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33화 (133/300)

#133화

“…….”

남궁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상을 내려다보았다.

사도맹의 천라지망에서 주호를 구출해낸 것이 벌써 이틀째였다.

의원의 말로는 할 수 있는 치료는 전부 했다고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눈을 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교관님…….’

검마와의 싸움이 사흘, 그리고 사도맹의 천라지망에서 닷새까지.

총 여드레간의 여정이었다.

삭풍이 부는 한겨울의 산맥 가운데 얼마나 고된 시간이었을까.

사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사도맹측 사상자는 검마 철무혁을 비롯해 삼백이 넘었다.

믿기지 않는 전공이었다.

홀로 검마를 쓰러뜨리고 사도맹의 천라지망까지 돌파해내다니.

하지만 그 상처가 깊은 것인지 그의 두 눈은 깊게 닫혀 있을 따름이었다.

끼이익-.

그녀가 수심에 찬 시선으로 주호를 지켜보고 있을 찰나, 방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현무(玄武) 단상현이었다.

“아직 그러고 있는 게냐. 들어가서 조금 쉬어라. 장각 그 아이에게 들으니 주호 그 친구를 구해낼 때까지 쉬지 않았다고 했으니.”

“…괜찮습니다.”

애써 타이르는 말에도 정중히 고개를 저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단상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주호가 검마와의 교전으로 소식이 끊기자 장각은 곧바로 지원을 요청했다.

저 멀리 밑쪽 지방에 있는 주작이나 백호와는 달리 단상현은 하북 쪽에서 사신문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며칠 내로 당도할 수 있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갔다.

작금의 소란으로 무림과 무관계한 일반 백성이 수없이 휘말렸으니…….

보고를 받은 황제가 직접 황명을 내려 진상을 규명하게 했고, 관과 무림맹은 철저하게 조사하며 흉수를 찾아 나갔다.

사신문으로서도 숨을 죽인 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던 입장이었다.

그러던 와중 산서와 섬서 경계 지역에서 일어난 소란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정녕 사람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단상현은 침상에 누워 있는 주호를 바라보았다.

검마 철무혁을 비롯해 수많은 고수가 그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다.

마지막 싸움은 어찌나 처참한 것이었는지 천라지망 자체가 뒤흔들릴 정도였다.

단상현은 그것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여겼다.

사도맹 측의 후속 부대가 도착하는 것이 머지않은바.

그와 더불어 산서성에서 일어난 사건과의 이쪽의 관련성을 조사하기 위해 관과 무림맹의 조사단이 근처까지 당도해 있었다.

더 시간이 흐른다면 사도맹의 천라지망이 단단해지거나, 외부의 개입이 있을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그렇기에 강행 돌파를 결행했고, 가까스로 주호를 구출해낼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다른 세력의 이목을 피해 다시 산서성으로 되돌아왔고 주호의 치료에 전념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찢어진 이마, 파열된 전신의 근육과 부러진 뼈들,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왼손까지.

빈말로도 양호하다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문제는 외상 쪽이 아니었다.

검마와의 싸움이 격렬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뒤의 천라지망에서 싸운 것이 독이 되었던 것인지 내부가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치료를 위해 왔던 의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상 쪽은 자신들이 손을 쓸 수 없다는 말만 내뱉을 정도였으니.

그저 기력이 쇠하지 않게 해주는 약재를 처방하는 것이 한계일 따름이었다.

“…….”

남궁연은 살짝 충혈된 눈으로 침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주호의 손을 다잡았다.

또, 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뿐, 중요할 때는 정작 일말의 보탬이 되지 않았다.

수척해진 얼굴과 상처투성이의 몸을 보니 절로 울컥해졌다.

자만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성장했으니 다음번엔 분명 그 옆에 설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더, 더 강해져야 해.’

핏발 선 눈에 날카로운 의지가 깃들었다.

언제까지 그에게 어리광만 부릴 순 없을 따름이었다.

***

주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자신이 자신이되 자신이 아닌 듯, 마치 수면을 통해 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넌 누구지?”

하지만 그 이질감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묻자, 수면 아래의 자신은 절규하며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닥, 쳐!

이마는 금세 피투성이로 물들었다.

그럼에도 주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화나 있는 거지?”

-닥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절규하던 그는 이내 사나운 미소를 짓고는 신검을 뽑아 제 왼손 위로 찔러넣었다.

“…….”

주호는 제 왼손을 바라보았다.

허상인지, 아니면 이쪽의 자신이 거짓된 존재인지 그 위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난, 주호다. 내가 주호란 말이다!

절규는 곧 광소로 바뀌었다.

사방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지만, 이내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제 몸을 비틀었다.

“이건 대체…….”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윽고 수면이 흔들리며 그 너머의 풍경이 사라졌다.

주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 신경을 집중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시커멓게 뒤덮은 어둠만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태창의 조화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옛적부터 영웅담이니 설화니 하는 것을 많이 접해왔지만, 이런 종류의 현상을 들은 적은 없었다.

“…….”

일순간 주호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등 뒤에 무언가가 있었다.

이때껏 느껴보지 못했던 흉악한 기운이었다.

심연 끝에 있는 악의와 살기를 빚어 형태로 만들어내면 이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게 하는 것이었으니.

“…….”

주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그것’과 눈을 마주쳤을 때, 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엔 이리 물러나지 않겠다.

알아들을 수 있던 것은 귓가에서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귀기 어린 목소리였으니.

“……!”

다시 두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자리한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주호는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가쁜 호흡을 이어나갔다.

악몽을 꾼듯싶었다. 아니, 어쩌면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걸 수도 있었다.

머리는 강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울렁거렸고, 전신은 추를 달아놓은 듯 무겁기 짝이 없다.

“…끄응.”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통증만이 강하게 느껴졌고, 결국 신음을 토해내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곧 몽롱했던 정신이 각성했다.

오감이 생생하게 느껴졌고 지금 처한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후우우-.

동시에 옅은 숨소리가 밑 쪽에서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꺾어 그곳을 바라보니, 붕대를 두른 자신의 왼손을 붙잡은 채 침상에 엎드려 잠자고 있는 남궁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주호는 그 모습에 긴장이 턱 하고 풀렸다.

적어도 죽거나 사로잡히는 최악의 상황까진 가지 않은 듯싶었다.

‘…심려를 끼쳤구나.’

눈가가 퉁퉁 붙고, 짙은 음영이 낀 것을 보니 마음고생을 많이 한듯싶었다.

주호는 미안한 마음에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

그 손길을 느낀 것인지 남궁연은 몸을 뒤척거렸다. 그러곤 천천히 눈을 떴고, 멍한 표정으로 주호를 바라보았다.

평소 꼿꼿하던 그 태도와는 달리 상당히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입가엔 침 자국마저 남아 있다.

그 모습마저 기꺼웠던 주호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깨워버렸구나.”

“…어.”

초점이 잡히지 않던 눈동자에 생기가 깃들었다.

곧 정신이 들었는지 두 눈을 크게 뜬 남궁연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주호에게로 다가왔다.

“교관님?! 일어나신 거 맞으시죠?”

“여기가 네 꿈속이 아니라면 그런 것이겠지.”

“읏.”

그녀는 황급히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엎드려 자느라 입가에 묻은 침을 소매로 닦아냈고, 흐트러진 머릿결과 옷을 정리했다.

“…사람들을 불러올게요.”

그러곤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귓불이 붉어진 것까지는 숨길 수 없었으니, 주호는 그 모습을 보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보다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겠느냐.”

“무리하시면 안 돼요. 상처가 위중하니 얼마간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의원들이 그랬어요.”

“침상을 떠날 생각은 없다. 상체를 일으키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 거라면.”

남궁연은 조심스럽게 주호의 목과 허리를 부축했다. 천천히 그 위에 힘을 실었고, 그가 벽에 등을 기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후.”

주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전에도 몇 번 크게 다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피폐해진 적은 없었다.

심지어 궁기와의 교전 때도 눈을 떴을 땐 자력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불러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부탁하마.”

남궁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열린 문 사이로 밖을 바라보니 이미 밤이 깊은 와중이었다.

다른 이들을 불러오려면 조금의 시간이 있을 터. 그렇기에 주호는 잠시간 눈을 감은 채 제 신체를 관조했다.

우선 외상이었다.

가장 큰 부상은 짓이겨진 왼손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보았던 광경이 막연한 환상은 아니었는지 근육과 뼈를 가르는 큼지막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건 회복하려면 한동안 고생하겠군.’

좌수였기에 망정이었다.

검을 쥐는 우수를 다쳤다면 상당히 성가신 일이 되었을 터였지만, 다행히 그 정도를 판가름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던 듯싶었다.

“…….”

주호는 눈을 뜨며 턱을 쓰다듬었다.

떠오르는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검마와 싸움 도중부터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였다.

“분명 상태창의 기능을 사용했을 때부터였지.”

주호는 허공에 둥둥 떠올라 있는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자동 전투 기능.

그것을 활성화한 직후에는 괜찮았으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온몸을 뒤덮는 혈기(血氣)에 이성이 마비되었다.

주화입마에 다다랐다는 알림은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었으니.

그때의 자신으로서는 감히 손쓸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는 내가 아니게 되었다.”

마치 한몸에 두 개의 자아가 깃들 듯 의식의 저편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방관자의 자리에서 그저 구경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

주호는 가늘어진 눈으로 상태창을 노려보았다.

사도맹의 천라지망 안에서 절규하고, 광소하며, 미쳐 날뛰던 그 모습은 아직 기억에 선명했다.

심히 불쾌하고 더는 겪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다.

“이건 봉인해둬야겠군.”

두 번 다시 정체 모를 무언가에게 몸을 빼앗기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러면…….”

짧게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외상을 살피는 것은 어느 정도 끝냈다. 그러니 이번엔 내상을 다스릴 생각이었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이건 무엇이지?’

연이은 싸움으로 내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기혈은 엉켜 있었고, 누적된 충격으로 쌓인 내상이 적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모두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청룡신공의 진기와 더불어 단전 한구석에 자리 잡은 역천(逆天)의 기운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으니.

그 고고한 흐름이 마치 대해(大海)의 그것과 같았기에 주호는 헛바람을 내뱉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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