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산서의 겨울은 매서웠다.
바람은 살을 에는 듯 날카로웠고, 수북이 쌓인 눈은 앞으로 걸어나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
남궁연은 초조한 얼굴로 방안을 서성였다.
주호와 검마의 싸움으로 산서성이 뒤집힌 지가 벌써 닷새째였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적잖은 사상자가 나왔고, 도시 한 구역과 성벽 일부가 무너진 것을 확인했다.
관에서는 철저하게 이 일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할 것이라 발표했고 무림맹과 연계해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애초에 사도맹과 마교의 은밀한 회담이었던 지라 자세한 내막을 아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닷새째가 되는 오늘까지 수사 내용은 지지부진한바.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드문드문 이어진 싸움의 흔적을 쫓아가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주호의 존재 역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사신문 역시 그의 행적을 좇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장각입니다.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남궁연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장각은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어떻게 되었나요?”
“검마의 시신이 확인되었소. 청룡께서 쓰러뜨린 것이 확실해 보이오.”
“그러면…….”
남궁연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검마의 위명이 너무 높았기에 마음 한구석엔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검마가 죽었다는 이야길 듣자 그녀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아직 그분의 안위는 파악할 수 없소. 다만…….”
“다만?”
장각은 말을 아끼려 했다.
남궁연이 주호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다는 것은 깊게 보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청룡의 수색을 위해 나온 은신처에까지 동행시킨 것이었으니.
하지만 섣불리 희망적인 말을 전하기에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무엇인가요. 말씀해주세요.”
“…후.”
장각은 잠시 말하기를 머뭇거렸으나, 자신을 바라봐오는 선명한 눈동자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서에서 섬서로 넘어가는 구역인 일대로 사도맹의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소. 아마 그 표적은…….”
“…그런.”
장각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남궁연은 그것이 누굴 가리키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절그럭.
그녀는 곧 탁자 위에 놓아둔 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거친 발걸음으로 문을 향했지만, 장각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주세요.”
“이러려고 남궁 소저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 아니오만.”
남궁연은 기세를 가다듬었다.
비키지 않겠다면 실력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보다 장각의 경지가 더 높은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조차 일 검에 베내지 못하는데 수백, 수천에 달하는 사도맹의 고수들은 어떻게 상대하겠소.”
“…….”
남궁연은 이를 악물었다.
분하지만 그 말이 맞았다. 일순간 머리에 피가 쏠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것이었지만,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난입은 돌아가는 대세에 티끌만큼의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곳곳에 표식을 남겨두었소. 더욱이 사방에서 본문의 문도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변화가 있으면 알려올 것이오.”
남궁연은 손에 쥐었던 검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그 위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푹 숙였다.
‘교관님, 제발 무사 해주세요.’
잠시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장각은 더 이상의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
서걱-.
핏자국이 늘어 붙은 신검 위로 새로운 혈흔이 묻었다.
“…으으으.”
제 동료의 몸이 반으로 갈라져 내리는 것을 본 사도맹의 고수는 검을 든 손을 덜덜 떨었다.
애써 내공을 끌어 올리며 어떻게든 저항해보려 땅을 박찼으나, 모두 부질없는 노력이 되었을 뿐이었다.
털썩-.
머리를 잃은 시신이 또 한 구 차디찬 눈바닥을 나뒹굴었다.
더는 주위에 살아 있는 이들이 보이지 않자, 주호는 검을 휘두른 것을 멈춰선 채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
혈기(血氣)로 얼룩진 눈이 제 발자국을 따라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수십, 수백 구의 시신이 눈바람에 얼어붙고 있었다.
검마가 사망한 것을 발견한 사도맹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철저하게 그 사실을 은폐하려 했지만, 이미 여러 인원의 귀에 들어간 이상 이야기가 퍼지는 것은 당연한 순수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흉수로 짐작되는 주호라도 사로잡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수색에 투입되었던 고수 전부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할 정도로 암담한 것이었으니.
단 하룻밤 만에 수십에 달하는 고수가 갈려 나갔다.
그 한 명 한 명이 일류에 달하는 고수였던바. 그렇기에 상황이 어지간히 심각한 이가 아닌 것을 깨달은 사도맹은 천라지망을 펼쳐 주호를 몰아넣었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건만, 그는 여전히 설산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땐 석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일정 영역 안으로 사도맹의 고수들이 진입하면 살귀(殺鬼)처럼 날뛰어 그들을 모두 도륙을 내버렸다.
실력의 고하를 나누지 않았다.
아무리 강한 이라 할지라도 그의 검 앞에선 모두 눈밭에 몸을 뉜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뿐이었다.
[자동 전투 시스템이 해제됩니다.]
돌연 주호의 눈앞으로 한줄기 문장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혈기에 잠식되어 있던 불투명한 눈동자에 정광이 서렸고, 멈춰 서 있던 그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커헉!”
이내 그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져 내렸으니, 그는 바닥에 얼굴을 대고 몇 번이고 구역질했다.
시커멓게 죽은 사혈(死血)과 토사물, 그리고 종래엔 핏빛이 섞인 위액까지 전부 토해낸 그는 핏줄선 눈동자로 고개를 들었다.
‘신체의 주도권은 어떻게 되찾았다. 하지만…….’
주화입마는 끝나지 않았다.
골수까지 치밀어 오르는 살기에 그는 땅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아귀 사이로 튀어나온 눈이 상처에 묻어 쓰라림을 자아냈다. 그는 거칠게 그것을 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다수의 기척을 감지했습니다.]
저 멀리서부터 시뻘건 점이 수두룩하게 찍혀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작정하고 온 듯 심상치 않은 기세를 지닌 이들이 여럿 느껴지기까지 했다.
‘몸을 숨겨야 한다.’
상태창의 제어에서 벗어나자 아물어가던 전신의 상처가 다시 터지기 시작했다.
핏물이 손발 끝을 따라 줄줄 흘러내리고, 정신이 아찔해지며 시야가 좁아져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주체할 수 없는 살심(殺心)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그대로 저들에게 달려들어 오로지 피만을 갈구하는 귀신(鬼神)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파바밧-!
주호는 남은 공력을 모두 그러모아 땅을 박찼다.
최대한 핏자국과 흔적이 남지 않게 달려나갔고, 이내 산맥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절벽 끄트머리에 마주 섰다.
“…….”
지금의 상태로 떨어진다면 뼈조차 추리지 못할 터. 하지만 포위망은 점차 좁혀져 왔고, 더는 도망칠 길은 없었다.
최대한 조심하며 자리를 벗어난 덕분에 아직 위치가 드러나지 않는바.
서둘러 선택을 내려야 했다.
“저건.”
절벽 밑을 바라보던 주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이내 몸을 날렸고, 절벽 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달리며 밑으로 내려갔다.
절벽의 중간, 조그마한 균열이 있었다.
몸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틈으로 보였기에 사도맹의 고수들이 떠나갈 때까지 몸을 숨기려 했다.
이윽고 그 근처에 다다랐을 때 그 균열이 작은 동굴의 입구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윽?!”
하지만 딱 한 발자국을 남겨두고 한계가 찾아왔다.
이때까지의 싸움으로 내공이 바닥을 친 것이었다. 더는 쥐어짜 낼 것이 없었고, 원기(元氣) 역시 주화입마로 인해 크게 상해 있어 가망이 없었다.
콱-!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주호는 손에 쥐고 있던 신검을 벽면에 박아넣었다.
보통의 검이라면 얼어붙은 절벽을 파고들지 못했지만, 신검의 날은 어렵지 않게 그 위에 박혀 들었다.
“…윽.”
주호는 왼손으로 신검이 박혀 들며 생긴 균열을 붙잡았다. 그러곤 다시 신검을 빼내며 조금 옆으로 박아 넣었고, 그렇게 함으로 몸을 조금씩 움직여나갔다.
얼어붙은 벽을 붙잡은 대가는 녹록지 않았다.
살점이 찢어지고, 그 흔적을 따라 기다란 핏줄기가 이어졌다.
동시에 그 발끝을 타고 핏방울이 떨어져 내렸으니, 주호는 자신에게 남은 여유가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몸을 옮겼다.
이윽고 동굴의 입구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전신의 긴장이 탁하고 풀리며 쓰러져 내렸다.
주륵.
눈, 코, 입, 귀.
열려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애썼으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언제 의식을 잃었던 것일까, 주호가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는 밖의 하늘이 시커멓게 변한 뒤였다.
추위로 인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과 발은 이미 감각이 없는 것이 진작 동상에 걸리고 남은 듯싶었다.
“퉤.”
동굴 밖으로 피가 섞인 침을 내뱉은 주호는 얼어붙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곤 천천히 호흡을 내쉬었고, 이내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주화입마였다. 상태창에 의존한 반동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지 않은가.
더욱이 그 느낌은 이전 사신문에서 망량환혼진에 나온 직후 느꼈던 것과 같은 감이 있었다.
백회를 뒤덮은 일방적인 살심.
눈앞의 모든 것을 찢어 죽여 버리고 싶은 맹목적인 의지였다.
“……!”
천천히 대기의 기운을 받아들여 청룡신공의 진기를 쌓으려던 주호는 돌연 두 눈을 떴다.
쿨럭.
그 입에서 피가 뭉텅이로 토해져 나왔다.
내상을 치유한 것이 아니었다. 신공의 기운을 쌓으려 하자, 그 몸에 원래 있던 역천의 기운이 반발한 것이었다.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솟아오르고, 피부의 색이 거무죽죽해지기 시작했다.
사방은 눈보라를 치는 와중이었지만,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을 정도로 극한에 다다랐다.
[경지가 상승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상태창에 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상, 태창…….”
[상태창]
이름: 주호
별호: 월영사신
직업: 정천학관 일반교관
나이: 스물여섯
소속: 정천학관, 사신문
경지: 초절정(十/十)
무공: 청룡신공(七成)
분명 八에 그치던 경지가 검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경험 덕분인지 十에 다다라 있었다.
작금 강호에 그처럼 젊은 나이에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이는 없을 터.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삶과 죽음 경계 가운데,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입신지경(入神地境)을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