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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142화 (142/300)

#142화

[경고]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조속히 조정할 것을 권고합니다.

치밀어 오르는 혈기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던 주호는 눈앞으로 떠오르는 상태창의 알림에 두 눈을 부라렸다.

검마와의 싸움 이후 제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기 직전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직후 순식간에 시야가 멀어졌다.

감각이 동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주위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고, 이내 주변 환경이 전혀 다른 장소로 모습을 바꿨다.

발밑으로 수면이 떠올랐다.

주호는 곧, 그 안에서 자신의 목을 짓밟고 있던 하월벽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건.”

그 익숙한 감각에 주호의 두 눈이 커졌다.

사도맹의 천라지망에 갇혔을 때와 같이 자신의 안쪽에 있던 정체 모를 존재와 의식이 바뀐 것이리라.

“문주님! 조심하십시오-!”

주호는 크게 소리쳤지만, 수면 위에는 조금의 일렁임조차 일지 않았다.

하지만 하월벽은 조금의 단서만으로도 그의 이상함을 간파했는지 어렵지 않게 기습을 피해냈고, 이내 격렬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

홀린 듯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주호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수면 밑에 보이는 자신의 무위는 예사롭지 않았다.

본디 그보다 한 수 더 위의 실력을 발휘할 정도로 강맹한 위력이었으니.

하지만 하월벽은 차원이 다른 고수.

입신지경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이상 그를 어찌하긴 어려울 터였다.

이대로 그저 수면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주호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건만, 그가 서 있는 주위로만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이곳은 대체.”

정말로 자신의 무의식이 표방한 공간이라는 것인가.

어둠의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자니 기묘한 이끌림을 느꼈다.

수면 밑에선 여전히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태, 그쪽을 흘깃 바라보던 주호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저 너머의 무엇이 있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다.

그렇기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어둠에 휩싸였다.

***

“…….”

하월벽은 저릿저릿한 손을 들었다.

완전히 오산이었다.

단순한 주화입마로 인한 폭주라 여겼거늘, 이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태임이 분명했다.

파스스스-.

주호의 전신으로 뿜어지던 핏빛 기운은 어느새 그 안에 갈무리되었다.

마치 득도한 고승처럼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그 기세 또한 가라앉았으니.

하지만 그것이 폭풍전야를 뜻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적해란 이름을 잘 지은 것 같구나.”

이제 느껴지는 흐름이 깊은 바다처럼 도도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하월벽은 찰나 동안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일장로 곽무혁과 백호 양인철에게 눈짓했다.

이전에 미리 상의해둔 바가 있기에 그들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기척을 숨기며 더 거리를 벌렸다.

‘그러면…….’

하월벽은 가늘어진 눈으로 다시금 주호 앞에 섰다.

그 혼자 막는 것은 그리 버거운 일이 아니다. 설사 지금 벽을 넘어선다고 할지라도 입신지경의 완숙에 이른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원래는 그럴 터이지만.”

그럼에도 경계를 지우지 않았다.

주호는 분명 거석과도 같은 자신의 기운을 뚫어내었다.

무슨 요사스러운 수인지.

입신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아직 육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바.

급소를 당하면 죽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파심에 묻겠네만, 정신이 드는가?”

하월벽의 물음에 주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적해를 가라앉힌 듯싶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 듯 주호는 검을 내리며 전의를 거두었다.

주위를 뒤덮고 있던 기세도 사라 들은바.

영락없이 이전의 모습과 같았기에 하월벽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로구먼. 어찌 되나 싶었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군요. 중간에 나가지는 못하는 겁니까?”

“어쩌겠나. 마귀(魔鬼)가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무슨…….”

주호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할 찰나, 돌연 하월벽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콱-!

눈 깜짝할 사이에 주호의 지척까지 이른 그는 왼손을 뻗어 거센 손길로 그 목을 낚아챘으니.

“무, 문주님…….”

주호의 몸이 허공에 들렸다.

목을 옥죄어오는 압박에 당황을 토해내며 두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하월벽은 가늘어진 눈으로 말했다.

“내가 주호 그 친구를 만난 건 반년밖에 되지 않지만.”

꽈아악.

목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당장 숨을 내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조임이었다.

“그 요사스러운 살기를 풀풀 피워대고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눈이 어둡지 않네.”

“…….”

그와 동시에 당황을 표하고 있던 주호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더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말했다.

“쯧. 늙은이들은 의심이 많아서 귀찮단 말이야.”

“…….”

원래의 주호와는 동떨어진 모습에 하월벽은 속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사실 조금 전까지도 확신이 없었다.

기껏해야 폭주에 이성이 마비된 주호 본인이 거친 언행을 일삼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눈앞의 모습은 완전히 인격이 뒤바뀌어 버린 듯 원래와는 완전히 이질적이었다.

“…그는 어디 갔느냐.”

“그? 누굴 말하는 거지?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던 이는 변함이 없었거늘.”

하월벽은 히죽 웃는 주호와 눈을 마주쳤다.

핏빛 혈기가 일렁거리는 그 안에는 깊은 어둠이 있었다.

그는 주호의 몸을 잠식한 존재의 정체를 파악하려 눈에 힘을 주었지만, 주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휘릭-.

그의 다리가 하월벽의 팔을 휘감고, 동시에 관절을 꺾으며 뼈와 근육을 힘껏 뒤틀었다.

이전에 한참이나 경지가 차이났던 궁기의 속박에서까지 벗어날 수 있었던 날카로운 한 수였다.

하지만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고수는 그와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콰드득-.

장삼의 소매가 터져 나갔다.

쇠가 거칠게 긁히는 소리가 날 정도로 격한 반응이었지만, 하월벽의 팔엔 상처 하나도 남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무지막지한 늙은이로군.”

주호는 서늘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조금 전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으로 보아 붙잡힌 상태로는 그의 호신강기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바.

그렇기에 감추고 있던 기세를 폭발적으로 내뿜어 그 반탄력으로 속박을 풀어내려 했다.

“어림없다-!”

하월벽은 더 강한 힘으로 그를 붙잡으며 땅에 메다꽂았다.

바닥이 움푹 우그러들며 주호의 두 눈이 커진다. 뼈가 부러진 것인지 그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토해져 나오지만, 하월벽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빌어, 먹을.”

주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주먹을 꽉 쥔 채 두 팔을 교차했다.

하월벽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충격을 줘서 기절시킨 뒤 해답을 찾을 때까지 잠시 유예를 가질 생각이었다.

당장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수단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귓가를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한 줄기 예기에 흠칫하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쉬이이이익-.

청룡신검의 끝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귓가를 스쳤다.

기습적인 이기어검술이었다.

주호는 입신지경에 이르지 못했기에 아직 그 발현이 서투른바.

하지만 방금은 하월벽조차 조금 전까지 전조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며 날카로운 것이었다.

“…별개의 인물로 보는 것이 맞겠구나.”

툭툭.

곧 주호는 제 몸을 털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허공에 멈춰선 신검을 쥐었다.

여전한 그 모습을 본 하월벽의 두 눈이 깊어졌다.

‘쓰러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 뒤가 문제로구나.’

단순히 힘의 차이로 찍어 누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안에 섞인 이물질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쐐애애애액-!

폭풍과도 같은 강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타격을 입은 주호가 제 분노를 쏟아내며 마구잡이로 신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파핫-!

하월벽은 과감히 그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핏빛 강기는 그의 호신강기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바.

다시금 그 목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주호는 다시금 격렬하게 강기를 흩뿌리며 거리를 벌렸다.

쉬이이익-!

곧 그의 일격이 허공을 때렸다.

진법을 파훼하고 밖으로 탈출하려는 듯 거센 일격이었으나, 애초에 경지를 넘어선 초고수들의 대련을 위해 구축된 절진이었다.

일순간 닥쳐온 막대한 압력에 그 하늘이 출렁거렸지만, 아직 입신지경에조차 다다르지 못한 주호의 힘으로는 단숨에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문주-!”

그때 멀찍이 떨어져 기척을 숨기고 있던 곽무혁이 그를 불러왔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하월벽은 다시금 주호를 궁지에 몰아갔고, 이내 곽무혁이 그 지척까지 이르렀다.

“鏶隘珂敲拾茶”

두 손으로 기묘한 수인을 맺은 그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주위에 기운이 급속도로 싸늘해져 가기 시작한바.

이슬이 맺히고, 그것이 서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본 주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선술(仙術)?”

“마귀 주제에 보는 눈이 있구나.”

곽무혁은 씩 웃었다.

사신문에 곽무혁보다 강한 고수는 몇 명 더 존재했다.

하지만 하월벽이 굳이 그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는 그의 출신과 관계있는바.

사신문의 일장로를 맡은 곽무혁은 지난 정마대전에서 마교에 의해 멸문한 모산파의 마지막 남은 계승자였다.

모산파는 귀(鬼)를 쫓고, 마(魔)를 멸하는 것을 의의로 삼고 있었다.

주화입마 역시 정신적인 심마에서 기인한 것이 크기에 그러한 종류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으나, 하월벽의 선택은 탁월하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기개세(氣蓋世)의 기세로 세상을 굽어보던 주호는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서릿발 같은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먼저 저 도사 놈을 죽여야 한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아무리 날뛰더라도 죽이진 못할 터니 제압하는 것이 고작.

하지만 어설픈 각오로 다가온다면 제 목이 물어뜯길 것을 경계해야 할 터다.

촤르륵-.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디딜 찰나, 왼쪽 발목을 감아오는 사슬에 그의 움직임이 덜컥 멈춰지고 말았다.

“……!”

분명 형태는 평범한 사슬이건만, 발목은 불에 덴 듯 화끈거리기 그지없다.

주호는 크게 발을 굴려 그것을 떨쳐내려 했지만, 발목을 옭아맨 사슬은 요지부동일 뿐이었다.

“되었소! 발목을 묶었소!”

기습적인 수법이 성공한 양인철이 환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곽무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목을 묶으랬지, 언제 발목을 묶으라고 했는가!”

“발목도 목이 아니오! 그리고 저렇게 날 서 있는 와중에 어떻게 은밀히 목을 묶는단 말이오!”

사슬을 쥐고 있던 양인철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백호는 예로부터 금(金)의 성질을 띤바.

처음 하월벽이 곽무혁에게 사정을 설명했을 때, 추가적인 조력자로 양인철을 말했다.

모산파의 술법과 백호신공의 상성은 발군. 그렇기에 그와 공조를 원한 것이었다.

“…이런 것쯤-!”

주호는 두 눈을 부릅뜨며 몸을 뒤틀었다.

그러자 사슬이 끼익하며 신음을 냈고, 양인철은 불안한 얼굴로 곽무혁을 돌아보았다.

“…이거 정말로 끊어지지 않는 것 맞소이까.”

“걱정하지 마시게. 내 살아생전 수많은 악귀를 퇴치했으나 주박이 끊어지는 일은 보지 못했네.”

곽무혁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하월벽의 옆에 섰다. 그러곤 찬찬히 주호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이내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확실한 건 그 친구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것이 그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군요.”

“외부의 요인으로 개입된 것인가.”

“…또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는 것이 당혹스럽습니다.”

곽무혁은 곤혹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악귀는 무언가를 원인으로 그 육신에 깃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주호에게 그런 것은 찾아볼 수 없는바.

애초에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육체와 정신의 조화가 안정적이어서 그런 틈을 파고들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원인을 찾으라면 무공을 익히기 전, 그러니 청룡신공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거늘.’

사신수의 무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그래서, 손쓸 방법이 있겠나.”

“어렵지만 가능할 듯싶습니다. 일단 문주께서…….”

꽈득.

돌연 귓가를 스치는 이질적인 소리에 곽무혁의 말이 멎었다.

곧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끊어진 사슬을 짓밟고 있는 주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르륵-.

그의 시커멓던 머리카락이 점차 붉은빛을 띠며 그 농도가 진해지기 시작한바.

동시에 폐부를 찔러오는 농밀한 살기는 이때까지 상대했던 어느 악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한 것이었으니.

“…허어.”

짤막한 탄식을 내뱉은 곽무혁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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