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61화 (161/300)

#161화

주호가 마교의 소식을 전해 듣기 조금 전, 무림맹 수뇌부는 갑작스러운 전보로 인해 발칵 뒤집혔다.

“대천산 부근에서 마귀들이 빠져나왔다니. 그게 사실인가?”

“허어,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리 빨리 움직일 줄은.”

각자의 임무와 업무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인원들이 대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년을 맞아 맹주의 기념사를 했던 이후로 처음 갖는 모임이었다.

각자 강호에서 배분이 높고 명망이 있는 이들이었지만, 마교의 이름이 주는 여파는 쉬이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내는 마치 시장통처럼 시끄러워진바.

하지만 그것은 맹주 단철량이 등장하자 이내 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이 감돌았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들어가겠소. 마교에 관한 소식은 다들 들었으리라 생각하오.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금일 인시(寅時)를 기점으로 수백에 달하는 마교의 고수가 대천산을 나와 이동한 것으로 확인되었소이다.”

온갖 추론과 가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단철량이 중심을 잡자 곳곳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곤륜은, 곤륜은 어찌한다고 하였습니까?”

청성파의 고수가 사뭇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천마신교가 위치한 신강의 바로 밑인 청해에는 같은 구파일방의 일석을 차지하고 있는 곤륜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곤륜파는 신강과 맞닿아 있다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정마대전이 발발하면 항상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바.

당장 육십여 년 전에 역시 곤륜의 정기를 지킨다는 대의로 마교의 앞을 막아 세웠다가 멸문에 다다를 뻔한 적도 있었다.

“이미 대비를 시작했다 하오.”

“…다행인 이야기군요.”

마교가 닥쳐오면 본산을 버리고 도망갈 거라는 등, 이미 그런 계획이 다 준비되어 있다는 등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구파일방의 일석을 차지하고 있는 문파 중 한 곳이 작정하고 그러리라 하는 것도 체면에 중요시되는 문제.

개중 일부는 곤륜파 정도 되는 곳이 싸우지도 않고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는 것에 불만 어린 표정이었지만, 분위기가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때, 대전의 문이 슬쩍 열리더니 한 무인이 서두른 발걸음으로 안을 향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것에 집중된바.

무인은 맹주 바로 옆쪽에 앉아 있던 무림맹 군사인 제갈경에게 귓속말을 전하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군사.”

“…마교가 신강 일대 문파들에 대한 장악에 나섰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그곳에도 정도를 걷는 문파가 있지.”

“예, 소수지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맹에서도 간간이 연락을 취하며 마교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대천산을 나온 고수들의 목적은 이쪽일 듯싶습니다.”

“으음…….”

좌중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같은 정도를 걷는 문파라 할지라도 신강에 있으면 뚜렷한 지원을 해줄 수 없었으니.

“정마대전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군. 이전에도 신강을 다잡고, 청해와 감숙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았소.”

“아직 단언하기는 힘들지 않소? 성명 발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들도 섣불리 전쟁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마교에게 무슨 성명 발표를 원하시오. 상대는 간악한 무리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거늘, 더 무엇을 사리는 것이요?!”

“허어,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겠소이까. 나는 괜히 지레 겁을 먹어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지 말자는……!”

장내는 서로 갑론을박을 펼치는 이들로 다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다들 마교에 맞서자는 것은 같았으나, 그 시기와 방법에는 여러 의견이 갈렸다.

더러는 속단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제가 지레 겁을 먹어 전쟁이 아닐 것이라 자위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사도맹, 혹시 사도맹과 세외 쪽에서 온 연락이 있습니까, 맹주.”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소림의 고승이 물었다.

수없이 있었던 정마 대전의 역사 가운데, 정도의 무림맹과 사도의 사도맹은 빈번하게 서로 손을 잡아 중원을 침공한 마교의 습격을 몰아내었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동의 적이 주는 존재감이 너무 강했기에 서로 살아남기 위해선 필수 불가결 적인 선택이었다.

“사도맹과는 물밑에서 은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소.”

“역시……!”

그 말에 좌중의 안색이 펴졌다.

무림맹 홀로면 마교의 침입을 저지하기 버거운 감이 있었다.

하지만 사도맹이 한쪽을 든든하게 받쳐준다면 부담이 줄어드는바.

비록 언제 고개를 돌릴지 모르는 승냥이라 하더라도 당장 눈앞에 있는 적이 우선이었다.

“맹주, 그건 어느 쪽의 이야기입니까. 사도맹이 친맹주파와 반맹주파로 갈린 것은 알고 있잖소?”

“친맹주파의 쪽이요. 당장 세력은 반맹주파가 우세할지라도 맹을 이끌어 나가는 건 철씨 일가가 아니오. 근래 급부상하고 있는 사도칠패라 할지라도 경거망동은 하지 못하겠지.”

“음…….”

물음을 던졌던 청성파의 고수는 침음성을 흘리며 입을 닫았다.

‘호오.’

단철량은 속으로 감탄을 흘리며 그를 눈여겨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공식적인 석상이라 사리는 눈치였다.

그렇다는 것은 즉, 사도맹 내부에 관한 정보를 어지간히 알고 있다는 것일 터.

사도칠패에 혈천신교의 끈이 이어진 것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마교의 입김이 닿은 것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인원을 한 명 더 늘려야겠군.’

단철량은 이전 주호에게 혈천신교의 존재를 들었을 때부터 제 측근을 모아 그들의 상대를 준비해나갔다.

지금에 와선 적지 않은 면면을 모았고, 차근차근 대계를 계획하는바.

체제가 안정되었기에 추가적으로 인원을 확충하려던 찰나에 눈에 띈 인재는 놓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세외는 어째서 거론한 겁니까. 그들은 이기적인 족속이 아닙니까. 이전에도 몇 번 이야기가 나왔다가 전부 퇴짜를 맞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누군가 의아한 표정으로 소림의 고숭을 바라보았다.

다들 마찬가지인 표정이었다.

더군다나 세외에 존재하는 이들은 보통 사이한 무공을 익혔거나, 사특한 종교를 숭배하지 않는가.

소림과 계를 같이한 포달랍궁조차 작금에 와선 이교라 치부될 정도이니.

“…….”

고승은 짤막하게 염불을 외우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십오 년 전쯤, 우연히 포달랍궁의 고승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소. 세간에는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들 역시 과거 정마 대전때에 마교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보았다더군.”

“…복수를 원한다는 겁니까?”

“평화를 원한다고 했소이다. 마교가 활개를 치고 다니기 전에 틀어막을 수 있다면, 기꺼이 손을 보태겠다고 이야기해왔소. 그때는 내 아무런 직책을 지니지 않아 그저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소이까.”

단철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소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며 묵살했으리라.

하지만 무림의 태산북두 중 하나인 소림에서 이러한 태도라면 다른 이들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바.

“선승께선 그와 관련해 군사와 상의해주시오. 맹은 모든 방향을 열어놓고 전쟁에 임할 테니.”

“맹주의 혜안에 감사드리오.”

고승은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염불을 외우곤 입을 닫았다.

“그러면, 현 시각부로 무림맹주의 권한으로 전 무림에 전시 경계 삼급 체제를 선포하는 바이요. 준비 단계인 만큼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역할을 수행해주길 바라오.”

준비 단계이긴 하나, 전쟁을 암시하는 선포였다.

일부는 괜한 우를 범한다며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대사를 진행함에 있어 그 정도 여론은 당연한바.

‘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넋 놓고 당할 생각은 없다.’

맹주의 자리는, 그저 툇마루에 앉아 작은 텃밭이나 가꾸려고 얻은 이름이 아니었다.

***

감숙의 평범한 초가집.

별다를 특징이 없는 그 안으로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그러자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리고,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손을 뻗어 그 다리에 묶여 있던 전서를 풀었다.

“…….”

사신문에서 보내온 정보를 읽어나가는 천우희의 눈이 꿈틀거렸다.

마교의 고수들이 대천산 밖으로 출진했다는 이야기는 쉬이 무시할 수 없는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수고한 전서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릇에 물을 따라주었을 찰나,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들어와.”

끼이익-.

그 말과 동시에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단주, 들으셨습니까. 마교가…….”

“방금 받았어. 귀찮게 되었네.”

“…시기가 참으로 공교롭습니다. 하필 저희가 이곳에 와 있을 때.”

천우희를 비롯한 일백의 주작단은 현재 감숙으로 파견 나온 상태였다.

이유는 입관 심사 며칠 전 은밀히 날아온 한 줄기의 첩보 때문이었으니.

-사도칠패를 중심으로 한 반맹주파에서 사도맹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

사도칠패의 뒤로 혈천신교의 입김이 닿아 있는 것이 확실시되는 이상 좌시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남에 위치한 천우희 쪽에서 나설 상황까진 아닌바.

감숙과 그 주위의 지부에서 자체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했지만, 반맹주파의 계획을 조사해낸 뒤에는 조금 이야기가 바뀌었다.

“그나저나 그쪽에 대한 조사는 끝난 거야?”

“예, 틀림없습니다.”

“미친놈들, 폭뢰(爆雷)를 사용하려 하다니.”

천우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전서를 구겼다.

무림에 있어 화약은 딱히 금지된 물품이 아니었다.

사천당가 같은 경우 그쪽으로 활발하게 암기의 연구가 이루어졌고, 다른 중소 문파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선이 있었다.

혹시라도 막대한 위력을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황실에서도 경계할 수는 없는바.

그렇기에 관무 자체적으로 상한선을 걸었고, 무림 문파 역시 허용 범위 안쪽으로만 다루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정도를 벗어난 이들이 있기 마련.

과거 벽력문이라는 불렸던 문파는 기준선 안에 허용된 화약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강대한 폭탄을 만드는 대에 집중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폭뢰라 불리는 것이었다.

일류 고수는 물론, 절정 고수조차 그 하나의 폭발을 온전히 막아낼 수 없는바.

자칫 대비조차 하지 못한다면 분명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경지를 벗어난 초고수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중소 문파들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하는바.

당연히 벽력문은 무림의 공적으로 지정되어 멸문당했지만, 그 전승, 혹은 비슷한 것은 강호 뒤편에 떠돌아다녔다.

“그것도 진품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도칠패 놈들이 그리 큰 거금을 지불할 리는 없으니까요.”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하의 질문에 천우희는 그 가는 손가락으로 창가를 두들겼다.

만일 눈앞에서 폭뢰가 터진다면 피해 없이 막을 수 있는 이는 자신과 부단장, 그리고 몇몇 이들 뿐.

나머지는 막심한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 한들, 이대로 두었다간 사도맹이 난리 나겠지?”

“그럴 겁니다.”

“…혹시 모르니까 백호께 마실이라도 나오시라고 연락드려. 마침 사천에 계신다고 하니 며칠 이내로 오실 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는 그전까지…….”

스륵.

천우희는 벽에 기대 세워 놓았던 주작신도를 집어 들었다.

동시에 시뻘건 광망이 그녀의 눈에 깃들었으니.

“일단 전부 다 죽여 놓으면 폭뢰를 쓸 놈도 없어지겠지.”

도신을 휘감고 있던 천이 벗겨진 주작신도가 섬뜩한 빛을 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