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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259화 (259/300)

#259화

“어떻게 벌써 왔지? 아무리 빨라도 며칠 거리에 있다고 들었거늘.”

“아미타불. 큰 변수로군.”

청귀와 마옥불제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합군 내에 심어둔 간자들이 보내온 첩보에 따르자면 지원군이 이곳에 당도할 때까지 족히 사흘은 더 남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여세를 몰아 운남 전선을 완전히 괴멸시키고자 오늘 기습까지 하면서 총공세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벌떼처럼 몰려오는 저 인파는 무엇이란 말인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군.”

주호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서늘한 표정으로 이죽거림을 흘렸다.

사실 지원군이 저들의 이목을 피해 이곳까지 무사히 당도한 것은 그의 공이 컸다.

주호는 지원군과 합류한 뒤 밤잠을 아끼지 않고 병영을 돌아다녔고, 상태창의 힘으로 곳곳에 숨어 있는 간자들을 모조리 색출해냈다.

물론 전부 죽이지는 않았다. 소수의 몇몇만 남겨둔 것으로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도 상정해둔바. 지금 저들의 모습을 보니 제법 효과가 있는 듯싶었다.

“지원은 총 일만입니다. 이 정도면 다시 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운남 전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화산파를 필두로 한 일만여 명의 연합군이었다.

하지만 잦은 패퇴로 인해 육천 명까지 줄어든 가운데 이곳에서까지 밀리면 답이 없게 된 상황이었으나, 새로이 등장한 일만 명의 지원에 국면이 달라졌다.

“…자네.”

“해후는 나중에 풀도록 하지요.”

선청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주호는 날카로운 눈으로 저 앞에 있는 숙적들을 바라보았다.

청귀(靑鬼)와 마옥불제(魔玉佛帝).

화산파 장문인인 매화검존 선혁우의 목숨을 앗아간 두 원흉이었다.

‘확실히.’

전열이 무너져 패퇴하는 가운데 저 정도의 고수들이 작정하고 기습을 가했더라면 아무리 매화검존이라 할지라도 무사하기는 힘들었을 터.

자신은 마교에서 입신지경에 오른 두 장로와 맞서 싸워 압도적인 무위를 보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서로 간에 격차가 크게 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입신지경 초입이었던 두 장로와는 달리 저 두 마두의 경지는 이미 완숙에 다다른바. 쉬이 생각할 상대가 아니었다.

꽈아악.

그때와 같이 허점을 노리는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호는 천천히 자신의 기세를 가다듬었다.

“한 놈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운남 전선의 고수들과 연합군의 무인들이 합세해 혈천신교의 군세와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을 때 그들 사이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괜찮겠는가. 자네가 강한 건 알지만, 예사 놈들이 아니라네.”

“저는 장로님이 더 걱정입니다.”

주호는 선청우를 바라보았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지만, 얼굴을 보아하니 심마가 많이 쌓인 듯했다.

아무리 고수라 할지라도, 아니 고수이기에 더더욱 마음의 문제가 큰 영향을 끼친다. 평생을 함께해온 사형이 죽었으니 심지가 흔들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선청우는 주호의 그런 우려를 짐작한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곳을 내 무덤이라고 생각했네.”

“그렇게 둘 순 없지요.”

선청우가 필사의 각오를 보이자 주호는 쓴웃음을 짓고는 벼락같이 땅을 박차며 쇄도했다.

“음.”

청귀와 마옥불제는 이미 그의 등장 직후부터 대비하고 있던바. 주호가 닥쳐간 곳은 청귀 쪽의 방향이었다.

‘이쪽이 더 약하다.’

그러니 서둘러 처리하고 마옥불제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청귀 역시 주호가 자신을 쉬이여기고 공격해왔다는 것을 눈치채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놈!”

별호와 같이 시퍼런 기운이 검 위로 서린다. 절정에 달한 어검의 경지. 그것이 전장을 베어 가르며 닥쳐올 찰나, 휘둘러진 신검이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일 초식 일섬(一閃).

피 냄새가 자욱한 전장을 베어 가르는 한 줄기 궤적이 맹렬하게 쇄도했다.

분노에 찬 청귀는 그것을 정면에서부터 찢어발기리라 몸을 들이밀었지만, 온몸을 엄습하는 위기감에 헛바람을 내뱉으며 기운을 회수했다.

쿵-!

“청귀!”

커다란 폭발과 함께 청귀가 튕겨 나가자 마옥불제가 기함을 토해내며 조력을 위해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지척에는 주호가 움직임과 동시에 닥쳐간 선청우가 살벌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파아앗!

농밀한 강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이때까지의 설욕을 갚아주려는 듯 동귀어진을 각오한 정도의 기세였다.

청귀를 도우려고 움직이던 마옥불제는 그것을 감히 경시 여기지 못했다.

“…큭.”

바닥에 처박혔던 청귀는 신음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무언가를 손으로 닦아내자, 짙은 핏물이 묻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피를 보는 것이 얼마 만일까.

청귀는 머리카락을 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신(劍神) 주호.”

주호는 오만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강대한 기세는 검신이라 불리기에 한점 모자람이 없던바. 청귀는 손에 묻은 피를 핥으며 씩 웃었다.

“중원 녀석들이 짓는 별호는 하나같이 과장이 심하단 말이야. 매화검존이니 검성이니. 이제는 검신가지 나왔군.”

이죽거리며 검을 세운 그는 서늘한 눈빛을 보였다.

한 치만 더 깊게 베였다면 죽을 상처였지만, 물러날 기색은 없다. 오히려 경시하는 마음을 버린 채 가득 찬 투기만을 뿜어내었다.

‘믿기 힘들지만, 매화검존보다 한 수 위의 고수다.’

청귀 역시 그에 관한 이야기를 이미 혼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당대의 청룡. 그래 봤자 이십 대 애송이라 생각했거늘 그 방심 때문에 죽을 뻔했다.

“혀가 길군.”

신검이 차가운 빛을 발한다. 주호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사지를 베어 가르고 눈을 파내며 코와 귀를 자르는 것으로 자신의 발밑에서 몸부림치는 것으로 떠나간 매화검존을 추모하고 싶을 뿐이었다.

“으하하하! 좋다, 좋아! 당대 검신이라 불리는 자라면 그런 기개는 있어야겠지!”

청귀는 큰 웃음을 토해낸 뒤 가늘어진 눈으로 발을 굴렀다.

“하지만 세외에까지 그 이름이 통할까.”

쿵.

그의 전신으로 짙푸른 기운이 피어오른다. 머리카락은 중력을 거슬러 치솟아오르기 시작했고, 피부는 창백하게 물들어가며 마치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변하는 듯했다.

“…과연. 그래서 청귀라고 불리는가.”

인간이 아닌 괴이에 가까운 모습.

몸은 오 할은 더 커졌고, 피부는 아예 푸른색에 가까워졌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동자는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보는 이의 불쾌감을 자아냈다.

-지금껏 이 모습을 보고 살아간 자는 없었다.

터져 나온 기파가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이전보다는 족히 두 배는 더 커진 기세였다.

꽈아악.

신검을 쥔 주호의 손등으로 핏줄이 투둑 튀어 올랐다. 그는 혼원일극신공을 운용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다른 기운이 발작을 일으켰다.

쿠구구궁─!

적해(赤海)의 기운이 큰 적의를 표출한다. 주인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고, 제 이름처럼 붉은빛을 일렁이며 청귀를 압박했다.

‘이건.’

기운을 다스리게 된 이후로 이런 적은 없던바. 신마의 반쪽 기운이 괴이란 존재에 반응하는 것인가. 주호는 짐짓 당황했지만,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피해라!”

“휘말린다! 물러나!”

선청우와 마옥불제의 대결 역시 큰 여파를 만들어냈지만, 이쪽은 차원이 달랐다.

두 개의 커다란 기운이 부딪힐 때마다 대지의 모습이 달라지며 땅이 요동을 쳤다.

-으하하하하!

촌각 동안 둘은 수백 합을 겨루었다.

청귀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고, 지면이 무너져 내리며 상대가 걸레짝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존재를 살육하는 것만이 그가 지닌 유일한 목적인 듯했다.

-아쉽게 되었구나! 강자와의 싸움은 즐길 것이지만, 지금의 나를 감당하기에는……!

턱.

쉴 새 없이 휘둘러지는 검력 가운데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청귀는 그의 오만함을 비웃으며 팔째로 주호의 손을 베어내려 했지만, 활짝 펼친 손아귀가 자신의 검을 움켜잡았다.

‘…내 검을 잡았다고?’

하수의 검을 붙잡아 멈추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입신지경 고수끼리 가운데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키이이이─.

귓가로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이의 울음과 같기도 하고, 여인의 비명과도 같기도 한 정체 모를 이명이었다.

-…이, 이건.

악귀? 나찰? 수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인세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되며 마주쳤다면 살기를 포기해야 하는…….

-…아. 그래서 혼돈이, 혈천신교가 네놈을 그토록.

무언가 깨달은 것이라도 있는 것일까.

청귀가 두 눈을 크게 뜨며 헛바람을 토해낼 찰나, 핏빛 혈기에 휩싸인 신검이 그의 몸을 수백 갈래로 도륙했다.

쉬아아아악!

폭풍에 휘말린 청귀가 일말의 형태조차 남기지 못한 채 소멸한다. 이윽고 신검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을 찰나, 주호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번은 못 할 짓이로군.”

기력이 상당히 쇠했다.

단순 위력으로만 보자면 혼원일극신공보다 더 강맹했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소모가 몇 배는 되는 듯했다.

짧은 시간 운기를 함으로써 기운을 회복한 주호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선청우와 마옥불제의 싸움 역시 절정에 다다라 있다. 거의 동수를 이룬 탓인지 서로 넝마가 되어 있던바. 그럼에도 선청우의 눈빛은 여전히 이글거리는 불꽃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계에 가깝다.’

주호가 보기엔 마지막 불꽃을 피어올리는 것이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내력을 쥐어짜 검에 싣고 흔들리는 끝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그 흐름이 끊긴다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던 균형이 무너져 내릴 터였다.

툭.

물론 주호는 그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마옥불제는 청귀가 죽자 다급해진 상태. 직전까지는 주호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아끼는 듯했지만, 상황이 급격하게 기울어지자 본격적으로 손을 쓰기 시작했다.

“끄윽!”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이 찍어 누르자, 선청우이 몸이 허무하게 밀려 나간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 지척에 이른 주호가 그와 교차하듯 마옥불제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신검 위로 짙은 잿빛이 서린다. 바로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선청우는 이제는 감히 자신이 가늠조차 할 수 없어진 그 경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삼 초식 나찰(羅刹)

마(魔)에 물든 중을 베어내기에는 이만한 초식이 없던바. 마옥불제는 자신에게로 떨어져 내리는 농밀한 기운에 두 눈을 부릅떴다.

“아미타불-!”

신승과 같이 그의 등 뒤로 천수관음의 형상이 서렸고, 천 개에 다다르는 팔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권역을 이뤄냈다.

인간인 주호 따위라면 한 번에 뭉갤 수 있으리라.

한 쌍의 눈으로부터 파멸이 서린 붉은빛을 번뜩이는 천수관음이 천벌을 외칠 때, 검신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신승의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할 따름이다.”

검신의 검이 악불(惡佛)의 목을 무참히 베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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