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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229화 (229/300)

#229화

궁기가 이끄는 군세가 본대를 따라 장강 전선에서 후퇴한 지 얼마 후,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피며 그 뒤를 쫓던 별동대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수십 정도겠군요.”

마교의 진지를 살피던 장산철이 가늘어진 눈으로 보고해왔다. 무언가의 함정일까. 주호가 잠시 눈살을 찌푸린 채 그 너머를 바라보자 초위현이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본대가 생각 외로 선전해준 듯싶습니다. 후방을 막는 이들까지 후퇴시켜 끌어가지 않았습니까. 본대에도 인원을 남겨둘 여력조차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거점을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내버려 둔다고?”

진지 외곽으로 변변찮은 실력의 경계 무사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마교의 기강이 개차반이라 할지라도 이렇진 않을 터. 만일 그렇더라면 이미 진작에 연합군이 장강 일대를 점령하고 그들을 갈가리 찢어놓았으리라.

“함정일 수도 있으니 홀로 진입하겠다. 확인 후 신호를 보낼 터이니 주변 경계를 빈틈없이 하며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주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그 혼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판단. 오직 장산철만이 그 뒤를 따랐고, 그들은 어둠을 질주해 은밀하게 진지의 경계를 넘었다.

‘다 별 볼 일 없는 수준이군.’

경계 무사는 밖에서 보았던 듯이 고작해야 삼류를 웃도는 수준으로 신경 쓸 가치는 없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니 듬성듬성 자리한 화롯불이 텅텅 빈 막사 사이를 밝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만, 보이는 것처럼 인기척 하나 없었고 그 너머의 더 안쪽은 아예 불빛 하나 없어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정말로 본대가 활약해서 후퇴했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간 더 시간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본 주호는 이내 품에 손을 넣었고 신호탄을 꺼내 하늘로 쏘아 보냈다.

피잉-!

한줄기 붉은빛이 어둠 속에 피어올랐다. 머지않아 진지 밖의 어둠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마치 파도가 치듯 물밀듯이 이곳을 향해 밀려 들어왔다.

경계를 서고 있던 무사들은 순식간에 정리된바. 단숨에 가장자리를 넘어 안쪽까지 진입한 별동대는 주호와 마찬가지로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안쪽엔 아무도 없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속히 들어오는 보고에 지휘관들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식량창고와 무기고를 발견했습니다. 어찌할까요?”

초위현이 가늘어진 눈으로 물어왔다. 급히 그 일부를 실어나른 흔적이 역력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양만 해도 꽤 되는 규모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것들을 수습해 가져가는 방안도 떠올랐지만, 주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예상대로 전부 태운다. 연합군의 물자는 부족하지 않아. 괜히 마인의 것을 취했다가 탈이라도 난다면 그것대로 문제이니.”

만일 자신들이 남은 물자를 가져가리라 생각해 독이라도 뿌려놓았으면 어쩌겠는가.

그렇기에 주호는 예외 없이 모조리 불사를 것을 명했고, 이내 창고 사이로 자욱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마교 본대의 병참을 타격한 혁혁한 전공. 하지만 별동대의 분위기는 어딘가 미묘한 부분이 있었다.

***

“…마교의 본대가 장강 전선 일대를 버리고 후퇴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리도 당황스럽다네. 오히려 이쪽이 기만을 당했어. 어쩐지 저항이 적더라더니.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줄 알았건만 막상 강을 넘고 나서야 저들이 적은 숫자로 규모를 부풀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네.”

당정학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싸맸다.

장강 너머에 있던 마인들은 고작해야 수십 남짓. 그마저도 자신들이 장강을 건너자 줄행랑을 쳤다.

연합군의 본대는 주호가 이끄는 별동대가 마교 본진의 창고를 전소시켰을 때가 돼서야 그곳에 당도했고 임시로 거점을 잡은 뒤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렇게 반 시진 뒤 그들은 마교의 군세가 장강 일대를 버리고 영환산 일대까지 후퇴한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감숙 쪽은 요지부동이라 하네. 그쪽은 마교가 우세를 점하고 있는 곳임에도 진군을 하지 않고 있다지. 마교 내부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일단 이곳의 전선을 확고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리둥절한 틈에 저들이 다시 들이닥쳐 온다면 적잖은 손해를 입을 테니 말이지요.”

“다들 들었겠지. 우리는 달포 만에 장강 일대의 전선을 다시 수복했다. 허무히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당정학의 명령에 따라 장강 이남에 구축되어 있던 연합군의 전선이 이곳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물자와 인력의 수송을 위해 장강에 수십 개의 가교를 놓았고, 근처에서 지원받은 선박을 쉬지 않고 놀리며 이쪽 지역의 기반을 다잡으려 했다.

다행히 마교는 이틀 차가 될 때까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연합군은 성공리에 승전보를 올릴 수 있었다.

“으하하하! 꼬랑지를 말고 도망간 마인 놈들을 보게나!”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일시에 몰아친다면 마교 놈들도 별것 없을 거라고.”

연합군의 무인들은 짤막하게 주어진 휴식에 제 각자 축배를 들며 오랜만의 승리를 자축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이들이 있었으니.

“…전쟁이 끝나기라도 한 것 같군.”

“어쩌겠습니까. 그간 연이은 전투로 피폐해져 있으니 오늘만큼은 쉬라고 해야지요.”

“그래도 경계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되네. 그 부분은 명시해뒀겠지.”

지휘소 막사 안의 간부들은 바삐 움직이며 새로이 구축한 전선의 대한 정리로 쉴 틈이 없었다.

주호 역시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정세를 살피고 있는바. 그러던 가운데 막사의 문가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가르치는 제자입니다. 이야기 좀 하고 오지요.”

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막사 안이 잠시간 침묵에 잠겼다.

그의 입지는 이번 작전으로 인해 한층 더 높아졌다. 특히 쏟아지는 장강의 물결을 베어 가르던 그 신위는 검절이란 별호로 담기에 부족하다 생각되어 함께 별동대에 나섰던 이들 사이에서는 간간이 검신(劍神)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먼저 회의를 진행하고 있겠네.”

“서두르겠습니다.”

당정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주호는 천후와 함께 막사 뒤편으로 향했다.

그는 곧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자신 앞에 선 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이들은 문제없겠지.”

“예.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뵙고자 한 것은 문에서 들어온 정보를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정보?”

“대지급으로 극비에 달하는 서신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내용은…….”

“잠깐.”

주호는 자신들 주위로 가볍게 기막을 둘렀다. 그러곤 천후를 바라보며 계속 말하라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주동 세력은 소교주를 중심으로 한 구세대의 일원들, 그리고 기존 집권 세력이 그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전황은 백중지세이나 그 관계가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에 섣불리 단언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반란?”

“아마 천마신교 쪽에서도 자신들의 내부를 좀먹어 가고 있는 혈천신교의 세력에 저항하기 위해 봉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때이군.”

“그렇습니다. 본단이 텅텅 비어버린 작금 상황이라면 먼저 기습하는 쪽이 유리할 터이니 말이지요.”

“…….”

“…무언가 걸리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주호는 잠시간 고민했다.

위천강이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는 것은 남궁연밖에 모르는 일. 떠나간 친우에 대해서 좋은 기억만 남겨주려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소교주는 천강이 그 녀석이다.”

“…예?”

천후는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기에 주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쐐기를 박듯 재차 같은 말을 내뱉었다.

“너희들과 함께 내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위천강은 천마신교의 소교주였다.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농이 아니십니까?”

“농을 지껄일 정도로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주호가 어깨를 으쓱하자 천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신강의 출신, 동년배에 비해 월등한 무공, 그러면서도 일인 전승이라 둘러대는……. 오히려 유추해내지 못한 제가 멍청했군요.”

이전부터 그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제 나름대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공과 사의 구별은 지엄한 법. 천후는 이탈된 화제를 다시 궤도로 돌렸다.

“…그쪽 전황이 제법 치열하다고 합니다. 위쪽은 청룡께 어찌할지를 물었습니다.”

“문에서는 뭐라고 했지?”

“청룡의 결정에 따른다고 했습니다. 대신 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이야기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이것 참, 무거운 짐을 얹어 주시는군.”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문주인 하월벽의 입김이 들어갔으리라. 잠시간 골똘히 생각하던 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후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한들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건 없구나. 일단 연합군 쪽에 말한 뒤 상의해보아야겠다.”

“알겠습니다. 다른 건의 정보가 들어온다면 곧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호가 바쁜 것을 알기에 천후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몸을 돌렸다. 하지만 주호는 끝에서 그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

“천후, 너는 어찌하고 싶은가.”

“…….”

자신과 위천강은 기묘한 관계로 얽혀 있다. 하지만 후기지수들끼리의 관계에서는 서로 동고동락한 사이가 아니던가.

천후는 잠시간 걸음을 멈추고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주호를 바라보았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아닙니까. 주작의 후계인 저와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이지요.”

“…그렇군.”

“하지만.”

주호가 고개를 끄덕일 찰나, 천후는 제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고해왔다.

“그 이전에 서로 생사를 함께 한 친우입니다. 만일 그가 도움을 청해온다면, 저는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눈이었다. 그것에 옅은 미소를 지은 주호는 잘 알겠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막사로 향했다.

***

지휘소 막사는 한창 회의 중이었다. 안건은 당연히 침묵하고 있는 마교의 동태에 관한 것이었다.

탁자 위에 별다른 자료가 올라와 있지 않은 것을 보니 무림맹 역시 아직 이쪽 정보는 입수하지 못한 것일 터.

“…왔는가.”

“늦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이 겹치는 바람에.”

당정학의 말에 주호는 좌중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허허, 그럴 수 있지요. 주 대협께서 오셨으니 다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봅시다.”

세간에 주호는 점창과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문파의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점창의 장로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내했다.

“먼저 전해드릴 안건이 있습니다.”

“안건? 무슨 내용이오?”

“혹시 회의에 늦은 것과 관계있는 것이오?”

주호의 말에 다들 깊은 흥미를 드러낸다. 하나같이 현재 명성을 알리고 있는 그와 말문을 트고 싶어 하는 모양새였다.

“마교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돌연 장강 전선에서 후퇴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주호는 그 가운데 폭탄을 투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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