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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296화 (296/300)

#296화

신마는 피를 토하며 말하면서도 핏발 선 눈으로 다시금 미증유의 마기를 피워올렸다.

이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그 하나뿐. 마지막 장애물을 치워버린다면 이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

“…대체.”

주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몇 번이나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반복해야 하는가.

그 귀기 어린 모습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이때까지 그렇게 수많은 고수와 싸우고서도 저런 힘이 남아 있다니. 사실 고금제일인은 신마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렇다면 그 신마를 아이처럼 가볍게 다룬 무황은 도대체 얼마나 강했다는 것이며 그런 무황의 무공을 계승한 자신은 어째서 그 터럭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가.

콰아아앙─!

수많은 상념이 뒤섞인 그 사이로 주호와 신마가 충돌하며 막대한 충격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마치 수십 관의 벽력탄을 일시에 터트린 듯 시뻘건 불꽃과 폭발이 주위를 잡아먹은 것은 덤이었다.

그 치열한 격전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올려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제발.”

천우희는 하월벽과 현무의 주검을 부여잡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가족도 없이 홀로 자란 그녀에게 있어서 그 둘은 부친과도 같은 사람들. 절대 이리 쉬이 보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내가,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하다못해 그 사람 옆에서, 한 손을 보탤, 수 있었더라면…….”

피 웅덩이 가운데 천우희는 다시금 피를 토해내며 절규했다.

절맥에서 회복한 뒤 그렇게 뼈를 깎아가며 열심히 수련했지만, 결국 입신지경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 인과에 관한 결과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들의 온도에 천우희의 마음은 참혹하게 부서져 갔다.

“…대체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백호 양인철은 창백한 안색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큰 내상을 입은 채 패퇴했다가 겨우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만 회복한 그는 두 눈을 감은 친우들의 모습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을 함께한 이들이었다.

태어난 날은 각기 달랐지만, 적어도 한날한시에 은퇴해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 함께 죽기로 맹세했거늘. 자신만 덩그러니 놓아둔 채 먼저 떠나버린 그들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적도 우리도 다를 것이 없구나. 대체 누가 악이고 선이냔 말이냐.”

고개를 들어 혈천신교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신마가 보이는 폭주와 무서운 신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환호성 하나 없었다.

그저 그 압도적인 힘 앞에 두려워하며 몸을 숙인 채 세상을 휩쓴 재해가 자신을 지나쳐 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적어도 끝까지 지켜보자꾸나. 적어도 우리에게 그럴 권한은 있으니 말이다.”

나지막하게 내뱉어진 백호의 목소리가 천우희의 흐느낌과 함께 전장 위로 흩어졌다.

***

개벽(開闢)은 신마를 베어내는 데 실패했다.

초식이 모자란 것이 아니었다.

부족한 것은 숙련도. 검을 펼치는 순간 주호는 그 너머에 있는 완성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 개벽을 다시 펼칠 수 있다면 그것에 도달할 수 있으이라는 자신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쿨럭.”

하지만 그와 반대로 쏟아지는 피가 몸을 무겁게 했다.

주호는 날카롭게 치뜬 눈으로 신마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넝마와 된 것 같이 그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이때껏 신선처럼 수려했던 기품은 사정없이 망가졌고, 그 가슴팍에 사선으로 기다란 상처가 생겨 시뻘건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검은.”

신마는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뗐다.

“위험한 검이다. 겨눠진 대상뿐이 아니라 그 주인까지 갉아먹을 터.”

“질 것 같으니까 별생각이 다 드는가 보군.”

이진한이 입가를 비틀며 이죽거리자, 신마는 두 눈을 날카롭게 떴다.

“어리석은.”

가슴에 난 상처의 출혈이 점점 멎어간다. 기운이 많이 쇠한 것인지 이전처럼 단숨에 회복하지 못했지만, 점차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더는 네 오만을 좌시하지 않겠다.”

퉁.

신마는 처음으로 땅을 박차며 주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역시 이제 더는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 힘들다 느꼈는지 검 끝으로 날 서린 의지가 느껴졌다.

“급하긴 한가 보군.”

주호 역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승부를 보고 싶었지만, 개벽은 그가 만든 네 개의 초식 중 가장 많은 내공을 잡아먹었다.

남은 마정이 녹기 전까지는 어떻게 시간을 벌어야 하는바. 그렇다고 피해 다니다가 신마가 다른 이들에게 눈을 돌리기라도 한다면 또 누군가 피를 볼 테니 최대한 그의 발을 묶어놓아야 했다.

츠즈즈즈-!

삭풍을 타고 핏빛 기류가 휘몰아쳤다.

이전이었더라면 감히 맞상대하지 못한 채 물러났을 그런 압력. 하지만 주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그들이 준 기회를 헛되이 날릴 순 없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만들어준 길인가.

진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신마의 혈기(血氣)가 아닌 자신이 걸어온 자취에서 풍겨 나오는 것이었다.

주호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초식과 틀 안을 따라 휘둘러지던 검이, 이내 규칙을 부수고 야수의 발톱처럼 투박했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검.

검식이라 부르기에도 조악한 것이었지만, 그것들은 하나하나 착실히 신마의 몸에 상흔을 늘려가고 있었다.

쉬아아악!

한 치의 밀림 없는 승부 가운데 먼저 승부수를 띄운 것은 신마 쪽이었다.

지상과 수평으로 기다랗게 휘둘러진 검 끝으로 핏빛 강기가 휘몰아쳤다.

주호는 그것을 피해내려 했지만, 그 궤적은 뒤쪽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만일 피한다면 반응하지 못한 그들은 순식간에 그것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말 것이었다.

쿵.

주호는 각오를 다지고 강하게 진각을 내디뎠다.

신마와 같이 지금이야말로 승부수를 띄워야 할 순간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때마침 마정이 전부 녹아 그의 단전으로 흡수되었고, 혼원일극신공이 극성으로 운용되며 절정에 달한 잿빛 기운을 끌어올렸다.

사 초식 개벽(開闢)

저저저적─!

그가 만든 네 개의 초식은 모두 필요한 순간에 의해 필요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가장 빠른 검이 필요해 일섬(一閃)이 휘둘러졌다.

가장 멀리 가는 검이 필요해 유성(流星)이 흘렀고, 가장 강한 검이 필요해 나찰(羅刹)이 존재했다.

개벽(開闢)은 절망을 딛고 일어설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베어낼 검.

검의 궤적이 그 너머로 엿본 완성의 경지를 따라 완벽하게 휘둘러졌다.

부족한 것은, 없다. 주호는 자신의 검이 신마를 벨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파아아앗─!

찬란한 빛이 구시대의 망령과 새로운 시대의 구도자 사이에 터져 나왔다.

“오만하구나. 감히 무황조차 본좌 앞에서 같은 초식을 두 번이나 사용한 적이 없었다.”

“……!”

돌연 귓가를 스치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주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를 악물며 자신의 영혼을 불살라 검을 휘둘렀고, 베어냈다.

검 끝이 살을 파헤치며 뼈를 갈라내는 감각. 그 반동으로 검이 부서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한 번으로 끝낸다.’

그 직후 막대한 충격이 전신에 부닥친다. 높은 곳에서 수면으로 떨어져 내린 듯 폐부가 꽉 조이며 시야가 암전되는 그런 현상이 함께했다.

“…윽.”

찰나 의식을 잃었던 주호가 깨어났을 때 자신이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들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목구멍에서부터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철썩.

시커먼 핏덩이가 얼어붙은 땅에 토해졌다.

내상으로 인한 사혈(死血)을 비롯해 조각난 장기 쪼가리들이 즐비했다.

어느 의원이 보았더라도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라며 호통을 쳤으리라.

하지만 주호는 한 번 더 피를 게워내고는 거뭇거뭇해진 눈가로 고개를 들며 신마를 바라보았다.

“…인정하마. 네놈은 무황의 제자를 칭할 자격이 있다. 허나, 혈천의 업은 막지 못하겠구나.”

신마(神魔).

그는 두 다리를 땅에 굳건히 붙인 채 서 있는 상태로 오만한 시선과 함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 위 역시 주호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검을 쥐고 있던 오른팔은 무참히 잘려 나가 파편이 되어 흩어졌고, 코 밑으로 얼굴 가죽을 베여 찢긴 살이 피와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마의 기운은 아직 건재했다.

“끄으윽.”

주호는 신음을 토해내며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켰다.

신마는 잠시간 그를 바라보다가 살점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검을 주워들었다.

“그래도 너는 그 위선자들보다 낫구나. 네놈을 앞서 간 수많은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내 앞에서 죽음을 택했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지. 그런 의미로 내 친히 네 목을 베어주겠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신마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였다.

오른팔은 움직이지만, 신경을 다친 것인지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땅을 때리며 다리를 재촉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몸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뭔가, 뭔가 방법이.’

신마도 한계에 다다랐다.

단 일 검. 일 검을 휘두를 힘만 있노라면 목을 베어낼 수 있을 터. 어차피 죽을 거라면 동귀어진이 나았다.

주호는 미친 듯이 눈을 굴렸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태창마저 뒤적거렸고, 이내 싸움 중간에 떠올랐던 듯한 쌓인 글귀들을 볼 수 있었다.

[마정의 흡수를 완료했습니다.]

[개체명 「신마」 정보 분석 완료]

[특수 시퀀스를 하겠습니까?]

특수 시퀀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으나,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주호가 떨리는 왼손으로 그것을 툭 누르자, 이내 그 앞으로 몇 개의 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신마」 100%]

[개벽(開闢)의 초식 공략 가능]

[문제점 一. 부족한 부분은 혼원일극신공의 완성도. 적해가 소실된 탓에 마정으로 보충했지만, 그럼에도 균형이 맞지 않아 결정타를 가하지 못함.]

[문제점 二. 상태창의 리소스 데이터가 막대해 다음 경지로 가는 가능성의 걸음을 막고 있음.]

[해결책 一. 상태창의 삭제.]

[실행하시겠습니까?]

“…….”

우수수 쏟아진 글귀들에 주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상태창은 무황이 내려준 신물.

그것을 삭제함으로서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손끝으로 망설임이 서렸다.

이때까지 상태창이 없었더라면 아니, 애초에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터.

푸른 글귀가 동공에 맺혀 아른거렸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하지만 더 고민을 이어나가기에 신마의 검은 너무나도 가까이에 이르렀다.

쉬이이익─!

차디찬 검날이 삭풍을 베어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죽음의 끝, 주호는 두 눈을 꽉 감은 채 처절한 심정으로 상태창을 눌렀다.

[상태창의 삭제를 시작합니다.]

[모든 보정 효과가 사라집니다.]

[모든 데이터가 사라집니다.]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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