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236화 (236/300)

#236화

주호 일행은 권마 측에서 붙여준 길잡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청해에 있는 마교 본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배정받은 곳은 다두곡(多頭谷)이라는 골짜기에 자리한 열두 번째 부대, 용조(龍爪).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마교에 입교하고자 하는 이들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역할의 시험장이었다.

“용조 부대는 감숙 전선에서 종횡하는 사도맹의 간자를 막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공을 세우는 이만이 대천산으로 갈 수 있는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용조 부대는 수백 명으로 이루어진바. 부대장이 말하는 영예에 해당하는 이는 극히 소수가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저마다 새로운 시대에서의 입신양명에 대한 부푼 꿈을 안은 채 자신이라면 그 소수에 들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수백 명이 내뿜는 함성이 다두곡을 울린다. 그 군중 안에 섞여 함께 자리하고 있던 선우연은 살짝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슨 신흥 종교 같군.”

“애초에 천마신교 자체가 천마를 숭상하는 종교가 아닌가. 이상한 것 없는 일이지.”

“그도 그렇군. 참, 말세야.”

당천유의 말에 한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정도의 명문으로 구파일방 중 한 곳인 화산파의 적통인 자신이 설마 마인 행세를 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일행 역시 모두 같은 표정. 오직 주호만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다들 정신 단단히 차리도록 하여라.”

자신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적진이다. 까딱 잘못해서 정도 문파의 후기지수라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빠져나갈 수 없는 천라지망이 펼쳐지게 될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무림맹 쪽을 상대하라고 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권마 쪽에서 무언가 조치를 해준 듯싶군.”

외인(外人)을 받아들이는 예비 부대는 용조와 천각 두 곳이었다.

용조와 달리 천각은 무림맹을 상대로 싸우는 부대. 만일 천각에 배정되었다면 아군을 상대로 칼부림을 할 수도 있었기에 곤욕스러운 상황에 빠질 뻔했다.

“자, 각자 배정받은 막사로 돌아가도록! 차후 해야 할 일은 각 조 조장이 알려줄 것이다!”

작금 용조대의 인원은 총 삼백일흔아홉 명. 마교는 그들을 스물씩 한 개조로 묶어 총 열아홉 개 조가 형성되었다.

특별한 기준 없이 들어온 기준으로 채워 넣은 듯 주호 일행은 일곱 모두 예외 없이 한 개조로 편성된바. 문제는 남녀도 구분하지 않은 채 모두 한 막사로 몰아넣었다는 것이었다.

“여자라고 해서 특별대우는 없다. 뭐, 굳이 다른 이들과 쓰기 싫다면 내 개인 막사에서 함께 지내도 좋겠군.”

주호 일행이 속한 조를 인도하는 마인이 남궁연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입교자 중 여성은 적은바. 간간이 있는 소수는 모두 무시하지 못할 수준의 고수로, 쉬이 건드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개…….”

선우연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달려들 찰나, 악비산이 두꺼운 손으로 어깨를 부여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각오했던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당사자인 남궁연은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그 말을 흘려듣고 있지 않은가. 그런 와중에 괜한 소란을 일으킨다면 그녀의 인내심을 부질없게 만드는 일이었다.

“운이 좋군. 여자와 한 막사에 배정된다니.”

“하남칠흉이라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들 우리와 같은 곳에서 놀겠다니.”

“막사에 도착만 해봐라. 잔뜩 귀여워해 주마.”

하지만 남궁연의 미모가 어지간한 것인가. 화장과 옷차림으로 그 청초함을 가렸다곤 하나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들과 같은 조에 배정받은 무인들은 연신 음담패설을 내뱉었고, 함께 이동하던 다른 조의 사람들은 모두 부러운 눈치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막사에 도착한 직후, 마인은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곳이 너희 조의 막사다. 각자 짐을 풀고, 지급된 무복으로 갈아입도록. 그 이후엔 이 조를 이끌 조장을 정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정합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마인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수단과 방법은 맡기겠다. 외부까지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허용하지. …그러니 가급적이면 조용히 처리하도록.”

마인의 두 눈이 진한 아쉬움을 표하며 남궁연에게 머물렀다.

마인들은 외부의 입교자들과 달리 엄격한 기강이 잡혀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음심이 혹하더라 할지라도 괜한 소란을 일으킨다면 목이 간당간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기강 아래서 자유로운바. 오히려 잔뜩 날뛰게 해주라는 명령이 상부에서부터 내려왔다.

“조장은 조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지닌다. 차후 출세하는 데도 중요한 공적으로 기록되지. 뭐,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한 시진 뒤쯤에 올 테니 그때까지 알아서 잘 결정하도록.”

마인이 떠나고 막사의 문이 닫힌다. 동시에 하남칠흉을 제외한 열셋의 마인은 서로 시선을 맞추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사도맹의 출신으로 산서에서 활동했던 환영검(幻影劍) 진호백이다. 조장을 자원하는 이가 없다면 본인이 하고 싶네만.”

환영검 진호백.

사도맹 무력 조직에서도 제법 이름을 알린 고수였다. 다른 이들 역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긍정의 뜻을 표했다.

“환영검이라면 우리를 대표할 만하지.”

“진 대협과 함께 되어 영광이오. 본인은…….”

“하하, 나도 사도맹의 출신이었소. 혹시 귀랑이라 들어본…….”

진호백은 씩 웃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하남칠흉이 일곱이라 하지만, 이쪽에는 자신을 포함해 열셋이 있다. 과반수가 동의하는데 고작 일곱으로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그렇다는데, 일단 조장은 본인으로 결정된 듯하군.”

양쪽으로 늘어진 침상 가운데 뚫려 있는 통로로 의자를 가져온 진호백은 그 위에 대충 걸터앉아 거만한 표정으로 하남칠흉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같은 조가 되었으니 서로 긴밀하게 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일단은 그쪽 여성분 먼저 어떠신가.”

다분한 의도가 담긴 도발이었다.

진호백은 처음 남궁연을 보았을 때부터 마음이 혹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건수를 잡으려 했고, 마침 조장이라는 좋은 명분이 생겼다.

당연히 제 일행을 건드렸으니 하남칠흉이 반발해올 터. 조장은 조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쥔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일단 전부 때려눕히고 그 뒤에 유유자적하게 그녀를 취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대담하군. 과연 환영검이야.”

“으하하, 오래간만에 좋은 구경을 하게 되었군.”

뒤쪽에 있는 열둘의 지지자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이 하남칠흉보다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환영검이라는 확실한 고수가 있는 이상 그 일곱 모두 어렵지 않게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제 괜찮지 않습니까?”

“마인도 그러라 했으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선우연과 당천유가 제 주먹을 움켜쥐며 살벌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딱 죽기 직전까지만 곤죽을 내놓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주호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문을 지키거라.”

“…예?”

“누구도 도망치지 못하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곳을 막아라.”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 서린 음색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로서도 주호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살짝 경직된 모습으로 문가를 지키고 섰다.

“전 괜찮아요. 굳이 소란을 일으키실…….”

“아니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이런 이들에겐 걸맞은 상대법이 있었는데 그간의 삶이 주는 관성에 너무 젖어 있었어.”

주호는 무림맹의 무사가 되기 전 몇 년간 흑도를 굴렀던 경험이 있었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 발악하며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없어도 있는 척하며 자신을 부풀리던 꼴사납던 시기. 하지만 그때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적은 없었다.

“칠흉의 대형인 호(虎)다. 이쪽도 조장에 지원하고 싶은데.”

“호? 외자 이름인가. 하룻강아지 주제에 스스로 범이라 칭하다니 우습군.”

자신 앞에 선 주호의 모습에 진호백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뒤에 있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주호의 기개에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는바. 곧 진호백은 고개를 기울이며 제 목을 두들겼다.

“어디 조장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손속이나 겨뤄볼까.”

“검을 뽑도록.”

“검을 뽑아야 하는 건 네놈 같은데 말이지.”

척.

가볍게 손끝을 내밀은 그는 사뭇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자고로 고수란 상대의 걸음걸이만으로 그 경지를 파악할 수 있다. 본인이 보기에 네놈은…….”

진호백의 두 눈이 가늘어지며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띄웠다.

“영 아니올시다, 이 말이네.”

“…그렇다면야.”

주호는 어깨를 으쓱이곤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진호백 역시 천천히 자신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하남칠흉의 명성이 변변찮다고 해도 대형 정도라면 숨기고 있는 한 수는 있을 터. 그것이 무엇이든 대비만 하고 있는다면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다음 바로 반격을 꽂아 넣어 잘난 낯짝을 처참하게 만들어주마.’

자신의 별호인 환영검은 비단 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경지에선 권법과 수법도 제법 자신이 있는바. 그렇기에 서로의 거리가 지척에 접어들었을 때…….

퍽-!

새빨간 핏방울과 함께 산산이 조각난 이빨이 사방으로 비산 한다. 뒤이어 얼굴 쪽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진호백은 주춤거리는 모습으로 뒷걸음질치며 숨을 토해냈다.

“…뭐,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침을 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침상에 누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슬며시 몸을 일으키는바. 주호는 손에 묻은 끈적한 피를 바라보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이, 이놈!”

쉬아아악!

진호백의 손에 서린 기세가 사뭇 달라졌다. 대부분 귀청을 스치는 파공성에 주호가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며 그 죽음을 예상했지만, 또다시 뒤로 밀려난 것은 진호백 쪽이었을 따름이었다.

“…컥!”

재차 안면을 얻어맞은 그는 부러진 코를 부여잡은 채 신음을 토해내었다.

바닥으로는 걸쭉한 피가 흘러내리고 그 얼굴은 고통에 물들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하, 하하. 진 대협 재미없소. 얼른 본 실력을 드러내시구려.”

“연기, 연기군. 우리의 흥을 돋우려 연기한 것이잖소? 그러니…….”

채앵-!

다들 경직된 모습으로 그에게 말을 걸 찰나, 진호백은 거친 기세로 검을 뽑아들었다.

“…이 개새끼. 무슨 사술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사지를 찢어 죽여주마!”

“사술이라.”

주호는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디 끝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보자꾸나.”

***

용조대의 관리직으로 파견 나와 있는 마곡은 머리를 긁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진은 조금 안 되었지만, 이 정도면 끝나고도 충분히 남았겠지.”

하남칠흉이 모두 일곱인지라 반항이 제법 거셀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환영검을 위시한 무인들을 꺾기 어려울 터.

어떤 식으로든 결착이 나 있으리라 생각한 그는 자신이 배정한 조의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끄아악!

-사, 살려주시오!

다른 조의 막사는 아직 조장을 뽑는 데 한창인 듯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몇몇 죽어나가는 정도야 예상한바. 오히려 별 힘들이지 않고 쭉정이들을 골라낼 수 있으니 오히려 효율적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자, 그럼.”

자신의 예상대로 환영검이 조장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보다 못하지만 제법 굵직한 이름을 지닌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꿰찼을까.

마곡이 막사의 문을 열 찰나, 누군가 먼저 그것을 부수며 온몸으로 굴러 나왔다.

“…누, 누구. 환영검?!”

얼굴이 완전히 뭉개져 곧바로 알아볼 수 없었던바. 그 복장과 검의 형태로 겨우 그의 정체가 환영검 진호백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곡은 황급히 막사 내부로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누가 환영검을 이리 만들었을까. 그렇게 안을 들여다보자 진호백과 마찬가지로 곤죽이 된 이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 이건.”

하남칠흉.

자신의 예상을 깨고 그들이 나머지 열셋을 쥐어팬 뒤 주도권을 잡은 듯싶었다.

마곡이 그렇게 얼 타고 있을 찰나, 그의 등장을 한참 전에 눈치채고 있던 주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이의 멱살을 놓으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한 시진인가. 시간 참 빠르군.”

피 묻은 주먹을 내리며 그리 말하는 주호의 모습에 마곡은 자신이 마인이라는 것도 잊은 채 손끝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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