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목위강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어째서 사도맹의 추살 부대인 흑살대가 자신들의 뒤를 쫓은 것일까.
물론, 인과는 있었다.
산서에서 일어난 일은 혈천신교가 마교의 이름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신문으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발각되어 검마가 죽었지만, 그 화살은 마교에게 가야 정상이 아닌가.
“…….”
목위강은 슬쩍 제 옆에 있던 측근들로 시선을 보냈지만, 그들 역시 자신은 모르는 이야기라고 황급히 고개를 저어왔다.
‘가르고 가려 뽑은 이들이다. 몇 년 동안 엄히 일러두었고, 정체가 발각되면 좋은 일이 없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
절대 자신들 사이에선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윗선에서 노출되었다는 것이 명확해지는 상황인바.
목위강은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윗선과 연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 대면했을 때는 그토록 살가운 태도이더니, 결국 자신들을 버리는 패로 사용하려는 것인가.
‘시팔.’
목위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로운 시대를 도모하자며 큰 포부를 밝힐 때는 언제더니, 인제 와서 연결점을 끊어내는 식으로 버리려 하다니.
뚝, 뚜둑.
마랑이 든 검 끝으로 진득한 피가 떨어져 내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일층에 자리하던 지부의 무인들은 전부 명을 달리한 것일 터.
여기 있는 이들로만 대항하기엔 마랑과 흑살대의 이름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찰나의 대치 상황.
이윽고 누군가 사용하던 식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었을 때, 목위강은 힘껏 소리쳤다.
“도망쳐-!”
단 한 명도 망설이지 않은 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창문과 벽을 부수고 흑살대의 고수들이 난입했으니.
“으악-!”
“자, 잠깐만!”
“나는 소호문의 소가……!”
대다수가 반항할 새도 없이 도륙당했다.
목위강도 아차 하는 순간 둘러싸여 포위당할 뻔했지만, 그는 제 무리와 달리 일신의 무위를 숨기고 있던바.
“하압-!”
죽음의 위기 가운데 검 끝이 맹렬하게 휘둘러지며 자신을 둘러싼 흑살대의 고수들을 밀어냈다.
스스로 놀랄 정도의 신위였다.
그렇게 목위강은 부서진 창틀을 밟고 힘껏 몸을 날렸고, 이내 밖으로 도주했다.
“끄으으-.”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라.”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직 죽지 않은 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내뱉었고, 그 위에 올라탄 흑살대의 고수들이 싸늘한 시선으로 포박하기 시작했다.
그런 소란이 일었음에도 밖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밤이 깊은 늦은 시각일뿐더러, 애초에 주변에 사람을 물리고 벌인 일이었기에 어둠에 내려앉은 적막은 깨어지지 않았다.
“후.”
마랑의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있던 주호는 짤막한 숨을 내쉬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었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사도맹 고수의 연기를 해 이곳을 습격했고, 고의로 몇몇을 풀어준바.
궁지에 몰린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윗선에 연락을 취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마랑이라. 위압감을 주기엔 좋은 이름이었어.’
주호는 인피면구를 만지작거렸다.
마랑은 산서에서 사도맹이 펼친 천라지망을 구성하던 고수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후에 마랑이란 신분을 이용하기 위해 사신문에서 그 시신을 몰래 빼돌렸다.
사도맹이 혈천신교의 정체를 간파해냈다면, 그들이 움직일 동기는 충분했다.
굳이 검마를 산서까지 불러내어 회동을 가진 것으로 보아 친맹주파 상층부에 배신자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마랑을 사칭한 것이 당장 며칠 내로 발각되진 않을 터.
이런 은밀한 습격에서 굳이 흑살대의 특징까지 드러낸 것도 비슷한 맥락에 있었다.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의 등 뒤로 흑살대의 가면을 벗으며 누군가 다가왔다.
사신문 하남 지부의 지부장인 비월이었다.
가는 눈과 입가엔 항상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호상이었지만, 적을 도륙하는 그의 검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도주한 이들에게는 다 인원을 붙여놓았습니다. 인내심이 그리 길어 보이진 않았으니 하루 이틀 안에 끝나겠지요.”
비무 심사는 전부 끝났다.
필기시험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쪽은 팽대환의 소관인바.
교관 심사 쪽으로 인원이 몰리긴 했으나, 현직 교관들이 심사관으로 자리했고 주호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담우양이 그 책무를 잠시 맡아주기로 했었다.
일의 우선도는 혈천신교 쪽이 높기에 내린 결정.
이 기회에 다시 하남에 숨어든 혈천신교의 지부를 뿌리째 뽑을 생각이었다.
“속전속결로 처리한다.”
부서진 창밖을 보는 주호의 두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
번잡한 거리 가운데, 목위강은 음영이 짙은 골목길 사이로 접어들었다.
벽에 기대 거칠어진 숨을 억누르면서도 연신 주위를 살폈다.
‘젠장, 거머리 같은 새끼들.’
흑살대의 습격에서 도망친 이후로 한나절이 지났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신교의 지원을 요청하려 했지만, 번번이 나타나는 방해꾼들에 쫓기기 급급할 뿐이었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계속하니 순식간에 밤이 지났고 낮이 밝아왔다.
당연히 피투성이가 된 채 뛰쳐나가는 그에게 시선이 쏠린바.
이대로라면 붙잡히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유사시가 아니면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지금이 유사시가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그렇기에 더는 망설이지 않은 채 골목길을 누비며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어?”
목위강이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흔하디흔한 식당이었다.
피투성이인 상태의 손님이 오자 점소이는 몸이 굳은 듯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가 텅 빈 자리 중 아무 곳이나 골라 털썩 주저앉았다.
“술. 아무거나 좋으니까 술이랑 음식을 내와라.”
목은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렸고, 배는 가죽이 등 뒤에 붙은 듯했다.
요 몇 시진 동안 흑살대에 쫓기며 고생을 많이 했기에 은 쪼가리를 던지며 주문하자 점소이는 허둥지둥 부엌으로 들어가 음식을 내왔다.
“…….”
목위강은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은 채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었다.
술 두 병과 고기 두 접시를 비워낸 뒤에야 겨우 한숨을 놀렸고, 이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위층을 바라보았다.
‘내가 온 걸 알면서 반응을 보이지 않아?’
본 식당은 혈천신교 하남 지부의 중심이었다.
지부장과는 직속으로 보고하는 관계.
항상 자신이 오면 직접 오지는 않았어도 점소이나 다른 이들을 시켜 올라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예, 예. 부르셨습니까.”
목위강은 손짓으로 불렀다.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신교 소속의 무인은 아닌바. 정말로 이곳이 식당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으로 보였다.
“위층에 어르신은 계시는가.”
“…어, 오늘은 손님이 와계시니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올라오지 말라고…….”
“있다는 말이군.”
목위강은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사도맹이 신교의 정체를 간파하고 자신들의 뒤를 쫓았다는 것만큼 심각한 사인이 어디 있겠는가.
이리 태평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눈치채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어, 어르신께서…….”
“나도 그 손님 중 한 명이니.”
목위강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태도로 우물쭈물하는 점소이를 밀치며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이 층은 마치 별채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 안쪽으로 몇 명의 기척이 느껴지는바.
목위강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의 무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무슨…….”
“지부장께선 안에 계십니까.”
“헌데 무슨 일. …그보다 자네, 피투성이인데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지부장님께 급히 보고할 일이 있으니 들어가 보겠습니다.”
목위강은 단호한 태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혈천신교의 무인은 당황한 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평소엔 그런 급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바.
그렇기에 잠시 멈춰 있었지만, 이내 지부장실 안쪽에 누가 있는지 깨닫곤 황급히 목위강을 멈춰 세웠다.
“자네, 잠깐만 기다리세!”
“이럴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실랑이는 사이 그 소란은 안쪽까지 전달되었다.
그러자 머지않아 지부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무슨 소란이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조용히 하고 있으라 하지 않았더냐!”
“그, 그것이…….”
그 서슬 퍼런 기세에 혈천신교 무인들이 당황해할 찰나, 목위강이 외쳤다.
“지부장님!”
“…자네?”
“사도맹에서 저희 측을 간파했습니다! 마랑을 필두로 한 흑살대가 습격해와……!”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지부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피투성이 상태인 목위강의 모습을 보곤 표정을 굳혔다.
“아무래도 문제가 있나 보군.”
“아, 그것이…….”
지부장은 이내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몸을 돌렸다.
목위강은 벌어진 문 사이에서 의자에 기대 권태로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이를 한 명 볼 수 있었다.
“마랑이라. 분명 사도맹의 절정 고수였지. 흑살대의 이름도 제법 들어봤고.”
남자는 새하얀 창을 품에 품고 있었다.
장난치듯 그것을 허공에 몇 번 내지르더니 씩 웃으며 목위강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래서, 그 똥개 새끼들한테 처맞고 이르러 온 건가.”
“…그, 그것이.”
목위강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서늘한 살기에 머리끝까지 들끓어 올랐던 피가 가라앉으며 겨우 냉정함을 되찾았다.
실책이었다.
아무런 대비도 못 한 채 습격당한 것도 모자라 쫄랑쫄랑 지부에 달려오다니.
“…머저리 새끼.”
지부장은 일그러진 얼굴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제 수하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도맹의 움직임이 있었나?”
“…적어도 반 시진 전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림맹이나 다른 곳이 움직였을 가능성은?”
“마찬가지입니다. 움직임이 관측된 곳은 없었습니다.”
“…어디인지는 몰라도 작정하고 나섰다는 것이군.”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목위강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정보가 유출되었지?”
“다, 단언컨대 저희는 아닙니다! 몇 년간 엄밀히 관리해왔는데…….”
“신교는 수십 년간 무림맹과 사도맹을 상대로 존재를 속여왔다. 그리고, 구태여 지부가 아니라 너희 쪽을 습격했으니 그곳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이 분명하겠지.”
“그, 그것이…….”
목위강은 말문이 막혔다.
냉정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빌어먹을 새끼. 오냐오냐 받아줬더니 이런 식으로 일을 망쳐…….”
“잠깐.”
그때 안쪽에 있던 남자가 슬쩍 몸을 일으키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지부장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공손하게 고개를 돌리자, 남자는 턱 끝으로 밖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꼬리를 달고 왔군.”
“…이런, 씨팔.”
지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부들부들 떨려왔다.
겨우 구축한 세력을 파탄낸 것도 모자라, 지부까지 잡놈들을 끌고 오다니.
“…….”
목위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분명 꼬리를 떼어냈다고 생각했거늘, 그것마저 저들의 농간이었던가.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물론, 그 모든 것이 주호의 손바닥 안이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