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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243화 (243/300)

#243화

“…신묘한 기운이군.”

천마는 진지한 기색으로 주호의 손에 서린 기운을 살폈다.

정도도 마도도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발해진 기운이 어찌 그렇게 중립을 지킬 수 있는가. 마치 자연지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에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기공의 이름이 무엇인가?”

“혼원일극신공이라 합니다.”

“혼원에 일극이라.”

천마의 두 눈이 빛났다.

그 정도 되는 경지의 고수라면 이름만 듣고 대충 무슨 부류의 무공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자연을 일극이라 칭했는가. 제법 재미있는 생각이로군. 이것이?”

이것이 무황의 무공이냐.

그 물음에 주호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가벼운 미소만을 짓고는 손을 거두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자네도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겠지.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는가? 무학이든, 신교든, 본좌에 관해서든 내키는 대로 물어보게.”

“음.”

주호는 잠시 망설였다.

천마라곤 하나 엄연히 구분한다면 자신과 대립되는 존재. 그런 가운데 쉬이 입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괜찮네.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하는 몸이야. 나름 기연이라고 생각하게. 못해도 천마라 불리는 존재였으니 몇 마디 조언 정도는 던져줄 수 있겠지.”

천마는 주호의 그런 감정을 읽은 듯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위천강은 둘의 눈치를 보며 슬쩍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제법 심각한 이야기가 될 듯싶으니 잠시간 밖에서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주호는 손을 저으며 그의 발걸음을 묶었다.

“되었다. 어차피 천마께서 나중에 이야기하실 터이니 같이 듣는 것이 낫겠지.”

“그렇습니까.”

“하하, 잘 생각했네.”

위천강은 엉거주춤하면서도 두 눈을 빛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은 조부인 천마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스스럼없이 대할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어 중원에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혹독한 수련과 고난을 견뎌왔던가.

그렇기에 이런 지경까지 옴에도 천마 앞에서의 행동거지는 극히 조심스러웠다.

“저는 상극인 두 가지의 기운을 몸에 품고 있습니다. 그것을 중도에 합치는 것으로 신공을 발현하지요.”

순수한 정의 기운인 청룡신공.

사도의 정점에 있는 적해.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혼원일극신공을 구성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저보다 하수를 상대할 때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고수를 상대할 때는 큰 걸림돌이 되지요.”

“그래서 그 문제란 것은?”

“…신공의 기운을 단전에 축적할 수 없습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위천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공의 기운을 단전에 축적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애초에 그 기운은 어디서…….

“…아.”

“그래. 필요로 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그 기운을 만들어낸다.”

위천강이 깨달은 것을 눈치챈 주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일말의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단전 내에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일각. 그 이후엔 다시 흩어져 원래의 형태로 돌아 가버리지요.”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신공의 기운을 단전에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인바. 다행히 지금까지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상대할 적들을 생각하자니 심히 마음에 걸렸다.

“…조금 생각할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도움을 줄 순 있겠군.”

“그렇습니까.”

천마의 말 대로 기연이라면 기연이었다. 세상천지 어디서 천마에게 무공에 관한 조언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이쪽에서 대대적인 반격으로 나서는 것이 얼마 뒤의 일이었지?”

“…날이 밝은 뒤로부터 사흘 뒤입니다.”

위천강의 대답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틀은 있는 것이군. 그렇다면 충분하겠어. 마침 같이 온 일행이 있다고 했었지. 천강이, 네 동기들이라고.”

“예. 학관에 있을 적 교관님께 같이 사사한 친우들입니다.”

“친우, 인가. 이곳까지 함께 올 정도라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네 힘이 되어줄 터. 그렇다면 마전을 열기에 충분하겠군.”

“…예? 마동 말입니까.”

위천강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던 차 옆에 있던 주호가 의문 어린 시선을 보내자, 이 건물 뒤쪽의 지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간략히 말하면 비동, 그러니까 수련장으로 사용되는 곳입니다.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수련장이라곤 하지만 위천강의 반응을 보자면 평범한 곳은 아닐 터. 그 물음에 천마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신교의 주인이 그리하겠다는데 뭐라 할 사람이 있겠느냐. 어차피 천마전은 교주와 직계뿐이 출입하지 못하거늘. 대다수는 마동의 존재 자체조차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면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천마는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주호는 눈치껏 위천강의 뒤를 따라나섰고, 천마전의 밖으로 나섰을 때가 돼서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마동이란 것은?”

“대대로 신교의 후계에만 허락되는 수련장입니다. 어디 깊은 산골짜기의 심산유곡보다 훨씬 농밀한 자연지기가 몰려 있는 곳이지요. 운기를 한다면 몇 배의 효용을 볼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조형한 지형인가.”

“진법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고작 그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건 다른 이들의 의사를 물으며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천강은 살짝 들뜬 발걸음으로 나아갔고, 이내 여독을 풀고 있던 제 친우들과 마주했다.

“…마동?”

“이름이 조금 꺼림칙한데.”

“막, 강시로 만들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후기지수들의 반응은 살짝 떨떠름했다. 이름부터 분위기가 살벌했을뿐더러, 천마신교의 직계만이 받는 것을 어째서 자신들에게까지 베풀어주는지 천마의 저의가 의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답답이들아! 기연이 별것이겠나! 이게 바로 기연이란 말이네! 신교의 소교주가 받는 수련이 어디 개뼈다귀로 보이나!”

그렇기에 오히려 제안하는 위천강의 속이 터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 광경을 보며 슬쩍 웃음을 흘리던 주호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좌중에 말했다.

“그래. 흔치 않은 기회인 것은 명백하다. 나도 지켜보면서 위험한 것 같다면 곧장 개입할 터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관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사실 조금 흥미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걸 하면 나도 자네처럼 순식간에 경지를 뛰어오를 수 있는 게인가?”

순식간에 여론이 뒤바뀐다. 그것에 위천강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호를 바라보았다.

“제가 이렇게 인망이 없었습니까?”

“평소 행실을 잘 되새겨보도록.”

“제가 무엇을…….”

위천강의 말문이 막혔다.

학관에 있을 때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생활했다. 이들이 수련을 권할 때마다 빼먹지 않고 대부분 참여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와 반대로 풍류에서도 한 획을 그은바. 그러한 것들을 즐기지 않는 천후나 철대환까지 끌어들여 난리를 피웠다.

“…끄응.”

“뭐, 그런 것이네. 그렇다고 해서 자넬 믿지 않는 건 아니야. 다만, 우리도 이쪽의 입장상 조심스러울 필요는 있다는 것이지.”

놀리려는 것이 사뭇 지나쳤던 것을 깨달았는지 선우연이 슬쩍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인바. 위천강은 그것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착한 내가 참아야지.”

그것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

마동은 천마가 자리한 건물 지하에 있었다.

주호는 아까의 대화 중 이곳에 공간이 있다는 것은 알아차렸다. 하지만 밖으로 빠져나가는 뒷길이라 짐작했지, 이토록 큰 시설의 지하 연무장이 설치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기의 분포가 다르군.”

“화산의 선산에 갔을 때도 이보다 농밀하진 않았네. 참으로 신묘할 따름이야.”

위천강의 안내로 마동에 진입한 그들은 각자 신기하단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론 천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호와 이야기하며 무리한 탓에 상태가 좋지 못했고, 굳이 불편한 제 몸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보이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자자, 신기한 것은 알겠으나 집중해주게. 마동은 그 수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뉘네. 그것을 모두 지난다면 나만큼은 아니겠으나 자네들 역시 얻는 것이 많을 테지.”

“그래서, 무얼 하면 되는가.”

근래 경지가 침체되어 있던 선우연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의욕을 드러낸바. 그 모습에 위천강은 씩 웃으며 그들 앞에 여섯 개의 목함을 내려놓았다.

“이건?”

“확인해보게.”

천후가 먼저 목함을 열었다.

안에 있던 것은 정체 모를 액체가 담긴 병과 마찬가지로 정체 모를 단환이었다.

“교관님께선 내가 이리 급속도로 강해진 것이 마공의 작용이라 하셨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네. 마동의 과정은 가장 빨리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촉진의 계기를 주는 것이야.”

“그게 마공 아닌가.”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장사의 단골 대사가 아니던가.”

“…이 자식들이.”

위천강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켰으나, 이내 한숨을 내쉬며 목함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건 마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네. 내가 먹은 것과는 궤가 달라.”

“…어ᄄᅠᆫ 건가요?”

남궁연이 주호를 향해 슬쩍 목함을 내밀어 왔다. 곧 상태창이 영약과 병에 든 액체의 성분을 분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를 내어놓았다.

“문제는 없다. 오히려 제법 좋은 영약이라 할 수 있겠어. 대환단이나 자소단 만큼의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강호에서 쉬이 접하기 힘든 수준이다.”

“…맞습니다. 전부 몸에 좋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군요. 섭취해도 딱히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주호와 마찬가지로 단숨에 그것을 파악한 당천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동의 일 단계는 이것들을 전부 흡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네들도 느꼈다시피 이곳은 진기가 풍부하지. 즉, 운기를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야.”

“흠.”

위천강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인 철대환이 그 누구보다 먼저 영약을 삼켰다. 그러곤 망설임 없는 손놀림으로 병을 열어 내용물을 마셨고, 한쪽으로 나아가 가부좌를 틀며 운공을 시작했다.

“…우리도 하세.”

“쩝.”

선우연과 당천유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철대환의 뒤를 따랐고, 곧 다른 이들 역시 과정을 함께 했다.

“저는 다음 단계의 준비를 하고 싶은데, 이쪽은 교관님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다.”

주호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위천강은 자리를 벗어나 한층 더 밑으로 내려갔다.

“…….”

고요해진 연무장 위로 여섯 명의 후기지수가 가부좌를 틀고 있다.

천후, 남궁연, 악비산은 절정에 이르렀고 선우연, 당천유, 철대환은 초일류 끄트머리에서 벽을 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들과 비슷했던 위천강이 순식간에 몇 단계의 경지를 뛰어넘은 것을 보면 맹탕은 아니라는 것일 터.

‘사뭇 기대되는군.’

주호는 옅게 미소 지으면서도, 이곳으로 들어오기 직전 천마가 해준 조언을 되새겼다.

그 역시 지금의 경지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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