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69화 (169/300)

#169화

“네, 아버님께서 분명 그렇게 부탁하셨어요.”

남궁연은 애써 긴장한 모습을 감추며 주호를 바라보았다.

표면상으로는 단순한 권유였지만, 그 이면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각 가주와 장문인은 두 명에서 최대 세 명까지 회의에 동석시킬 수 있었다.

남궁한은 자신의 동행으로 소가주인 남궁연과 새로이 섬뢰단주에 오른 남궁진영을 선택한바.

거기에 주호까지 선택한 것은 검절이라는 고수가 자신들과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호에 대한 소문이 심상치 않게 퍼지는 가운데 여러 가문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판국이었다.

혹시라도 제 문파나 가문에 끌어들이기 위해 중매라도 보낸다면 그만한 낭패도 없지 않은가.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남궁의 이름으로 찍어 누르려 하는 속셈이었다.

“아쉽게 되었구나. 나 역시 이미 참여의 권유를 받았다.”

“…아.”

남궁연은 주호의 품속에서 나온 무림맹 패를 보곤 입을 벌렸다.

서로 이득을 보는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거늘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렇, 군요. 맹주님과도 인연이 있으셨죠.”

“그렇다. 아마 나는 맹의 인사로 참여하게 되겠지.”

남궁연은 침울한 기분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맹까지는 함께 가주실 거죠?”

“원한다면.”

주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의 계획과는 다소 틀어진 방향이었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그리고 한 주 뒤의 어느 날.

화창한 날씨였다. 학관이 두 번째 주말을 맞아 북적거릴 무렵, 무림맹은 조금 다른 의미로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다.

“회의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존명.”

무림맹 현무단주 심가벽의 명령을 따라 현무단의 고수들이 곧 회의가 있을 대전을 수색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정기 회합을 빼고 거의 사 년 만에 있는 공식 회의였다.

구파일방에선 소림, 무당, 화산, 공동, 곤륜, 종남, 청성, 점창, 아미, 개방이 참석했고 세가 연합에선 그 수장이라 불리는 오대 세가인 남궁세가, 하북팽가, 사천당가, 제갈세가를 비롯해 단목세가 황보세가 모용세가가 뒤를 이었다.

곧 회의 시간에 다다름에 따라 대전은 각 문파의 인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인원 대부분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나 세가 연합의 가주들로, 어정쩡한 급의 문파나 고수 따위는 감히 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자리였다.

“맹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무림맹주 검선(劍仙) 단철량이 미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랄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한바.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단철량을 따라 대전으로 들어온 이에게 향했다.

“제갈 군사는 그렇다 치고, 저 젊은 청년은.”

“맹주께서 제자를 들이셨던가. 내 요즘 듣는 귀가 어두워서.”

“내 듣기로는 제자가 아니라 사제라 하네.”

“…자네, 노망이라도 들었는가. 그게 무슨.”

“믿기 어려우면 나중에 맹주께 직접 물어보게나.”

각자 조용한 목소리로 갑론을박을 펼친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것을 듣지 못할 정도로 수준이 낮은 이는 없었다.

즉, 서로 이야기하는 척 맹주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이었다.

“다들 오랜만이라고 먼저 인사하고 싶소만, 의문이 크신 것 같으니 먼저 소개하겠소.”

단철량이 슬쩍 눈짓하자 그 뒤에 서 있던 주호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오며 포권을 올렸다.

“강호를 이끌어 나가시는 선배님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분하게 검절이라 불리고 있는 주호라 합니다.”

주호가 자신의 이름과 별호를 밝히자 그제야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호기심을 보내는 것은 가주와 장문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 기립한 고수들 역시 검절의 등장에 두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봐오고 있었다.

“헌데, 그 검절이 어찌하여 동석한 것인지 여쭈어보아도 되겠소?”

종남파의 장문인이 질문했다.

말은 질문이었지만, 실상은 이곳에 낄 수준이 되느냐는 이야기였다.

각 장문인과 가주 뒤에 선 이들은 차기 계승권을 다루는 후계자와 수신 호위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맹주의 사제라 할지라도 너무 과한 자리가 아닌가.

실상은 맹주를 견제하기 위한 저의가 깔려 있었지만, 단철량은 여전히 느긋한 태도로 답했다.

“맹의 감찰로서 큰 도움을 주었다오, 라곤 말해도 직접적으로 공을 밝히기엔 모양새가 살지 않으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호는 가볍게 제 기세를 일으켰다.

순식간에 대전 전체를 아우르는 기세였다.

찰나 동안 느껴진 그 막대한 압박에 뒤쪽에 기립한 후계자들과 수신 호위들은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투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선 이들 중 주호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니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설명되었소이까?”

“…….”

다만, 그런 그들과 달리 장문인과 가주들은 주호의 경지를 단번에 헤아렸다.

그 모두가 남궁한이나 단철량처럼 입신지경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한 문파를 대표하는 것은, 그것이 구파일방이나 세가 연합 급이면 더더욱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당장 화산파만 하더라도 장문인의 사제인 일 장로가 장문인보다 더 뛰어난 경지의 고수이지 않은가.

주호와 엇비슷하게 입신지경의 벽에 걸쳐 있는 이도 있었고, 혹은 그보다 못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떠오른 것은 하나같이 경악에 가까운 감정이었을 따름이었다.

“…이거, 내가 실언을 했군. 철회하겠소이다.”

“너그러운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주호는 짧게 포권하는 것을 끝으로 자신에 대한 의혹을 전부 해소했다.

이것은 이미 회의 전에 단철량과 상의해둔 부분이었다.

서로 견제하는 성격이 강한 이들이 있는 이상, 필시 그의 존재가 어떤 식으로든 거론될 터.

그렇기에 이왕이면 확실한 인상을 남겨두고자 강경하게 나가고자 했다.

다행히 잘 끝맺음을 한 듯 더는 의혹 어린 시선이 날아오지 않았다.

‘아니, 시선의 농도는 더 짙어졌나.’

자신을 향한 지나친 관심에 주호는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제자리로 물러났다.

“자, 그러면 이야기도 정리되었고. 군사.”

“예.”

단철량의 부름에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경이 앞으로 나오며 제 앞쪽에 설치된 중원의 전도(全圖)를 가리켰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본 회의를 소집한 목적은 마교의 발호 때문입니다.”

그는 천마신교가 자리한 신강의 대천산으로부터 청해까지 이어지는 길을 전도 위에 표시했다.

“얼마 전 대천산의 마귀들이 하산했다는 정보는 들으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최우선으로 신강을 정리하고 청해로 이어지는 길목을 개편하고 있습니다.”

“…큼, 맞소이다. 그 때문에 곤륜도 바쁘기 짝이 없소. 근처 정도 문파들을 전부 추슬러 안쪽으로 옮길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으니.”

곤륜파 장문인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하필 신강에서 중원으로 오는 길목에 있다는 이유로 정마대전이 일어날 세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그들이었다.

강호의 역사 가운데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적이 몇 번이던가.

그렇기에 이제는 그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었지만, 오랫동안 터전 잡은 본산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처지에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문인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맹에서 파악한 바로는 청해에 활동하는 마교의 전력은 초절정 급 마두가 열다섯, 절정 고수가 쉰, 그리고 그 밑으로 못해도 수백에 달하는 인원이라고 합니다.”

“흠…….”

어지간한 문파와 당장이라도 자웅을 겨뤄볼 만한 전력에 좌중에 신음이 흘렀다.

물론 이곳에 자리한 이들은 자신이 속한 문파가 끄떡없이 승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저 숫자가 마교 전체로 보자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것이었다.

“청해에 합류하지 않고 사라진 이들은 대천산 쪽의 목격 정보로 보아 삼 할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문제로군. 어디서 나올지 모르니 말이야.”

공동파의 장문인이 복잡한 얼굴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해 다음은 그 지역과 맞닿아 있는 감숙과 사천이었다.

감숙엔 공동파와 사천엔 청성파, 아미파, 점창파, 그리고 당가가 있었다.

사천 쪽은 그래도 정도 문파의 영향력이 컸기에 대비할 수 있었지만, 감숙은 공동파 하나가 감당하기엔 너무 컸다.

더욱이 그쪽엔 사도맹의 본단이 있어 그들과의 충돌도 조심해야 하지 않는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장문인. 사도맹과도 대략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소.”

“정말이오?”

그 말에 공동파 장문인은 반색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전 각 문파의 장로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사도맹과 관련된 주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작금 사도맹은 기존의 친맹주파와 신흥세력인 사도칠패로 나뉘어 있었다.

공조를 요청하기엔 그쪽 내부가 시끄러운 상황이지 않은가.

“혹시 철혈패검이 직접 나선 것이오?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내부적으로 시끄럽다는 풍문은 들었소. 사도칠패니 뭐니 하는 놈들이 설친다고.”

구파일방과 세가연합 정도 되는 문파들은 제각기 고유의 정보 조직이 있었다.

그렇기에 각자 가진 이야기를 뱉어내기 시작하자, 단철량은 작게 미소 지으며 탁자 위를 두드렸다.

“여기부터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니 모두 함구 부탁드리는 바이오.”

“무엇이길래 그러는 것이오?”

청성파 장문인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도맹 내부 파벌 싸움이 심각한 것은 아실 것이오. 부맹주를 필두로 한 친맹주파와 사도칠패의 대립이었지. 그리고 바로 어제 자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서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됐다 하오. 사도칠패 쪽은 사도맹을 떠나 그 위에 있는 영하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더군.”

단철량의 말에 주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친맹주파가 부족한 전력임에도 주도권을 질 수 있었던 것은 천우희의 공적이 컸다.

그녀가 사도칠패의 지원을 위해 온 적혈마검을 비롯한 혈천신교의 고수들을 일망타진한 덕분에 무림맹과 연계해 쉬이 일을 처리할 수 있던바.

예정대로 황제 쪽에 폭뢰 이야기를 흘려 사도칠패 세력에 치명타를 가했다.

영하 지역으로 패퇴한 이들이라고 해봤자 원래 세력의 반절도 채 되지 않을 터.

무림맹은 든든한 우방을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불안한 요소를 제외한다면.

“그간 물밑에서 사도맹과 교섭했고, 마침내 협약을 맺는 것에 성공했다오. 다만…….”

“다만 무작정 믿기는 힘들지요.”

“그렇소. 지나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주니.”

단철량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이 정도 이야기라면 금세 퍼질 테니 함구할 것도 아닐 듯합니다만……?”

청성파 장문인이었다.

무언가 더 있냐는 표정에 단철량은 잠시 주호 쪽을 한 번 바라본 뒤 짧은 공백 직후 재차 말을 이었다.

“다들 지난겨울 간 산서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오.”

“검마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그렇소.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검마가 왜 그곳에 갔었는지부터 설명해야겠지만.”

잠시 차로 목을 축인 단철량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사도맹의 맹주인 철혈패검이 중독되었다 하오. 마교에서 개발한 천망이란 이름의 독으로 입신지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까지 중독시킬 수 있을 정도로 독한 것이라지.”

“…그, 무슨.”

“검마가 산서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교와 접촉하기 위해서였소. 그러는 과정에서 맹의 이목에 걸려들었고…….”

단철량은 그 뒤쪽에 있는 주호를 가리켰다.

“검절과의 싸움 끝에 목숨을 잃었지.”

주호를 바라보는 시선의 밀도가 다시 한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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