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98화 (198/300)

#198화

주호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살수 문파인 살곡과 달리 흑백쌍야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들의 기세를 보아하니 특급 살수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흑백쌍야는 초절정. 둘과 동시에 싸운다면 우희로는 조금 버겁겠군.”

살수인 이상 그 무공은 암습에 특화되어 있다.

첫수에만 치명상을 피해낸다면 그 뒤로부터는 빽빽하게나마 승기를 가져갈 수 있을 터.

다만, 이들의 마수가 자신의 주변까지 와닿는다면. 당장 일급 살수만 할지라도 절정에 달하는 고수다. 후기지수들이 견뎌내기도 힘들뿐더러 그 방식에 익숙지 못해 큰 피해를 보리라.

“…주호?”

다가오는 인기척은 이미 알고 있었다.

주호가 살수들의 시체 가운데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이번 역시 담우양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주위에 쓰러진 이들은.”

“살수인 것 같습니다. 담형의 모습을 흉내 내어 절 불러내더군요.”

“다친 곳은 없나!”

담우양은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주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괜찮다는 것을 표하면서도 혹시 모르기에 다시 한번 담우양의 상태창을 살폈다.

“그렇지 않아도 경비 무사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해서 둘러보는 중이었네. 자네가 이쪽 부근으로 향했다는 소릴 듣고 바로 왔네만, 아무래도 한발 늦었군.”

“흔적은 여러 개였습니까?”

“아니, 한 곳이었네. 아마 자네를 습격한 이들이 전부겠지. 지금 난리가 나서 교관들이 전부 이 잡듯 학관을 뒤지고 있네. 참, 빨리 알려야겠군. 잠시간 기다려주겠나.”

난리가 났다는 것은 과언이 아닌 듯 머지않아 십수 명의 교관들이 그곳으로 달려왔다.

“허어…….”

“이런.”

팽대환을 비롯한 상위 교관들 모두 탄식을 흘리며 날카로운 눈으로 시신을 살폈다.

혹시라도 무언가 흔적을 찾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조사하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살수들은 그리 녹록지 않았던 것인지 자신들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겨두지 않았다.

“자네, 괜찮은가.”

“갑자기 기습해왔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괜찮습니다.”

“다행이로군. 처음에 외부에서 침입을 발견했다고 들었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도 관생이 아니라 절 노려서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네. 그렇지 않아도 시국이 뒤숭숭한데 관생이 암습이라도 당한다면…….”

“곧바로 수습은 하지 않는 겁니까?”

주호는 의문을 품은 눈동자로 그에게 물었다.

교관들은 시신의 주위를 지키고 설 뿐, 그것을 치우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물음에 팽대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곧 무림맹에서 사람이 도착할 걸세. 그들에게 인도하는 편이 더 깔끔하겠지.”

“그렇군요.”

“마교가 본격적으로 준동한다면 사방에서 마인보다 살수들이 더 기승을 부린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었군. 자네도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게. 검절(劍節)이란 이름엔 많은 상징이 담겨 있으니 말이야.”

주호가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일 찰나, 저 끝에서부터 한 무리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다가온 그들은 이내 앞에서 멈추어 선바. 선두에 있던 남자가 팽대환에게 가볍게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팽 대협, 격조하셨습니다.”

“청룡단주, 저번 맹에서 이후로 얼마 만이군요. 설마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사안이 엄중하니 앞선 절차를 생략하고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팽대환이 슬쩍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자 무림맹에서 온 무인들이 살수들의 시신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들의 상태창을 본 주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무림맹 사대 조직 중 한 곳인 청룡단. 자신 역시 청룡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살수의 공격을 받은 장본인이라 들었습니다.”

슬쩍, 팽대환과 인사를 나누었던 청룡단주가 주호의 옆으로 다가와 말문을 텄다.

[상태창]

이름: 초위현

별호: -

직업: 청룡단주

나이: 마흔셋

소속: 무림맹

무공: 청월검법

경지: 초절정 (四/十)

호감도: 上下

‘제법.’

초위현의 상태창을 본 주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얼마 전에 본 현무단주의 무공이 이제 막 절정 막바지에 다다른 것을 생각하면 확연한 차이였다.

타격대 성격을 지닌 청룡단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차이이나, 이는 청룡단주 개인의 강함인 듯 보였다.

“주호라 합니다. 정천의 일급 교관직을 맡고 있습니다.”

“하하, 위명이 자자한 검절(劍節)의 이름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로 뵙게 되어 유감이지만, 무탈한 듯 보여서 다행입니다.”

초위현은 포권을 하면서도 주호를 살폈다.

근래 위명이 자자한 검절, 최연소의 나이로 정천의 일급 교관직을 맡은 신진 고수.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그것이었지만, 초위현은 물밑에서 도는 소문에 더 관심이 갔다.

‘그 뒷배에 맹주님께서 계실 거라니.’

어디서는 맹주와 동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어디서는 맹주 직속의 특수 요원이라는 말도 있었다.

단철량 역시 뚜렷하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연결점은 있다는 것일 터.

‘즉, 우리 적은 아니란 소리지.’

초위현은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참, 살수들은 자신들을 살곡의 출신이라 했습니다. 자신을 흑백쌍야 중 흑야라 하는 이를 압박해 들은 것인데 정확할지는 모르겠군요.”

“…살곡, 말씀이십니까.”

살곡의 흑백쌍야(黑白雙夜).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맹의 타격대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그들이 보호하는 주요 증인이나 굵직굵직한 요인을 종종 암살하던 빌어먹을 녀석들이 아닌가.

초위현은 황급히 제 수하를 불러 그 사실을 확인케 하였고, 그것이 꽤 신빙성 있는 이야기임을 확인했다.

“살곡이 검절을 노렸다, 라.”

“저와 척진 곳이 없진 않지만, 이 정도로 일을 벌일 수 있는 곳을 따지라면.”

“…마교겠군요.”

초위현은 주호의 과거를 떠올렸다.

제일 처음은 작년 남궁세가 행에서 남궁연을 납치하기 위해 닥쳐온 마인들과 충돌한 것이었다.

이미 그것으로도 밉보였을 터인데, 그 이후 있었던 교류 대회의 습격에서도 마교의 기습을 훌륭히 격퇴해내지 않았던가.

그 결과 검절(劍節)이라는 별호가 잘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마교로선 자신들을 제물 삼아 명성을 달리는 신진 고수가 참으로 눈엣가시일 터.

그런 가운데 주호를 암살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이전에 쌓은 손실을 메우기 충분하리라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한편 주호는 혹시 모를 가능성을 마음에 품었으니.

‘위천강이 말했을 수도 있겠군.’

과거 월영사신으로 활동하며 마교 지부를 여럿 부수고 돌아다닌 바가 있었다.

제법 큰 피해를 보았다고 하니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자신을 노렸을 가능성도 차고 넘칠 터.

“이것 참, 그토록 잡고 싶던 놈들인데 이렇게 우연히도 악연이 끝나는군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참, 포상금도 나갈 겁니다.”

“포상금입니까.”

“예. 맹 자체에도 현상금이 걸려 있었고, 녀석들에게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이들이 그 목을 원했지요. 금액도 커서 얼추 따져본다면…….”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군요.”

대략적인 금액을 귀띔받은 주호의 두 눈이 커졌다.

설마 살수 몇을 쳐 죽였다고 그런 큰돈을 받게 된다니.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본래라면 시국이 흉흉하여 안정될 때까지 지연되겠으나, 주 대협 건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초위현은 이 기회에 그에게 호감을 쌓아놓고자 가슴을 두드렸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주호는 주머니가 두둑해져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상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 그렇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그 주변, 학관의 관생들 심지어 산동에 있는 가족들에게까지 그 마수가 뻗어 가리라.

사신문에서 지부까지 지어가며 그곳을 보호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을 터.

차라리 사신문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건에 대해서도 연락을 해봐야겠군.’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짐에 따라 주호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나왔다.

***

무림맹주 단철량이 정도 무림을 대표해 무림맹 산하 모든 문파로 마교에 맞서 싸울 것을 천명하는 무림첩을 발부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중원은 그야말로 분화를 시작한 활화산처럼 들끓는 분위기였다. 어딜 가든 전쟁에 관한 이야기밖에 없었고, 그 어느 때보다 수많은 인파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각자의 전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일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전쟁이란 이름이 주는 매력에 흠뻑 취한 이들의 환호에 묻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위기를 기회로, 전쟁을 승리로.

명예를 위하여, 혹은 보상을 위하여, 혹은 죽고 죽이는 치열한 싸움을 원하는 이들이 사천과 감숙으로 몰려들었고 그 수는 대략 가늠해도 가히 만(萬)이 넘을 것이었다.

다행히 무림맹주 단철량의 지시로 전쟁 훨씬 이전부터 편제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

각 문파는 헤매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감숙과 사천을 지키는 일차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곤륜을 멸하고 청해를 점령한 마교는 긴 역사에서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곳을 중원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전초기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사천과 감숙으로 이어진 일차 방어선으로 공세를 감행하기까지 예상된 시각은 고작 보름 남짓.

하지만 정도 무림 연합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냈기에 사기가 최고조로 치솟아 오른 상황이었다.

“선제 타격을 가합시다.”

“동감이오. 방어선의 구축은 이미 단단하게 되었소. 마교가 세운 청해의 전초기지까지 고작 해봤자 사흘 거리요. 아직 저들은 준비 중이니 그사이에 기습을 가한다면 필시 손쉽게 타격을 줄 수 있을 터.”

“장로께서 결단을 내려주시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가 저들의 진지가 전부 구축되면 시도하지도 못하게 되오.”

청성파의 장로 무령자는 자신을 찾아온 중소 문파 문주들의 말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방어선에 편성된 중소 문파 군집 중 제 삼선의 담당자였다.

방어선으로 모여든 무인들이 전쟁이란 이름이 주는 혈기(血氣)에 취해 있는 것은 적잖이 알고 있었다.

몇십 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전쟁이니 어쩔 수 없다곤 생각했으나, 춘추가 불혹(不惑)이 넘은 문주나 고수들조차 이리 성급한 지경이라니.

하루, 이틀, 사흘 차까지는 어떻게든 그들을 달래고 가라앉혀보았다.

전쟁은 초반에 모든 것을 퍼붓는 게 아니다. 특히 정마대전은 항상 몇 개월이고 길게 이어지는 장기전의 양상을 띠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조금만 기다리라 설득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막사까지 찾아와 떼를 쓰는 이들을 막기는 어려워 보였다.

“장로, 우리가 전군을 움직이자는 이야기가 아니잖소. 일부 희망하는 자원자를 받아 별동대를 만들어 타격하면 유사시에도 대응하기 쉽지 않겠소?”

여기서 더 미뤘다간 자신들끼리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렇기에 무령자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에 전달하겠습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디 이 기습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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