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238화 (238/300)

#238화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후기지수들은 이곳에 청룡단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그렇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이들과 같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인바. 하지만 주호가 보낸 전음에 모두 정신을 차리곤 각자 제자리를 지켰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설마 우리를 미끼로?”

“아니, 대체 우리가 그럴 이유가 무엇이겠소!”

더러는 의심 어린 눈초리로 감찰대 마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절대 아니라며 격렬하게 부정했지만, 안타깝게도 서로 사이에 금이 간 관계는 쉬이 회복하기 어려워 보였다.

“우리는 불필요한 전투는 원하지 않는다! 그쪽이 외부 입교자들로 이루어진 인원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마교의 요인들만 내어준다면 순순히 물러가겠다!”

“…….”

이미 이쪽의 정체까지 전부 파악 당했다는 것에 좌중은 또 한 번 술렁거렸다.

“도대체 정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오! 대관절 이 후미진 곳까지 무림맹 청룡단이 왜!”

“제기랄! 여기서 붙잡히면 최소 철옥 신세이거늘!”

“…차라리.”

한창 마교에 입교하는 것으로 부풀어 있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추락하며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종래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감찰대의 마인들을 바라보며 입가를 늘어뜨리기까지 했다.

“…미안하지만, 다 살고자 하는 짓이 아니겠나.”

“이놈들! 신교에 입교하려 할 땐 언제고!”

“다 네놈들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마도 제일이라며! 고작 청룡단 하나 막지 못해 이 꼴이면 누가 믿고 몸을 의탁하겠나!”

오십여 명의 외부 입교자 중 열댓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고수의 말에 동조했다.

“…이, 이!”

감찰대의 마인이라고 해봤자 고작 다섯. 무공 수위도 이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기에 곤욕을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인간이란 참.’

주호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마교를 목전에 두어 시야가 좁아진 것과 더불어 갑작스러운 청룡단의 기습에 이리 허둥지둥하는 꼴이라니.

챙-!

선두에 있던 누군가 조여오는 포위망을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들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다른 이들 역시 병장기에 손을 올렸고,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치달았다.

함께 맞서 싸워도 부족할 판국에 내분까지 일어난 마당. 마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어갈 때, 허공에 시퍼런 검광이 번뜩였다.

서걱-!

제일 선두에 서 있던 고수가 머리부터 반으로 쪼개지며 갈라져 내렸다.

종래엔 후끈한 피 냄새와 함께 손을 쓸 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바.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입을 벌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배알도 없는 새끼들. 청룡단과 맞서 싸울지, 내게 죽을지 결정해라.”

주호는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그 위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동시에 서슬 퍼런 기세로 그들을 노려보며 선택을 종용했다.

감찰대 마인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냉큼 그 뒤로 달려간다. 몇 명인가 미적거리는 태도로 고민하는 듯해 보였지만, 조금 전 제일 선두에 있던 고수의 몸을 일도양단해버린 일수가 뇌리에 깊이 박혀버려 감히 반항하는 이가 없었다.

“이곳에 죽치고만 있는다면 덫에 걸린 쥐 꼴이 될 뿐이다. 내가 선두에서 정면으로 돌파할 테니 알아서들 잘 따라붙도록.”

주호가 적해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객잔 문가로 나서자, 침을 꿀꺽 삼킨 그들이 조용히 뒤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쪽의 불온한 분위기를 읽은 것일까.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려 함과 동시에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던 청룡단이 일시에 객잔의 벽을 부수며 난입했다.

“싸워-!”

주호의 일갈이 좌중을 휩쓸었다.

“에라이, 씨발-!”

“나도 이제 모르겠다!”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에 혈기가 차오른 고수들은 저마다 병장기를 뽑아들었다.

그들 역시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이라면 나름대로 뼈가 굵은 실력자들. 이왕 이렇게 된 것 청룡단의 목을 베고 그것을 공적 삼아 마교에 입교하리라 생각하며 살벌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그렇게 피 튀기는 혈전이 시작될 찰나, 험악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손뼉 소리가 좌중에 울려 퍼졌다.

짝짝짝-!

“훌륭하다. 더 없이.”

주호의 눈이 순식간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천마신교 감찰대 대주 진양천.

용조대에서 마주했던 진웅보다 한 수 위의 고수로 청룡단 속에 섞여 있던 그가 앞으로 나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남칠흉. 대형인 자네는 분명 호(虎)라 했지. 용조대 쪽에서는 자네를 적호라 하던데. 으하하하.”

일촉즉발의 상황 가운데 벌어진 갑작스러운 이변에 모두가 적응하지 못한 태도였다.

주호 역시 다른 이들과 짐짓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떠보는 것이었나.”

“그렇네. 이 후미진 곳에 청룡단은 무슨 얼어 죽을 청룡단인가. 우리는 자랑스러운 천마신교의 교주 직속 감찰대.”

천마신교, 교주 직속. 감찰대.

그 세 단어에 좌중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본인은 감찰대주인 진양천이라 한다. 이리 다들 먼 곳까지 온 것을 환영하지. 다만, 그 이전에…….”

진양천이 가볍게 눈짓하자 청룡단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마인들이 달려들어 외부 입교자 중 일부를 공격했다.

느닷없는 기습이었기에 그들은 당황하며 검을 들었지만, 진양천은 가벼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하하, 떳떳한 자는 가만히 있으시게. 이쪽의 칼날은 배신자들과 숨어든 간자들에게만 향할 것이니.”

실제로 마인들은 배반의 기미를 보였던 이들만을 골라 공격했다. 나머지는 움찔하면서도 자신이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땀에 젖은 손을 바짓단에 쓱 닦았을 따름이었다.

“자네 이야기는 진웅에게 대충 들었네. 하남칠흉이라니. 중원의 호사가들도 보는 눈이 없군. 이 정도의 고수를 고작 그런 것에 묶어두다니.”

진양천은 호감이 잔뜩 섞인 웃음을 터트리며 주호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남칠흉의 대형인 호라 하오.”

“뭐,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네. 호라 부르면 너무 무게가 없으니 적호 어떤가.”

“…마음대로 하시오.”

“시원시원해서 좋군. 배신자를 쳐 죽이는 그 칼질도 제법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네, 하하.”

진양천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마인들은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쉰 남짓한 인원에서 스물일곱으로 줄어든 외부 입교자들은 전부 그들의 인도에 따라 다른 곳에 준비되어 있던 마차에 탑승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천마신교를 향해 달려나갔다.

“입신양명을 위해 마교에 귀의했다. 참으로 간단명료하기 짝이 없군. 응당 자네 정도의 고수라면 이렇게 일관성이 있어야 함이 옳겠지.”

후기지수들은 이전과 같이 따로 마차를 배정받아 고즈넉하게 타고 있는바. 오직 주호만이 진양천의 권유로 그의 마차에 함께 동승했다.

“진웅, 그의 말로는 신교 내부가 혼란스럽다고 하던데 맞소?”

“맞는 말이지. 소교주를 비롯한 일부 역도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지. 사실 말하기도 부끄럽네. 소교주께서는 역도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계신 것이니 말이야.”

진양철의 말에 주호는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그런 식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나.’

애초에 정당성을 따지자면 당연히 적통인 소교주 쪽에 있었다.

하지만 소교주가 사탕발림에 넘어갔다는 것을 이유로 삼는다면 마뇌를 필두로 한 그들에게도 명분이 생기는바. 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지만, 사뭇 진지하게 말해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하루 이틀 세뇌된 것이 아닌 듯싶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이 빨리 풀릴 것 같군.’

조만간 총공세를 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헛소리는 아니었는지 어떻게든 이쪽의 환심을 사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나 마나 적당한 자리의 감투를 대가로 제일 치열한 격전지에 처박아 두려하는 것일 터. 애초에 외부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유입된 자원이니 그들로서는 실질적으로 손해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뭐, 그리 걱정하지 말게나. 어차피 대세는 이쪽에 기울었으니 적당히 발품 팔며 제 공적 치를 채우면 되는 일이네.”

“쉬운 일이군.”

주호는 창가에 팔을 기대며 짧게 대답했다.

***

하루 하고도 반나절 뒤.

청해에서 신강으로 넘어온 마차는 대천산 인근으로 접어들었다. 본래 기록이라면 최소 사흘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전쟁 중인지라 가도가 잘 닦여 있어 멈추지 않고 쭉 달려오게 된 것이 큰 요소로 작용했다.

다만, 대천산의 인근의 풍경은 그들이 예상한 것과 사뭇 달랐다. 삭막할 줄 알았던 마을의 분위기는 더 없이 활기가 넘쳤고 어지간한 도시 시내보다 많은 사람이 왕래하며 거리를 가득 채웠다.

“…전쟁 중인 것 같지 않은 모습이군요.”

외부 입교자들은 잠시 마을 객잔에 대기하게 되었다. 철대환은 처음 당도한 신강의 풍경에 호기심을 보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교주를 필두로 한 세력이 대천산 내부를 장악했다고 했으니 마뇌 쪽 세력은 그 밖으로 밀려났겠지. 이리 북적거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쩐지. 간간이 굵직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습니다.”

주호 역시 가늘어진 눈으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 마을에만 있는 인원만 전부 가볍게 헤아려 보아도 족히 몇천에 이르렀다.

마을이 이곳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닐 테니 그 전력은 최소 만 단위라는 것일 터.

‘대천산에서 농성한다고 하여도 이만한 숫자가 일시에 들이닥친다고 하면 버틸 수 있을까.’

굳이 승리할 필요까진 없었다.

마검과 권마 쪽에서 청해 본단을 습격해 그쪽 세력을 흡수할 때까지만 버틴다면 어떻게든 이쪽의 흐름으로 잡을 수 있을 터.

문제는 그러기조차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마도 제일이라 할 만하네요. 청해와 사천, 감숙으로 그만한 마인들이 나가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숫자가 남아있다니.”

“남궁세가와 비교하자면 어떻소?”

선우연의 물음에 남궁연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세가의 전력과 속가 제자들을 전부 헤아린다고 해도 고작해야 삼천을 조금 넘을까 싶어요. 아무리 그래도 단신으로는 마교에 대적할 수는 없겠죠.”

“화산도 대강 비슷하오. 속가 제자 수는 조금 더 많겠지만, 아무래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오.”

선우연의 말에 악비산과 당천유 역시 비슷한 감상이라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문이라면.’

한쪽에서 잠자코 도신을 닦고 있던 천후는 천천히 머릿속으로 서로 간의 전력을 그렸다.

당연히 절대적인 전력은 마교 쪽이 훨씬 많다. 정면 대결로 간다면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터.

하지만 사신문의 장기는 물밑에서 활성화된 정보망과 기동 타격, 암습에 있었다.

최소한 그들의 발목 힘줄 정도는 끊어낼 수 있을 터.

똑똑-.

그러던 차, 그들이 있던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곧 모습을 드러낸 이는 진웅의 후배로 그들을 이곳까지 안내했던 감찰대의 무인인바. 그는 주호를 향해 사뭇 정중한 태도로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대주님의 전언을 들고 왔습니다.”

“흠.”

담담히 그것을 받아든 주호는 서찰을 펼쳐 적힌 글귀를 읽어나갔다.

“확인했다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모쪼록 무운을.”

마인이 떠났을 때, 주호는 탁자 위로 그 서찰을 펼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위천강 그 녀석과 다시 만나게 될 때가 머지않은 듯싶구나.”

익일(翌日) 인시(寅時).

마뇌를 필두로 한 마교 세력의 총공세가 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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