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225화 (225/300)

#225화

산적 무리를 관아에 인계하는 것은 갈산 표국이 도맡았다.

국주인 곽웅은 극진한 감사를 표하며 주호 일행을 대접하길 원했지만, 여정에 그리 여유가 있지 않았기에 정중히 사양한 뒤 다시 사천으로 향했다.

그렇게 이틀 뒤, 그들은 사천에 진입했고 자신들을 맞이하러 온 당가의 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외총관님!”

“하하, 오랜만입니다. 소가주.”

예전 당소혜의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사천에 왔을 당시 당가의 대표로 나왔던 외총관 당허유가 재차 그들을 맞이했다.

당허유는 당천유와 당소혜의 모습을 살피더니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 필두에 있던 주호에게 포권을 올렸다.

“검절 대협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가의 미래를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두 분 모두 기세가 더욱 출중해지신 것 같습니다.”

“두 아이의 노력 덕분이지요. 저는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감사와 겸양의 말이 오가며 간단한 인사 자리가 펼쳐졌다. 그러던 중 뒤쪽에서 슬쩍 헛기침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가 있는바. 당허유는 깜빡했다며 제 뒤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맹의 대표로 나오신 분이십니다. 듣기로는 서로 안면이 있다고 하셨지요.”

“오랜만입니다, 검절 대협.”

“청룡단주 아니십니까.”

공교롭게도 그곳에 자리한 것은 무림맹 청룡단주 초위현이었다. 그는 사뭇 열의가 가득 찬 시선으로 주호를 바라보며 힘 있는 표정으로 포권을 올렸다.

“맹주님의 명령을 받아 사백의 청룡단과 함께 대협의 뒤를 보좌하기 위해 왔습니다. 잡스러운 일은 모두 저희에게 시켜주시지요.”

“감사하기 짝이 없는 말씀입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리지요.”

생각지도 못한 지원이었다. 초위현 본인도 초절정 완숙에 이르는 고수에다가 맹의 청룡단 사백은 무시하지 못하는 전력일 터.

비록 사신문의 청룡단 일백에 비하면 다소 손색이 있겠으나,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헌데, 그분은?”

그러던 중 초위현의 시선이 주호 뒤편에 서 있던 거한에게로 향했다.

후기지수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내였다. 조금 집중해서 그 역량을 가늠하니 자신조차 감히 승부를 점치지 못할 기세가 은은하게 풍겨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산철이라 하오. 주 대협 밑에서 일하고 있소이다.”

“…하하, 이거 또 새로운 호걸 한 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기 그지없소. 맹의 청룡단을 이끄는 초위현이라 합니다.”

외모만큼이나 굵직한 목소리에 초위현은 살짝 긴장한 기색으로 인사했다.

서로 같은 이름의 조직을 끄는 입장이라 제법 동질감이 느껴졌으나, 겉으로 티를 낼 수 없는 노릇. 장산철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통성명도 끝난 듯싶으니 서둘러 이동하시지요. 가주께서 기다리십니다.”

그들은 곧 당허유의 인도를 따라 정사 연합군의 진지로 향했다. 사실 말이 정사 연합군이지 이곳은 정도 무림의 문파들만 밀집해있는바. 사도맹을 위시한 사도 문파들은 그와 반대편 구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은가.’

주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무인들의 사기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보급도 잘 되고, 전선의 준비도 옛적부터 이루어진 덕분에 다들 어느 정도 전장에 적응한 듯 보였다.

여기서 더 전쟁이 지속된다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들 얼굴에 패색이 보이지 않다는 것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어서 오게나. 오랜만이네.”

그들이 연합군 막사에 도착했을 때, 사천당가의 가주 독패(毒覇) 당정학은 손수 밖으로 나와 그들을 맞아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마다 범상치 않은 내력을 지닌 이들이 그의 뒤를 따라와 주호에게 흥미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오랜만입니다, 독패 대협.”

“허허, 뭘 그리 격식을 차리나. 편히 부르게. 천아, 혜아야. 너희도 잘 지냈느냐.”

“…어찌 저희보다 교관님을 더 반기는 것 같습니다.”

당천유가 살짝 섭섭한 듯 농을 던지자 당정학은 씩 웃으며 답했다.

“네가 나라 할지라도 그랬을 것이다. 입신지경에 오른 고수께서 지원으로 왔으니 누가 반기지 않을꼬.”

“…입신지경!”

당정학의 말에 좌중이 놀람을 토해내었다.

그간 주호의 신위를 목격한 이들은 수없이 많았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호사가들이 소문을 퍼뜨렸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무위에 대해 누구 하나 공언한 자는 없던 상황. 무림 맹주 단철량 역시 자연스럽게 퍼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해 입을 열지 않았던 찰나에 당정학이 그리 말하자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이야기에 무게가 실렸다.

“외총관. 후기지수들을 막사로 안내해주게. 자넨 함께 지휘소로 가게나.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터인데.”

다분히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말이었다.

후기지수들과 갈린 주호는 장산철과 함께 그 뒤를 따랐고, 이내 지휘소라 명명된 막사에 접어들었다.

“전황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까?”

주호는 당정학을 향해 물었다.

굳이 자신의 무위를 거론해 이쪽의 존재감을 알린 것은 주위에 있던 이들의 이목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일 터.

당정학 정도 되는 인물이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정도라면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말도 말게. 마교는 지독한 놈들이야. 나름대로 명성을 알린 고수들만 집요하게 노려댄 탓에 이쪽이 휘청거릴 정도라네. 아직 좌중으로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알려진다면 필시 혼란이 일어나겠지.”

당정학은 한숨을 토해내며 지휘소 벽면을 가리켰다. 그곳에 쓰인 이름은 주호도 오가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제법 알려진 이름의 고수들. 그런 이들만 노렸다는 것은 마교의 저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자네 정도의 이름이라면 조금 여론을 누그러뜨릴 수 있겠지. 미안하네, 상의도 없이 해서.”

“그만큼 급박했던 것이 아닙니까. 맹주께서 절 이리 보내신 것에 그러한 이유도 있었겠지요.”

“이해해줘서 고맙네.”

“그래서 저희 쪽의 정보는……?”

“아, 그건 제게 있습니다.”

한옆에 잠자코 있던 초위현이 드디어 자신의 차례라는 듯 끼어들었다.

그는 황급히 탁자에 다가가 서류 더미를 뒤적거렸고, 이내 한 장의 보고서를 꺼내와 주호에게 내밀었다.

“장강 상류에서 이어지는 곳으로 화양이라 불리는 강줄기가 있습니다. 수심이 얕아 무인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길목이지요. 전세를 살피던 수색대가 그곳에서 그들의 인상착의와 똑 닮은 이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흠.”

보고서를 읽는 주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혼돈과 궁기 정도의 고수가 수색대의 기척을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노출했다는 것일 터.

“노골적이군요.”

“그렇습니다. 주 대협께서 자신들을 찾으리라는 것을 예상한 행동일 거라 예상됩니다.”

초위현은 주호가 그들을 찾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혼돈과 궁기라 불리는 이들이 마교 측 요인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곳이 연합군의 다음 작전지라는 것일세.”

“화양이 말입니까.”

“그래. 장강 상류 쪽은 물살이 가팔라 저쪽의 방해가 있다면 섣불리 넘기 힘드네. 토박이의 말을 무시하고 섣불리 강행했던 이들은 전부 물고기 밥이 되어버렸지. 그러니 비교적 수심이 얕은 곳으로 넘어가려 하네.”

“그곳이 화양이군요. 하지만 저들도 그것을 알고 대비해놓지 않겠습니까.”

“본대는 상류 쪽에서 시선을 끌 걸세. 동시에 별동대가 화양을 넘고 그 앞에 있는 병참지를 타격하는 것이지.”

“정석적인 작전이군요.”

“검절이라는 변수가 없다는 말이네.”

“제가 별동대를 이끌면 되겠습니까.”

“가능하다면 부탁하네. 차후 관측된 바로는 혼돈이라 불리는 이의 신형은 사라진 듯하더군. 어제까지 모습을 보인 것은 궁기 혼자였네.”

“자세한 작전의 개요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별동대를 이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혼돈과 궁기가 함께 있다면 홀로는 부담스러운바. 다른 이들과 함께한다고 할지라도 같은 입신지경의 고수가 아니라면 큰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정말로 혼돈이 떠났다고 한다면 한결 수월해지겠지만.’

욕심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저들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강호를 뒤덮을 대계를 준비하던 조직. 그러니 상대하면서 조급함을 버리고 이쪽 역시 앞으로의 시간을 저당 잡아 비율을 맞춰야 할 터.

“별동대는 맹의 청룡단 사백에 그리고 연합군의 고수 오백을 더해 총 구백이네.”

“…저와 함께 온 이들이 있습니다. 일백이 넘으니 천여 명에 다다르겠군요.”

“작전 결행은 이틀 뒤. 별동대 특성상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들이라네. 지형의 구조 파악이나 병참을 파괴할 계획은 이쪽에서 준비되어 있네. 할 수 있겠는가.”

당정학은 침중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 이번 작전에 비중을 크게 두는 듯했다. 그렇기에 주호는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후기지수 쪽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분명 제가 별동대를 운영한다고 하면 따라올 터인데.”

“자네가 어련히 판단을 내리겠지. 그 아이들도 이제 어엿한 무인이지 않은가. 강호에 나온 이상 자신이 내린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네.”

당정학은 짐짓 진지한 기색으로 말하는가 싶더니, 이내 메마른 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혜아만 좀 잘 챙겨주게나. 아직 여린 아이라…….”

“책임은 스스로 지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호가 옅게 웃으며 말하자, 당정학은 다시금 헛기침을 뱉었다.

“자네도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알 걸세. 더군다나 혜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으니 더욱이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이야.”

“주의 깊게 살피겠습니다. 여차할 땐 혜아를 엎고 도망치지요. 천유는 괜찮겠습니까.”

“그놈은 조금 고생해도 괜찮네. 무릇 당가의 가주가 되려면 산전수전을 다 겪어야 하는 법. 녀석은 너무 곱게 자랐어.”

뚜렷할 정도로 상반된 그 태도에 주호는 쓴웃음을 흘렸다.

***

이틀 뒤 늦은 밤.

연합군의 본대가 장강 상류에서 공세를 시작했을 찰나, 주호를 필두로 한 일천의 연합군 역시 움직임을 개시했다.

“예정된 작전대로 제가 선두로 나아가겠습니다. 이쪽에서 안전을 확보하면 따라오는 것으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저희도 확인했습니다.”

주호는 별동대를 세 개로 갈랐다.

먼저 자신을 필두로 한 사신문의 청룡단 일백, 그리고 기어코 이곳까지 따라온 후기지수들까지.

이쪽이 먼저 강을 건너 안전을 확보하고 길을 열면 그 뒤를 따라 초위현이 이끄는 무림맹 청룡단이, 그리고 연합군 간부인 진백이 이끄는 오백의 연합군 고수들이 강을 넘을 예정이었다.

스스스─.

밤바람은 스산하기만 하다. 주호는 그 건너를 주의 깊게 살폈으니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그렇기에 조심스레 강으로 발을 내디뎠고, 이내 그 위를 달려나갔다.

퉁. 퉁. 퉁.

절정에 달한 수상비(水上飛)의 수법이 강 위에 펼쳐진다. 물론 다른 이들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어 강 위에 나무나 디딤돌을 던져 그것을 밟아 뛰어오름으로 강을 건넜을 따름이었다.

화양은 작은 강줄기라 했지만, 어디까지나 장강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일류 경지의 오른 고수의 기준으로 열다섯 호흡을 내쉬어야 겨우 넘을 만한 폭으로, 어두운 밤이라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렇게 초위현을 비롯한 청룡단도 강을 건넜고, 진백과 연합군의 고수들만이 그곳을 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번보다 수심이 좀 얕은 것 같은데. 그 사이 가뭄이라도 들었나?”

한 고수가 의아한 눈으로 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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