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52화 (152/300)

#152화

입관 심사 이틀 차.

주예향과 당소혜는 정천학관 입구에 섰다.

주예향이 살짝 긴장한 것에 반해 당소혜는 사뭇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무형지독에 중독되어 몇 년간 사경을 헤맸지만, 그녀는 애초에 당천유를 이어 당가의 기재로 소문이 났던바.

몇 달간의 요양으로 순식간에 건강을 회복했고, 이 정도 시험은 가볍게 통과할 실력이 되었다.

“잘하고 오너라.”

“붙을 거야, 후배 님!”

악비산을 비롯해 친해진 후기지수들이 격려를 해왔다.

특히 남궁연은 주예향의 어깨를 꽉 붙잡은 채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긴장만 안 하면 어지간해서 붙을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주가장에서 사신문의 여정을 함께하며 상당히 거리가 좁혀진 그녀들이었다.

그 격려에 주예향은 힘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혜와 함께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향이 너는 사십오 번이었지?”

“응. 너는 삼십칠 번이었나? 어찌 되었든 같이 보겠네.”

서로 심사 번호에 차이는 있었지만, 심사는 한 번에 여러 명씩 진행하기에 같은 차례에 진행되었다.

“하압-!”

아직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심사장 내부는 열띤 열기로 뒤덮여 있었다.

이틀 차 첫 입관 후보생들이 연무장 위에서 격렬하게 심사관들과 손을 섞으며 제 실력을 뽐내는바.

지켜보던 관객들은 저마다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식, 혹은 제자가 입관 심사에 붙길 기원했다.

“시작부터 열렬하네.”

“길면 길수록 좋은 거니까 어떻게든 쏟아부으려는 거겠지.”

주예향의 말에 당소혜는 안 봐도 훤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관 심사의 판정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보통 십 초식 이내로 판별되는 것이 보통으로, 그보다 길어진다면 합격생 중 전체 순위를 판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작년 수석 입관생은 남궁연.

주예향은 내심 그녀의 뒤를 따라 수석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실력이 한참이나 부족한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왕 이 자리까지 왔으니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소혜야, 너는 수석 할 수 있을 것 같아?”

“음.”

당소혜는 그 물음에 제 손을 주억거렸다.

‘할 수 있을까?’

무형지독에 중독되어 침상에 누워있는 와중 그저 하루하루를 절망으로만 지새웠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를 대비해 끊임없이 서적을 잃었고, 무공에 관한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심상으로 수련하면 되지 않는가.

일 년만 더 쉬며 요양하며 좋겠다던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설득해낸 것도, 건강을 되찾은 직후 보인 무위 덕분이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향이 너도 힘내.”

“응!”

당소혜는 여느 때처럼 가볍게 흘려 넘기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었으니, 쉬이 수석을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후우.”

이윽고 두 번의 차례가 지나 그들의 순번이 되었다.

주예향은 긴장 어린 표정으로 연무장 위로 발을 내디딘바.

당소혜 역시 담담한 표정으로 몇 칸 옆의 연무장 위로 올라선 것을 본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혜는 성숙하구나.’

어릴 적부터 아파서 그런 것인지 분명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몇 살 위의 연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편안함이 있었다.

빠르게 친해질 수도 있었던 것도 그 특유의 털털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주가장의 주예향입니다.”

“흠.”

심사에 앞서 정중한 주예향의 인사에 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은 공지한 대로와 같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주예향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한설(寒雪)이란 이름을 지닌 검으로, 그 오라버니인 주호가 비싼 돈을 들여 구매해 선물한 것이었다.

검신의 폭이 보통의 것보다 조금 얇아 그녀가 익힌 분광십이검과 같은 쾌검이 특화되어 있는바.

그렇다고 강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검을 구성하고 있는 주된 재료인 백운철은 새하얀 색을 띠는 것과 함께, 형태를 잡으면 어지간한 철보다 더 단단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그 값은 일반 검보다 수십 배는 비쌌지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것이었다.

절그럭.

주예향은 제 검을 다잡았다.

마치 오라버니가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든든한 기운이 느껴졌다.

객석에선 선우연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이 응원을 보내오는바.

살짝 미소를 지어준 그녀는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분광십이검은 극한의 쾌검.

극한에 이른다는 것은 제 검을 온전히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오.’

그 앞에 선 교관은 갑자기 가라앉은 주예향의 기도에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직전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 긴장한 듯싶었지만, 검을 드니 순식간에 그 흐름이 안정되었다.

이윽고 그녀의 한 발이 슬쩍 앞으로 내디뎌졌을 때.

쉭-.

“……!”

허공을 꿰뚫으며 날카로운 일 검이 쏘아졌다.

교관의 실력으로 피하기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와 비슷한 실력이었더라면 그 한 수에 헛바람을 내뱉으며 당황했을 터.

“제법 날카로우나…….”

교관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선수 양보의 원칙 때문에 첫 공격은 그대로 받아내었으나, 이후부터는 교관의 재량에 달린바.

그렇기에 이전과 같이 제 앞에 서 있는 입관 후보생을 공격해나갔다.

파바밧-!

휘둘러지는 검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쏟아졌다.

교관 역시 쾌검을 사용하는바.

주예향은 그 압박감에 입술을 깨물며 검을 휘둘렀다.

‘역시, 실전은 달라.’

숙소에 머물며 다른 이들과 많은 비무를 벌였다.

제 오라버니인 주호와 했으며, 남궁연, 선우연, 악비산 등등 후기지수들 역시 그녀를 도와 상대역을 맡아주었다.

하지만 살갗을 파고드는 서늘한 살기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으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음이 움츠러들고 손끝이 떨렸다.

그 탓에 검로가 많이 뒤틀렸지만, 그럼에도 밀려나지 않은 것은 그간 열심히 했던 수련의 성과이리라.

“…….”

순식간에 다섯 초식이 지나갔다.

주예향은 그제야 찰나 동안 수십 초식을 겨뤘다던 영웅담의 구절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직 미천한 자신 역시 몇 호흡도 안 돼서 그리 격렬한 싸움을 했을 진데, 산을 가르고 하늘을 베어내는 고수들은 어떤 싸움을 할 수 있겠는가.

“흠.”

잠시 대치 상황 가운데, 그녀의 귓가로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판단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직 열 초식도 지나지 않는바. 여기서 심사가 끝나게 된다면 불합격하게 됨이 분명했다.

‘그렇게는 안 돼.’

주예향은 내력을 쥐어짜냈다.

그 선명한 기운에 검신이 잘게 떨렸고, 이내 그 끝에서 분광십이검의 절초가 펼쳐졌다.

캉-!

이전과는 다른 울림이 연무장 가운데로 울려 퍼졌다.

어찌나 강렬한 소리였는지 다른 곳을 지켜보던 객석의 시선이 하나같이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했을 정도.

교관으로서는 갑작스럽게 바뀌기 시작한 주예향의 모습에 당황했을 따름이었다.

쉬익-. 캉!

날카롭게 찔러져 온 검의 궤도가 부딪치기 직전 기묘하게 꺾이며 사각을 노려왔다.

교관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쳐냈으나, 이전과 사뭇 달라진 그 속도에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전력이라는 건가.’

합격점은 충분히 넘었다.

이 한 수만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거쳐 간 입관 후보생 사이에선 수준급이라 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전체 순위를 위해 그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심사가 십 초식을 넘어 이십 초식에 도달했을 때.

“주가장의 주예향, 합격.”

교관은 검을 거둔 채 기록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재차 공격을 이어나가려던 그녀는 그 선언에 긴장이 탁 풀려버렸다.

그렇기에 길게 숨을 내쉬었고, 검을 수납한 채 짧게 포권을 한 이후 연무장에서 내려왔다.

실질적으로 흐른 시각은 반각을 채 지나지 않았으나, 그 잠깐 사이에 이마가 흠뻑 젖었을 정도로 땀이 흘러내렸다.

“향아, 축하해!”

“웃!”

남궁연은 땀에 젖은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예향을 안아 들었다.

“이제 어엿한 후배 님인가.”

“뭐, 필기시험은 어지간해서 붙을 테니까. 교관님께 듣기로 그쪽은 거의 완벽하다며?”

악비산과 선우연이 흐뭇하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혜는요?”

“아직 안 끝났어.”

남궁연의 품에 파묻혀 있던 주예향이 고개를 빼꼼 들어 묻자, 철대환이 그 옆에 있던 연무장을 가리켰다.

당소혜 쪽은 심사장 내부에서도 시선의 농밀도가 제일 짙었다.

당소혜의 움직임은 제 오라버니의 것과 똑 닮은 것이었다.

유려한 움직임으로 연무장 전체를 장악했고, 교관에게 움직일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인 듯 쉬지 않고 공격해나갔다.

손에 쥔 것은 단검 한 자루뿐이었지만, 쏟아져 내리는 암기는 벌써 수십에 달했다.

그 기세가 사뭇 날카로웠기에 교관도 신중한 기색을 보였다.

“벌써 삼십 초식을 넘었네. 못해도 상위권일 테지.”

선우연의 말에 당천유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구 동생인데 손쉬운 일이지. 몇 년 누워있었다고 해도 그 재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신동이라 일컫던 자네는 왜 그 모양이었는가.”

“…우리 기수는 너무 빡빡하지 않았는가.”

당천유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 작년 수준이었더라면 독을 쓰지 않고서도 능히 세 손가락 안에 들었을 터.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당장 제 친우들만 하더라도 동년배를 아득히 뛰어넘는 실력을 지녔다.

그러니 당천유는 제 순위가 떨어진 것에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사천당가 당소혜, 합격!”

당소혜의 심사는 무려 사십 초식에 이르러 끝을 맞이했다.

상위권이 확실시됐기에 그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온바.

하지만 지친 것인지 연무장을 내려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발걸음 역시 살짝 비틀거리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노심초사하며 그것을 지켜보던 당천유가 교관의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잽싸게 달려가 그 옆을 부축했다.

“소혜야, 대단해. 이거 잘하면 수석 아니야?”

“그런가? 나도 곁눈질로 네 쪽을 봤는데, 시원하게 잘 싸우던걸.”

주예향과 당소혜는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숙소에 있을 동안 그 둘 역시 간단히 손속을 나누어 본 적이 있었다.

당소혜는 주예향이 무공을 제대로 익힌 지 고작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워했고, 주예향은 당소혜의 몸이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람을 토했다.

그렇기에 금세 서로 호감을 품었고, 죽마고우처럼 가까워진 것이었다.

“그러면 저희는 갔다 올게요.”

합격 이후에는 그 본인이 안으로 들어가 이차 심사에 등록해야 했다.

주예향은 아직 몸이 불편해 보이는 당소혜의 손을 잡아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

“……?”

그렇게 내원에 들어섰을 찰나, 한 남성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역시 맞군요. 방금 두 분의 비무를 보고 개안하는 듯했습니다. 참으로 호쾌한 싸움이었지요.”

호쾌한 인상의 미남이었다.

푸른 무복을 입고 있었으며, 소매 위에는 목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

주예향은 낯을 가렸기에 살짝 긴장한 태도로 자신에게 다가온 남성을 바라보았다.

“칭찬 감사해요. 그보다 당신은?”

당소혜는 가늘어진 눈으로 짧게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았다.

‘목천(木天), 목천세가인가.’

절강의 유력 문파 중 목천세가가 있었다.

세가 연합의 상위인 오대 세가 정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제 지역 쪽에서는 제법 위세를 떨치는 세가였다.

“이런, 소개가 늦었군요. 절강의 목천세가에서 온 목강휘라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 당 소저와 주 소저를 만나게 되어…….”

덥석.

그때, 누군가 목강휘의 뒤에서 그 어깨를 잡아 왔다.

말하는 도중 흐름을 끊겼기에 그가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고.

“…내부에선 응당 정숙해야 함이다. 쫓겨나고 싶으더냐.”

이마 위로 시퍼런 힘줄이 불쑥 솟아올라 있던 주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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