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59화 (159/300)

#159화

술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주로 남궁와 당소혜였고, 간간이 팽우혁이 묻고 주예향이 답변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어쩌다 입관 심사의 일, 이, 삼위까지가 다 모였군. 아, 주 소저는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소? 그 정도 순위도 충분히 훌륭한 것이오!”

대화 주제는 대부분 앞으로 있을 학관 일정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 역시 부푼 기대를 안고 학관에 들어온바.

앞으로 있을 생활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참, 올해도 천무 학관과의 교류대회가 있다고 들었는데, 기대가 되지 않소?”

“작년에는 마교의 습격으로 흐지부지 끝났죠. 그래서 조금 아쉬워요. 올해도 만약 개최되었는데,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내가 지켜주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당 소저. 하하하. 아, 물론 주 소저도 마찬가지요!”

그 주위로 그들과 같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술자리를 도모하기 위해 나선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그 이목은 모두 넷이 앉은 자리로 쏠릴 따름이었다.

각각 그 면면이 화려하지 않은가.

순위도 순위일뿐더러 제각기 명문의 출신으로, 주예향 역시 검절의 동생이라는 것으로 이미 널리 소문이 퍼졌다.

“…음?”

그러던 중 아래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던 누군가가 그들을 알아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향이 아니냐.”

“어, 위 선배.”

수려한 외모의 남성이었다.

팽우혁이나 남궁휘 역시 수위에 속하는 외모였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수준이었다.

실제로 그가 자리에 등장한 순간 시선의 밀도가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증가하지 않았는가.

“선배는 무슨, 오라버니라 부르라니까.”

위천강은 씩 웃으며 친근한 미소를 지어왔다.

“…….”

그 둘이 서로 미소를 주고받는 것을 본 팽우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남궁휘는 그런 친구의 얼굴을 보곤 혹여나 사고를 칠까 우려되어 웃는 낯으로 먼저 선수를 쳤다.

“혹, 위천강 선배님이십니까?”

“오? 날 아는가. 그러고 보니 후배님은 올해 차석인 남궁휘 후배님이 아니신가!”

“하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풍류 공자로 소문이 자자한 선배님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남궁휘 역시 그와 비슷한 부류였기에 관심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위천강의 존재를 익히 들었고, 자신과 제법 잘 맞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흠.”

위천강 역시 동질감을 느낀 것인지 두 눈을 빛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혹시 어떤가. 위쪽에서 내 일행이 자리하고 있는데, 같이 합석하지 않겠나? 선배로서 학관의 이야기도 해줄 겸.”

“그렇다면 저는 좋습니다만…….”

남궁휘는 머쓱한 표정으로 제 일행을 바라보았다.

원래 이 모임은 그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조용히 마시기로 한 자리가 아닌가.

갑작스럽게 혼자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당소혜와 주예향은 거리낄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요.”

“저도 좋아요.”

그녀들은 차라리 그것이 더 좋았다.

이미 입관 심사를 준비하며 서로 안면을 트고 친해진 사이가 아닌가.

“...저도 괜찮습니다.”

셋이 동의를 표하자, 마지막으로 뚱하니 있던 팽우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합석이 결정되었다.

“…….”

이층에 오른 남궁휘는 위천강 일행의 면면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하나같이 화려한 면면을 지닌 이들이 아닌가.

화산의 소신룡인 선우연에, 악가의 기재 악비산, 그리고 당가의 신동이라며 추앙받았던 당천유, 학관의 실질적인 수석이라는 천후, 적수공권의 달인이라는 철대환과 풍류 공자 위천강, 그리고…….

“휘?”

“아, 아가씨?”

느닷없는 존재의 출연에 남궁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이자, 차기 가주로 강력히 거론되고 있는 남궁연이 아니던가.

평소 무공에 일변도인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이런 늦은 시각 이 많은 남자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입관 첫날부터 술자리를 가지는 건가요.”

“그, 그것이…….”

이전까지 술자리에서 청산유수처럼 막힘없이 말을 이어나갔던 남궁휘였지만, 날 서린 남궁연의 목소리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뭐, 농담이에요. 저도 함께 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죠.”

“하하, 하하하…….”

남궁연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에 남궁휘는 웃음을 흘렸지만, 이미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뒤였으니.

잠깐 사이에 십수 년은 늙은 듯 기진맥진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은 부담 없이 마셔요. 차석이나 했잖아요?”

“아쉽게도 아가씨를 따라서 수석은 실패했습니다. 이 친구가 워낙 뛰어나야지요.”

“옆에 분은?”

“…팽가의 우혁이라 합니다.”

“올해 수석이라지.”

담담한 팽우혁의 인사에 옆에 있던 선우연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미 후기지수 때의 교류회로 몇 차례 안면이 있던바.

하지만 팽우혁은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닫았을 따름이었다.

“…이해하게. 워낙 이 친구가 과묵한 성격이라.”

“누구랑 똑같군. 원래 도객은 다 이런 성격인가?”

“그러게나 말이네.”

선우연과 위천강이 농을 던지며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것에 팽우혁은 고개를 들어 슬쩍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천후를 바라보았다.

비단, 학관뿐만이 아니라 강호 전체를 보아도 검을 쓰는 이가 제일 많았고, 그다음이 도, 그다음이 창이었다.

검의 경우엔 개인마다 실력이 천차만별이었지만, 도나 창 같은 경우엔 명가의 이름이 압도적인바.

하북팽가와 산동악가가 각 분야로 나뉘어 각광 받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팽우혁이 조사한 바로는 천후에게선 그다지 특별할 것을 찾지 못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사문이란 것도 일인전승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천학관의 황금 세대라 일컬어지는 작년 가운데 전체 수석을 차지한 것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내력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경계해야 할 대상은 천후, 선우연, 남궁연 정도인가.’

아직 후기지수임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들은 가히 잠룡이라 할 만했다.

“올해 후배들도 괜찮군. 중반기쯤에 천무 학관과의 교류 대회를 다시 개최한다던데, 작년은 흐지부지 끝났어도 올해는 이겨야겠지?”

“예, 저희가 박살 내고 오겠습니다. 하하.”

선우연의 말에 남궁휘가 넉살 좋은 태도로 대답했다.

인원이 늘어난 만큼 북적거림의 농도가 진해졌다.

대화가 끊기질 않았고, 더러 큰 웃음이 터지며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

그 가운데 주예향은 잠시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갔다 왔다.

팽우혁은 마음 같아서 그 뒤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너무 치근덕거리는 것으로 보일까 싶어 마음을 억눌렀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조용히 구석에 있던 천후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천 선배님, 혹시 천 언니는 언제 오시는지 아세요?”

“…스승님께선 보름 뒤쯤 돌아온다고 하셨다. 보통 예정보다 며칠은 늦기 마련이니 스무날쯤 걸리겠지.”

“그런가요, 아쉽네요.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떠나서.”

“돌아오시면 알려주마. 스승님께서도 향이 널 마음에 들어 하신 듯하니.”

“그런가요?”

“그렇다. 호불호가 확실하신 분이니.”

마치 연인처럼 사이좋게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이야기까지 하지 않는가.

그 광경을 바라보던 팽우혁의 두 눈 위로 시뻘건 불꽃이 피어올랐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위천강, 그리고 선우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남궁휘는 제 친우가 쥐고 있던 잔이 으스러지는 것을 보곤 움찔한바.

왜 그런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주예향과 천후가 사이좋게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이마를 탁 때렸다.

‘이건, 나도 말리긴 힘들겠군.’

옛적부터 한 번 눈 돌아가면 손 쓸 도리가 없던 성격이 아닌가.

그렇기에 남궁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팽우혁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 선배님.”

“…음?”

천후는 주예향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이글이글 치켜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팽우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같은 도의 길을 걷는 후배로서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흠.”

천후는 그 열정적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어째서 이렇게 허물없이 거리를 좁혀오는 것일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천후는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향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인가.’

주예향은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린바.

옆에서 있던 이들은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개관하면 시일을 정해주겠다.”

“지금은 안 됩니까. 아니, 당장이 좋습니다.”

“…….”

다만, 그것이 선을 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주예향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선배들이 있는 술자리에서 그것도 초면인 선배에게 비무를 신청하다니.

“이 새…….”

취기가 오른 선우연이 인상을 구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찰나, 천후가 손을 내밀었다.

“굳이 그러고 싶다면, 선배 된 도리로서 사양은 하지 않겠다.”

“…호오?”

그 말에 악비산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천후는 이전부터 쓸데없이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사천에서 선우연 무리와 어울려 지내며 성격이 바뀐 것일까.

직접 나서겠다는 말에 다들 두 눈을 반짝였다.

“다만, 장소가 협소하니 수도(手刀)로 하지. 내공의 사용 없이.”

“초식의 형으로만 승부를 보자는 겁니까.”

팽우혁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은 하북팽가, 명문의 출신이었다.

당연히 이쪽의 초식이 더 고절하고 수준이 높을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나중에 딴소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천후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 초식, 양보해주지.”

“…….”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층은 그들이 전세를 냈기에 다른 이들은 없었다.

빈 탁자가 밀려나고, 널찍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두 사람 정도는 충분히 날뛸 정도의 거리.

이윽고 천후와 팽우혁은 수도를 내민 채 서로 마주 섰다.

“…….”

도객이 수도로 싸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팽우혁은 자신이 있었다.

일 년.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리 큰 격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출신부터 차이가 나지 않는가.

하북팽가의 절기를 이어받은 자신이 어렵지 않게 천후의 초식을 격파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력으로 가주마.’

오호단문도의 절기.

처음 삼 초식으로 서로 간의 격차를 보여준 다음 사 초식에서 결착을 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삼 초식이 끝났고, 다음의 사 초식을 펼치려는 순간.

“…어?”

팽우혁은 세상이 뒤바뀌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시야가 일렁거리며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단말마 같은 의문성을 내뱉은 것을 끝으로 맥없이 자리에서 쓰러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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