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269화 (269/300)

#269화

검제 남궁한

매화검성 선청우

검신 주호

독패 당정학

천공검 신창원

철혈도 천후

창절 악비산

창천검 남궁연

매화검협 선우연

혈접 당천유

패력권 철대환

“…해당 인원들을 혈천 신교와의 회담 참석자로 정하는 바이요.”

연합군 지휘 막사.

그 가운데로 메마른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담의 참석자가 되지 못해 질투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인원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상대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들.

최악의 경우엔 그곳이 사지가 될 수 있었다. 그래도 황실의 이름이 있으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을 터였지만, 강호의 일에 상식을 기대하는 것이 더 멍청한 짓이었다.

더러는 어째서 후기지수 일원이 회담 참석자의 일원으로 끼어 있는지 의문을 드러냈다.

그보다 적당한 고수들은 사방에 널려 있던바. 그들 모두 주호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기에 응당 나올 법한 질문이었다.

후기지수 일행은 그것에 가볍게 자신들의 기세를 발산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

초절정에 달하는 기운이 막사를 뒤덮었다. 마치 이 정도면 중원 무림을 대표하기에 충분하지 않냐고 말해오는 듯한 그 태도에 고수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이, 어찌.”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더니.”

“과연. 애초에 훌륭한 후기지수들이었다. 검신 대협의 밑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은 것이겠지.”

“강호에 이만한 축복이 있을꼬.”

덩달아 주호의 이름까지 거론되며 그의 공적이 다시 한번 칭송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회담의 참석자로 결정된 것은 세 명의 입신지경 고수와 여덟 명의 초절정 고수. 면면 하나하나가 강호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유사시를 대비해 다른 입신지경의 고수들을 비롯해 연합군의 본대가 감숙, 섬서, 호북 일대에서 곧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었다.

회담까지 남은 것은 몇 시진 남짓. 회의를 주관하고 있던 남궁한은 장내의 고수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황실의 개입으로 인해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소. 이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오.”

“존명.”

고수들은 각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화답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남궁한은 전쟁이 끝에 다다른 것 같다는 희망을 주면서도, 그들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럼, 다들 내일을 기다리세.”

남궁한은 회의를 파했다.

막사에 자리하던 고수들이 우후죽순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친우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선우연은 연거푸 마른세수하며 얼굴을 매만졌다.

“그리 긴장되었는가? 뭐, 사실 말하자면 나도 그렇네. 원래라면 그들 끄트머리에 닿는 것조차 힘겨웠을 수준이었을 테니.”

당천유가 피식 웃으며 선우연의 등을 툭 쳤다.

회의에 참여했던 고수들은 저마다 각지에서 쟁쟁한 위명을 지닌 이들이었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들은 감히 이런 자리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터. 그러니 새삼 긴장되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응? 아니, 아닐세.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잘도 그런 여유가 있군. 팔이 세 개가 될 뻔했으면서.”

“아직도 그 소린가.”

선우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왼팔을 돌렸다.

느낌만 보자면 다 나은 듯했다. 살은 전부 아물었고,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분간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또 상처를 입지 않는 이상 완치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터.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그냥, 교관님에게 구해지기 전 백내이와 싸우던 때를 회상하고 있었네.”

단숨에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고 뛰어올라 초절정 경지에 이르렀다.

남들은 사선을 통해 겪는 기연이라고 하겠지만, 당시 선우연이 느꼈던 감각은 조금 달랐다.

“고작 벽 하나를 허무는 정도로 끝날 것이 아니었어. 무언가 백회가 열리며 천지와 일맥상통하게 되는 그런 기분이었네.”

“…팔이 아니라 머리도 다친 것인가?”

“물어봐서 말해주었더니 그런 반응인가.”

선우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툴툴거리자, 당천유는 농담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교관님께 여쭤는 보았나?”

“쭉 바쁘신 것 같아서 말이네. 그리고 자네 말처럼 그냥 내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긴 하지. 나중에 좀 여유로워지게 되면 물어보세.”

후기지수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막사로 돌아갈 무렵, 주호는 남궁한, 당정학, 그리고 신창원과 함께 황실에서 온 사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이거 늦은 밤에 실례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 알려진 신야라는 환관이었다.

연합군의 회의가 막 끝난 직후 이곳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남궁한을 찾아온바. 원래는 내일 회담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따로 용무가 있는 듯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아니오, 중원 연합을 대표해 환영하는 바이오.”

남궁한은 연이은 회의로 피곤했지만, 그런 내색 없이 옅은 미소로 그를 맞아주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늦은 시각에 방문한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내일 있을 회담에 관련된 것인데…….”

신야는 그런 사정을 참작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고,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장내에 있던 이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혈천 신교가 황실과 접촉했다?”

“정확히는 환관들이지요. 저와 같이 혈천신교 측에도 월학이라는 녀석이 갔습니다. 듣자 하니 배가 터질 정도로 받아 처먹었다고 하더군요.”

“황제 폐하께서는 이 일을 어찌 생각하고 계시오?”

“폐하께서는 이 전쟁을 눈여겨보고 계시지만, 공식적으로 한 세력을 지지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건 황실 내외부 적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다만, 환관들의 입김이 제법 작용할 기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혈천 신교의 뇌물을 먹었다.”

“그렇지요. 저야 뭐 세외 마도나 사이비 놈들의 행실을 훤히 알고 있으니 가급적이면 정도 무림의 연합이 승리하길 바랄 뿐이지요.”

“감사한 말씀이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이 환관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혈천 신교가 환관들을 회유했다는 사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웠으나, 그 역시 저들의 끄나풀이 아니라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아, 검신 대협이로군요. 폐하께서도 눈여겨보고 계십니다. 전쟁이 끝난다면 언제 한번 궁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응당 가야겠지요.”

주호로서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을 따름이었다.

***

회담 당일이 되었다.

참석자들을 태운 마차는 이른 새벽부터 텅 빈 대지를 질주했고, 그 뒤를 따라 연합군의 호위대가 함께했다.

이윽고 중립 지대로 지정된 사천 지역에 접어들었다.

호위를 위해 동행했던 고수들은 약조에 따라 그곳에서 멈추어 섰다. 오직 주호를 비롯한 고수들을 태운 마차만이 적막한 땅 위를 지났을 뿐이었다.

“…여기로군.”

사천시 북부에 당목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 그 가운데 혈천 신교의 휘장이 걸린 한 객잔이 있었다.

안쪽엔 아무도 없지만, 그들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곧 회담장으로 준비된 장소에 도달했고 저마다 자리에 앉아 상대측이 오기를 기다렸다.

“…….”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저 멀리서부터 몇몇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입을 닫았고, 이내 계단을 오르며 모습을 드러낸 이들을 바라보았다.

제일 선두에 있던 것은 혼돈을 위시한 사흉수였다. 그 뒤에 있던 궁기와는 몇 번이고 싸운 질긴 악연이었고, 도올은 천마신교에서 한쪽 팔을 베어버린 전적이 있었다.

분명 베어버린 팔은 불태워 없앴을진대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인지 감쪽같이 회복한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 나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가 도철일 터.

‘혼돈이 제일 강하고, 궁기와 도올 순서인가.’

도철은 민머리의 빼빼 마른 사내였다. 특이하게 기세가 읽히지 않았고, 상태창에도 별다른 정보가 쓰여 있지 않아 가늠하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 뒤로는 혈천신교의 고수인 칠혈성이 뒤따라 올라온바. 기존의 칠혈성은 주호에게 전부 갈려 죽었기에 새로운 면면들이었다.

“…….”

비슷한 경지인 칠혈성들이 등장하자 천후를 비롯한 후기지수들의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입신지경인 사흉수는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었지만, 비슷한 경지인 칠혈성을 대적자라 여긴 듯했다.

칠혈성 역시 마찬가지로 여기는 듯 그들 쪽의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분위기가 삭막하군요.”

황실을 대표해 회담의 중재를 맡은 월학이라는 환관이 죽선으로 입가를 가리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신마는 없나.’

주호는 폐부를 옥죄고 있던 긴장이 조금은 풀림을 느꼈다.

단철량 조차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한 절대자라면, 지금 자신의 수준으로도 힘들다는 것일 터.

행여나 그가 회담 자리에 나오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들의 대표는 혼돈인 듯했다.

“다들 준비가 된 듯싶으니 지고하신 황제 폐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월학의 말에 다들 살짝 고개를 숙였다. 혈천신교 측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황실에 대한 예우와 존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짐은 무림의 생리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반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많은 민초가 고통을 받았다. 양측은 가급적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엄숙한 경고였다.

말을 끝낸 월학이 눈짓하자, 혼돈이 고개를 들며 주호를 비롯한 연합의 고수들을 바라보았다.

“본교는 황제 폐하의 뜻을 따르겠소. 그러니 화평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바는 다음과 같소이다.”

촤르륵.

회담장의 탁자 위로 중원의 지도가 펼쳐진다. 혼돈은 짧은 막대를 꺼내 손에 쥐더니, 그 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청해, 운남, 사천.”

거기까지는 상정했던 범위 안이었지만, 혼돈의 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감숙 서부 일대와 귀주의 북부를 원하오. 추가로 중원과의 교역이 있군. 서로 오가는 것을 막지 말아 달라는 뜻이오.”

쿵.

남궁한이 탁자를 내리쳤다.

이건 완전히 자신들을 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청해와 운남, 그리고 사천 일대를 내어주기로 한 것도 화평을 위해 자존심을 많이 죽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얼토당토않은 조건에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우리도 억지 부릴 생각은 없었소. 귀하가 말한 대로 청해, 운남, 그리고 사천의 일부 지역까진 내어줄 용의가 있었지만, 그 이외는 너무 과한 것이 아니오?”

“과하다라. 이대로 전쟁을 계속한다면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을 것 같소?”

“하지만 많은 피를 흘리겠지.”

“필요한 희생일 뿐이다. 본교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중원의 저력을 얕보지 말도록 하여라. 이때까지처럼 밀리고만 있을 것 같으더냐.”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남궁한의 말에 대답한 것은 궁기 쪽이었다.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패배한 개가 짖는 건 무섭지 않구나.”

“…네놈.”

둘의 기세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 가운데 혼돈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주호를 바라보았다.

“검신 대협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과한 조건이로군. 우리의 조건은 검제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마저도 이쪽이 크게 양보한 것이거늘. 그렇다면 협상은 결렬이군.”

혼돈은 여유로이 고개를 돌려 당황해하는 신야와 이렇게 되리라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월학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힘들게 방문해주신 분들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되었소. 관무불가침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부디 폐하의 말대로 더는 민초의 희생이 없게 해주길 바라오.”

“각골명심하도록 하지요.”

“흠,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군. 다들 알아서 일들 보시오.”

월학이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자리를 떠나자, 신야는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황급히 그 뒤를 따라나섰다.

이윽고 서로 대립하는 두 세력만이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바. 싸늘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남궁한의 기세에 정면으로 맞서던 궁기 쪽이었다.

“옭아매던 목줄도 사라졌겠다, 제대로 한 번 붙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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