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7화
백서휘는 광고지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느 쪽으로 갈까 고민하던 그는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를 둔 부모를 표적으로 잡고 무관을 홍보할 생각이었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반대편 입구를 향해 나아가며 광고지를 나눠주었다.
그러다 중간쯤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뭔가 싶어 보니 사람들 중심에 나겁개가 있었다.
흥미가 생겼던 백서휘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의 행동을 관찰했다.
“……날씬해지고 싶은 아줌마! 정력이 좋아지고 싶은 아저씨! 무인이 되고 싶은 꼬맹이! 다들 가까이 와 봐!”
나겁개는 자신의 지시를 꽤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홍보 효과도 괜찮아 보여.’
못해도 30명이 되는 사람이 나겁개를 주목하는 중이었다.
이중에 1명만 등록해도 무관으로서는 이득이었다.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가 되면 ‘자하무관’으로 와봐. 그때 무관에서 하는 게 있어. 무엇을 하느냐? 무공을 수련한다 이 말이야. 산을 부술 듯한 기세로 주먹을 날리는 권법! 번개같이 빠른 발을 날리는 각법! 하늘을 가르는…….”
자신이 보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겁개는 열성적으로 자하무관을 홍보했다.
백서휘는 흡족한 얼굴로 시장을 빠져나갔다.
‘하오문도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한번 확인을 해볼까.’
내공으로 청력을 증폭시킨 후 객잔과 주루가 모여 있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점소이와 기녀들은 은근슬쩍 손님들에게 자하무관에 관한 이야기를 흘렸다.
그들은 절대 억지로 화제를 유도하지 않았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은근하게 소문을 냈다.
덕분에 자하무관이 자연스럽게 입을 오르내리는 화제가 될 수 있었다
‘학관 다니는 애들한테 광고지만 제대로 돌리면 되겠어.’
백서휘는 걸음을 바삐 놀려 학관으로 향했다.
시의적절한 때에 왔는지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백서휘는 사흘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광고지를 나눠줬다.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와.”
“싫어!”
“맞고 갈래? 아니면 그냥 갈래?”
“안 간다니까!”
사흘 전에 봤던 광경을 또 보게 되었다.
덩치 큰 아이들이 왜소한 아이 하나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왜소한 아이가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봤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법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덩치 큰 아이들이 낄낄거리면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오늘 춘화는 내가 고른다.”
“춘화 말고 먹을 거나 사 먹자.”
“술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
“술?”
“응.”
“어디서 구하게.”
“그건…….”
덩치 큰 아이들은 역적모의하듯 조용히 얘기하며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백서휘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골목 쪽으로 돌렸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 데도 왜소한 아이는 골목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골목으로 가봤다.
왜소한 아이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백서휘는 바로 달려가 손을 왜소한 아이의 목에 가져다 댔다.
다행히 맥은 잘 뛰고 있었다.
‘의방에 가야겠다.’
백서휘는 왜소한 아이의 목과 다리에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 올린 후 의방을 찾아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머리가 하얗게 다 센 의원이 허리에 뒷짐을 지고 물었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이렇게 찾아 왔다.”
“자식이요?”
“연이 없는 아이다.”
“좋소. 어디 한번 봐 봅시다. 헛! 이 아이는……!”
“아는 아이인가?”
“만복상단의 대방 동생이오.”
만복상단은 호남성에서 가장 큰 상단으로 쌀과 모시, 금속 등을 중원 곳곳에 공급했다.
외상없이 철저히 현금만을 받았기에 상단의 규모에 비해 현금동원력이 뛰어났다.
상단에 있는 유보금만 따지면 중원이십대상단의 말석인 백오상단에 비견 될 정도였다.
“만복상단은 되게 큰 상단 아닌가? 그런 큰 상단의 대방 동생이 호위무사 없이 다닌다고?”
“그 궁금증은 아이한테 침을 놓은 후에 풀어주겠소.”
의원은 왜소한 아이의 혈도 곳곳에 침을 꽂아 넣었다.
“이야기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소. 호남성이 처음이오?”
“20년 전에 여기 살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
“다른 곳에 나가 산 게 20년이면 확실히 모를 만하구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호남성에 없었으니…….”
의원은 갑자기 회한에 잠겼다.
백서휘는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아, 미안하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호남성 사람 중에 이 아이의 사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소.”
“어떤 사정이 있길래 그런 거지?”
“이 아이는 만복상단의 전 대방이 시녀와 하룻밤 불장난을 저질러서 태어난 아이라오.”
“현재 대방으로 있는 자와 이 아이의 나이 차가 많이 나나?”
“20살 이상 차이가 나오.”
백서휘는 대충 어떤 식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한 살이 채 되기 전에 아버지가 복상사로 죽었고, 어머니는 괴질을 앓다가 죽어버렸소. 이런 상황에서 기댈만한 존재는 이복형제이자 만복상단의 현재 대방인 금태풍밖에 없소. 그런데 그 금태풍은 동생에게 무관심하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우가 너무 형편없는 거 아닌가?”
“다른 건 어떻게 대우하는지 모르겠지만 매주 상당한 양의 돈을 금태풍에게 용돈으로 받는다고 들었소.”
그때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며 괜찮은 계획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딸랑딸랑!
의방 밖에 있는 종을 누군가가 울렸다.
의원은 황급히 아이의 몸에 놓았던 침을 회수했다.
“일각에서 이 각쯤 지나면 깨어날 테니 잘 보고 있으시오. 나는 다른 환자를 진료하고 와야겠소.”
의원이 말했던 것처럼 일각이 조금 넘었을 때 아이가 눈을 떴다.
“여긴…….”
“제가 의방에 왜 온 거죠?”
저번과 다르게 도움을 줬기 때문일까?
아이는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골목 안에 쓰러져 있길래 데려왔다.”
“골목이요? 으윽!”
관자놀이에서 퍼져나가는 통증에 왜소한 아이는 반사적으로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쉬는 편이 좋을 거야.”
“치료비는…….”
“그 부분에 대해선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의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찾아 왔다.
한동안 서로 눈치만 봤다.
그러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던 백서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냐.”
“금태평이요 그러는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백서휘.”
“이번엔 왜 도움을 주신 거예요? 저번처럼 외면하셔도 됐을 텐데…….”
“저번엔 도와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사정이요?”
“매형이 학관에서 글을 가르친다. 그 세 놈이 학관을 그만두면 손해가 되게 커.”
“이번에 도와준 건 손해를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거네요?”
“그런 것도 있고, 네가 골목에서 나오질 않으니 걱정돼서 도와준 것도 있다. 꼬맹이가 죽는 걸 보면 한동안 꿈자리가 사납거든.”
“그렇군요.”
“나도 질문해도 되나?”
“얼마든지 하세요.”
“네가 상당한 액수의 돈을 매주 받는다고 들었다. 맞나?”
“네, 맞아요.”
“그런데 왜 계속 당하기만 하는 거지? 매주 받는 돈으로 호위무사를 고용하거나 무관에 다니면 지금보다 나을 텐데? 어차피 뺏길 돈이면 다른 곳에 쓰는 게 낫지 않나?”
“믿을 수 있는 호위무사를 고용할 줄 몰라서 사기를 몇 번 당했어요. 그래서 호위무사는 고용 안 해요. 그리고 무관은…….”
“무관은?”
“다닐 수가 없어요.”
“왜지?”
“셋 중 둘이 금강무관을, 나머지 하나가 태극무관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다른 곳을 다니면 되잖아.”
백서휘는 떡밥을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다.
“이 근방에 무관이 그 두 곳 말고 또 있나요?”
“자하무관이 있잖아.”
“그 다 쓰러져 가는 곳이요?”
“……그래.”
“그런 곳은 관주의 실력을 믿을 수 없어서 다닐 수가 없어요.”
“태극무관과 금강무관은 뭐 얼마나 강하고 믿음직하길래 그러는 거지?”
“둘 다 검기란 걸 쓸 줄 아는 일류 고수인 데다가 무림에서 꽤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래요.”
겨우 일류 고수로 장사(長沙)를 양분하고 있다는 게 어이가 없어 백서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금태평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누나를 사범으로 삼고 내가 관주가 되면 두 무관에 다니는 사람들을 우리 쪽으로 바로 끌어올 수 있겠어.’
자하무관을 호남성 최고로 키울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다.
“검기를 완숙하게 뽑을 줄 아는 절정 고수가 널 가르쳐주겠다고 하면 어떡할래?”
본신의 실력을 드러내면 믿지 못할 것 같기에 백서휘는 일부러 절정 고수라고 말했다.
“1대1로요?”
“나중은 몰라도 지금은 1대1이야.”
“그럼 당장 가르침을 받죠.”
“비쌀 텐데?”
“얼마나 비쌀지는 모르겠지만 절정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게 진짜라면 저는 전 재산을 투자할 수도 있어요.”
의원이 매주 상당한 양의 돈을 받고 있다고 한 걸 보면 코 묻은 돈 정도는 아닐 터.
그 돈을 조금씩이라도 모았다면 금태평의 전 재산은 어마어마한 액수일 가능성이 컸다.
‘이놈을 관원으로 받으면 금와전장에서 돈을 안 꺼내 써도 되겠지.’
백서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내일 사시까지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자하무관으로 와라. 매형한테 말해둘 테니까 학관은 가지 말고.”
“자하무관으로 오라고요? 왜요?”
“절정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자하 무관에 절정 고수가 어딨어요.”
“여기.”
“아저씨가 절정 고수라고요?”
“그래.”
“거짓말.”
금태평은 불신하는 눈빛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는 피식 웃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잘 봐.”
백은하에게 그랬던 것처럼 금태평에게도 백서휘는 검기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이게 검기?”
“그래, 절정고수만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검기를 다룰 수 있다.”
검기를 바라보는 금태평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처, 자하무관에서 열심히 무공을 배우면 저도 아저씨처럼 그렇게 검기를 쓸 수 있는 거죠?”
“노력한다고 다 되지는 않지만 내가 가르치면 다르지.”
“아저씨 가르침만 따르면…….”
“절정 고수가 되겠지.”
재능이 없으면 십 년이 넘게 배워도 힘들다는 말을 백서휘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내일 사시에 자하무관으로 가면 되는 거죠?”
“그래.”
“꼭 갈게요!”
백서휘는 검기에 홀린 금태평을 보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 * *
백서휘는 자하무관의 실내 수련장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에 빠졌다.
‘복수를 목표로 하는 아이인 만큼 단기간에 효과를 볼 방법을 가르치는 쪽이 맞겠지.’
기초 체력을 키우는 과정을 일부 생략하고,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쪽이 복수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드르륵!
무관의 미닫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라.”
금태평은 머뭇머뭇하며 실내 수련장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그냥 관주님이라고 불러라.”
아직 적전제자(嫡傳弟子)를 둘 생각이 없던 백서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네, 관주님.”
“입관비는 가져왔지?”
“어, 얼마나 가져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으셔서 그냥 성의껏 최대한 많이 가져왔는데요…….”
“얼마나?”
“여, 여기요.”
금태평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 준 돈은 ‘금자’였다.
“너 ‘성의’가 뭔지 아는 놈이구나.”
백서휘가 주머니에 금자를 챙겨 넣고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금태평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