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세상을 핏빛으로 정화하리라.
철무룡은 어둠 가운데 두 눈을 뜨며 그리 다짐했다.
모든 것을 잃고 혈천신교에 귀의한 것이 벌써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피의 복수를 천명하고 혈천이란 하늘 아래 칼을 갈고 닦았다.
언젠가 복수할 날이 있으리라.
중원의 고수들을 모조리 쳐 죽이고 위대한 업적을 세워 드높이겠다.
그 일념으로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 차디찬 비동에 갇혀 수련을 반복했다.
경지에 도달한다면, 무공을 완성한다면 자신을 높이 들어 쓰겠다.
철무룡은 혼돈의 그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침내 경지에 도달했고, 무공을 완성했다.
“으하하하하!”
입신지경의 경지.
물론 중원에 숱하게 많은 것이 바로 입신지경의 고수였다.
소림과 무당을 비롯한 구파일방.
남궁과 팽가를 비롯한 세가 연합.
그리고 그 이외의 세력들을 대표하는 고수들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철무룡은 자신이 있었다.
혈천신교의 비기로 인해 육신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단전엔 끝을 모를 정도로 방대한 내공이 가득 차 있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순식간에 재생되었으며 피를 한 바가지 쏟아도 끄떡없을 정도의 몸을 얻었다.
완성에 이르렀다고 느낀 철무룡은 비동을 박차고 나갔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아무리 혼돈이라도 경시하지 못하리라. 물론 무슨 사이한 주술로 금제를 걸어놨을지 모르기에 일단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라줄 생각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자신이 신마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철무룡은 비동을 나왔고, 이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와 마주했다.
“신교에서 보낸 사자인가.”
풍기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최소 자신과 비슷한 입신지경의 고수. 신교의 절대자가 될 자신을 맞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선이었다.
“혼돈에게 안내하여라.”
철무룡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거만하게 턱 끝으로 가리키자, 남자는 피식 웃으며 손에 든 서찰을 바라보았다.
“철무룡. 혈천신교 본단 이급 무사. 맞나?”
“…하하.”
“사도맹주 방계 출신이로군. 나도 그쪽에 아는 이가 있지. 무정검 철위령과 권왕 철대환은 아는가? 아, 비동에 갇혀 있었으니 권왕 쪽은 모르겠군.”
철무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철씨 성과 사도맹 방계의 혈통을 거론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금기와 같았다.
아니, 오히려 잘 되었다.
입신지경에 들어 마성(魔性)이 가라앉았다곤 하나 아직 피를 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옅게 남아 있었다.
새로이 출도 기념으로 녀석의 피로 이 갈증을 씻어내면 더없이 좋은 출발일 듯싶었다.
“무정검 철위령. 녀석은 사도칠패의 반란을 제압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방계 세력인 우리까지 쳐내버렸지. 그가 지인이라고? 잘 되었구나. 네놈의 사지를 찢어 복수를 위한 단초를 마련해야겠다.”
쿠구구궁─.
철무룡의 주위로 항거할 수 없는 기세가 피어올랐다.
“네놈도 입신지경 나부랭이니 내 기세를 끄트머리나마 가늠할 수 있겠지. 어디 한 번 힘껏 발버둥쳐 보려무나.”
“…하핫.”
주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2년.
신마와 혼돈이 죽고 전쟁이 끝난 지 이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의 잔재는 아직 중원 곳곳에 남아 있던바. 혈천신교 입장에선 수십 년 동안이나 준비한 대계였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대다수는 별 볼 일 없는 수준으로 사신문의 고수들 선에서 처리할 수 있으나, 혈마인(血魔人)이라 불리는 부류가 문제였다.
그들은 신마(神魔)의 예비 몸을 위한 산 제물. 온갖 약품과 기술로 점칠 되어 금강불괴와 도검불침은 기본이었고, 신마의 무공을 익혀 어지간한 고수는 가벼이 찢어버릴 수 있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섣불리 접근할 수 없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바. 사신문은 주호를 비롯한 입신지경의 고수를 필두로 하나씩 혈마인들을 제거해나갔다.
그리고 오늘로 그는 마지막 남은 혈마인과 마주하고 있었다.
“혈천신교는 무너졌다.”
“…뭐라?”
“신마와 혼돈을 비롯해 수많은 고수가 죽었다. 물론 중원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죽었지만, 우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중원은 서로 합심해 피폐해진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고자 손을 잡았다.
작금에 이르러선 새로이 무림 맹주로 취임한 검제 남궁한을 중심으로 전 무림이 활발한 활기를 띠고 있는 판국이었다.
“…….”
철무룡은 본능적으로 주호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신마와 혼돈이 죽고, 혈천신교가 무너졌다니.
“오히려 좋구나.”
철무룡은 활짝 웃었다.
혈천신교가 무너졌다면 자신의 목표를 중원의 지존으로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강함이 있었다.
“좋은 날이다. 목숨을 취하진 않으마. 대신 사지를 짓뭉개 무정검 그놈에게 함께 가자꾸나.”
핏빛 혈기가 일렁거리며 바닥을 때리자 대지 가운데 깊은 흔적이 남았다.
주호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 앞에 선 하룻강아지를 바라보았다.
“분노를 지우고 화를 가라앉혀라. 만일 네가 무공을 폐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노라면 나는 너를 해하지 않겠다.”
주호는 진심을 담아 그리 말했다.
그 역시 3년이란 세월을 비동 안에서 지냈으니 철무룡의 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인고의 세월을 보상받고 싶은 것이리라. 마침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으니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터.
그렇기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리 말했으나, 되돌아오는 것은 세상을 뒤덮을 듯 쏟아져 내리는 살기의 폭풍이었다.
쉬아아악!
깊은 산맥의 어느 골짜기.
혈우(血雨)가 장대비처럼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울창하게 이뤄진 산세가 무참히 무너져 내리며 순식간에 지형이 뒤바뀌었다.
“…이런, 손속이 너무 과했구나.”
가볍게 손을 털어 먼지를 씻어낸 철무룡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다못해 그 육신의 편린은 남기고 싶었지만, 일순간 분노로 이성을 잃어 무심코 힘이 더 들어갔다.
“자초한 일이니, 원망하지 말도록 하여…….”
하지만 그 가운데 서 있던 주호는 너무나 멀끔한 모습이었다.
망가진 것은 그 주위의 환경뿐, 옷가지 위에 먼지 한 톨도 묻지 않았다.
“허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철무룡이 인상을 찌푸렸다.
“맥없이 당하진 않겠다, 이건가. 좋다.”
웅웅웅.
핏빛 고리가 그 손안에서 울음을 토해내며 이 격째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주호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신마가 누구에게 쓰러졌는지 아느냐.”
주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눈부신 빛이 휘몰아치며 한 자루의 검을 만들어냈다.
의지와 마음에 재단해낸 신검(神劍)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검을 만들어내다니.
눈 뜨고도 믿지 못할 광경에 철무룡의 움직임이 멎었다.
저건, 저건 대체 무슨 경지인가.
“불쌍한 마음을 품어 동정을 베풀었지만, 너희 족속은 항상 같구나.”
“자, 잠깐…!”
주호는 혈마인을 만났을 때마다 항상 이처럼 자비를 베풀었다.
그 힘을 포기하고 마성을 봉인한다면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겠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 눈앞의 작은 이득을 위해 큰 것을 잃는 예정된 절차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나는!”
쉬아아악!
찬란한 빛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윽고 그 눈부심이 가라앉았을 때, 세상 가운데 서 있던 것은 주호 혼자뿐이었다.
탁탁.
가볍게 손을 털어내 철무룡의 죽음을 추모한 주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완연한 봄의 계절.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다. 잠시간 그 여운을 즐기던 주호는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쇄도해오는 기척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 대협-!”
천공검 신창원이었다.
요 이 년 사이 입신지경의 경지에 오른 그가 어째서인지 숨까지 헐떡여가며 날아오듯 하늘을 달려 단숨에 주호 앞까지 쇄도했다.
“신 대협. 오랜만이로군. 문파를 세웠다지? 이름이 천무문이었나.”
“맞소. 아니,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식은땀을 흘리던 그는 이마에 흘러내리던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혼례식이 직전인데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시는 거요!”
“혼례식? 누구의?”
“주 대협 말이오! 주 대협! 지금 천 소저와 남궁 소저는 준비를 끝내고 식을 기다리고 있소!”
“무슨…….”
그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주호는 잠시 날짜를 헤아리다가 창백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런.”
적어도 하루 이전에 돌아갈 예정을 짜두었지만, 철무룡이 있는 곳을 찾느라 산세를 헤맨 탓에 계산을 실수한 듯했다.
“두 입신지경 고수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겠소? 나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울부짖을 것이오! 그러니 뒤처리는 내게 맡기시고 빨리 돌아가시오.”
“부탁하지.”
주호의 신형이 신마와 싸웠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땅을 박찼다.
***
“여기, 여기네!”
철대환은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자, 옆에 앉아 있던 당천유와 악비산이 시선을 보냈다.
“아이고, 공사다망하신 천마신교의 차기 교주께서 친히 행차하시다니. 이거 영광이로군.”
“오랜만이로군, 천강.”
위천강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에 씩 웃으며 그 앞에 앉았다.
현재 그들이 자리한 곳은 남궁세가의 본가.
신임 가주의 취임과 동시에 합동 혼례가 이루어질 예정이었기에 온갖 인사들로 우글거리는 와중이었다.
“어떻게 다들 잘 지냈나. 같은 오왕일마로 묶여도 얼굴 보기가 여간 어려워야지.”
“우리끼린 자주 봤네.”
“…거, 나 혼자 신교라고 따돌리는 건 너무한데.”
천후의 말에 위천강은 샐쭉한 표정으로 서운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당천유는 낄낄거리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이 기회에 개도하세. 차기 천마 정도 되는 이가 오겠다고 하면 다들 쌍수를 들고 반길걸?”
“쌍수가 아니라 내 목을 반기겠지. 그리고 자꾸 까불면 또 전쟁 일으키는 수가 있네.”
신교 전체와 함께 중원에 닥쳐올 것이라며 섬뜩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당천유는 코웃음을 치며 어림없다는 듯 자신의 옆구리를 툭 쳤다.
“교도들이랑 같이 내 만천화우를 맛보고 싶으면 그러하게. 그리고 교관님이 계시는데 할 수 있겠는가.”
“…끙.”
괜히 겁박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위천강은 쓴웃음을 지었다.
요 이 년 사이 수련에 집중해 입신지경에 올라 천마신공을 완성했지만, 주호의 발끝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격차가 벌어지는 것 같기에 자괴감이 들었다.
즉, 주호가 있는 동안 중원 제패는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는가. 다른 이들은 다 하루 이틀 전에 도착해있었거늘. 교의 일이 그리 바쁘나?”
“아, 이것 때문이었네.”
위천강은 깜빡했다는 듯 주섬주섬 무언가를 품에서 꺼냈다.
탁자 위에 올린 것은 꺾인 나뭇가지.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위천강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친구의 묘에 자란 나무에서 꺾어온 것이네.”
“…이거 참, 부끄러워지는군.”
당천유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비슷한 얼굴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몇 년 전 떠난 이를 추억했다.
“살짝 어울리지는 않아. 천마쯤 되면 마도에서도 감성이 넘치는가.”
“아직 예비 아닌가. 교주 자리에 오르면 이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이 되는 거지.”
“잘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놀려먹어야겠군.”
모두가 툭툭 한 마디씩 내뱉었다.
위천강은 실소를 머금었고, 꺼내 나뭇가지를 자신의 앞섬에 꽂았다.
“이러면 이 친구도 잘 볼 수 있겠지.”
“혼례가 끝나면 다 같이 그 친구 묘에 인사라도 가세.”
“…난 이번엔 사양하겠네.”
“어째서? 이미 한 번 갔다고 빼는 건가.”
위천강이 살짝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젓자, 당천유가 히죽 웃으며 놀렸다.
“아니, 싸움이 날 뻔했거든. 아무렴 화신의 신룡과 본교의 소교주가 친우였다는 걸 믿기는 힘든 이야기겠지.”
“…그런데 이건 어떻게 꺾어왔나?”
“월담했지. 화산의 벽이 아무리 높아도 내 발걸음을 막을 수 있겠는가.”
“하하, 자네다운 이야기….”
쿵.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물 안쪽에서 강력한 기파가 터져 나왔다.
입신지경의 고수가 뿜어낸 듯한 압력. 그것에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방금 이건?”
“남궁 소저 같군. 교관님의 부재라도 알아차린 것이 아니겠는가.”
“하긴.”
남궁연은 신마와의 싸움 여파로 큰 상처를 입었다.
검은 비단 같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셀 정도로 심지에 큰 충격을 받았고, 당당하던 성격마저 살짝 비틀릴 정도로 천진난만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남궁연은 남궁연이었기에 모두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었던바. 하지만 주호에 관련된 일이라면 기이할 정도로 보이는 집착엔 모두가 살짝 질려 할 정도였다.
“…그 사람이 아직 안 왔다고?”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안쪽에서 싸늘한 얼굴로 말하고 있던 것은 천우희였다.
곧 있을 예식을 위해 주작을 상징하는 화려한 붉은색 예복을 입고 있던 그녀는 아직 주호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역정을 토해냈다.
“내가 수십 번은 누누이 말했을 텐데. 혈마인 잡으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오늘 하루는 이곳에 머물면서 손님도 맞이하고 혼례식을 준비하라고.”
“…그것이.”
하월벽의 뒤를 이어 사신문을 이끌게 된 젊은 문주 하월량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앞에 기립했다.
자신 역시 분명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 본인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어찌하는가.
“언니, 참아요. 홑몸도 아닌데. 그리고 그러다가 하문주 질식해서 기절하겠어.”
“…문주, 미안해요. 그래도 이해하죠?”
“하하, 당연합니다. 생에 한 번 있을 혼례식인데, 청룡도 무심하시지.”
“일단 다 이 잡듯이 뒤져서 찾는 게 먼저겠네요.”
천우희는 직접 주호를 찾으러 갈 요량인 듯 외투를 걸쳤다.
하지만 그녀와 마치 남궁을 상징하는 푸른 경장을 걸치고 있던 남궁연이 그녀를 말리며 한쪽에 기대 세워있던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제가 두들겨 패서라도 데리고 올게요.”
웅웅.
검이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남궁연은 그 위를 밟으며 올라섰고,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 자세를 취한바. 하월량으로는 꿈에도 꾸지 못할 어검비행의 경지였지만, 그는 간절한 얼굴로 그 앞을 가로막았다.
“곳곳에 사람을 풀어 열심히 찾고 있으니 곧 오실 겁니다! 그러니까….”
파아앗-!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찬 돌풍이 그들 사이를 헤집었다.
하월량은 남궁연이 자신의 간곡한 부탁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며시 뜬 눈 사이로 들어온 커다란 등에 작게 탄성을 토해냈다.
“하문주가 고생이군. 둘 다 미안하다. 날짜를 헷갈려버렸어.”
주호가 멋쩍은 듯한 모습으로 좌중에 등장했다.
“…가가!”
그와 동시에 당장이라도 주호를 패 죽일 듯한 기세를 내뿜었던 천우희와 남궁연의 얼굴로 꽃이 활짝 피어났다.
누구랄 것 없이 달려들어 주호의 널찍한 품에 안겼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남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끄응.”
하월량은 그 모습을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전까지는 죽일 듯 날카롭게 굴었으면서 정작 당사자가 나타나자 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리다니.
그 이중적인 면모에는 그저 혀만 내둘러질 뿐이었다.
“하하.”
주호는 두 여인을 힘껏 끌어안고는 손을 잡아주며 하월량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그는 식장의 문을 열며 외쳤다.
“경사스러운 날, 새로이 맺어질 인연들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내빈께서는 모두 환호와 박수로 맞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월량의 말대로 박수와 갈채가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모두의 축복과 부러움 속에 세 남녀는 나란히 손을 잡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검신귀환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