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16화 (116/300)

#116화

남궁연은 원래 사천에서의 일이 끝나면 본가가 있는 안휘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교류 대회 때의 일로 가주인 남궁한이 하남에 있는바.

그렇기에 그들과 합류해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주호가 본가로 간다는 여정을 전면 수정했다.

‘이 기회에 집안에도 얼굴도장을 찍으면.’

천우희가 없는 틈을 타 주가장에서 제 위치를 확고히 해놓는다면 나중에 유리한 싸움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녀는 천우희 쪽에서 이미 옛적에 선수를 쳤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이것도 괜찮아 보이네요.”

“아, 이것도요.”

“이건 어떤가요? 요즘 후기지수 사이에서 유행하는 장신구인데.”

이미 사천에서 한껏 관광을 즐긴 직후였지만, 그때는 다 함께 몰려다니지 않았는가.

주호와 단둘이 움직이는 것은 정말로 오래간만의 일이었기에 남궁연은 살짝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음.”

주호는 남궁연의 추천에 하나하나 고심하며 선물을 골랐다.

다행히 교관 일을 하며 벌어둔 돈이 적지 않다. 저번 선발 대회의 뒤풀이 때 회식의 비용으로 한 번 거덜 나긴 했지만, 그 뒤로도 차곡차곡 모아 제법 적지 않은 금액을 모았다.

그렇게 비단옷이며 장신구며 한 아름 구매해 마차에 실은 주호를 본 남궁연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주호의 진짜 선물은 따로 있었으니.

“…교관님이 직접 쓰신 무공서군요.”

다음날.

동틀 무렵 출발하는 마차 안에서 펼쳐 든 서책에 남궁연이 눈을 빛냈다.

첫 장부터 빼곡하게 적혀 있는 글씨와 움직이는 동작을 설명하는 그림에선 분명 주호의 필체가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공 풀이서다. 정천학관에 입관하는 것이 목표라니 말이야.”

“교관님 동생분도 당연히 무재가 뛰어나겠죠?”

“그래, 어쩌면 나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지.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다만, 성취가 빠르더군.”

현실적으로 보자면 입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렇기에 시도하는 것에 의의를 둔바. 주호 역시 주예향이 좀 더 큰 세상을 겪고 난다면 주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군. 향이가 조금만 더 무공을 일찍 익혔더라면…….’

주호가 창밖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토해내는 사이, 마차는 어느덧 하택 지방으로 접어들었다.

곧 그에게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고, 이내 주가장이 위치한 도시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용무를 밝혀주십시오!”

주가장 앞에서 마차가 멈추어 선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사들의 외침에 주호는 마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첫째 도련님!”

“오랜만입니다, 다들.”

주가장의 일원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사들 역시 주호가 어릴 적부터 주가장을 지키던 이들이었기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얼른 안으로 드시지요.”

한 명이 그들을 안내하며, 다른 한 명이 안쪽으로 소식을 전하러 급히 달려갔다.

“들어가지.”

주호는 주예향의 선물로 가져온 짐을 챙기며 남궁연과 함께 주가장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주가장의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처음 왔을 때 있었던 칙칙한 느낌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분위기는 밝기 그지없다. 마주치는 이마다 모두 꾸벅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어와 주호의 귀환을 환영했다.

“여기가 교관님의 본가인가요.”

면사를 써서 얼굴을 가린 남궁연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곳곳을 둘러보았다.

남궁세가와 비교한다면 초라할 정도의 규모지만, 그래도 서린 역사가 얕지 않았다.

더욱이 그 정갈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하하.”

평소의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아이처럼 발랄한 그 모습에 주호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형님-!”

주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인지 주산이 안쪽에서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오랜만이로구나.”

주호는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보지 못한 것이 고작 반년밖에 되지 않았을 따름인데 이제 제법 소장주로서의 태가 물씬 풍겨 나오지 않는가.

서린 눈빛도 진중하고, 풍기는 기세 또한 아버지 못지않게 무게감이 느껴졌으니 그저 흐뭇할 따름이었다.

동생을 가볍게 안아준 주호 역시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 발자국 떨어졌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였으면 적어도 보름 후에 오실 줄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왜, 너무 이르게 와서 싫더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좋지요. 다들 형님을 다시 보고 싶어 했으니.”

농을 던지는 형님의 말에 주산은 웃음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랑 어머님은 어디 계시더냐. 집을 나갔던 아들이 오랜만에 돌아왔거늘.”

“두 분께선 잠시 마실을 나가셨습니다. 시간이 되었으니 곧 돌아오실 테지요. 그렇지 않아도 향이가 계속 형님이 보고 싶다며 칭얼거렸는데, 좋아하겠군요.”

“그런가.”

주호는 뺨을 긁으며 쓰게 웃었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신문에서 적당한 무공을 익히게 해주었지만, 그 이후의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이라 할지라도 앞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힘들지 않은가.

자신만 해도 무황의 영령이 형태화된 상태창이 방향을 제시하며 도움을 주었으니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간간이 서신을 주고받으며 무공에 관한 고찰을 나누긴 했지만, 글로 전하는 것엔 아무렴 한계가 있는 노릇이었다.

사천에서 이곳으로 발걸음을 서두른 것도 학관이 다시 열리기 전까지 주예향의 무공 성장에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려는 의도였다.

“…그나저나 옆의 여성분은.”

인사를 끝낸 주산이 슬쩍 제 형님의 옆으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면사를 쓰고 있었지만, 드러난 부위와 서 있는 자태만 해도 예사롭지 않은 기품이 느껴지지 않는가.

주가장의 소장주로 일하며 여러 사람을 지나온바.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내력을 지닌 존재였다.

“아, 그녀는…….”

오랜만의 재회라 그녀의 존재를 깜빡한 주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 찰나, 남궁연이 먼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을 가로챘다.

“남궁연이라 합니다. 교관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어요. 이번엔 어떻게 기회가 닿아서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네요.”

얼굴을 가린 면사까지 걷으며 살포시 미소를 지어왔다.

눈동자에 서린 감정이나, 말하는 모양만 보아도 심상치 않은 관계로 보이지 않는가.

“…어.”

남궁연의 외모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주산은 이내 그 말을 듣고는 놀람에 이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느냐.”

그런 동생의 변화가 의아했던 주호의 물음에 주산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먼 길 오셨으니 피곤하실 텐데 일단 휴식을…….”

“되었다. 향이는 어디 있느냐? 이 오라버니가 돌아왔는데 얼굴도 비추질 않는다니.”

“향이는 뒤쪽 별관에 있는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있습…….”

주산은 대답하다 말고 실수했다는 듯 제 입을 움켜잡는다. 그것을 본 주호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딴에는 열심히 수련한 성과를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내 혼신을 다해 놀란 연기를 할 테니.”

“아니, 그게 아니라…….”

주산은 주호 옆에 있던 남궁연을 슬쩍 바라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곤 이내 자신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며 연무장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핫-! 하앗-!”

연무장에 다가갈수록 힘찬 기합성이 들려왔다.

주호는 흐뭇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으나,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가 아닌데?’

주가장의 무사에게 수련을 받는 건가?

아니라면 외부에서 무인을 초청했나?

슬쩍 주산을 바라보자, 그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

주호는 의아함을 품은 채 연무장의 문을 열었다.

꽤 오랜 시간을 수련했는지 후끈한 열기가 안쪽에서 뿜어져 나왔고, 이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동생과 그 뒤로 수련용 검을 들고 있는…….

“…천우희?”

“어? 일찍 왔네?”

“오라버니?!”

천우희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아니. 열심히 하는 데 계속 눈에 밟혀서 말이야. 나도 당분간 비번이니까 조금이라도 도와줄까 싶어서.”

천우희는 뺨을 긁적이며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었다.

원래는 주호가 돌아오기 전까지만 봐주고 교대하듯 떠날 예정이었다.

남몰래 하는 선행이 더 값지다고 하지 않은가.

더욱이 그간 술 대작하며 신세도 많이 진바.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기에 주가장으로 온 것이었지만, 설마 주호가 이리 일찍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지.”

괜히 눈치를 봐오는 그녀의 모습에 주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 써주는 것만으로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번이라도 그간 사신문의 일로 바쁜 탓에 쉬고 싶을 텐데 굳이 산동까지 내려와 마음을 써주는 것이 아닌가.

“어, 동생도 같이 왔네?”

천우희의 시선이 주호의 뒤쪽에 있던 남궁연에게로 닿았다.

그녀로선 별생각 없이 말한 것이었지만, 남궁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해올 줄은.’

슬그머니 앞에 있던 주호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천우희가 있을 거라곤 일언반구도 없었기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바. 그렇기에 허를 찔려 괘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직 반전할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천언니.”

언니라 말하는 부분에서 적지 않은 힘을 담아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 미묘한 어조를 눈치챈 천우희의 눈이 일순간 가늘어졌으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볼 때마다 더 예뻐지네.”

“아니에요, 언니만 할까.”

“…둘이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졌지?”

살갑게 오가는 대화에 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 만나고 이야기한 것은 몇 번 되지 않은바. 그 의문에 천우희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끼리는 그런 게 있거든.”

“그러니까요.”

둘이 합심해 고개를 끄덕이자, 주호는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찰나, 어느새 주호의 앞까지 다가온 주예향이 그 팔을 붙잡은 채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남궁연을 바라보았다.

“저기…….”

“아, 인사가 늦었네요. 저희 구면이죠?”

“앗, 네! 주예향이라 합니다.”

“남궁연이에요. 지금은 교관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어요.”

“와…….”

남궁연을 바라보는 주예향의 눈동자에 선망의 빛이 얼룩졌다.

외모도 출신도 무공도 인품도,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지 않은가.

남궁연의 현재는 주예향이 바라는 제 미래의 이상향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어,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얼마든지, 나도 편하게 동생이라 부를게.”

둘은 순식간에 의기투합했다.

“…….”

그 광경을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주호는 제 어깨를 툭툭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어째 오라버니보다 동생이 먼저 넘어가 버렸네. 장수를 쓰러뜨리려면 말을 먼저 공략하라는 전략이 있었던가?”

천우희가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은근한 눈빛을 보내왔다.

“쓸데없는 소리는 말도록.”

괜스레 더 머리가 아파져 오는 주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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