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천마신공을 익히지 않았다?”
천마 위태무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혼원일극신공은 정도(正道)의 청룡신공과 마도(魔道)의 천마신공을 합쳐 만들어진 신공.
그 주축의 반절을 담당하는 천마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대체 마도의 힘은 무엇으로 충당했다는 것인가.
“예.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몸에 신마의 반절이 깃들어있다고. 그걸 역천(逆天)의 흐름으로 운용했을 뿐입니다.”
“역천이라는 것은 청룡신공의 반대를 뜻하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천마 위태무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청룡신공의 구결이 되새겨진다. 혼원일극신공의 창안에 지대한 지분을 끼친 그였기에 당연히 청룡신공의 구결 역시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 후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이할.”
“…예?”
“천마신공이 아닌 다른 마공으로 혼원일극신공을 운용했을 때의 효율이다. 네놈이 지금까지 고작 이할의 청룡신공으로 싸워왔다는 소리지.”
“이할이라니…….”
주호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이할로 검신(劍神)이란 별호를 손에 거머쥐었다. 그것이 십할 전력으로 바뀐다면 대체 무엇이 된단 말인가.
“작금 강호의 수준을 알법하다. 하지만 그 신마라는 구시대의 망령에게는 통용되지 않겠지.”
“…맞습니다. 신마에게는 제 힘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습니다.”
전력을 다한 일 검으로도 그 손에 얕은 생채기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만일 그때 십할의 전력을 때려 박을 수 있었다면, 죽지 말아야 할 이들이 죽지 않게 되었을 터.
“애초에 천마신공을 운용할 것으로 발안 된 무공이다. 당연한 일이겠지. 뭐, 녀석 나름대로 배려를 해준 것이 아닌가 싶군. 본교의 절학이니 죽기 싫으면 절대 유출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습니까.”
흘깃 주호의 표정을 본 천마 위태무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주호의 눈가에 서린 어둠이 죽은 이에 대한 미련임을 읽은 것이었다. 찰나 갈등하던 그는 한숨을 내쉬곤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슈우욱.
그와 동시에 세상이 뒤바뀐다. 황폐한 대지는 다시 별천지의 정원으로 바뀌었고, 수라가 강림한 것 같았던 천마 위태무의 모습도 다시 인자한 노인의 그것으로 되돌아왔다.
“이 앞에 정좌하고 앉아라. 참나, 본좌가 신교의 무공을 두 번이나 유출하게 될 줄은. 역대 천마들이 알면 경을 치겠군.”
“…괜찮으시겠습니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리고 힘이 부족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과거는 네놈만의 전유물이 아니니.”
천마의 눈 위로 아련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늘이 내린 악(惡)이라 하지만, 그에게도 인간이었을 적의 추억이 있었고 기억이 있었다.
주호는 그 배려에 고개를 끄덕이곤 잠시간 회상에 빠져 있던 그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째 천마라는 이름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십니다.”
“시끄럽다. 천마신공의 구결을 전수해줄 테니 입 다물고 당장 가부좌나 틀 거라.”
주호가 준비를 끝내자 천마는 담담히 천마신공의 구결을 읊었다. 신공에 다다르는 절학인지라 청룡신공과 비교해 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압도하는 것이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무공이었다.
천마 위태무는 구결을 전수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내공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자신만의 비법과 깨달음, 그리고 입신지경에 이른 심득까지 모조리 전수해주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주호는 그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어미 새처럼 천마 위태무가 던져주는 모든 것들을 미친 듯이 흡수했을 뿐이었다.
‘방대하다.’
천하제일인의 정수.
그 모든 것은 ‘주호’라는 존재의 개념을 뛰어넘는 양이었다.
주호는 적해(赤海)의 기운으로 천마신공의 구결을 따라 운기하는 동안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시험이었다.
주호가, 이 시대의 검신(劍神)이.
무황이 남긴 유산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
대해처럼 방대한 정보의 방류 가운데 옥석을 가려내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야 했다.
[천마신공을 습득했습니다.]
다만, 천마 위태무리 할지라도 상태창의 효능은 예상치 못했다.
그는 주호에게 상태창에 대에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무슨 주술의 개념으로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그런 기물이 주인에게만 보이는 형태로 현실에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상태창은 천마 위태무가 쏟아낸 모든 것들을 여과해 주호에게 도움이 될 법한 것들만을 내어놓았다.
[천마신공 일성에 도달했습니다.]
[천마신공 이성에 도달했습니다.]
[천마신공…….]
주호의 몸으로 짙은 기류가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그것은 마치 뱀처럼 전신을 휘감으며 똬리를 틀었고, 백회의 위로 몰려들어 수라와 나찰의 형상을 한 악귀의 형태를 이뤄내었다.
“허허.”
그 광경을 목도한 천마 위태무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무황이 후학 양성은 기막히게 해놓은 듯싶었다.
가상의 세계에서 무의식에 빠져든 것이 사흘째. 또 한 명의 수라가 이 땅 위에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가.’
무공은 익히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그 성향이 갈린다. 설사 천마 위태무가 모든 심득을 그에게 던진다고 하여도 그것만으로는 완성에 다다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그 무공이 천마신공 같은 절학이라면 그 반향은 더욱 커지는바. 일정 경지 위에 올라섰다면 남이 전해준 심득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걸 의도했다.’
천마 위태무는 주호를 시험했다
그가 과연 무황의, 친우의 힘을 온전히 계승하기에 적법한 존재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도박은 훌륭히 성공했다.
파스스─.
외부로 뿜어졌던 마기가 다시 몸으로 흡수되어 제자리로 찾아간다. 규칙적이던 호흡의 시간이 짧아졌을 때, 사흘간 깊게 감겨 있었던 주호의 두 눈이 뜨였다.
[상태창]
이름: 주호
별호: 검신(劍神)
직업: 청룡, 정천학관 일급교관
나이: 스물여덟
소속: 사신문, 정천학관
경지: 화경(九/十)
무공: 청룡신공(九成), 천마신공(九成)
무공과 경지 모두 극에 달했다.
이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한계를 넘어선다면 신마와 아니, 무황과 같은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듯싶구나.”
“시험은 통과입니까?”
“통과라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천마 위태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생전 따로 제자를 두지 않았다.
정말로 강자존을 기준으로 세웠고, 그 제일 앞에 서 있던 이를 자신의 후계로 삼았을 뿐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준 주호의 존재는 친우의 계승자라는 것과 더불어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딱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해보아라.”
주호는 진지한 눈빛으로 천마 위태무를 바라보았다.
“저는 마(魔)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서로 일맥상통한다 여겼습니다. 이것은 틀린 것입니까?”
“틀리진 않지만, 정확한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네 생각은 너무 한정적이다. 마(魔)라는 개념은 좀 더 포괄적이지. 단순히 악이란 것에 국한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魔)는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천마 위태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찌 마음에 드는 질문만 골라서 하는지.
“마(魔)는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감정, 말입니까.”
“인간의 감정 중 가장 큰 힘을 지닌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주호는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감정. 천마신교, 천마, 마. 대충 그러한 인식으로 보아 나올 수 있는 대답은 뻔했다.
“…살의? 분노? 그런 것입니까?”
“틀렸다. 그중 제일은 사랑이다.”
“음.”
주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 위태무가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묻자, 그는 머쓱한 미소로 뺨을 긁으며 답했다.
“천마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라서 말입니다.”
“예끼 이놈아. 역대 최고이자 최강의 천마라 불리는 본좌의 이론이다. 귓구멍 파고 똑똑히 듣도록 하여라.”
사람의 모든 감정은 애정에서, 사랑에서 비롯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마찬가지다. 사랑이 있어야 그 가운데 새로운 감정이 파생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만큼 당연히 그 반대의 반향도 클 수밖에 없지. 흔히들 애증(愛憎)이라 하지 않는가. 본좌가 생각하기에 태초의 마(魔)는 그것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은가 싶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군요.”
“생각할 필요가 없던 것이겠지. 무학이라고 할 것도 아니고, 깊게 파고들 만한 것도 아니니. 특히 마도를 천편일률적인 악으로만 보는 정파 놈들의 경우는 더하겠지.”
“하하하.”
“그리고 그 틀을 깨부수고 한계를 넘어선 이들이 본좌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천마 위태무는 고개를 들어 주호를 바라보았다.
“네놈 역시 마찬가지다. 본좌는 최소 달포를 예상했지만, 며칠 만에 천마신공의 대성을 눈앞에 두다니.”
“방금 그 말씀으로 대성에 대한 갈피도 잡았습니다.”
“에잉, 쯧. 무황의 계승자가 아니라 본교의 후계로 어울릴 뻔했군.”
“물려주신 심득은 기억해놓았다가 당대 천마에게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네 제자 중 한 명에게 말이냐.”
“예. 역대 제일 천마의 것이니 큰 도움이 되겠지요.”
“흠.”
천마 위태무는 나름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신공을 가르쳐주고 자신의 심득을 전해준 것으로는 부족한 값이었지만, 어차피 주호 이외에는 외부와 소통할 창구가 없으니 이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싶었다.
“이제 그것으로 혼원일극신공을 운용할 수 있겠느냐.”
“…해보겠습니다.”
적해의 기운이 천마신공의 구결을 따라 움직인다. 핏빛 혈류 위로 시커먼 마기가 달라붙어 검붉은색을 이뤘고, 더없이 패도적인 기세를 띠기 시작했다.
[혼원일극신공을 운용합니다.]
곧 그와 반대로 청룡신공이 일어나 청명한 기운을 내뿜으며 조화를 이루니, 이전보다 더 자연지기에 한없이 가까운 중도(中道)가 성립되었다.
‘아직 부족하다.’
천마 위태무는 무황이 발한 혼원일극신공이 자연지기 그 자체의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기운은 극한에 가까울 뿐이지 그것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봐줄 만하구나.”
천마 위태무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막중한 기세를 발하는 주호에게서 과거 친우의 모습을 찾아본 것이었다.
“그러면 다시 덤벼보아라.”
“…이전처럼 맥없이 당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룻강아지가 큰소리치기는.”
천마 위태무는 주호를 향해 손끝을 까닥였다.
다시금 천지간에 끝없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
중원 연합.
정도의 무림맹.
사도의 사도맹.
마도의 천마신교.
그 세 세력의 수장과 간부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깊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슬슬 기한이 다가오고 있소.”
신승의 말에 그들은 회의장 탁자 한가운데 놓인 서신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혈천신교는 사절을 통해 시뻘건 통첩장을 보내왔다.
모두의 예상처럼 항복이나 후퇴를 종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통첩장의 내용인즉, 서로 인원을 뽑아 강호의 명운을 가리는 차륜전을 치르자는 제안이었다.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더 없이 좋은 제안입니다. 허나 문제는…….”
무림맹의 군사이자 연합군의 총군사 직을 맡은 제갈경이 말끝을 흐렸다.
통첩장의 사실여부는 둘째치고, 만일 차륜전을 치르게 된다면 그 괴물 같은 신마(神魔)를 누가 상대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정도 무림은 검선 단철량, 검제 남궁한, 매화검존 선청우, 그리고 검신 주호까지 나섰음에도 그를 꺾지 못했다.
사도맹은 맹주인 철혈패검(鐵血霸劍) 철무악이 혈천신교가 천마신교의 손을 빌려 개발한 천망독에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바. 서로 손을 잡은 직후 치료제를 건네받아 조치했지만, 이미 오랜 세월 피폐해진 육체는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천마신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대 천마도 사도맹주처럼 천망독에 중독되어 은거에 들어갔다.
소교주인 위천강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으나, 천마라는 이름에 비하면 그 성취는 턱없이 낮았다.
현재 마도 제일 고수는 장로원주인 마검(魔劍). 하지만 그의 무공은 검제 남궁한이나 매화검선 선청우에 비해 크게 우위를 지니고 있지 않았으니 신마와 싸운다고 할지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
모두의 시선이 연합군 상석 가운데 앉은 신승에게로 몰렸다.
결국 작금 무림에 신마를 상대할만한 고수는 소림의 지존인 그밖에 없는바. 잠자코 두 눈을 감고 있던 신승은 천천히 눈을 뜨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사도맹과 천마신교가 저쪽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면.”
좌중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더없이 웅혼한 항마의 기운이 휘몰아치며 막대한 기세를 내뿜었다.
“부족한 몸이나마 본승이 신마와 대적하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