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혼원일극신공.
처음엔 그저 서로가 완전한 균형을 이뤘을 때 일극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것이 발견되었다. 나찰의 초식을 펼칠 때처럼 적해의 비율을 늘리기도 했고, 반대로 청룡신공의 비율은 늘리기도 했다.
섞는 내공의 비율에 따라 효용을 달리하는 신묘한 무공. 하지만 천마에게 말했다시피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그는 내 심적인 문제라 하였다.’
애초에 주호는 혼원일극신공이 두 기운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운인 만큼 단전에 축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대체할 방법을 찾고 있던 차에 천마에게 조언을 구한 것. 하지만 이곳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또 한 번 가졌던 만남에서 천마는 그러한 현상이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확언했다.
-세상천지에 그러한 것은 없네.
-무릇 진기란 물과 같으며, 단전은 그것을 담는 그릇이라네. 담지 못하는 것이라면 애초에 인간의 몸에 들어있을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해답을 보고 온 듯 명쾌한 몇 마디 말에 그간 앓고 있던 고민이 시원하게 풀려나갔다.
무려 천마란 이름을 지닌 고수의 무학이 담긴 조언이 아니던가.
하지만 마음의 문제라고 해서 쉽사리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천마 역시 그 부분에 관해서는 본인이 직접 찾아야 한다는 말만 했을 뿐. 주호도 그 말엔 동감했다. 어쨌든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싸움 도중 혼원일극신공을 유지하는 데 쏟는 심력이 적지 않다. 이것만 해결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터.
‘당장 직전의 싸움에서도 그랬으니.’
도올.
자신을 사칭하며 위천강을 습격했던 그 역시 같은 입신지경의 고수였다. 물론 기습적인 공격을 가했다곤 하나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지 않았는가.
이쪽의 공격에 일수도 버티지 못했고, 결국엔 팔 하나를 내주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권마나 신승 같은 상위 경지의 고수들은 아직 무리겠지만, 적어도 동등하거나 낮은 경지의 고수들과 맞붙었을 때 절대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을 터.
더욱이 자신은 무황의 유산으로 평범한 입신지경의 고수와 궤를 달리했다. 그러니 잘한다면 혼자의 몸으로 다수를 상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직은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였다.
“…으음.”
그때 주호는 후기지수 가운데 들려오는 신음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벌써 운기가 끝난 것인지 천후가 싶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뜬 것이었다.
“벌써 끝났느냐?”
적어도 한 시진은 걸릴 줄 알았거늘, 이제야 겨우 반 시진이 조금 넘은 시각이 아니던가.
그 의문에 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신공의 특성입니다. 체내에 들어온 이물질을 빠르게 분해해서 배출하거나 흡수할 수 있지요.”
“흠.”
주작신공 되는 무공이니 그러한 효능 하나 정도는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천후는 다시금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숨을 내쉬었다. 주호가 그 눈을 바라보니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이 일렁임을 볼 수 있었다.
“성취는 어떻지?”
“반갑자 하고도 십 년은 더 얻은 것 같습니다.”
“과연. 비약이라고 자신할 만하구나.”
주호는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
사십 년의 내공이라면 대환단 만큼은 아니었지만, 강호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리는 영약의 취급을 받을 만했다.
그것도 기운의 소실 없이 온전히 흡수한 것으로 보였으니, 과연 마교의 비약이라고 자신할 만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입니다. 최소한 마교로 온 것이 손해는 아니게 되었군요.”
천후는 신기하다는 듯 제 손을 주억거렸다.
그는 주작의 후계로 자라오며 적지 않은 영약을 섭취했다. 하지만 이토록 몸에 여실 없이 때려 박는 듯한 느낌은 처음인바. 단전에 얻은 내공뿐만 아니라 세맥에 흩어진 것들까지 흡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후우.”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남궁연이었고, 세 번째는 악비산, 그리고 나머지 셋은 전부 비슷한 시기에 눈을 떴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네. 이게 환골탈태인가?”
“나도 그렇군. 하지만 뼈가 뒤틀린 일은 없었는데?”
선우연과 당천유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실상은 환골탈태는커녕 그 근처조차 도달하지 못했지만, 저마다 최소 반갑자의 내공을 얻어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딱 맞춰왔군.”
그러던 차 밑으로 내려갔던 위천강이 되돌아왔다.
그는 사뭇 당당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고, 이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지? 신교의 비약은.”
“…솔직히 말해 대단하군. 빈말로도 놀릴 생각이 들지 않아.”
“동감이다. 이토록 대단한 효과를 지닌 비약은 처음이야.”
“으흐흐, 더! 더! 칭찬하게!”
쏟아지는 칭찬에 위천강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그것을 즐겼다.
“신교에 입교하는 건 어떤가? 물론 자네들의 현재 환경도 나쁘진 않겠지만, 내 곁에 서면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네.”
“어림없는 소리.”
“또 까분다.”
“교관님, 이 후안무치한 놈이 저희를 회유하려 듭니다.”
물론 분위기를 틈타 신교의 입교할 것을 종용한 포교는 일축되어버리고 말았다.
“거, 너무하네. 자네들을 챙기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거늘.”
단호한 친우들의 반응에 위천강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닥에 발끝을 비볐다.
“사실 마음 같아선 더 좋은 것도 주고 싶었네. 만년설삼은 무리겠지만, 천년설삼 정도는 내 권한으로 꺼내올 수 있으니 말이야.”
“…천년설삼?”
선우연은 진심으로 혹했는지 두 귀를 쫑긋했다. 하지만 위천강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슬쩍 주호를 바라보았다.
“명색이 마교 아닌가. 천년설삼은 각자 몇 뿌리씩 달여준다고 하더라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더군. 허나 교관님께서 말이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비약의 효과가 생각보다 뛰어난 지금은 더욱 그렇지.”
주호는 당장은 좋지 않노라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시네.”
위천강이 그렇게 되었다며 어깨를 으쓱이자, 좌중은 살짝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선우연은 그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며 은근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나는 나중에 몇 뿌리 몰래 챙겨주시게. 비약이 전부 소화된 뒤에 따로 챙겨 먹겠네.”
“기억해두지.”
주호가 한숨을 내쉬며 그 둘의 머리를 쥐어박았을 찰나, 남궁연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참, 준비는 모두 끝내놓았소. 곧바로 이동하지.”
위천강은 아래를 가리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주호를 비롯한 후기지수들은 그대로 그의 뒤를 따라 한층 더 밑으로 내려갔고, 커다란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여긴?”
주호는 주위에서 느껴지는 농밀한 자연지기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위층 역시 평범한 곳과 비교하자면 두서 배는 될 법한 밀도였지만, 이곳은 그보다 더 진한 농도의 기운이 응집되어 있었다.
“이곳에선 자네들이 위에서 마신 비약의 효능을 극대화시킬 것이라네. 그야말로 신교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
“극대화시켜? 어떻게 말인가.”
“이걸 이렇게 하면…….”
위천강은 방 한가운데 제단처럼 설치된 구조물 위에 있던 향로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살짝 달짝지근한 향이 흘러나오며 방안을 감싸기 시작한바. 그는 짧게 숨을 토해내며 말을 이었다.
“염염환혼향이라는 것이네. 장시간 맡으면 정신이 무의식으로 빠져들게 되지. 그야말로 찰나라 할 수 있는 정지된 시간이라네. 자네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싸우게 될 것이네.”
“싸워?”
“그래. 내가 단시간에 강해진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세. 무슨 마공이나 그런 것을 이용한 수법은 없어.”
위천강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염염환혼향의 기류가 일어나며 좌중을 감쌌다.
“그 과정에서 전신의 세맥이 활짝 열리고, 비약의 기운과 더불어 이곳에 응집된 자연지기가 자네들의 전신을 끊임없이 자극할 것이네. 더불어 정신은 수백 번에 달하는 싸움을 겪을 것이니 강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그 말에 다들 머뭇거리는 모습을 취했다. 염염환혼향이니 무의식이니, 드디어 마교다운 이름이 나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내 다들 한숨을 내쉬며 각자 거리를 두며 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지.”
“애초에 쉬우리라 생각지도 않았네. 이런 걸로 때우면 싸게 먹히는 것이지.”
“흠.”
위천강은 자신을 믿어준 친우들을 바라보며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호에게 눈짓하며 그 너머에 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고, 염염환혼향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출구를 꽉 닫았다.
“아무리 빨리 깨어나도 열 시진은 걸리겠지요.”
“너도 마찬가지였고?”
“예. 저는 딱 열 시진이 걸렸습니다. 천마신공 특성상 이러한 환혼 계열에 강한 저항을 지닌 덕분이니 저들은 조금 더 걸리겠군요.”
“그때까지 위쪽이 잠잠하길 빌어야겠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신호를 주기로 했으니.”
위천강은 벽에 달린 종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일반적인 충격으로는 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외부와의 연락망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특정한 기구를 사용해 저쪽에서 신호를 보내야 그제야 진동하며 소리를 내었다.
“그러니…….”
위천강이 말끝을 흐리며 슬쩍 시선을 보냈다. 자신을 향한 눈동자에서 모종의 바람을 읽은 주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랜만에 실력 좀 보자꾸나.”
“바라던 바입니다.”
위천강은 어깨를 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동의 두 번째 단계인 염염환혼향의 제단 다음은 그간의 성취를 시험하기 위한 넓은 연무장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엔 강호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무기가 펼쳐져 있었고, 수련을 위한 갖가지 기구들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무림맹의 시설도 제법 좋다만, 이곳과는 비교할 수가 없군.’
주호는 그것들에 감탄을 토하며 위천강의 뒤를 따랐고, 이내 연무장 가운데서 그와 마주 섰다.
“제법 잘 지어진 곳이라 어지간한 충격도 견뎌낼 겁니다.”
“손 대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인가.”
“계속해서 약한 놈들이랑만 싸워와서 조금 그러던 차였습니다. 혹독하게 다뤄주시지요.”
위천강은 제 관절을 풀며 씩 웃었다.
이곳에서 큰 성취를 이룬 직후, 마뇌파 세력과 수도 없이 싸워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고수들은 주변을 지키는 다른 이들이 상대했기에 목숨을 나누는 치열한 싸움은 할 수 없었던바. 주호라면 그런 자신의 갈증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한 상대였다.
“좋다. 어린애 취급은 하지 않으마.”
주호는 스스로 제약을 가했다.
위천강과 같은 수준의 힘을 사용하면서, 단전 내부로 항상 혼원일극신공의 기운을 일정량 이상 보유하며 비무를 진행하고자 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위천강의 경지는 학관에서와는 차원이 달라진바. 초절정 고수에 올랐다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 끄트머리 정도는 밟을 자격이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우웅─.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든 위천강을 중심으로 거센 마기가 휘몰아친다. 마치 일전의 권마를 보는 듯한 폭풍 같은 기세. 그것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주호 역시 신검을 뽑았다.
“오너라, 선공은 양보하마.”
낙성곡에서 끝맺음했던 사제의 연이 다시금 이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