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246화 (246/300)

#246화

“소교주님!”

“무사하십니까!”

주호와 위천강이 천마전을 나가자 흑영대주 강위혁과 철패도 담백산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둘 다.”

거친 싸움이 있었던 듯 두 명 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정작 그 본인들은 흘깃 제 의복을 바라보곤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부분 적의 피입니다.”

“그보다 전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주력 대부분이 마뇌를 공격하기 위해 떠난 탓에 파죽지세로 밀리고 있습니다.”

“저쪽에 그 정도로 여력이 남아 있었다고?”

그들의 보고에 위천강은 심각해진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중원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신교의 고수 대부분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탓에 마뇌와의 세력전은 서로 별 볼 일 없는 병력으로 이루어진바. 어차피 남은 전력은 뻔하기에 먼저 의표를 찌르는 쪽이 승리를 취하리라 생각해 남은 이들을 전부 긁어 공격을 보냈지만, 설마 저쪽이 이 정도 습격을 할 정도로 여력이 남아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마 혈천신교 측의 인원 같습니다.”

“거기에 목내이까지 데려온 탓에 이쪽의 피해가 큽니다. 흑내이와 적내이는 물론, 백내이까지 셋이나 되는 바람에…….”

“빌어먹을 새끼들. 선전포고용으로 중원에 공격을 가했을 때 일부 빼돌렸나 봅니다.”

그들은 입술을 깨물며 분함을 토했다.

소교주를 보좌하는 위치에서 이러한 상황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은 치욕스러운 수치.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위천강과 남은 전력을 수습해 어떻게든 다시 반격의 기세를 노리는 것이었다.

“일단 물러나야 할 듯싶습니다. 저쪽 선봉에 선 것은 혈파검과 수라귀도입니다. 이쪽에 극마에 이른 고수가 없는 상황에서 애초에 싸움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쪽에 둘이 와있으니 조금만 버틴다면 마뇌의 진영을 치러 간 이들이 승전을 보고할 겁니다. 저들도 극마급 고수들을 빼돌릴 정도로 절박했다는 것이지요.”

“신교의 장로라는 작자들이…….”

위천강은 이를 갈았다.

혈파검 이우양, 수라귀도 고현탁.

둘 다 자신의 조부인 천마가 멀쩡할 무렵 그 밑에서 충성을 맹세했던 신교의 장로였다.

언제부터 마뇌의 산하에 몸을 의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신감에 치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흑영대주, 일단 남은 이들을 수습해서 이곳으로 집결하지. 철패도 자네는 나와 함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살핀다.”

“하오나 전세가 좋지 않습니다.”

“극마급 고수가 둘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소교주께서 어떻게 되기라도 하신다면…….”

강위혁과 담백산은 난처한 표정으로 우려를 드러냈다.

서로 간의 전력 차이가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쪽의 최선은 손실을 줄이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버는 것. 허나 위천강의 의지가 확고한 듯했기에 쉽사리 결정지을 수가 없었다.

“저쪽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후방의 수습을 하고 있도록.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쿵.

위천강의 부탁에 주호가 고개를 끄덕였을 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온몸을 흰 붕대로 칭칭 감은 이가 한 명 뚝 떨어져 내렸다.

“이런!”

“철패도! 자네는 소교주님의 운신을!”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강위혁과 담백산이 다급한 얼굴로 위천강의 앞을 지키고 나섰을 찰나, 주호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며 땅을 박찼다.

쐐애애액-!

전장 위로 난데없는 질풍이 들이닥쳤다.

백내이가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 머리를 뛰어넘어 뒤를 점한 주호는 서늘한 눈빛을 띠며 말했다.

“소중한 제자들이 있는 곳이다. 주제 모르고 날뛰면 곤란하지.”

쿵-!

백내이의 뒤통수를 잡은 손길이 그 머리를 거침없이 땅에 박아 넣었다.

어찌나 강하게 처박혔는지 목의 절반까지 구멍으로 파고들었고, 목이 부러진 백내이는 이내 전신을 부르르 떨며 절명했다.

부룩, 부루룩.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새하얀 붕대 밑으로 백내이의 피부에 기포가 차듯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터질 듯 팽창했다.

“요란스럽긴.”

쿵.

강력한 기파가 그 몸을 짓누른다. 직후 백내이의 몸이 큰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지만, 그 여파는 온전히 땅 밑으로만 향했을 뿐이었다.

툭툭.

새로이 생겨난 큰 구덩이 위로 독기에 절은 살점이 널브러져 있다. 그 위에 손을 털은 주호는 위천강을 향해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전장은 산발적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강위혁과 담백산의 말과 달리 각각 제법 치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둘 남은 백내이가 난입할 때마다 그 균형은 허무히 무너져 내렸다.

탁-!

주호는 곧바로 백내이가 활개치고 다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마침 둘 다 가까이 있었기에 손쉽게 쓰러뜨린바. 먼저 하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목을 꺾어버렸고, 다른 하나는 반항이 거세기에 사지를 찢고 몸을 반으로 접어버렸다.

“…….”

물론 둘 다 숨을 거둔 직후 거센 폭발의 징조를 보였다. 그렇기에 다시 기파로 그것을 억누른 뒤 죽음 직전에 있던 마인들을 돌아보자 그들은 벙찐 표정으로 주호를 올려다보았다.

“소교주는 저쪽에 있다. 그곳으로 합류하도록.”

주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천마전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인들은 각자 고개를 끄덕이거나 포권하는 것으로 감사를 표하며 서둘러 그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전황이 힘들었던 것은 몇 안 되는 백내이 때문. 그것들이 모두 죽자 남은 마인들은 점차 한군데로 모이며 전세를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남은 건…….”

일단 한시름 돌렸기에 가볍게 한숨을 내뱉을 찰나, 바로 지척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에 주호는 벼락같은 속도로 신검을 뽑아 들어 제 앞을 막았다.

콰가가가가가각-!

그의 신형이 뒤로 밀려난다. 땅 위로 기다랗게 흔적이 남으며 기습의 격렬함을 알려온바. 주호는 신검 뒤로 고개를 들며 시퍼런 눈동자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웬 애송이가 날뛰는가 싶더니, 그 위명 자자한 검절(劍絶)이라고?”

“이 사람아. 요즘엔 검신(劍神)이라 불린다더군.”

“으하하하, 검신? 웃기지도 않는군. 중원도 참 수준이 많이 떨어졌어.”

혈파검 이우양.

수라귀도 고현탁.

이곳의 기습을 획책한 별동대를 이끈 수장들로 모두 극마 경지에 이른 마두들이었다.

“제 주인을 배신하고 마뇌에게 붙었던 후안무치한 개새끼들이로군.”

주호는 신검을 비스듬히 내리며 이죽거렸다.

“허허, 패기 하난 좋구나. 그래, 젊을 때는 응당 그래야 하는 법이지.”

“그 나이에 입신지경에 올랐으니 어찌 기고만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곳에 네놈을 도울 사람은 없다. 소교주? 고작 초절정인 애송이가 무엇을 하겠는가.”

도발로 그들의 정신을 흐트러트릴 생각이었으나, 상대는 오히려 유쾌한 모습으로 그것을 맞받아쳤다.

마치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휙.

가볍게 검을 휘둘러 그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주호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쿵-!

주호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막중한 기세가 터져 나왔다.

전장의 공기가 일순간 멈출 정도로 이 일대를 전부 아우르는 막대한 규모인바. 그 패도적인 기운에 조금 전까지 나불거리던 두 마두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몸을 푸는 도중 방해받아서 부족하던 차다. 마침 예열도 얼추 끝났으니 마교 장로 두 명의 피라면 내 화를 삭이기엔 충분하겠지.”

“감히!”

자신들을 얕잡아 보는 발언에 혈파검이 노호를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한순간이나마 압도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치욕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혈파검(血波劍)이라는 별호답게 핏빛 검강을 마치 파도처럼 거세게 휘몰아치며 주호에게로 닥쳐간바. 뒤에 있던 수라귀도가 조금만 침착하자며 손을 뻗었지만, 발끈한 혈파검이 뛰쳐나가는 것이 더 빨랐을 뿐이었다.

번쩍-!

혈파(血波) 가운데 눈부신 빛이 번쩍인다. 위천강과 손속을 겨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광명이 주위를 휩쓸었고, 기세 좋게 나아갔던 혈파검은 이내 그 한 수를 견디지 못한 채 피를 토해내며 뒷걸음질쳤다.

“과연. 썩어도 마교의 장로라는 것인가.”

주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제법 진심을 담은 공격이었다.

혈파검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굳은 얼굴로 피를 흘렸지만, 그 가운데서 용케도 치명상만은 피한 듯했다.

“…귀도, 평범한 녀석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진정하라고 하지 않았나.”

“빌어먹을, 피를 보게 만들다니.”

그를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은 둘은 이내 시선을 나눴다. 곧 무엇인가 무언으로 상의하는가 싶더니 동시에 땅을 박차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린바. 극과 극에서 주호를 향해 닥쳐 들어갔다.

쿠궁-!

그들 역시 입신지경에 오른 고수.

물론 초입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로 권마와 비교하자면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렇다 한들 입신지경의 고수가 주는 무게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한 명이면 필승, 두 명이면?’

두 명도 어렵지 않았다.

주호는 자신감을 가지며 신검을 다잡았다.

단전에서 혼원일극신공의 기운을 유지하며 위천강과 비무 이후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사실 깨달음이랄 것도 아니었다.

기운은 물이요, 단전은 그것을 담는 그릇이로다.

막, 심법에 입문하는 이들을 가르칠 때 알려주는 원론적인 비유였다.

천마가 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인바. 주호는 신공 절학에 집착해 그것을 직관적으로 사고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은 지금은 천마가 무슨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만 같았다.

쉬아아아악-!

핏빛 칼날 무리가 해일처럼 닥쳐온다. 이번에야말로 결착을 내자는 듯 동귀어진의 기세였지만, 그것에 맞상대하려 빈틈을 내주었다간 반대편에서 닥쳐오는 수라귀도의 태산처럼 무거운 도에 찍혀 압사당할 터였다.

“삼 초식.”

그렇다면 자신은 수라를 잡아먹는 나찰이 되리라.

끼이이이이익─.

심연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에 둘은 모골이 섬짓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기호지세. 이런 초고수 간의 싸움에선 단 한수로 승부가 결정 나기 마련이었다.

아주 작은 틈조차 치명적으로 작용하기에 망설일 여유조차 없었다.

설령 팔 한 짝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검절의 목을 취하면 후에 혈천신교의 비술로 능히 회복할 수 있…….

“나찰(羅刹).”

그 한 마디에 세상이 침묵에 잠겼다.

혈파검은 주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편에서 닥쳐드는 수라귀도에게 멈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심연에서 솟구친 망자의 손길이 그의 적삼을 피로 물들이며 끌어당기고 있던바. 삶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나찰(羅刹)의 모습이었다.

쉬아아악-!

대지가 갈라졌다.

딛고 선 땅은 무참히 무너져 내렸고, 적의를 지는 이들은 모두 그 가운데 휘말려 한 줌의 핏물이 되어버렸다.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는 죽음의 연속. 찰나에 이어진 그 폭풍이 끝났을 때, 오롯이 서 있던 것은 주호뿐이었으니.

“…….”

그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햇살에 두 눈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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