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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4화 (4/202)

귀환무관 4화.

백서휘는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이 일렁이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흑사방도 둘이 양옆에 모깃불을 켜놓은 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대화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옥분이의 옷고름을 풀었……. 그르르륵!”

백서휘는 두 놈의 목에 정확히 검을 찔러넣고 그대로 회수했다.

두 놈이 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백서휘는 두 놈을 뒤로하고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건물들 안에서 귀청을 울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때 한 건물의 문이 열리며 세 놈이 걸어 나왔다.

“쫄리지? 그래서 도망가는 거지?”

“병신아, 교대 가야 돼서 가는 거야.”

“그냥 재끼면 되지. 뭔 교대야.”

“지금 번 서는 놈이 누군지 알아?”

“누군데?”

“부방주 동생이야.”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한 놈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고 두 놈이 정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저기 뭐가 있는 것 같은데?”

키가 큰 놈이 가만히 멈춰서더니 백서휘 쪽을 가리켰다.

“뭐가 있는데?”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 몰라. 뭔가 있었으면 번 서던 놈이 호각을 불든, 소리를 지르든 했겠지.”

“그러네.”

백서휘가 교대하러 오는 놈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왜 한 놈이지?”

“그러게.”

키가 큰 놈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반해 키가 작은 놈은 뭔가 눈치챈 건지 호각 쪽으로 바로 손을 가져갔다.

백서휘는 키가 큰 놈을 베어버리고 키가 작은 놈에게 어서 호각을 불라고 손짓했다.

그로선 몇 놈이 뛰쳐나오든 상관없었다.

개미가 몇 마리 모이든 하늘을 나는 용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삐이이익-

호각을 계속 부르는 데도 뛰쳐나오는 이가 몇 없었다.

그나마도 언제 휘둘렀는지 모를 백서휘의 검에 오는 족족 목숨을 잃었다.

“계, 계속 호각을 부를까요?”

키가 작은 자가 덜덜 떨며 호각을 입으로 가져가려 했다.

백서휘는 잠시 고민하다 그를 죽이고는 시끌벅적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엔 술판과 골패판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누구냐!”

수상한 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일까?

귀청을 울리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체가 뭐고, 뭐하러 이곳에 왔는지 밝혀. 말하지 않으면 너는 아주 끔찍한 일을 겪게 될 거야.”

흑사방도들이 하나씩 무기를 꺼내 들었다.

백서휘는 눈동자를 움직여 안에 있는 자들의 수를 빠르게 셌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대표로 나서서 말하던 인물이 덤벼들자 백서휘는 보지도 않고 장풍을 날렸다.

우당탕!

대표로 나섰던 자가 피를 토하며 방 끝까지 날아가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조져!”

인제야 경각심을 느낀 흑사방도 수십이 몰려나와 백서휘를 둘러쌌다.

그러곤 흑사방도들이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백서휘에게 달려들었다.

“이얍!”

흑사방도 여럿이 높이 든 대도를 일직선으로 내리찍었다.

하지만 백서휘는 반걸음을 움직여 너무나 손쉽게 공격을 피한 후 그를 일도양단해버렸다.

“거, 검기를 두르지 않고 다섯을 반으로 갈라버리다니!”

사람을 반으로 자르는 건 기술이 극에 달했거나 힘이 엄청나야만 펼칠 수 있는 기예였다.

하물며 그게 다섯이나 된다면 웬만한 일류도 하기 힘든 기예.

그런 기예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자 흑사방도들은 겁을 먹고 말았다.

“조, 조져!”

상급자가 명령을 내렸지만 따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겁을 먹고 눈치만 볼 뿐이었다.

“씨발! 저 새끼 좀 조지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상급자가 나섰지만 단칼에 죽을 뿐이었다.

하지만 백서휘의 칼날이 또다시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고.

남은 것은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상급자의 처참한 시체뿐이었다.

“도, 도망쳐!”

흑사방도들이 양쪽으로 흩어져서 문을 향해 달려갔다.

푸아아악!

그러나 그걸 놓칠 백서휘가 아니었다.

“한 놈도 살려둘 생각 없다.”

백서휘가 검에 맺힌 검기를 쏘아 보냈다.

상급자처럼 달려가던 모두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라지며 바닥에 뜨끈한 내장들이 쏟아졌다.

“괴, 괴물!”

“히이익!”

간신히 살아남은 흑사방도들은 이제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대소변을 질질 흘릴 뿐이었다.

게다가 공포심 때문에 백서휘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면 흑사방도들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길 반복했다.

이런 짓을 몇 번 반복하니 흑사방도들은 구석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때 한 놈이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다시는 검을 잡지 않겠습니다.”

두 놈이 빌고.

“사, 살려만 주시면 귀인의 종이 되어 살겠습니다.”

세 놈이 빌었다.

“저는 팔순의 노모와 아픈 아내…….”

백서휘는 무감정한 얼굴로 구석에 있는 모두의 목을 일검에 베어버렸다.

촤악!

검에 묻은 피를 털어버리고 밖으로 나오니 수많은 사람이 이쪽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백서휘는 오연한 눈으로 모두를 내려다봤다.

자세히 보니 갈중혁과 흑사방도만이 아니라 염왕채를 놓았던 놈들도 뒷줄에 있었다.

“너는 누구길래 아무 죄 없는 우리를 해코지하는 것이냐!”

갈중혁이 내공을 담아 외쳤다.

“진짜 죄가 없다고?”

장원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백서휘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없다!”

“사람을 물건처럼 판 죄는?”

“내 돈을 빌려서 못 갚았으면 몸으로라도 갚아야지!”

갈중혁은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뻔뻔스럽게 말했다.

“좋아. 그럼 자하 무관을 집어삼키기 위해 한 짓은?”

“네, 네가 어떻게 그걸…….”

“감히 자하 무관을 넘본 게 네 죄야.”

“남의 죄를 말하는 자치고 죄 없는 자 못 봤다. 다들 쳐라!”

백서휘는 푸르스름한 검기가 어려 있는 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커다란 검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걸 본 모두가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조, 좆됐다.”

“마, 망할.”

스가가가각!

무기를 들고 있던 모든 이의 무릎 아래가 검기에 의해 잘렸다.

그러고도 검기는 힘이 남는지 장원의 문짝과 높다란 담벼락을 깨끗이 반으로 잘라놓았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백서휘는 무감정한 얼굴로 쓰러진 흑사방도들의 가슴에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하나가 죽고 뒤이어 또 하나가 죽고 뒤이어 다른 하나가 죽었다.

몇몇 이들이 온갖 이유를 다 말하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백서휘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검을 휘둘러 사람을 무가치하게 죽일 뿐이었다.

갈중혁에게도, 뚱뚱이에게도, 홀쭉이에게도, 흑사방도들에도, 염왕채를 대신 놓았던 사장에게도 백서휘는 동등한 죽음을 내려주었다.

‘돌아가자.’

해가 뜨자 백서휘는 무관으로 다시 돌아갔다.

* * *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백은하가 보이지 않았다.

무관에도 없고 뒤편에 있는 집에도 역시 없었다.

‘지금 상황을 이용해야겠다.’

백서휘는 공소희가 가지고 있던 돈을 품 안에 챙겨 넣었다.

잠시 후, 장바구니를 들고 백은하가 나타났다.

“누나.”

“어?”

자신의 목소리를 듣자 백은하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으며 머리에 쓴 두건을 고쳐 썼다.

‘왜 이렇게 어색해하지?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가?’

더 친근히 굴어서 남매간의 정을 돈독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야.”

“어, 좋은 아침.”

백은하가 빠르게 말을 내뱉고는 무관 뒤편에 있는 집으로 사라졌다.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집 쪽에서 돼지고기를 구울 때 나는 냄새가 났다.

‘돈이 어디서 나서 돼지고기를 산 거지?’

무관이 넘어가니 마니 하는 상황에서 고기를 사는 데 돈을 쓰다니.

무슨 이유에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날 먹이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산 건 아니겠지?’

백서휘는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백은하는 두건을 벗은 채 돼지고기로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뭐 먹고 싶은 요리라도 있는 거야?”

“누나 머리가…….”

허리까지 오던 백은하의 머리가 단발로 변해 있었다.

“앗!”

백은하가 황급히 두건을 쓰더니 백서휘를 주방에서 나가게 했다.

“기, 기분전환 삼아 자른 거니까 이상한 오해하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

백서휘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머리를 팔았구나.’

20년 만에 만난 동생을 위해 내온 상에 고기가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저릿저릿하게 아파져 오는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주방 앞에 서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니 백은하가 상을 들고 주방 밖으로 나왔다.

“저기 가서 얼른 앉아.”

백은하가 턱으로 평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백서휘는 그녀의 손에서 상을 뺏어 들은 후 평상 위에 올려놓았다.

슬쩍 상을 보니 돼지고기로 만든 회과육을 제외하고는 이전과 반찬 구성이 같았다.

백은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꼈다.

부유했던 집안이 자신 하나 때문에 폭삭 망한 것 아닌가.

그것도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 정도로.

‘젠장.’

백서휘는 상에서 백은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얼마야?”

“뭐가?”

“머리카락을 얼마에 팔았냐고.”

“무, 무슨 소리야. 머리카락을 팔다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얼른 먹어.”

“진짜 안 팔았어?”

“그래.”

백서휘는 백은하를 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아예 입을 다물고 평상에 앉았다.

“안 먹어?”

“매형이랑 수련이 기다려야지.”

“그 둘은 나중에 먹을 거니까 일단은 너 먼저 먹어.”

“나 혼자?”

“응.”

백서휘는 고민하다 밥 한술을 떠 청경채 볶음과 같이 먹었다.

“회과육도 먹어.”

“수련이나 줘.”

“수련이는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까 회과육 어서 먹어.”

안 본 사이에 백은하의 고집이 참 세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서휘는 고민하다 회과육을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다. 엄마 아니, 어머니가 한 것보다 나은 것 같아.”

진심을 다해 칭찬하니 백은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진짜?”

“진짜.”

“많이 먹어.”

백은하는 또 한바탕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백서휘는 미소 띤 얼굴로 열심히 밥을 빠르게 먹었다.

“아, 잘 먹었다~”

“맛 괜찮았지?”

“괜찮은 걸 넘어서 맛있었어. 오랜만에 고기 먹으니까 좋더라.”

“다행이다.”

“밥도 먹었으니 산책을……. 아차차! 이걸 전해준다는 걸 깜빡했네. 받아.”

백서휘는 품속에서 돈을 꺼내 백은하에게 건넸다.

“이 돈 뭐야?”

백은하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떤 여자가 누나한테 이 돈을 전해주라던데.”

“어떻게 생긴 여잔데?”

“키가 누나랑 크게 차이가 안 나고 여기에 점이 있었어. 아! 그리고 삼백안이라 성격이 되게 날카로워 보이던데.”

“소희구나…….”

백은하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소희? 그게 그 여자 이름이야?”

“곧 돈을 받아서 갚을 수 있다고 한 거. 소희한테 빌려줬던 돈을 받으면 갚을 수 있단 거였어.”

“아, 그래? 그러면 다행이네. 그 돈으로 빌린 돈 어서 갚으면 되겠다.”

“그래야겠다. 아! 혹시 다른 이야기는 없었니? 소희가 너한테 돈만 전해준 거야?”

“좋은 기회를 잡아서 호남성을 떠난다고 말하더라고.”

“호남성을 떠나?”

“응, 그리고 떠나야 하는 시간이 있어서 직접 만나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던데.”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

“내가 뭐하러 그런 농담을 해.”

“어디로 갔는데?”

“그거야 난 모르지.”

“안 떠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가방도 큰 걸 메고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있었던 걸 보면 아마 아까 떠났을 거야.”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백은하는 앞치마를 백서휘에게 주더니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무사히 넘긴 것 같네.’

백서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앞치마를 주방 구석에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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