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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266화 (266/300)

#266화

주호는 먼저 선우연의 상처를 살폈다.

그와 백내이의 싸움에서 비롯된 소음에 이끌린 마인들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 모두 처리한바. 잠깐 정도의 시간은 있기에 응급 처치라도 할 요량이었다.

“…끄윽, 혈도라도 짚어주시면 안 됩니까.”

“일단 어디까지 손상되었는지는 알아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라.”

상처를 누르자 신음을 토해내는 선우연의 모습에 주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침없이 손을 놀렸다.

‘직전의 싸움으로 내상이 크긴 하지만, 며칠 밤낮을 싸운 것치고는 그리 나쁜 상태가 아니다.’

예전이었더라면 여기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터. 제자의 일취월장한 모습에 주호는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왼팔에 남아 있는 상처로 시선이 향했을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로부터 팔의 깊숙한 곳까지 갈라져 있다. 흘러나오던 피는 이미 얼어붙은 지 오래. 그 덕분에 덜렁거리지 않은 채 잘 붙어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검을 쥐는 무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상처라 할 수 있었다.

“…목숨을 구한 값어치로는 싸게 먹히지 않습니까.”

선우연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왼팔을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신경이 손상된 것인지 잘 움직이지 않자 이내 포기하며 쓰라린 표정을 지었다.

“뭐, 아예 잘려나간 것보단 형태라도 남아 있는 것이 낫겠죠. 봉합하면 대충은 움직일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어떻게든 방도를 구해보마.”

사신문에는 의선(醫仙) 있었다.

병명도, 해법도 밝혀지지 않은 지병조차 치료했으니 팔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되살릴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상비품으로 가지고 다니던 깨끗한 물로 상처를 씻어낸 후 바늘과 실로 꼼꼼히 봉합한 뒤 근처의 나무를 꺾어와 부목을 만들어 붕대로 칭칭 감았다.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십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선우연은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짐짓 감탄을 흘렸다.

무림인은 혹시나 자신이 상처 입었을 때를 대비해 기본적인 의학 지식을 겸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주호의 모습은 제법 본격적이지 않은가. 순식간에 봉합된 상처와 매끄럽게 만들어진 부목을 보니 어떻게든 방도를 구해보겠다는 말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상처는 중한데 입은 여전하구나.”

“예전에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말 하나는 천하제일의 고수라고.”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실 없이 농을 던져온 제자의 모습에 주호는 피식 웃으며 그의 몸을 둘러업었다.

꽈아악.

이곳을 뚫고 지나가려면 수많은 싸움을 거쳐야 하는바. 그렇기에 행여나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끈으로 질끈 서로의 몸을 동여맸고, 신검을 뽑아들며 어둠에 감싸인 숲을 바라보았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하여라.”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목소리의 끝이 살짝 떨려왔다.

쫓기는 와중 항상 생각하던 것이었다. 자신이 이런 지경에 처했을진대, 다른 이들 역시 못하면 못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기에 나쁜 예감이 스멀스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피어올랐으나, 애써 그것들을 부정하며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시선을 돌렸다.

“다들 전부 무사하다. 아직 구출되지 못한 것은 네가 마지막이었지.”

“…다행, 아니, 제가 마지막이었다고요?”

“그래. 전선의 후퇴는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으나, 나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그 뒤로 너희들을 찾아 이곳을 헤맸지.”

오늘로 아마 열흘째의 날이었을 터다. 첫날 남궁연을 발견한 것으로 시작해 곳곳에 펼쳐진 천라지망 안에서 발을 묶여 있던 후기지수들을 모조리 구출해냈다.

마지막으로 선우연을 찾기 위해 이 땅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어찌나 멀리 도망갔던지 따라잡는 데만 하여도 한세월이 걸렸던바. 그것에 생각이 미친 주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오히려 네가 이목을 끌어준 덕분에 다른 이들이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었던 듯하군.”

“…뭐, 그러면 됐습니다. 나중에 그 녀석들한테 거하게 얻어먹지요.”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얼른 가자.”

선우연은 악착같이 주호의 등에 매달렸다. 조금 전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는 가운데서도 습격하려다 피를 흩뿌리며 죽어나간 이들이 수십이었다.

작정하고 이쪽을 죽이려고 마음 먹은 것인지 점차 주위에서 움직이는 기척의 밀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음.”

거침없이 나아가던 와중 주호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기세를 내뿜는 마두가 그 앞을 가로막은 것. 아무리 그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상대이리라.

그렇기에 선우연은 이를 악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관님, 여차하면 저를.”

“제자를 버리는 스승은 없다.”

주호는 단호히 내뱉으며 신검을 세웠다. 일말의 망설임 없는 그 목소리에 선우연은 코끝이 매워지는 것을 느꼈으나, 이내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누가 버리라고 했습니까. 여차해도 저를 버리시면 안 된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하하.”

웅웅─.

신검이 눈부신 빛을 발한다. 주호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등 뒤에 매달린 제자에게 말했다.

“조금 눈이라도 붙이거라. 다시 깨어났을 때는 다 끝나있을 터이니.”

“…잠들면 안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뭐, 피도 너무 많이 흘렸고, 이런 추위에서 잠들면 그대로 죽는 그런 거 있잖습니까.”

“내가.”

주호는 작게 웃음을 토해내며 땅을 박찼다.

입신지경의 고수가 발하는 쾌속의 순간, 선우연은 귓가를 스친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것 같더냐.”

눈부신 빛이 깊은 밤의 숲을 밝히며 가로막고 있던 적들을 모조리 베어 갈랐을 때, 선우연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

툭툭.

“…으음.”

뺨을 간질이는 손길에 선우연은 신음을 내뱉었다.

누가 감히 자신의 잠을 방해하는가. 모처럼 만에 얻은 휴식이었다. 그간 몸도 맘도 지쳐 있었기에 이 나른한 기분을 한껏 만끽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선 공자. 그만 일어나야 해요.”

“…남궁, 소저?”

하지만 귓가를 스치는 그 목소리에 눈을 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동경하고 있던 여인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두 눈을 번쩍 뜨며 앞을 바라보자,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당천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습니까. 제 말이 맞죠? 소저 목소리라면 잠자다가도 벌떡 깨어날 놈이라니까요.”

“선 공자. 몸은 괜찮나요?”

“…어.”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하고자 입을 열었을 때, 선우연은 시야가 핑 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당천유가 그 미간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아 있어서 조금 어지러울 수 있을 걸세. 그래도 곧 정신이 돌아올 터니 그대로 누워있게나.”

“…이건, 꿈인가.”

“현실이네. 자네가 며칠 밤낮을 저들의 천라지망에 쫓긴 것도, 교관님께 구해져서 이곳까지 실려 온 것도.”

“후.”

선우연은 두 눈을 감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얄미운 목소리로 놀리는 친우의 말이 뇌리에 콕콕 박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꿈은 아닌 듯싶었다.

“그보다 왼팔은 어떻나요?”

“아직 감각이 돌아오진 않았을 겁니다. 대수술인지라 마취를 강하게 했으니.”

“…왼팔?”

선우연은 슬쩍 왼팔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백내이와의 싸움이에서 넝마가 되어버린 자신의 팔이 떠올랐다.

“…윽.”

“움직이지 말게. 신경 하나하나를 봉합하는 대수술이었어. 어지간한 명의라 할지라도 불가능했던 기예네. 이제 겨우 안정되기 시작했는데 무리하게 움직인다면 덧나기 시작할 걸세.”

“신경 하나하나를 봉합했다고?”

“그래. 내 살다 살다 의선(醫仙)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이쪽에서는 이미 옛적에 타계한 고수시라 알려져 있었거늘.”

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상당히 기뻐하시리라 당천유는 중얼거렸다.

“…….”

선우연은 멍하니 붕대로 칭칭 감싸인 왼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방도를 구해본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구나.

“그럼 저는 교관님께 가볼게요. 당 공자께선 이후를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시오. 이놈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감시하겠소.”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을 내뱉어오는 당천유의 모습에 작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 남궁연은 곧 막사를 나섰다.

“빨리 옮겨! 적들이 당도하기 전까지 이쪽 진지를 강화해야 한다!”

“그건 우측으로! 자재 더 들어온 것 없나? 최소한 석재 두집은 더 있어야 하거늘.”

저 멀리 전선을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는 무인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결과적으로 운남을 포기하고 후퇴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사천이 완전히 저들 손에 떨어진 탓에 병력의 수급이 이전보다 몇 배는 늘어나게 되었던바. 조금이라도 후퇴가 늦었더라면 휘몰아치는 핏빛 해일에 이곳 모두가 휩쓸려 나갔을 터였다.

‘문제는 얼마나 더 여기서 버틸 수 있냐는 것인데.’

남궁연은 침중한 눈빛으로 전선을 바라보았다.

운남 전선에서 후퇴한 연합군은 천공검(天空劍) 신창원이 이끄는 귀주 전선에 합류했다.

그들 역시 몇 만에 달하는 숫자로, 운남이 무너지기 직전부터 빠르게 준비를 시작해 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한 준비를 끝내놓았던바. 하지만 혈천신교의 군세는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큰 규모였다.

살짝 기분이 가라앉은 남궁연은 지휘 막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선우연이 깨어난 것을 주호에게 알려주고자 함이었다.

조심스럽게 막사의 휘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자니, 내부가 한창 회의 중임을 볼 수 있었다.

“호북과 하남에서 지원을 다수 보내주었소. 제 터전이 전쟁터가 되는 것이 싫었나 보지. 차라리 운남 쪽에 힘을 실었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텐데.”

“막상 발등에 불똥이 튀어야 정신을 차린 것이지요.”

“만일 여기도 무너진다면…….”

“허어, 가정의 이야기는 그만하시지요.”

남궁연은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는 주호를 발견했다.

그렇기에 기척을 숨긴 채 그 뒤로 다가갔을 찰나, 회의를 주관하고 있던 천공검 신창원이 입을 열었다.

“일단 한 가지 말씀드릴 소식이 있소이다. 이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잠시간 침묵함으로써 좌중의 이목을 끌어모은 그는 곧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황실에서 양측 간에 중재를 나선다고 하오. 일시는 대략 열흘 뒤 사천. 이곳 귀주 전선에서는 본인과…….”

신창원의 시선이 옆쪽에 있던 주호에게로 향했다.

“검신께서 참여해줄 것을 부탁받았소.”

“…황실이.”

황실이란 말에 다들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람을 토했다.

청해가 쓸려나가고, 사천과 운남이 무너질 때까지만 해도 관망하고 있던 그들이 어째서 지금에서야 나선단 말인가.

“…하긴, 만 단위로 죽어나가고 있는데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있소. 세력 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싶었으면 사천이 무너지기 전에 나서주었어야 하거늘.”

관무 불가침이라고 했던가.

다들 황실의 개입을 탐탁치 않아하면서도, 그들이 어째서 이렇게 늦게 나섰는지에 대해 은근한 불만을 드러내었다.

“…검신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막, 뒤로 돌아온 남궁연에게 선우연이 무사히 깨어났다는 말을 전해 들은 주호는 신창원의 물음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석하겠습니다.”

저들이 어떤 술수를 부려올지는 모르지만, 황실까지 개입한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일임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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