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94화 (194/300)

#194화

[혼원일극신공 운용에 실패…….]

[운용에 실패…….]

[실패…….]

흑수마제가 두 줄기 나선흑강의 강선을 피워올리며 닥쳐오는 가운데, 주호의 눈은 오롯이 신검 위를 향했다.

일렁이는 청룡신공의 기운과 세차게 발산되는 적해의 기운이 신검을 중심으로 서로 뒤섞이며 튕겨 나감을 반복하고 있었다.

“…….”

그는 상태창이 보여주었던 수백 년도 더 전의 과거를 떠올렸다.

정도와 마도의 완벽한 조화.

한 치의 모자람 없고, 한 치의 치우침 없는 그 하나로 완전한 것이었다.

주호는 거기까지 바라지 않았다.

처음 걷는 길인만큼 비슷하게 흉내만 낼 수 있는 걸로 족했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흑수마제를 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마찬가지로 그 집중이 극한에 이르러 사고의 속도가 가속되었다.

세상의 흐름이 마치 엿을 길게 잡아 늘인 것처럼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움직이는 것은 그 둘 뿐이었다.

쉬이익!

두 줄기의 강선이 다시금 가슴을 향해 닥쳐온다. 주호가 막 구십구 번의 실패를 겪고 있을 차례였다.

‘균형을 맞추자.’

서로가 우세하다며 마구잡이로 날뛰던 두 기운을 가다듬었다.

최소한의 가닥만 끌어올리며 물꼬를 텄고, 그곳을 기준으로 삼아 천천히 서로의 몸을 옭아맸다.

한 줌, 딱 한 줌의 기운.

검강은커녕 검기조차 아슬아슬하게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정도였지만, 주호의 노력이 빛을 보았는지 불완전하게나마 합쳐지며 그 붉고 푸른색이 서로의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혼원일극신공을 운용합니다.]

주호는 지척까지 다다른 두 줄기의 나선흑강에 신검을 그어 내렸다.

단지 그뿐이었다. 특별한 힘을 싣거나, 사력을 다하지도 않았다.

“……!”

두 손을 휘둘러가던 흑수마제의 두 눈이 크게 뜨이며 그 망막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선명히 맺혀나갔다.

이질적인 잿빛 기운에 감싸인 신검이 날이 흑색 강선을 너무나도 손쉽게 베어 가르고 있다.

그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이대로 가다간 자신의 손까지 양단되어 버릴 것이었기에 그는 황급히 공세를 거두었다.

보통의 무인이었더라면 그런 급격한 기세로 공세를 거두어 버릴 경우 적잖은 내상을 입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흑수마제 정도의 고수일지라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역천환혼대법으로 되살아난 그는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기긱-.

다만, 그가 깃든 육신이 반동을 이기지 못한 채 끄트머리가 갈라지며 파편이 되어 흩어진바. 흑수마제는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다시금 출수했다.

“무슨 술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너덜너덜해진 그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흑수마제는 제 손 하나 정도는 내어줄 생각으로 다시금 그에게 닥쳐갔다.

“…너는.”

주호는 제 지척에서 손을 휘둘러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서늘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내게 시간을 주어선 안 됐다.”

조금 전의 공격에서 지금과 같이 한쪽 손 정도는 내줄 각오로 공격했다면 사뭇 다른 결과가 펼쳐졌으리라.

하지만 처음 맞이하는 그 현상에 흑수마제는 당황했고, 한 번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주호는 한 번 잡은 혼원일극신공의 감각을 놓치지 않았으니.

쿠우웅─.

경미하게 일렁거리던 잿빛 기운이 우악스럽게 제 몸집을 부풀린다. 주호의 목을 단숨에 짓이길 생각으로 손을 뻗은 흑수마제의 두 눈이 크게 뜨일 정도의 변화였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는 나선흑강을 믿었다.

천하제일인의 오른팔마저 앗아간 최강의 무공. 싸움에서 패배한 것은 그 이전까지의 전투로 인해 피로하고 지쳐있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만일 자신이 온전한 상태였더라면 그 땡중을 처죽인 뒤 유유히 빠져나가 천마를 제외한 마도의 지존이 되었으리라.

다만, 흑수마제는 자신의 앞에 선 이가 고금제일인인 무황의 계승자이며, 지금 막 사용하려는 무공이 무황의 진신절기인 혼원일극신공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신검 위로 솟아오른 잿빛이 어둠을 몰아내었다.

밤하늘 가득 내려앉은 그것을 선명하게 밝혔고, 화산을 뒤덮으며 그 안에 자리 잡은 해악을 몰아내었다.

“……!”

한창 적들과 싸우고 있던 이들 역시 본산의 위로 선명히 비추는 그 빛을 볼 수 있었으니,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어둠을 베어 가르는 빛무리를 목도하였다.

파각-!

흑수마제가 믿어 의심치 않던 나선흑강의 강선이 처참히 부서져 나갔다.

멸천(滅天)과 맞부딪혔을 때처럼 동수를 이루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압도적인 격에 찍혀 누르며 말 그대로 소멸했고, 그다음엔 흑수마제의 흑수(黑手)가 그 끝에서부터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번쩍─.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그 궤적도 한 번의 점멸을 끝으로 제 존재감을 남기며 유유히 사라졌다.

하지만 흑수마제의 두 눈에는 아직 온 천지에 빛이 머물러 있는 것 같은바.

“빛무리가 가득하니.”

저적.

흑수(黑手)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그의 몸이 이마로부터 그 밑까지 실선이 그어지며 일도양단되었음을 알려왔다.

겨우 되찾은 생의 경계에서, 흑수마제는 나지막하게 자신에게 닥쳐온 그 일 검의 감상을 읊었다.

─그야말로 일섬(一閃)이로다.

파스스.

그 몸이 조각조각 나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남아있는 것은 조금의 옷가지와 몸을 휘감고 있던 하얀 붕대뿐.

“…….”

천지에 가득하던 빛이 꺼지자 주호는 휘청거리며 어지러움을 토했다.

겨우 신검을 지지대 삼아 땅에 발을 딛고 섰지만, 천지가 뒤집히고 전신이 욱신거리는 것이 상처가 적지 않는 듯싶었다.

조금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했던 그 활력과 환희는 거짓이었던 것처럼 일순간에 빠져나가 버린 혼원일극신공의 기운에 그는 허탈한 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주저앉았다.

“…효율이 그리 좋지 않구나.”

입신지경에 이르러 천지를 잇는 막대한 기운을 다스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일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 전신의 기력이 모두 쇠했다.

팔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다리는 이제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바.

의식은 몽롱한 것이,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운 것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이라도 수마에 빠질 것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어서 빨리 저들을 도와야…….”

역천환혼대법이 마교의 주술이라 하였으니, 그 뒷배에는 마교를 장악한 혈천신교가 있을 터.

화산파를 습격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전력으로 준비해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 가운데 방금 자신이 상대했던 흑수마제처럼 입신지경의 고수가 더러 있을 가능성이 컸다.

만일, 만일 향이나 다른 이들이 그러한 고수와 마주친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터.

“…윽.”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몸은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며 연신 주저앉았으니.

잠시만, 잠시만 쉬어가자.

이 상태로 저쪽에 합류한다고 해도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채 지금처럼 주저앉고 말 터.

그러니 최소한만 회복할 시간을 기다리자.

주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감았고.

“…….”

다시 떴을 때는 침대에 누워 낯선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짹짹.

창 사이로 들어오는 참새의 지저귐 소리와 따스한 햇살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눈을 감은 직후의 기억이 없다.

꿈을 꾸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래도 화산에서의 일이 무사히 진압된 듯싶었다.

걱정되는 것은 동생을 비롯한 다른 일행의 안위. 그렇기에 슬쩍 몸을 일으키자, 천천히 전신의 감각이 되돌아오며 다리 쪽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얹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향아.”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간이 꽤 지난 것인지 목이 따갑다. 침상 옆에 있던 탁자에서 주전자를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고, 냉수가 들어가자 그제야 조금 더 냉정히 주변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

그의 동생인 주예향은 멀쩡한 모습으로 발치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곁을 지키느라 밤샌 듯 그 눈가가 거뭇거뭇하다. 조심스레 그 머리를 쓰다듬어도 깨어나지 않는 것이 꽤 깊이 잠든 듯했다.

“…교관님.”

그때, 남궁연이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

두 눈을 크게 뜬 그녀가 반가움을 표시할 찰나, 주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왠지 익숙한 상황이구나.”

“자주 이러셨으니 말이에요.”

그녀는 죽과 찬이 담긴 상을 들고 있었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그것을 주호 앞에 내려놓고는 주예향의 몸을 들어 편히 잘 수 있도록 그 밑에 있던 침상에 뉘어주었다.

“사흘 동안 교관님 옆에서 꼼짝도 안 했거든요. 계속 꾸벅꾸벅 졸아서 제가 보고 있을 테니 조금 자고 오라고 해도 굳이 있겠다고 해서.”

남궁연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흘, 사흘이나 지났나.”

“네. 지금은 피해를 거의 수습했어요. 몇 시진 뒤에는 장례도 치를 예정이고요.”

“…이쪽 피해는.”

“천만다행히도 없어요. 팽우혁 그 아이가 다치긴 했지만, 하루 정도 쉬니 툭툭 털고 일어나더군요. 다만, 화산 쪽의 피해가 커서…….”

남궁연은 제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마교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상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곤 아예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느닷없는 때에 닥쳐오리라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바.

특히 괴한들의 특수성 때문에 습격 초반 당시 많은 화산의 제자가 죽거나 다쳤다.

“죽은 이는 일백이 넘고, 다친 이는 수백에 달해요. 지금 섬서는 물론이고 이 소식이 사방으로 퍼져서 사천이나 감숙은 완전히 전쟁 직전에 다다른 분위기라네요.”

“…습격자들에 대해 밝혀진 것은?”

“흉수가 마교라는 거랑 그 주요 고수들이 대부분 한 세대 이전의 마두들이라는 것? 개중엔 죽었다고 알려진 이들이 나타났다고 이야기를 나누던데 그렇게 자세한 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주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이들은 역천환혼대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싶었다.

‘…큰일이로구나.’

가뜩이나 일반적인 전력으로도 벅찬 싸움이거늘, 죽은 마두들의 혼을 불러와 시신에 집어넣은 뒤 싸움에 투입하게 시킨다면 큰 혼란을 초래할 터.

물론 이런 대법 같은 경우엔 보통 막대한 재화와 시간이 소모될 터이니 무작정 만들어내진 못할 것이었다.

“…….”

돌연 주호는 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신마(神魔)는 무황에 의해 그 혼과 육신이 갈가리 찢겨 세상에 흩뿌려졌다. 혈천신교가 마교를 먼저 장악한 것은 설마.’

역천환혼대법을 이용해 신마의 부활을 서두르려 하는 속셈일까.

그는 천천히 제 가슴을 더듬었다.

더는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신마의 잔재가 발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입신지경에 오르며 소멸한 것인지, 아니면 억눌린 채 때를 기다리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저들에게 넘어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누워있을 시간이 없구나.”

“교관님? 아직 움직이시면…….”

“잠깐 장문인을 보고 오마. 향이를 돌보아주거라.”

주호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