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99화 (199/300)

#199화

어둠이 짙게 깔린 가운데 은밀히 숲을 가로지르는 이들이 수십이었다.

그 너머에는 밤이 깊었음에도 곳곳이 밝은 불꽃이 피어오른 마교의 진지가 있는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탓인지 듬성듬성 허점이 눈에 들어왔다.

앞서 무리를 이끄는 이는 그것을 두고 잠시 고민했다. 마교란 이름을 달고 있는 작자들이 이렇게 허술할까.

혹시 고의적으로 허점을 노출해 자신들을 끌어들이려는 수작이 아닐까.

‘공적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위험 정도는……!’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명예와 명성에 굶주린 차.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예정대로 기습을 진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윽고 수십의 인원이 어둠 속에서 몸을 날렸고, 정도 연합군 최초의 별동대는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기습에 성공해 큰 전공을 올렸다.

“아하하, 그 허둥지둥하는 꼴이라니.”

“곽형의 검이 그리 매서운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일 검에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려 퍼지더니 그 마인의 목이 콱!”

“그러는 동생도 소리치려던 녀석을 단숨에 도륙해내지 않았는가.”

연전연승(連戰連勝).

그 말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록 별동대의 인원은 수십밖에 안 되는 소수였지만, 마교 진지의 구축 또한 크게 지연시켜 전선을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떻소이까, 장로.”

“곽 대협의 과감함엔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곽진언의 말에 무령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가 그리 순순히 당해준 것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더군다나 별동대가 큰 활약을 세우자 연합군의 사기가 치솟아 오르며 적잖은 수가 자신 역시 합류하기를 원했다.

‘대부분 같은 중소 문파지만.’

상부에선 그 공로를 인정해 희망자에 한해 지원을 받아 별동대의 편성을 늘릴 것을 말했다.

그러자 단숨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처음엔 수십이었던 그 인원은 최초의 작전 이후 지금까지 이르러 족히 여덟 배는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음. 이번 지원자 중에서도 구파나 세가 연합 쪽은 없는 것이오.”

“아무래도 그쪽은 지휘 체계가 확고히 잡혀 있다 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곽진언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짜증을 숨길 수 없었다.

중소 문파와 명문의 전력은 비교할 수 없다. 이런 어중간한 이들이 아니라 확고한 실력을 지닌 고수가 합류해준다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터.

하지만 지금까지 별동대에 합류한 명문 쪽은 속가제자 부류나 거의 방계 끄트머리에 자리한 이들이 전부였다.

‘겁쟁이들.’

곽진언은 별동대의 수장으로서 간간이 회의를 참석하곤 했다.

눈앞에 있는 무령자는 괜찮지만, 다른 명문의 고수들은 마교가 그리 만만한 존재는 아니라며 항상 자신에게 우려를 표해왔다.

‘공을 세운 나를 견제하려는 것이겠지.’

근래 백광검 곽진언이라는 이름이 연합군 사이로 슬슬 퍼지기 시작했다.

치졸한 명문의 고수들은 그런 자신을 견제하려고 하는 것일 터. 스스로 나설 용기도 없으니 안전한 곳에 앉아 입만 나불대는 것이리라.

“…….”

무령자는 별동대 희망자 명단을 불만에 가득 찬 눈동자로 바라보는 곽진언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별동대 조직엔 회의적이었기에 다른 고수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바.

하지만 마교란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구파일방이나 세가 연합 쪽은 이미 전쟁 이전에도 물밑에서 마교와 셀 수 없이 투쟁을 벌여왔지 않은가.

세간에 널리 알려진 마교는 약육강식의 지조 가운데 힘을 숭상하고 싸움이 일어난다면 죽기 전까지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순순히 사릴 줄도 아는 교활한 여우였다.

물론 지금 마교가 보이는 행보는 그런 자신들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의심하고 소극적으로 나서며 원래 무림맹과 함께 계획했던 방어선 구축에 힘썼다.

그렇게 삼주 차가 되었다.

별동대가 연이어 전공을 올리자, 중소 문파들은 아예 조직을 개편해서 별동대의 규모를 대단위로 키우고자 건의를 올렸다.

상부는 고심 끝에 허락을 내렸고, 별동대의 인원은 이제 천여 명까지 불었다.

이 정도라면 별동대가 아니라 타격대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전력이었다.

마교 역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것인지 함정을 파고 경비를 늘리는 등 여러 대비를 해놨지만, 별동대는 과감하게 작전에 나섰고 또 그에 뒤따르는 공적을 얻었다.

그리고 사주 차가 되던 어느 날, 그들은 마교 진지 안쪽에 자리한 보급 창고로 막대한 물자가 도착한 것을 관측할 수 있었다.

“적어도 만 단위의 병력을 몇 주야나 굴릴 수 있는 식량과 수백의 무기라 합니다.”

“그곳을 타격하면 아무리 마교라 할지라도 피해가 크겠군요.”

“이미 우리 별동대의 공적으로 마교의 진출을 몇 주나 늦췄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요. 여기서 보급 창고까지 없애는 피해를 준다면 쐐기를 박을 수 있겠지.”

“솔직히 소위 명문이라는 문파들이 한 게 무에 있소. 우리가 이렇게 애쓸 동안 자리만 지킨 것이 전부이지.”

“대주, 결단을 내려야 하오.”

별동대, 이제는 질풍대의 초대 대주가 된 곽진언은 막사의 제일 상석에 앉아 두 눈을 감은 채 제 수하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처음엔 그저 소소한 공적을 세워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 어느새 연합군 내에 파죽지세의 전공을 쌓는 최고의 조직이 되었다.

수많은 중소 문파가 그 밑으로 들어왔고, 작금에 이르러선 천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질풍대의 소속으로 있었다.

고작 삼주 만에 일어난 일.

질풍대 초대 대주 백광신검(白光神劍) 곽진언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열렬한 시선들과 마주했다.

사실 그는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연합군 내에 입지와 공적도 크게 쌓았고, 백광신검이라는 휘황찬란한 별호도 더없이 흡족했다.

고향에 돌아간다면 제 가문인 곽씨세가를 한층 더 발돋움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할 터.

듣기로 가주인 아버지는 세가에 잠룡이 났다면서 동네에 잔치까지 벌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대주!”

하지만 만족한 것은 자신뿐인 듯했다.

이제 막 명성을 올리기 시작한 공략 대의 간부나,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은 아직 허기를 달래지 못한 듯 열띤 전의를 보이고 있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여기서 하지 않겠다고 뺀다면 모래 위에 쌓은 누각은 금세 무너져 덧없이 흩어질 터.

그렇기에 곽진언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흘 후 인시(寅時)에 개시하도록 하겠소. 다들 그리 알고 준비하시오.”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다들 두 눈을 빛내오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곽진언은 내색하지 않은 채 회의를 끝냈고, 이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 없을 테지.”

이때까지 잘해왔지 않는가.

이번 작전에서 적당히 상처를 입고 그것을 명목으로 은퇴 이야기를 꺼내면 될 터.

그럼에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의 가슴 한편에 묵직이 자리 잡았다.

***

사사삭-.

질풍대는 야음을 틈타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숲을 가로질렀다.

하도 야간 작전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인지 그들의 몸놀림은 여타 고수들과 다를 바 없이 은밀했으니.

작전에 나선 것은 질풍대 전원으로 총 일천여 명에 달하는 규모였다.

교란조와 타격조로 반반씩 나누어 편성했고, 타격조 소속인 곽진언을 비롯한 오백의 질풍 대원은 숲의 어둠에 몸을 맡긴 채 신호를 기다렸다.

마교의 진지는 질풍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제법 형태를 갖추었다. 이대로 마교의 본대가 도착한다면 질풍대의 활약도 힘들게 될 터.

곽진언은 그전까지 반드시 질풍 대주 자리를 은퇴하리라 다시 다짐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마교 진지를 살폈다.

-뭐지? 무슨 일이야!

-서쪽 입구에 불이 난 듯합니다!

-적습인가? 빌어먹을 새끼들, 오늘에야말로!

얼마간 그렇게 있었을까, 진지 내부에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교란 조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일 터. 곽진언은 잠시 추이를 살폈고, 충분하다고 싶을 때 진입 명령을 내렸다.

쉬시시식-!

최초의 진압대가 진지 안쪽의 방벽을 타 넘어 경비를 서고 있던 마인들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냈다.

살수처럼 더없이 깔끔한 움직임. 문제없이 처리했다는 그 신호에 곽진언은 방벽을 넘었고, 뒤이어 오백의 질풍대가 마교 진지를 습격했다.

“보급 창고는 북동쪽입니다.”

“얼른 가지.”

교란 조가 애써주고 있다만, 마교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그리 오래 당해주지 않을 터.

그러니 순식간에 그곳을 불태우고 빠져나가야 했다.

“찾았습니다.”

가벽으로 세워진 거대한 창고였다.

곽진언은 재빨리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준비해온 기름을 창고 주위에 붓고는 근처에 있던 화롯불을 그 위에 엎었다.

화르륵-!

불길은 순식간에 커다란 창고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 직후 메케한 탄내가 코끝을 찌르며 작전의 성공을 알려왔다.

“…작전은 성공이다. 이제 후퇴한다.”

곽진언은 한껏 무게를 잡고 몸을 돌렸다.

뒤쪽으로 수하들이 자신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 같아선 환호라도 지르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마교의 진지라 참는 기색이 역력하다.

곽진언은 그들을 보며 작게 웃음을 토해낸바. 그렇게 몇 걸음 옮겼을 찰나, 그 발치로 무언가 데구루루 굴러왔다.

“……?”

갑작스러운 것이었기에 곽진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뒤쪽에서 일렁거리던 화마가 그 음영을 비췄다.

곧이어 드러난 것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잘린 머리였다.

“소, 송가야!”

삼주 전, 최초로 자신과 별동대를 함께 조직했던 죽마고우인 송씨세가의 적자가 머리만 남은 채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 있었다.

가슴 한편에 자리한 묵직함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불그스름한 어둠 사이로 수많은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자신들 앞에 서기 시작했으니.

“버러지 같은 것들. 그간 하늘 높은지 모르고 신나게 날뛰었다더구나.”

절로 몸서리치게 될 정도로 살기가 짙은 목소리에 곽진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사천, 감숙 방어선이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지금, 주호는 단철량과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간 서로 격무로 인해 바빴기에 안부를 물을 겸 사신문에서 들어온 정보를 공유하고자 어렵게 시간을 낸 것이었다.

하지만 몇 마디 말을 섞지도 못한 차에 맹의 무인이 긴급한 정보를 전해왔고, 그것을 본 단철량이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었다.

“전선에 문제가 생겼군.”

“마교가 습격이라도……?”

“아니, 그 반댈세. 이쪽에서 나선 질풍대가 마교의 함정에 걸려 큰 피해를 보았다는구먼.”

“아아, 그 별동대 말입니까.”

주호 역시 그간 익히 들은 이름이었다.

강호의 이목은 현재 사천과 감숙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모조리 쏠려 있었다.

아직은 팽팽한 대치 상황 가운데 연이은 작전으로 전공을 올린 백광신검 곽진언 휘하의 질풍대의 위세가 자자한바.

중소 문파의 고수들로만 구성된 그 별동대에 들어가고자 아직 머뭇거리던 수많은 문파가 참전을 희망했다고 들었다.

“대주 본인은 치명상을 입었어도 어떻게 도망쳤으나, 그 휘하 병력의 피해가 크군. 족히 몇백은 죽어났으니.”

“사기가 곤두박질치겠군요.”

“사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네만, 통제할 수도 없던 노릇이었지. 안타까운 이야기였네만, 이제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함부로 경거망동하는 이는 없어지겠지.”

“정말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아직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백이 죽고 다쳤다.

주호로서는 가슴이 착잡해지는 이야기였으니.

“어쩌겠나. 앞으로 수천, 아니 수만이 더 죽을 수도 있네. 우리 역할은 그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지.”

“바삐 노력해야겠습니다.”

“자네의 역할이 크네. 그나저나 이제 대련도 함부로 못 하겠구먼.”

단철량은 흐뭇한 미소로 주호를 바라보았다.

주호로선 직전까지 수백 명이 죽었단 와중에 그런 것이라 살짝 씁쓸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가볍게 초식 대련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되었네. 입신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의 틀을 완성했다는 것일세.”

“채워야 할 것은 많지만 말입니다.”

“그러네. 내가 처음에 얼마나 좌절했는지 아는가. 수십 년을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니.”

“하하하.”

“그래도 어떻게 노년까지는…….”

주호의 웃음에 단철량이 한숨을 푹 내쉴 찰나, 그 둘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쿠구구궁-.

미약한 진동이 지축을 흔들었다.

천장에 서린 먼지가 떨어져 내렸고, 탁자 위에 기대어 있던 서책들이 흘러내릴 듯 위태롭게 끝에 걸쳤다.

“…이건.”

“아무래도 불청객이 찾아온 모양이로군.”

단철량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