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203화 (203/300)

#203화

무림맹주 검선(劍仙) 단철량은 사흘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무너진 무림맹 정문 건축 사업부터 하남을 비롯한 각 지역에 숨어든 마교의 잔당 색출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더욱이 정도 무림의 상징인 무림맹이 그렇게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에 전 중원이 출렁였다.

사천과 감숙에 방어선을 구축한 연합군 역시 별동대의 큰 피해와 더불어 그 본진인 무림맹의 소식으로 크게 사기가 저하되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더욱이 싸움 직후 공격당한 것이 무림맹 뿐이 아님을 들어 서둘러 진위 파악을 나섰고, 구파일방을 비롯한 세가 연합 같은 명문 문파가 무림맹과 같이 괴한의 침입을 받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전부 마황과 같이 적게는 수십 년에서, 많게는 수백 년 전에 천하를 호령했던 마두들이었다.

다행히 전시 중이었기에 각 문파의 장문인과 가주를 비롯한 이들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단철량은 그들의 피해에 위로를 전하면서도 무림맹을 비롯한 각 문파에 역천환혼대법이라는 마교의 주술을 전했다.

이미 사망한 고수의 혼을 불러와 육신에 깃들게 하는, 사악한 술법.

잠자코 있던 지난 수십 년간 역천환혼대법으로 그만한 숫자의 고수를 되살려낸 것일 터라고.

그 가운데 단철량을 비롯한 눈치가 빠른 이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그 마두들이 어느 한 곳으로 닥쳐갔다면 아무리 대문파라 할지라도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을 터.

그렇기에 모두 섬뜩함을 금치 못했다.

마교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굳이 인원을 산개해 각 문파에 보내는 것을 택했다.

누군가는 자신감의 발로라 했고, 누군가는 마도천하를 천명하며 선전포고를 한 것과 진배없다고 말했다.

“화산을 습격한 이들을 예로 들자면 입신지경의 다다른 고수인 흑수마제나, 그와 엇비슷한 경지인 수라혈마가 있었소. 하지만 그보다 밑의 경지인 일류 남짓한 고수들 역시 많이 자리했지.”

무림맹 회의장에서 각 문파의 장로를 비롯해 주요 구성원들을 소집한 단철량은 눈가를 누르며 말했다.

죽으면 시독을 내뿜던 습격자들.

명백히 살아 있는 인간이라 보기엔 힘들었다. 그렇다면 시신으로 만든 강시의 종류일 터.

일, 이류 고수의 혼을 불러와 이미 죽은 시신에 그것을 넣을 수 있다면.

설사 이성이 깃들지 않았더라도 살육의 본능을 깨운다면 움직이는 병기가 될 수 있을 터.

“음.”

“큰일이 아닐 수 없소.”

“화산에서도 그 때문에 제법 피해가 있었다지.”

“듣기로는 도검불침이라 했소. 마치 무쇠를 때리는 것과 같았더군. 검기 이상의 공격만이 그 몸에 흠집을 낼 수 있었다고 했으니.”

회의는 정오에 소집되어 약 두 시진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석상에서 오갔고, 이내 막바지에 이르렀다.

“참, 검절은 화산에서도 활약했다지요.”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발이 묶인 매화검존을 대신해 흑수마제와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장내에 있는 이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화산파 장로를 바라보았다.

본산의 대표로 그 자리에 있던 선청우는 짐짓 헛기침하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대협의 공로가 컸지. 비록 과거보다 손색은 있다지만 흑수마제가 입신지경의 고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 장문인께서도 그것을 인정하셨소.”

“오오.”

“잠룡이 따로 없군. 화산에서부터 걸출한 모습을 보였으니.”

“화산이 큰 은혜를 입었소.”

좌중은 놀람을 표했다.

무림맹의 무너진 정문 앞에서 마황(魔皇) 채진철과 싸우던 그 신위는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았다.

심지어 이곳에 자리한 이들 대부분 소란을 듣고 나왔을 때는 이미 싸움이 절정에 달해있었던 차.

이제는 수백 년 전의 인물이었지만, 마황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보다 더 가까운 역사 속 인물인 흑수마제를 쓰러뜨리고 마황과 대등히 맞서 싸웠다는 것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무림의 축복이 아닐 수 없소.”

“올해로 고작 스물일곱이라 했지요. 어찌 그 젊은 나이에……!”

“맹주. 검절이 맹주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소만, 물밑에서 조금 색다른 이야기가 퍼지고 있어서 말이오.”

청성파 장로가 슬쩍 의문을 드러내며 단철량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섣불리 묻기 저어되는 이야기였기에 자중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 눈치 없기로 소문난 청성파 장로가 그것을 입에 담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시선을 모았다.

“주호, 그이는.”

단철량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일반적인 고수였더라면 이런 식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터. 고작 스물일곱에 이르러 입신지경에 올랐으니 이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단철량은 신중히 단어를 고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스승이신 창천검신(蒼天劍神)께서 말년에 들이신 제자입니다.”

“창천검신께서! 그것이 정녕 사실이오?!”

다들 순수한 놀람을 토해내었다.

창천검신은 점창파의 전전대 장문인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이미 강호의 정점으로 불리던 고수였다.

“그렇다면 납득이 되는 군. 창천검신 정도 되는 고수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인재를 키워냈겠는가.”

“설마 말년에 제 내공을 넘겨주시기라도 한 것인가. 그러면 저리 뛰어난 성취도…….”

“맹주, 그렇다면 검절은 점창의 계보를 잇는 무인이라 보아도 무방하오?”

끝에서 민감한 질문이 나왔다.

단철량으로서는 이미 예상했던 것이기에 담담한 얼굴로 거짓이 점칠 된 대답을 내뱉었다.

“등선에 오르시기 전 유언으로 남기신 이야기가 있기에 점창의 계보는 잇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자신의 제자가 조금 더 자유롭게 살기 원하는 마음이셨지요.”

어차피 스승인 창천검신은 이미 몇 해 전 등선했다.

제자인 자신이 그렇게 말하는데 누가 딴지를 걸 것인가. 심지어 당대 점창의 장문인도 그보다 배분이 낮은바. 이미 언질을 해두었으니 이상한 말이 새어나갈 염려는 없었다.

“참으로 무림의 흥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니 이리 걸출한 인물이라니.”

“검절뿐만이 아닙니다. 각지에서도 서서히 무명의 신진고수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요.”

바로 며칠 전에 무림맹을 비롯한 각 명문 문파들이 습격을 받았지만, 회의장은 화기애애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쉰 단철량은 회의의 끝을 고했고, 이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거처로 되돌아갔다.

단철량 역시 맹주의 집무실로 되돌아갔고, 그보다 먼저 자리하고 있던 주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의는 잘 끝나셨습니까.”

“잘 끝나지 못했네. 말년에 거짓말만 늘어서는 원. 자네가 나와 동문이라 둘러대느라 얼마나 진땀 빼었는지.”

“하하, 덕분에 든든할 따름입니다.”

주호는 씩 웃으며 단철량에게 감사의 말을 고했다.

그는 이미 마황과 싸운 여파를 모두 회복했다.

다친 곳 없이 기력만 쇠했을 뿐이니 푹 쉬는 것으로 힘을 보충했고, 단철량의 도움으로 마황과의 싸움에서 있었던 깨달음이나 심득을 흡수하는 것도 마무리했다.

‘아쉬운 것은.’

주호는 제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라면 이런 거친 싸움 직후 경지가 한 단계 올라가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신지경에 오른 직후선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듯 아직 一 단계에 그치고 있을 따름이었다.

“회의 중에 자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네. 아마 앞으로는 더할 터지.”

“그렇습니까.”

“이제 무림 맹주 자리도 꿈이 아니게 되었어. 어떤가, 자네가 이립쯤 되면 적당할 턴데 해보고 싶은가?”

“마음만 받겠습니다.”

주호는 씩 웃으며 그 말을 되받아쳤다.

그 정도 시기면 이제 전쟁 직후 뒷수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즉, 재미는 혼자 다 보고 귀찮은 일만 맡기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쯧. 젊은 사람이 패기가 없어. 작년 초까지만 해도 맹주직을 달라고 당돌한 태도로 말했거늘.”

“그런 일도 있었군요.”

주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의 자신은 패기가 넘쳤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기에 제법 진심으로 이야기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각오하게. 수많은 문파가 자넬 영입하기 위해 찾아올 걸세. 귀찮으면 아예 자네가 개파해도 되겠군. 이름은, 검신문. 어떤가. 작고하신 내 스승님의 별호에서 따왔는데 어떤가. 창천문은 이미 있으니 말이야.”

“…그건 생각해보지요.”

개파.

새로운 문파를 여는 것을 말했다.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였기에 머릿속 한구석에 저장해놓기로 했다.

“뭐, 잡담은 여기까지하고.”

단철량은 가벼운 표정을 거두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그 진중한 태도에 주호도 미소를 거뒀고, 진지한 시선으로 맹주를 바라보았다.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네.”

제법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어진 말이었다.

***

“후우.”

선우연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검을 거두었다.

학관의 강의가 모두 끝난 가운데 그는 여느 때처럼 수련을 이어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그 마음은 편치 않았다. 무림맹이나 다른 명문 문파와 같이 화산도 마두의 습격을 받았다.

다행히 그 얼마 전의 일이 있었기에 다른 곳보다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은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바로 본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지만, 스승님께서 직접 서신을 보내 경거망동하지 말고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다독이라 전해왔다.

정천학관 내에는 그 자신처럼 체류하고 있는 화산의 후기지수가 많았다. 제 각자 출중한 실력을 지닌 이들로 장래에 선우연과 같이 화산을 이끌어나갈 인재들이었다.

스승의 명을 받은 선우연은 장문인의 제자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다독였고, 그 자신도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수련에 열중했다.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땀 흘리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은 없다. 그렇게 한바탕 대련 직후, 문득 의문이 생겨 중얼거렸다.

“교관님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려나.”

“글쎄. 그렇게 화제가 되었는데 맹에서 쉽게 나주시겠나. 어쩌면 돌아오시지 않을 수도 있겠지.”

“…설마.”

악비산의 말에 선우연은 정말로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습격이 있던 날로부터 사흘째.

역천환혼대법이라 불리는 마교의 주술이 큰 화두로 떠올랐지만, 더 큰 파란을 일으킨 것은 고작 스물일곱의 나이에 입신지경에 오른 신진고수에 관한 것이었다.

검절(劍節)

이제는 검선(劍仙)과 검제(劍帝) 그리고 화산의 장문인이자 그의 스승인 매화검존(梅花劍尊)과 나란히 강호의 정점에 우뚝 서게 된 이름.

단순히 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무위를 목격한 이가 너무나도 많았다.

더욱이 무림맹주를 비롯해 화산의 장문인인 매화검존과 남궁세가의 가주인 검제등을 비롯한 굵직한 고수들이 모두 공인했으니 파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검절로는 부족하니 새로운 별호를 짓자는 이들 역시 있었다.

그 스승의 별호를 따서 검신으로 하자니, 새로운 신성의 출현이니 검성으로 하자니 하는 등 수많은 이야기가 나돌았다.

“교관님도 사람이시네. 향상심이 있으시겠지. 구파나 세가에서 제안이 온다면 고민하지 않겠나. 가령 남궁세가라던가.”

“…….”

옆에 있던 철대환의 말에 선우연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같은 후기지수 중 남궁연은 아직 남은 강의를 듣고 있다. 그녀가 주호를 사모하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 친우들뿐만 아니라 학관 내에서도 그 소문이 파다했다.

듣기로는 남궁세가주인 검제가 공인했기에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주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정말로 그 둘이 혼인이라도 하게 된다면 주호는 남궁세가의 소속으로 들어가게 될 터.

어쩌면 성까지 남궁으로 바꾸게 될지 몰랐다.

“…….”

한구석에서 홀로 도를 휘두르던 천후 역시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청룡이 명성이 커진 것은 주작의 계승자로서도 크게 반기는 일이다. 마음 같아선 축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으니.

이유인 즉, 며칠 전 사신문에서 온 연락 때문이었다.

‘…이걸 어찌 전해야 할지.’

천후는 남몰래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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