 힘껏 경동맥을 눌러 혈류를 차단했지만 이미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지 오래인 백서휘에겐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바로 실전에서 써도 되겠어.”
“진짜요?”
“주의사항을 알려주마.”
상대의 등을 잡아서 써야 한다는 거나 상대가 기절하면 바로 기술을 풀어야 한다는 것 등을 가르쳐줬다.
“앞으로 남은 이틀 동안 기술의 숙련도를 끌어올려.”
“네!”
두 사람은 경을 제외한 다른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전념했다.
* * *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금태평이 정중히 인사하고 학관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백서휘는 실내 수련장 중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의일기공(天意一氣功)을 수련했다.
‘태평이가 그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
견제용과 함께 가르친 발재간, 유술 등을 잘 쓴다면 사실 경을 몰라도 이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경만 쓸 줄 알면 무조건 승리할 텐데……. 경을 못 익힌 채로 내보내니까 괜히 불안하네…….’
금태평은 끝까지 경을 만들고 쓰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걱정도 많이 됐다.
‘멀리서 지켜보기만이라도 할까?’
위험한 상황이 나오면 제지할 사람이 필요하긴 했다.
백서휘는 잠시 고민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가자.’
백서휘는 은형잠종술(隱形潛蹤術)을 쓴 채로 밖으로 나와 학관을 향해 응룡비천신법을 펼쳤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날 듯이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학관.
금태평이 매번 맞았던 골목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백서휘는 조용히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안엔 세 놈 중 두 놈이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죽어!”
멀쩡한 한 놈이 엉성한 자세로 주먹을 날렸다.
금태평은 자세를 낮춰 공격을 피한 후 멀쩡한 놈의 품 안으로 대담하게 파고들었다.
멀쩡한 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달걀을 쥐듯 가볍게……!’
금태평은 멀쩡한 놈의 얼굴에 왼손을 가볍게 내뻗었다.
쐑!
빠르게 날아간 주먹이 멀쩡한 놈의 코를 때렸다.
뼈가 부러졌는지 멀쩡한 놈의 코에서 피가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악!”
금태평은 뒷걸음질하는 멀쩡한 놈을 미소 띤 얼굴로 끝까지 쫓아갔다.
“저, 저리 꺼져! 이 개새끼야!”
멀쩡한 놈이 손을 이리저리 뻗어 금태평을 막으려 했다.
‘발끝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금태평은 백서휘의 말을 떠올리며 발끝에서부터 경을 만들었다.
달려가면서 만드는 데다 숙련도도 낮아 만들어진 경의 힘이 얼마 되지 않았다.
‘증폭하면 돼!’
발, 다리, 고관절, 허리를 돌려 증폭시킨 경이 등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갔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힘을 더 크게 만들어야 돼.’
금태평은 어깨와 팔을 수건을 쥐어짜듯 비틀어 힘을 보탰다.
그다음 처음보다 훨씬 더 커진 경의 힘을 주먹에 보냈다.
‘간다!’
무관에서 배운 가락이 있는지 멀쩡한 놈은 십자로 팔을 교차시켜 주먹을 막으려 했다.
금태평이 멀쩡한 놈의 팔을 향해 경이 담긴 주먹을 꽂아 넣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멀쩡한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는데 그의 두 팔이 덜렁거렸다.
“으아아아!”
처음으로 경을 만들고 복수까지 성공한 금태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잘했다.”
어느새 나타난 백서휘가 금태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짧게 한마디 했을 뿐인데 금태평이 울기 시작했다.
“흑흑흑! 감사합니다. 관주님 덕분에…….”
“감사는 무슨…….”
백서휘는 금태평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옷 소매로 닦아주었다.
그때 지금까지 생각도 못 했던 문제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복수에 성공했는데 얘가 계속 무관에 다니려고 할까?’
금태평은 자하무관의 유일한 현금창출원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목표를 완전히 이루는 데 성공했다.
‘무관을 일주일밖에 안 다녔으니 나한테 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르쳐준 것만으로도 학관을 본인 발아래 두는 데 문제가 없어.’
백서휘가 볼 때 금태평은 무관을 계속 다닐 이유가 없었다.
‘지금 내가 내 목을 조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라면 1년도 더 걸릴 문제를 자신이 너무 잘 가르치는 바람에 일주일 만에 성공하고 말았다.
‘화수분을 깨버리다니…….’
바보 같은 자신을 탓하고 있는데 금태평이 품으로 파고들었다.
“엉엉엉! 관주님, 제가 평생 무관을 다니면서 이 은혜를 갚을게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감히 청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바라던 것을 금태평이 말해주었다.
‘하하하! 네가 앞으로 낼 수강료는 아주 좋은 곳에 쓰도록 할게.’
백서휘가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