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지금 내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점창의 장로, 벽일산은 살짝 손끝을 떨며 제 옆에 있던 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인 표정인바. 경직된 장내의 분위기에 주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을 이었다.
“제 쪽에 연이 있는 조직으로부터 들어온 정보라 신뢰도는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현재 마교에 반란이 일어났고, 소교주를 필두로 한 구 세력과 현재 집권 중인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답니다.”
“…그게 정말인가.”
당정학 역시 크게 뜬 눈으로 되물었다.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마교가 돌연 장강 일대에서 철수해 저 멀리 영환산 부근까지 전선을 물린 것이 이해되었다.
“반란이라니!”
“시기는 좋군. 주축 병력이 전부 대천산을 빠져나간 때가 아닌가!”
“나라 해도 그 틈을 노릴 것 같긴 하네.”
“하지만 섣불리 믿기에는 너무 중대한 사안인지라…….”
“맞네. 이쪽의 전선은 이미 구축을 끝냈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여도 늦지 않을 걸세.”
막사는 곧 시끌벅적한 말소리에 휩싸였다. 사안이 중대하니 아무리 주호의 말일지라도 가벼이 믿을 수 없는 일. 그러니 각자 가정을 세우며 갑론을박을 벌여나갔고 종래엔 시장터보다 더 소란스러워졌다.
탕! 탕!
“다들 진정하게! 체통을 지켜!”
당정학이 탁자를 내려친 이후에야 끊이질 않던 목소리가 멈췄다. 그는 곧 고개를 들어 담담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주호에게 물었다.
“만일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들이 이리 쉽게 물러난 것도 납득이 가는군. 허나 이야기가 나왔던 대로 섣불리 믿을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해주길 바라네.”
“당연합니다. 정보가 사실이라면 한동안 마교의 군세가 움직일 일이 없을 테니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요.”
“헌데 궁금한 것이 있네. 적통을 이은 소교주가 반란의 중추라면 도대체 누굴 대상으로 싸우고 있다는 말인가. 천마?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이들 역시 궁금했던 사안인 듯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사정을 설명하려면 혈천신교에 관한 것도 이야기해야 하는바. 아직 하월벽이나 단철량과는 상의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전대 천마와 손을 잡고 몇십 년 전부터 마교에 투신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혈천신교라 부르고 있지요. 현재 소교주를 필두로 한 적통파는 혈천신교를 비롯해 그들과 손을 잡은 변절자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혈천신교? 혈교를 말하는 것이오?”
“다릅니다. 혈교는 천마신교를 뿌리에 두고 갈라져 나온 곳이지만, 혈천신교는 저 머나먼 서장에서부터 터를 잡고 활동하는 오래된 세력입니다. 그들은 마교가 천마를 섬기듯 제 수장을 신마(神魔)라 부르며 극진히 섬기고 있습니다.”
주호가 담담히 설명을 이어나갔음에도 다들 생소한 표정이었다. 더러는 그가 어떻게 이러한 것을 자세히 알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주호로선 밑천을 전부 드러낼 이유가 없기에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는 무림맹주인 단철량을 비롯해 점창파와 관계가 깊다고 알려진바. 침묵하고 있는다면 알아서 적당한 여론이 형성되리라 생각했다.
“…단주님.”
그때, 막사 입구에서 무림맹 청룡단원이 급히 안쪽으로 들어온다. 그러더니 초위현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고, 이내 그의 두 눈이 커졌다.
“…주 대협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맹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자면 별동대가 작전을 시작한 날의 밤을 기점으로 대천산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자세한 상황은 말씀해주신 것과 같습니다.”
“허어.”
“호재군요. 어떻습니까. 차라리 이쪽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것은.”
“여세를 몰아 맹공을 가한다. 저도 찬성입니다.”
“허나 조금만 더 상황을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림맹 쪽에서도 같은 정보가 들어오자 반신반의하던 장내의 분위기는 마교에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 확정되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앞으로의 방침을 결정하는 서로의 의견이 갈리는바. 사실 어느 것이 옳고 틀리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각자 관점과 걱정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 확실한 근거가 있었고 저마다 뒤지지 않는 설득력이 뒤따랐다.
“자넨 어찌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가.”
당정학이 주호에게 묻자, 장내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이미 옛적부터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검절이라면 무언가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않을까.
모두가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냈을 때, 주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영환산에 틀어박힌 마교의 군세가 어떤 파벌에 속해 있던 제대로 된 정신머리를 지니고 있다면 후방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전쟁이 지속되길 바라는 이들은 없을 겁니다.”
“그것은 즉?”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 하지 않을까 싶군요. 저였더라면 사절을 보내 임시로 화평 조약을 맺던가, 아니면 일정 구역까지 후퇴하며 싸움을 피했을 것 같습니다.”
“사절? 아무리 그래도…….”
“마인들이 사절을 보내겠습니까. 그 후안무치한 자들이.”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던 찰나, 막사 밖으로부터 누군가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 마교 측 진영에서 사절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도착했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
장내의 이목이 주호에게로 쏠린다. 그는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다행히 예상대로 됐군요. 이제 그들을 맞이할 인선을 꾸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승전 기념으로 축제라도 연 것인가. 영내의 분위기가 아주 좋군.”
연합군 외곽의 어느 막사.
마검은 느긋한 태도로 자신을 안내한 연합군의 무인을 보며 허물없는 태도로 말했다.
“마검, 너무 그리 격식 없이 말을 건네지 마시게나. 저들 시선에 우리는 삼두육비의 괴물이나 다름없으니.”
“이런, 미안하군. 내 중원의 아이와 말을 섞는 것은 오랜만인지라.”
마교 측 일행은 마검과 권마, 그리고 고루혈마로 이루어진 셋뿐이었다.
“…누, 누가!”
놀림당한 무인은 벌게진 얼굴로 소리치려 했으나, 곧 막사로 들어온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수고했네. 나가서 대기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당정학을 비롯한 연합군 내의 간부 몇몇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검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설마 이들을 이런 자리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그 자신 역시 몰랐던바. 그렇기에 손가락을 튕기며 그 면면을 파악하고 있을 찰나, 제일 후미에 들어온 주호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내가 말했지. 보통이 아닐 거라고.”
주호와 이미 구면인 권마는 씩 웃으며 코밑을 훔쳤다.
“…권마, 고루혈마에 그 옆은 마검인가. 감숙 전선을 이끄는 중이라 바쁠 텐데 여기까지 행차하셨군.”
“허어, 이쪽 사정까지 꿰고 있다니. 아니, 그리고 고루혈마 자네는 강호에 나서지 않은 지 꽤 되지 않았나.”
“나도 의문이군. 설마 단숨에 알아볼 줄이야.”
세 마두는 마치 제 안방에 자리한 것처럼 떠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은 사천 전선을 이끄는 당가의 정학이라 하오.”
“독패라. 독 좀 쓴다지? 마검이다. 반갑군.”
“권마.”
“고루혈마다.”
당정학이 먼저 자신을 소개하자 마교의 장로들 역시 저마다 말을 툭툭 내뱉었다.
“…….”
다만, 그 가벼운 태도에 연합군 측 간부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리 마두라 불릴지라도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행실은 마교를 대표해 온 이들이 행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독패를 비롯해 연합군 주축이라 할 수 있는 고수들이 온 것을 보니 이쪽의 사정을 알고 있나 보군?”
“…마교 내부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들었소. 소교주를 중심으로 마인들이 뭉치고 있다지.”
“허어, 거기까지 아는가. 어지간히도 깊은 곳에 세작을 박아놓았나 보군. 참으로 통탄할 일이야.”
마검은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혈광이 서린 눈동자로 당정학을 바라보았다.
“혈천신교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하는 건 그것을 확인한 후부터 하고 싶은데.”
“들어본 적은 있다만, 자세히는 알지 못하오.”
“그렇다면 자네는 어떤가. 분명, 청룡이라고 했지?”
검마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굳이 청룡을 운운한 것은 이쪽의 사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바. 주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당정학을 바라보았다.
“…….”
당정학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간의 자세한 사안을 모르는 이상 주호에게 맡기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한 판단이었다.
“먼저 말하자면 천마께선 중독되어 운신하시는 것이 불가능하다네. 천망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겠지?”
“…사도맹주를 은거하게 했던 것이지. 출처는 마교라 들었거늘, 역시 혈천신교의 소행인가.”
“그들의 사주로 본교에서 만들어낸 것은 맞다네. 그렇기에 효과는 절대적. 설사 교주라 할지라도 그 여파를 피해 가실 순 없었지. 그 나약한 사도맹주처럼 쓰러지지는 않으셨으나, 해독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인과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겠군. 천마가 중독된 것은 반란 전인가, 후인가.”
“나중이네. 이쪽이 불손한 움직임을 보이자 그들은 교주님의 안위로 협박을 했지만, 우리는 명령을 따랐지. 교주님의 수신 호위들에게 듣기론 정말 지독하다고 하더군.”
주호와 마검은 서로 담담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쉬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인바. 옆에서 듣고 있던 당정학을 비롯해 연합군의 고수들은 모두 경기를 일으키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온 건 예상했듯 휴전을 제안하고 싶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회군해서 싸움에 가세하고 싶은 차인데, 뒤통수가 뜨뜻해서 그러고 있지 못하니.”
“그리고 반란에 성공하면 다시 중원을 공격하겠다?”
“글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대로 신교가 저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된다면 중원 역시 재미는 없을 것이다.”
“협박할 처지는 아닌 듯한데.”
“협박이라니.”
마검은 허허 웃으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협박이 아니라 경고, 아니 이 늙은이의 조언이라 해두지.”
“어울리지도 않는…….”
“혈천신교의 주력은 아직 움직이지조차 않았네.”
“…주력? 혈천신교의 세력이 더 있다고?”
“저들의 본거지는 서장이다. 겉으로는 포달랍궁이니, 남만이니 하고 있지만, 이미 전부 혈천신교의 이름으로 규합된 지 오래지. 단순히 그 숫자만 하더라도 무시하지 못할 바인데, 지난 수십, 아니 몇백 년간 숨죽이고 살아왔으니 얼마나 많은 군세가 있을까.”
주호가 침묵하는 가운데 마검은 탁자 위로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정마대전은 시작일 뿐일세. 이미 양측간에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어. 그 상황에서 서장에서 수만의 군세가 올라온다면 어찌하겠나?”
“…그러니 화평을 맺자?”
“나는 여차하면 동맹을 맺을 생각까지 한다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마검의 태도에는 한점의 가식이 섞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교의 마두가 말하는 것을 섣불리 믿을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주호가 잠시 고민에 빠졌을 찰나, 마검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
그 돌발 행동에 연합군의 고수들이 긴장했다.
여차하면 이쪽에서 출수하기 위해 다들 잔뜩 긴장을 곤두세웠을 찰나, 마검은 탁자 위에 올려진 서신을 주호의 앞으로 밀었다.
“읽게. 그리한다면 알 것이야.”
“…….”
주호의 망설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입신지경의 고수들이 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 이들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을 테니 경거망동하지 못할 터.
그는 담담히 봉인을 뜯어 서신을 읽어나갔고, 이내 두 눈을 가늘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