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65화 (165/300)

#165화

“…저럴 것 같더라.”

그 촌극을 지켜보고 있던 당소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자, 주예향은 멋쩍은 미소로 대답했다.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뭐, 다 그렇지. 나쁘다기보단 머리 쪽에 구멍 하나씩 뚫려 있는 것 같아.”

“…그, 그런가?”

“그래서, 향이 넌 어느 교관님께 갈 거야?”

당소혜는 짐짓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도열해 있는 교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검절의 동생이다.

더군다나 이 강의의 담당인 일급 교관이니 그녀가 원하는 것이 선택지가 될 터.

명문이라 불리는 문파의 출신도 많았고, 현재까지 유명세를 자랑하는 고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예향은 이미 결정한 듯한 곳을 바라보았다.

“난 담우양 교관님께 받을 생각이야. 오라버니께서 추천해주셨거든.”

“아, 담 교관님.”

며칠 전 주점에서 마주치지 않았는가.

그 역시 주호와 친분이 깊은 관계라 알려져 있는바. 당소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분께 할까.”

“어, 그래도 돼?”

“문제 될 건 없지? 그리고 독공을 주로 익히신 교관님은 계시지 않으니.”

“그러면 나야 좋지.”

주예향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이야기였다.

낯을 가리던 그녀로선 아직 다른 이들과 안면을 트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친해진 당소혜와 같이 강의를 받는다면 그것만큼 든든한 것이 없었다.

“주예향이라 합니다. 교관님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당소혜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관님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요.”

곧 둘은 담우양의 앞으로 나아가 포권을 올렸다.

“뒤로 서거라.”

아직 제 휘하로 단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던 담우양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주호에게 제 동생을 부탁받았었다.

당연히 당소혜가 따라올 것으로 예상했고, 추가로 불나방 같은 이들이 이끌려 오리라는 것 역시 상정해두었다.

지금처럼.

“남궁휘입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팽우혁입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찬물을 먹은 둘이 어느새 담우양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직전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 아직 그 눈에 생기가 없지만, 그래도 기절하지 않은 것이 어디인가.

“…….”

담우양은 잠시간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짐짓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둘의 얼굴에 긴장이 깃들었다.

설마 자신들이 탈락되리라곤 생각지 못한 표정. 잠시 그 상황을 즐긴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뒤로 서거라.”

“…감사합니다.”

이내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남궁휘와 팽우혁은 옅게 한숨을 내쉬며 냉큼 담우양의 뒤로 가서 섰다.

“당 소저 잘 부탁하오. 주 소저도 물론 잘 부탁하오.”

“잘 부탁하오.”

둘은 먼저 자리하고 있던 당소혜와 주예향에게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들 역시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한바.

그리고 얼마 뒤, 교관 배정이 끝났다.

“각 교관께서는 강의가 끝난 후 인원을 제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첫 시간인 만큼 강의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각 교관님의 재량에 따라 이어나가겠습니다.”

짤막한 주호의 말에 다들 들뜬 분위기를 보였다.

곧 대강의실에 자리하던 관생들이 제 교관을 따라 삼삼오오 흩어졌다.

담우양 역시 제 관생들을 이끌었고, 곧 조용한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

그들과 마주 선 담우양은 그 면면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처음의 넷을 제외하고 추가 인원을 뽑지 않았다.

팽우혁이나 다른 이들과 인연을 만들기 위해 오고자 희망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전부 쭉정이에 불과한바.

그 정도를 걸러내는 안목은 담우양에게도 충분히 있었다.

“담우양이다. 다들 아는 사이라지? 그렇다면 따로 개개인을 소개하는 시간은 필요 없겠군. 그렇다면…….”

팽우혁은 살짝 기대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첫 강의는 보통 교관 재량으로 일찍 끝내주기 마련이다. 어차피 오늘은 실전의 이해 강의 하나밖에 없는바.

이 강의가 끝나면 일정이 자유로웠기에 이 넷으로 어디 구경이라도 가자고 권할 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는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첫날이니 가벼운 대련이라도 하며 서로 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군.”

“…대련, 말입니까.”

남궁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무인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그것만 한 것이 없지. 물론 전력을 다하는 건 아니다. 대련의 성격을 취하는 만큼 어느 정도 선을 두고 하는 것이지.”

누구부터 하겠느냐는 시선에 남궁휘는 씩 미소를 지었다.

‘강의명부터 실전의 이해라더니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가.’

제법 마음에 드는 전개였다.

남궁가의 무인으로서 대련은 마다할 것이 아닌바.

그렇기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섬서검협의 명성은 많이 들었던바. 분광검법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다가오는군요.”

“말은 청산유수로군.”

너스레를 떨며 말해오는 남궁휘의 모습에 담우양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둘은 곧 연무장 가운데에 검을 뽑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다른 이들은 그 가장자리로 물러나 그늘 밑에서 둘의 대련을 견학했다.

“흡-!”

남궁휘는 학관을 졸업하면 섬뢰단에 입단하기로 내정되어 있었기에 훨씬 더 이전부터 섬뢰검법을 익혀왔다.

섬뢰라는 이름답게 극한의 쾌속을 추구하는 그것은 날카롭게 허공을 꿰뚫었다.

캉-!

담우양 역시 쾌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분광검법을 익혔다.

같은 쾌검을 익혔기에 둘의 검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바.

검과 검이 충돌할 때마다 날카로운 고음이 울려 퍼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법이다. 과연 남궁의 섬뢰.”

“하압-!”

담우양이 그 고절한 초식들에 감탄할 찰나, 남궁휘는 제 검을 떨치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서로 간의 실력 차가 크다는 것은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담우양이나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와.”

주예향은 작게 감탄을 터트리며 대련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섬뢰검법이다 분광검법이나 쾌검이라는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분광검법 쪽은 그녀가 익힌 분광십이검과 같은 영역에 속한 무공.

그러니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주예향의 나지막한 감탄 소리를 들은 팽우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로선 그저 같은 쾌검이지만 저렇게 펼칠 수 있는 거구나 하며 감탄했을 따름이지만, 남궁휘의 모습에 눈을 빼앗긴 것이리라 오해를 했다.

‘저리 경망된 검 놀림이 무엇이 좋다고.’

쾌검과 쾌검의 대결이라 겉으로는 화려한 모습이나, 팽가가 추구하는 무게감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소매 밑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진정한 무공이 보여주리라 다짐하며.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훌륭하다. 그대로 정진하도록.”

이윽고 대련이 끝났다.

남궁휘는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정중한 모습으로 포권을 한바.

처음엔 그저 제 친우들을 따라온 것이지만, 대련을 통해 담우양의 검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섬뢰단의 고수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수인 자신이 감히 평가하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더 뛰어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렇기에 훌륭한 검객과의 만남에 감사하며 자리로 되돌아갔고, 이내 팽우혁이 그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음.”

가볍게 포권을 하며 도를 쥔 팽우혁의 모습에 담우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내공은 제한했지만, 그 전신에 서린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담우양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주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확실하게 그 기를 찍어 눌러줄 생각이었다.

“먼저 들어오너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짧게 숨을 토해낸 팽우혁은 두 손으로 두 자루를 움켜쥐고 거칠게 전각을 밟았다.

하북팽가의 절기인 오호단문도.

맹호출격(猛虎出擊)으로부터 시작한 그 도법이 맹렬한 기세로 허공에 흩뿌려졌다.

쉬이이익-!

이름 그대로 날카로운 기세를 지닌 호랑이가 몸을 날리는 듯한 초식이었다.

도의 움직임을 따라 거친 파공성이 흩날리며 그 귓가를 어지럽혔으니.

“…….”

자신에게로 떨어져 내리는 그 도의 아래로, 담우양은 검을 가지런히 모았다.

‘확실히, 입관 수석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가 가늠하기에 팽우혁의 수준은 이제 일류 끝자락에서 초일류를 바라보는 경지였다.

작년, 자신이 벽에 가로막혀 강호를 헤매다 교관으로 정착했을 때가 바로 그 시기였으니.

어찌 생각하면 참으로 부럽기 짝이 없었다.

누구는 이립이 넘게 겨우 그러한 벽과 마주했는데, 누구는 명문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작 약관의 나이에 그러한 경지에 올랐으니.

물론 지닌 재능도 있었고, 노력도 했으리라.

하지만 애초부터 출발선이 달랐기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검을 쥔 담우양의 손이 기묘한 각도로 기울어졌다.

그는 이미 작년 초에 주호의 도움으로 가로막고 있던 벽을 뛰어넘은바.

이미 초일류의 완숙에 이르러 이때까지의 정체에 보상받기라도 하듯 벌써 그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즉, 지금의 팽우혁은 그의 상대가 되질 못 했다.

쿵.

오호단문도의 초식 위로 분광검법이 닥쳐갔다.

팽우혁의 그 무거운 기세는 가벼운 쾌검 따위 정도야 쉽게 휩쓸어버릴 듯했지만, 어째서인지 담우양의 검은 패검을 골조로 하는 오호단문도의 초식보다 더 무겁고, 더 패도적이며, 더 매서웠다.

“…읏!”

담우양의 검이 쉬지않고 그의 도 위를 두들겼다.

악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한 기세였다.

팽우혁의 발걸음은 점차 밀려 나갔고, 이내 한계에 이르렀으니.

그는 지닌 재능으로 보자면 확실히 천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후나 위천강처럼 궤를 뛰어넘은 것도 아니고, 악비산처럼 피땀이 어린 노력을 한 것도 아니다. 그 천재성조차 남궁연처럼 뛰어난 것이 아니었고, 선우연처럼 먼저 간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 나간 것도 아니었다. 또 당천유처럼 누군가를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적도 없었고, 철대환처럼 자신의 부족함과 정면으로 마주한 적도 없었다.

그저 제 잘남에 취해 있었을 따름이니 담우양의 검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남궁휘와 같은 결말이었지만, 그 기색은 사뭇 달랐다.

설마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잠시간 그것을 딱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담우양은 이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팽우혁이 터덜터덜 연무장의 가장자리로 물러났을 찰나, 이번엔 당소혜가 산뜻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제…….”

“당소혜 관생의 사정은 주 교관님께 이미 들었다. 당분간 요양에 힘쓰라고 했으니 허가가 나올 때까지는 견학하는 방식을 취하도록.”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당소혜로서는 살짝 불만스러운 이야기였다.

필시 제 오라버니가 주 교관께 강력히 요청해서 언질을 해둔 것이리라.

가볍게 대련 정도는 문제없었지만,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으니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주예향 관생 앞으로.”

“네, 네.”

자신의 차례가 오자 주예향은 살짝 긴장하는 표정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앞서 보여준 둘의 무위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신 역시 수련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분광십이검을 익혔다지. 내 분광검법과 맥을 같이하는 무공이니 도와줄 수 있겠구나.”

담우양은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긴장하지 말아라. 그저 대련일 뿐이니.”

“네.”

곧 이전과 같이 주예향과 담우양의 대련이 이어졌다.

서로 쉴 새 없이 검을 나누는 그 모습에 남궁휘는 살짝 감탄하며 제 친우에게 물었다.

“어떤가. 전에도 들었듯이 제대로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거늘. 저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과연, 검절의 동생이라 할 수 있는 탄탄한 기본기였다.

담우양 쪽에서 적당히 맞춰주고 있다고 하나, 어지간한 후기지수보다 낫지 않은가.

“…아름답군.”

침울해하던 팽우혁은 언제 그랬었냐는 것처럼 두 눈을 반짝거리며 주예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옆에 있던 당소혜는 그것을 보곤 짤막한 쓴웃음을 토해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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