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56화 (156/300)

#156화

입관 심사 칠 일째의 날.

사신문의 작전이 모두 종료되었다.

혈천신교 하남 지부는 모두 괴멸했고, 일부 인원은 인질로 붙잡혀 사신문의 뇌옥으로 이송되었다.

지부장 담석월 같이 일부 놓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사도맹이 움직였다는 거짓 정보를 퍼트리기 위해 고의로 놓아준 자들.

도철이 등장했을 때 죽거나 다친 이들을 제외하면 성공리에 끝마쳤다고 할 수 있었다.

주호는 다시 교관으로 복귀했다.

다른 도시에 있는 사신문 지부에게 전달할 정보를 정리하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우긴 했으나, 그 정도로 빌빌거릴 체력은 아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신임 교관 서른 명은 임의로 뽑아놓았네. 이제 남은 사흘간 스무 명만 추가로 뽑으면 될 것이야. 올해는 예전의 자네 같이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는 이가 없어 아쉽구먼.”

주호가 사신문의 일로 자리를 비웠던 사이 감독 대리를 맡아준 담우양이 명단을 건넸다.

“그렇습니까.”

주호는 작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신과 같은 유형은 정말로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어디 또 절세 고수의 비동이 발견되어 그 유산을 익힌 계승자가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그리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으니 아마 평생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흠.”

신임 교관 명단은 담우양에게 들은 대로 그리 특출난 이들은 없었다.

제 고향에선 제법 이름을 날렸을 터였으나, 주호의 눈으로 보기에 그리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행인 것이라면.’

혈천신교 지부를 밀어버린 효과가 컸는지 관생처럼 제 신분을 속인 채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작년, 마교의 습격으로 교관 역시 적지 않은 수가 사망하고 부상으로 은퇴한바.

그렇기에 총 오십에 달하는 인원을 뽑았고, 별 탈 없이 교관선임 심사는 끝을 맞이했다.

“그럼, 밤에 보세.”

“알겠습니다.”

심사가 모두 끝나 며칠 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렇기에 저녁으로 교관끼리의 조촐한 식사가 예정되어 있던바.

오랜만의 자리였기에 주호도 참석해달라 신신당부를 받았고, 오늘은 꼭 가기로 약조까지 했다.

‘식사라도 해도 밤늦게까지 술판이겠지만.’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끔 술을 즐기긴 했지만, 그리 무식하게 마실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많이 마셔봤자 천우희의 반절도 되지 않을 터.

“뭐 하고 있으려나.”

문득 그녀에게 생각이 닿았다.

입관 심사 전, 갑자기 자리를 비웠던 것은 강서 지방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였다.

듣기로는 근래 기승을 부리고 있는 사파 무리와 충돌했는데, 반항이 거세 꽤 고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나섰으니 무리 없이 해결되겠지.’

남궁연을 보고 자극을 느낀 것일까.

벽을 넘어선 천우희의 성장은 눈부셨다.

정체하고 있던 경지에서 단숨에 뛰어올랐고, 머지않아 이전의 자신을 따라잡을 수 있을 터.

사파의 잡배 따위는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수석교관님.”

“아, 왔는가.”

주호가 교관 선임 심사의 끝을 보고하기 위해 집무실에 들어서자 업무를 보고 있던 팽대환이 그를 맞이했다.

“고생했네. 모집 인원은 괜찮은가?”

“예. 다행히 지원자가 많아서 충족할 수 있었습니다.”

“흠.”

주호에게서 그 명단을 건네받은 팽대환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적힌 이름들을 내려다보았다.

주호가 그러했듯, 그의 눈에도 차는 이가 없는지 다소 아쉬운 얼굴이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지. 형세가 흉흉하지 않은가. 이름 있는 고수들은 다 문파며 세가며 적당한 곳에 몸을 의탁하는 추세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정도 인원을 모집한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아직 정천학관의 위명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비슷한 위치의 천무학관 역시 저번 일로 교관의 공백이 많은바.

그곳은 정식 모집으로는 턱도 없었기에 비싼 돈을 뿌리며 고수들을 모집했다고 했다.

‘검절의 위명도 한몫했고 말이야.’

팽대환은 흐뭇한 표정으로 주호를 바라보았다.

주호가 마교의 고수를 상대로 보인 눈부신 무위는 벌써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세간에서 화자 되는 중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이가 워낙 많았고, 소문이 소문을 타고 퍼져 나가 부풀려졌으니.

물론, 그 진면목을 보자면 그것조차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뭐, 그래도 급한 불은 껐으니 당분간은 여유가 생겼군. 오늘은 교관끼리 술자리가 있다지?”

“동석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아, 다른 이들 술 체하게 할 일 있나.”

주호의 권유에 그는 껄껄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이쪽도 약조가 있다네. 소위 명문이라고 하는 놈들이 왜 이렇게 성가시게 구는지 원.”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팽대환 역시 세가 연합의 명문 세가인 하북팽가의 출신이 아니던가.

“…수석 입관 자리 때문에 그런 것이군요.”

“말은 친목 도모지만, 그렇겠지. 이렇게 시간을 쓸 바에 제자에게 한 수라도 더 가르쳤으면 당당히 따냈을 것을.”

팽대환은 그 작태가 한심스럽다며 혀를 끌끌 찼다.

“작년엔 세가 연합에서 나왔으니 올해는 구파일방의 후기지수 가운데 뽑는 것이 형평성에 맞느니 뭐니. 참나, 코웃음도 나오지 않는 망언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올해 수석 입관 역시 세가의 후기지수가 차지하는 것을 알면 뒷말이 돌겠지요.”

“뭐, 어쩌겠는가. 본 세가의 제자가 우수해서 그런 것을.”

팽대환은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이야기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입관 심사의 수석은 하북팽가에서 나왔다.

수석교관으로 있는 팽대환과 같은 출신이니 입김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팽대환은 그런 것에 관여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전 팽가의 후기지수가 심사에 참여할 때마다 수석을 차지한 적이 거의 없던가.

올해 상위권 후기지수들은 작년과 달리 전부 고만고만한 실력을 지녔다.

팽가의 후기지수는 그나마 그 가운데 두각을 드러냈기에 수석을 차지한바.

그 과정을 옆에서 함께 지켜본 주호가 단언컨대 부정은 없었다.

“되었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의 입만 아플 뿐이지.”

“그렇지요.”

“어찌 되었든 수고했네. 입관식 전까지 푹 쉬게나. 숙소는 이전과 다름없겠지?”

“예, 계속 그곳에 있을 예정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사람을 보내겠네. 이런, 너무 오래 잡아두었군.”

“아닙니다.”

인사를 끝으로 주호는 집무실에서 나왔다.

하늘은 아직 새파란 와중이었다.

저녁에 있는 약속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바.

업무도 전부 끝낸 와중 갑자기 일정이 붕 떠버렸다.

“흠.”

담우양 같은 삼급 교관들은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일급 교관이 된 덕분에 잡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참, 오랜만에 연무장을 빌려 수련한다고 했었지.’

아침 일찍 남궁연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를 비롯한 후기지수들은 개관일이 머지않아 다시 본격적인 수련에 임하겠다고 했다.

합격이 확정된 당소혜와 주예향까지 동행한 것으로 보아 제법 본격적으로 하려는 듯싶었다.

“오랜만에.”

오랜만에 후기지수 전부와 한 번에 대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주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무장을 향했다.

***

“흠.”

몇 달 만에 학관 연무장에 선 악비산은 그리웠던 향취를 느끼려는 듯 그 공기를 한껏 음미했다.

주호를 따라 사신문에서 시련을 거치고 백호의 계승자로 인정을 받은바.

그간 피나는 수련을 거치며 백호신공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이르렀다.

특히 백호창법은 신공에 속하는 만큼 이전에 익혔던 악가의 창법이 조잡하게 느껴질 만큼 고절한 수준이었다.

악비산은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양인철의 가르침을 흡수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작년의 천후와 능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만큼 성장했노라 말할 수 있었다.

“이야, 오랜만이네.”

“그간 너무 먹고 놀기만 하지 않았는가. 이젠 조금 진심으로 해야겠지.”

위천강이 제 어깨를 풀며 말하자, 선우연 역시 씩 웃으며 목을 돌렸다.

남궁연과 악비산이 주호를 따라 떠났을 당시, 남은 인원은 그래도 당가에 머물며 관광을 즐겼다.

물론 그 말처럼 정말로 먹고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제 나름대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수련했으며 적지 않은 성취가 있었다.

“그렇군.”

조용히 한쪽에 있던 천후 역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근 일 년은 그의 인생에서 색다른 추억이 가득한 나날이었다.

사신문에선 천우희를 제외하곤 깊이 어울리는 이가 없었고, 항상 무공 수련에만 매진했다.

하지만 일 년간 이들과 같이 움직이며 사람과 어울리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특히 당가에 남을 당시에 선우연과 위천강과 함께 다니며 제법 친해진바.

물론 그 역시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하진 않았다.

“오전 동안 개인 수련은 모두 끝냈겠지. 그러면 강의 때와 같이 번갈아 가면서 비무하는 형식으로 하겠네.”

선우연이 나서서 주도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당소혜와 주예향 역시 두 눈을 빛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우리도 조금 있으면 저 사이에서 비무를 하게 되는 걸까.”

“연 언니에게 듣기로는 가르침을 받을 교관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나 봐.”

“그러면 네 오라버니 앞에 달려가야지.”

“나는…….”

당소혜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했지만, 주예향은 살짝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남매 사이니, 주변의 시선이 있을 테니.

자신은 괜찮지만, 괜히 오라버니에게 폐를 끼치기라도 한다면 그러긴 싫을 따름이었다.

“어, 시작한다.”

그때, 당소혜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신들보다 더 고수인 선배들의 비무는 배울 것이 많은바.

그렇기에 주예향은 잡념을 지우고 고개를 든 채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처음은…….”

선우연이 하고 싶은 이가 있냐며 좌중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남궁연이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악 공자, 어때요?”

“거절할 이유는 없지.”

주가장에서 사신문까지 그들은 수십 번이 넘는 비무를 했다.

오죽했으면 서로가 익힌 초식의 형이 눈에 익었을 정도였으니.

악비산은 창궁무애검법의 요지를 파악했으며, 남궁연은 백호창법의 틈을 꿰뚫었다.

본래 서로 간의 실력이라면 악비산이 우세했겠으나, 그는 새로 익힌 백호신공으로만 비무에 나선바.

처음엔 숙련도의 차이로 인해 패배 지분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그 격차는 메워져 갔으니.

끝에 와선 거의 오 할에 육박할 정도로 동수가 되었다.

척.

다른 이들이 거리를 벌리는 가운데, 남궁연과 악비산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검을 들고 창을 쥔다. 각자의 눈에 더없이 익숙한 기수식으로 찰나의 순간 서로의 신형이 충돌해 있었다.

쾅-!

순식간에 앞으로 솟구친 남궁연이 거칠게 검초를 뿌렸다.

악비산은 먼저 수세로 그녀의 검을 막아낸바.

창끝이 이전보다 더 세련된 움직임을 보이며 강검(强劍)의 초식을 밀어내었다.

꽈악-.

창을 쥔 팔 위로 근육이 꿈틀거린다. 그것이 백호창법의 단초임을 눈치챈 남궁연은 자신의 검을 막아선 창대를 박찼고, 그와 동시에 창끝이 어지러이 사방을 휩쓸었다.

샤아악-.

연무장 바닥에 깔린 비석 위로 깊은 상흔이 새겨졌다.

최소한의 내공만을 사용했음에도 그 여파는 만만치 않은바.

하지만 남궁연은 망설임 없이 재차 몸을 날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고, 악비산은 혀를 차며 창대를 끌어당겼다.

“…….”

서로 단 한 순간의 틈도, 일말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비무를 지켜보던 선우연은 입을 떡 벌렸고, 위천강 역시 눈가가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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