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상태창]
-새로운 인물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이름: 주예향
별호: -
직업: -
나이: 열아홉
소속: 주가장
무공: 분광십이검
경지: 삼류(四/十)
잠재력: 上中
호감도: 上上
‘흠.’
세 여성이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사이, 주호는 주예향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익힌 분광십이검(分光十二劍)은 말 그대로 경지가 극성에 다다르면 빛을 가를 정도의 쾌속한 검이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사신문에서 내려오는 무공으로, 그것을 주호가 주예향의 체질에 맞게 수정했다.
모두 신공(神工)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강호에서는 상승 무학에 드는 것으로 어지간한 기연이 있지 않은 이상 익히기 힘든 무공이었다.
다만, 그런 만큼 난해한 난이도와 깊은 묘리를 품고 있었다.
주호가 그 구결의 풀이와 묘리의 해설을 적어놓았다지만, 그런 것들이 생소한 주예향의 입장에선 도통 이해하기 힘든 것일 터.
하지만 그녀가 사신문에서 무공을 익힌 지 고작 몇 달 전의 이야기였다.
그때엔 상태창에 표시되지 않을 정도의 경지였으나 벌써 삼류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남들에게 보면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그 자신이 가르치는 선우연이나 남궁연 같은 후기지수들은 어릴 적부터 철저한 관리를 받아왔다.
먹는 것부터 시작해 무공 수련 또한 체계적으로 지나왔고, 각종 영약이나 몸에 좋다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었을 것이리라.
‘향이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 그저 품은 자질이 뛰어나다는 것이겠지.’
주산이나 그 자신의 자질이 평범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선 마다할 일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기꺼운 상황이었다.
“그간 열심히 수련했나 보구나.”
“아, 알아보시겠어요? 역시 고수들은 한 눈에 상대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데, 정말이었군요.”
남궁연과 천우희와 이야기하던 주예향이 주호의 한 마디에 두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한 번 대련해 주는 게 어때?”
“그럴까?”
천우희의 제안에 주호가 혹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주예향은 대답하기보다 먼저 연무장 위로 뛰어올라 수련용 검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의욕적이네요.”
그 모습이 퍽 귀엽다는 듯 남궁연이 작게 웃었다.
탁.
주호 역시 연무장 위로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그러곤 제 동생에게 수련용 검을 건네받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일반 형태의 검을 쓰는 것이냐. 분광십이검은 쾌검이니 협봉검으로 수련해야 할 터인데.”
분광십이검은 쾌검이 주류인 무공이었기에 날의 폭이 좁은 협봉검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주예향이 내민 것은 평범한 형태의 검에다가, 전체가 한 덩어리의 철로 만들어진 수련용이었기에 무겁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수련할 때 사용하는 검이었으니, 분광십이검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수련의 효율을 극대화하려고요. 이른바 모래주머니 같은 이치랄까요? 평소에 무거운 철검을 사용해 익숙해지면 나중에 협봉검을 들었을 때 더 빨라질 수 있을 테니.”
“흠.”
얼핏 들으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주호는 천우희가 알고 있었나 싶어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난 처음 듣는 이야기야. 당신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을 수도 있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는데, 물어볼 걸 그랬네.”
“…어, 무언가 잘못된 건가요?”
천우희의 말에 주예향은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주호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으며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마음가짐은 훌륭하다. 이제 막 성장하는 재미를 알았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종류의 수련 방법은 때와 상황에 달라지는 것이다.”
차라리 말 그대로 몸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수련한 것이라면 괜찮았다.
단순히 베고 찌르기를 반복하려는 것이라면, 그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아직 검의 기본 형태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초식의 수련이나 대련을 한다면 무게에 휩쓸려 초식의 형태가 무너질 위험이 컸다.
순간의 실수를 자각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면 괜찮았지만, 당장 시시각각 그녀의 자세를 지켜볼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수련을 계속한다면 좋지 않은 습관이 깃들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 단순한 수련이라면 지금처럼 해도 괜찮지만, 초식이나 대련 와중이라면 협봉검을 사용하여라. 지금의 방식은 조금 더 성장해서 해도 늦지 않으니.”
“네!”
주예향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바꿔 들었다.
분광십이검과 맞는 폭이 얇은 협봉검이 그녀의 손에 들리자 이젠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 되었다.
“난 막기만 할 터니 어디 힘껏 펼쳐보아라.”
실전은 상대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주호는 언제까지고 제 동생을 기다려줄 수 있다.
그러니 일단 본신의 실력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 검 끝을 까딱이며 들어오라 말했다.
타닷-!
주예향은 힘껏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얼핏 봐선 무작정 달려든 것 같았지만, 그녀의 발은 어느새 기묘한 순서를 밟으며 주호에게 닥쳐오고 있었다.
‘보법의 수련도 소홀히 하지 않았군.’
검법은 본디 보법과 짝을 이룬다. 그러니 그 균형을 조화롭게 해야 진정한 고수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
주예향이 분광검법과 함께 익힌 보법은 그림자를 끊어낼 정도로 신속하다 하여 절영보(絶影步)라 불리는 상승의 보법이었다.
그림자를 가르며, 빛을 가르는 검.
더 없이 어울리는 그 조화에 주호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쉬익-.
협봉검 끝이 눈앞을 날카롭게 지나간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담기지 않은 그 날카로움에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 검에 감정이 실린 것 같구나.”
“오라버니에게라면 당연히 소용없을 줄 아니까요. 그러면…….”
본격적으로 초식을 펼쳐볼 심산인지 주예향은 검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가 지닌 내공이라고 해봤자 영약으로 얻은 삼 년 남짓한 양밖에 없다.
하지만 용케도 그것을 움직여 검에 가득 주입했는지, 그 끝이 잘게 떨려왔다.
‘조금 있으면 검명도 내뿜겠군.’
파아아앗-!
주예향의 검이 그야말로 눈부신 속도로 허공에 휘둘러졌다.
물론 그것은 검을 휘두른 그 본인의 시선으로 느낀 감각이었으니, 그 너머에서 지켜보는 주호를 비롯한 세 사람에겐 휘둘러지는 검의 경로가 하나하나 보였을 따름이었다.
“동생은 어때 보여?”
“…제법이네요. 본격적으로 무공의 수련을 시작한 지 이제 몇 달 지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초심자가 그렇듯 으레 막히는 벽들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속속히 뛰어넘고 있어. 지금은 경지가 얕아서 티가 나지 않지만, 한번 탄력을 받으면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할걸?”
무려 절정의 고수가 내뱉은 극찬이었다.
하지만 남궁연은 그녀의 말이 조금도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연정을 품은 남자의 동생인 것을 떼어놓고 보아도 생동감 넘치는 주예향의 몸짓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한 것이었다.
쉭, 쉬식.
연무장의 위.
자신의 앞에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검세(劍勢)에 주호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어지간한 남자라 할지라도 이 정도로 격렬하게 검을 휘둘렀으면 지친 기색을 보일 터였지만, 주예향은 땀만 흘릴 뿐 아직 멈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흡-!”
다시금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분광검법의 초식 중 하나인, 제 목숨을 도외시한 양패구상을 노리는 일 검.
그 기세가 사뭇 날카로운 것이, 정말로 눈앞에 원수를 두고 있는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러면.’
주호는 이제 피하기만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얼마간의 지켜보는 것으로 그녀의 실력을 완벽하게 파악한바. 그렇기에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허공에 선을 그렸다.
캉-!
날카로운 고성이 울리며 검과 검이 충돌했다.
“…….”
저릿저릿한 손을 부여잡으며 훌쩍 뒤로 물러난 주예향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분명 막기 불가능한 위치에 있던 검이 어느덧 자신 앞으로 닥쳐와 힘껏 휘두른 분광검법의 초식을 쳐내지 않았는가.
“이제 끝이더냐?”
“…아직 멀었어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으나, 그녀는 제 검을 다잡았다.
지금까지 분광검법의 초식 중 여덟 개를 펼친바. 뒤의 네 초식은 아직 자신의 실력으로는 조금 버거운 것이었지만, 포기하면 그것으로 끝이 날 것 같기에 억지로 의지를 불태웠다.
“동생은 봤어?”
“…쾌검은 둔검에 상성이 좋지 않죠. 특히 선을 그어 점으로 꿰뚫는 분광검법 같은 계열의 초식은 공간 자체를 장악해버리면 속수무책이니까요.”
“호오.”
가볍게 찔러본 물음에 청산유수처럼 대답이 흘러나왔다.
작게 감탄사를 내뱉은 천우희는 팔짱을 낀 채 주의 깊은 얼굴로 남매간의 대련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연을 살폈다.
‘그이가 지닌 잠재력만 본다면 학관에서 뒤따를 사람이 없다는 게 진짠가 보네.’
무학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분야였다.
연무장에 있는 주예향과 주호가 보는 것이 다르듯, 절정에 있는 천우희와 초일류에 있는 남궁연이 보는 것 또한 달랐으니.
하지만 남궁연의 말은 두 사람이 펼친 무공의 차이를 극명하게 꿰뚫고 있었다.
설령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말로 풀어서 설명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기에 감탄을 한 것이었다.
“…만약 향이가 입관 심사를 통과하면 후배가 되겠네. 그러면 잘 챙겨줘.”
“성심껏 챙겨주어야지요. 저리 어여쁜데.”
말하지 않아도 그리하리라는 그녀의 대답에 천우희는 씩 웃었다.
쉭-.
두 여성이 대련을 지켜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무렵, 주호는 손에 쥔 검을 가볍게 허공에 내리그었다.
그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 주예향은 힘껏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지만, 머리카락의 끄트머리가 그 경계에 살짝 걸치며 잘려 나가고 말았다.
분광검법의 파훼법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의 둔검을 펼치는 것인바.
주예향으로서는 눈앞에 단단한 벽을 둔 것 같은 기분이 들 터였다.
“…헉, 헉.”
실제로 이전까지 원활하던 호흡이 흐트러졌다.
마음이 급해지니 신체마저 안달이 나서 남은 체력과 심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소모하고 있는 것이었다.
경험이 적은 그녀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인바.
더욱이 주호가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을 몰아가며 만들고 있기에 더욱 중압감을 느꼈다.
파아아앗-!
궁지에 몰린 주예향은 최후의 일격을 펼쳤다.
분광십이검 십이 초식
천뢰멸세(天雷滅世)
아직은 그 성취로 온전하게 펼치기 힘든 초식이었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검 끝이 벼락처럼 허공을 뒤덮고,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비록 내공과 성취가 부족해 그 기세는 온전치 않지만, 초식이 발하는 이념은 뚜렷한 존재감을 발하며 주호에게로 닥쳐갔다.
“훌륭하구나.”
나지막하게 그 말을 내뱉은 주호는 씩 웃으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예향이 바라고,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할 경지가 그 앞에 펼쳐졌으니.
푸른 청룡이 몸을 떨치자 하늘을 떨치는 벼락이 산산이 와해된다. 세상을 멸하고자 하는 그 기세는 어느덧 산들바람으로 변해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두 여성의 머리카락을 흔들었을 따름이었다.
“아앗-!”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초식이 순식간에 파훼 되어버리자 주예향의 몸은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해 앞으로 고꾸라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단단한 팔이 그 몸을 붙들며 제품으로 끌어당겼으니.
“역시 내 동생이다.”
주호는 기진맥진한 주예향을 보며 대견하단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