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07화 (107/300)

#107화

주호 일행은 예정보다 며칠 일찍 사천에 접어들었다.

미리 연락하고 간 덕분에 사천 성읍에 도착하는 것보다 먼저 당가의 고수들이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정천 학관의 분들을 모시게 되어 환영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당가의 외총관을 맡은 당허유라 합니다.”

주호가 상태창으로 확인한 바로는 당허유는 마흔 살의 장년이었다.

무공은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지만, 젊은 나이에 외총관을 맡을 정도니 수완이 뛰어나다고 짐작되었다.

“화산의 남사일이오. 학관의 교관으로 이들과 동행하였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가주께서도 장로님의 방문을 기꺼워하시더군요.”

“하하, 당가주님과는 소싯적부터 적지 않은 인연이 있어서 말이오.”

“그리고 뒤쪽은…….”

당허유의 시선이 남사일의 뒤로 향했다.

화산의 소신룡 선우연, 남궁의 검화 남궁연, 악가의 악비산, 그리고 위천강이나 철대환 역시 선발 대회와 교류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당허유의 시선은 그들을 지나, 주호에게 이르렀으니.

“아!”

그는 짧게 감탄을 내뱉고는 주호에게 포권을 올렸다.

“근래 명성이 자자한 검절(劍絶)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설마 검절께서 천유 도련님의 담당 교관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검절, 말입니까.”

생소하진 않지만, 낯선 그 이름에 주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자신보고 검절이라 부르는가. 그 모호한 태도에 당허유는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검절 주호 대협 아니십니까.”

“제 이름이 주호인 것은 맞습니다만, 검절이란 별호는 처음 듣습니다.”

“…아하.”

당허유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절이란 이름이 퍼진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일주일 전에야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근원지인 하남에선 열흘쯤 되었겠군요.”

“열흘이면…….”

그들이 학관을 나와 사천에 당도한 것이 오늘로서 십삼일차인바. 그렇다면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였다.

[별호 「검절(劍絶)」을 획득하셨습니다.]

“…검절이라, 좋은 이름이네요.”

등 뒤에 있던 남궁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주호는 순간 비동혈사의 사태로 죽은 남궁진의 별호가 검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듣기로는 맹주님과 검제께서 그리 부르신 것이 알음알음 퍼지다 그렇게 된 것이라 했습니다. 아무렴 마교의 고수 상대로 그런 신위를 발휘하셨으니 꼭 어울리는 별호이지요.”

“그렇습니까.”

단철량과 남궁한이 그것에 관여했다는 것에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궁한은 먼저 죽은 아들의 별호였던 그 이름을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쥐여준 것일까.

“잡설이 길었군요, 죄송합니다. 도련님께서 본가에 다른 누군가를 데려오시는 것이 오랜만인지라.”

“그러면, 서두르지요. 여기서 더 지체되는 것도 좋지 않으니.”

남사일의 말에 당허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곧 당가 고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천당가의 정문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내부 상황이 상황인지라 화려한 환영식은 없었다.

먼저 숙소로 안내되었고, 잠시간 그곳에서 머물며 여독을 푸는 시간을 갖는 배려를 받았다.

각자 방 하나씩을 배정받은 와중 당천유를 제외한 남자 후기지수들은 모두 선우연의 방으로 몰려들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할 일도 없었기에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서로 잡담이나 나누며 시간을 죽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조용하군.”

선우연은 창밖으로 보이는 내원의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직 저녁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발걸음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으니,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네. 대부분 가라앉은 분위기야.”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러한 것이겠지.”

위천강과 철대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공감했다.

사천당가의 건물인 만큼 벽이 두꺼워 방음 시설은 잘 되어 있었으나, 원체 조용했던 탓에 섣불리 떠들기도 저어되는 바가 있다.

“흠.”

악비산은 창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옛적부터 친우인 당천유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자주 오곤 하였다.

불과 연초만 하더라도 당가에 들렀다가 당천유와 함께 입관 시험을 치러 가지 않았던가.

그래도 그때는 아직 활기라는 것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활기는커녕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는 판국이었으니.

‘잘되어야 할 텐데.’

벽에 머리를 기댄 그는 살짝 눈을 감으며 부디 주호가 무형지독을 정화할 수 있기를 바랐다.

***

“교관님, 가주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네 명의 후기지수가 선우연의 방에 모여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찰나.

집안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마친 당천유는 주호를 찾아갔다.

끼이익-.

곧 방문이 열리며 그가 밖으로 나온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주호를 바라보았던 당천유는 잠시간 두 눈을 꿈뻑였다.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평소랑 복장이 조금 다르셔서 그만.”

“흠.”

주호는 제 차림새를 둘러보았다.

일전 남궁세가에 갔을 당시 남궁연에게 선물을 받은 맞춤 무복이었다.

원래는 연한 청색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그녀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같은 무늬에 검은색으로 된 무복 한 벌을 추가로 주문했다.

‘하긴 어색할 만도 하겠군.’

주호는 평소 단정함을 기조로 삼는바. 괜한 무늬나 문양이 들어간 것 없이 단색으로 된 교관 지정 무복만 입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가지.”

“아, 예.”

당천유는 발걸음을 옮기며 슬쩍슬쩍 주호를 엿보았다.

그의 외모가 빼어난 것은 알고 있었다.

학관에선 단정한 차림새로 다니지만,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자 관생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며 주목이 모일 만큼 수려한바.

하지만 거기에 복장까지 차려입으니 어디 대문파의 귀공자나 다름없는 모습.

‘거기에 뛰어난 무공까지 지니고 계시니 불공평하기 짝이 없군.’

어찌 보면 남궁연이나 천후의 스승이 그에게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이젠 교류 대회 때의 활약으로 그의 무위가 알려졌으니 더더욱 명성이 높아질 터.

당천유는 새삼 주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 교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오너라.

가주 집무실에 당도한 당천유는 안쪽을 향해 말하자 출입의 허락이 떨어졌다.

“들어가시지요.”

당천유가 문을 열며 한발자국 옆으로 비켜선다. 그것에 주호는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자가.’

주호는 그 안쪽에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상승 경지에 있는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세가 연합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인 사천당가를 이끄는, 독패(毒覇) 당정학이었다.

[상태창]

이름: 당정학

별호: 독패(毒覇)

직업: 사천당가 가주

나이: 쉰하나

소속: 사천당가

무공: 암연뇌응공, 용조수

경지: 초절정(八/十)

호감도: 上中

당적학은 단철량이나 남궁한 같이 화경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독공이나 암기술 같은 무공들은 상대적으로 최상위 경지에 오르기 어려운바.

그렇기에 당정학의 경지는 사천당가를 대표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거 놀랍군.”

당정학은 녹광이 서린 눈동자를 크게 뜨며 주호를 바라보았다.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분명 놀라실 거라고.”

먼저 그 옆에 자리하고 있던 남사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호와 당정학의 경지는 수치상으로는 단 한 단계 차이인바.

그렇기에 주호가 그를 알아보았듯, 당정학 역시 그의 경지를 간파해냈다.

“무림의 말학이 인사드립니다. 정천에서 교관인 주호라 합니다.”

주호가 포권을 올리자,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반갑네, 당가를 이끄는 당정학이라 하네. …아니, 그런데 정말로 스물여섯이 맞는가? 도대체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러한 경지에…….”

당정학은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크흠.”

사족이 너무 길어지자 옆에 있던 당천유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것에 퍼뜩 정신을 차린 당정학 역시 이내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래. 대략적인 이야기는 아들을 통해 들었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자네를 눈앞에 두니 설득력이 높아지는군.”

“…그러면.”

당천유는 한시라도 주호를 제 동생에게 보이고 싶었다.

비혈산을 정화했듯 무형지독을 정화할 수만 있다면 그 끝나지 않던 고통 가운데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 터.

하지만 당정학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마음 같아선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네만, 나는 당가의 가주일세. 그저 말만 듣고 움직일 수는 없을 따름이야.”

“…아버지!”

“미안하지만, 이해해주게. 천금과도 같은 아이야. 만일 정말로 자네가 독을 정화할 수 있다면 내 백 번을 사죄하고 천 번의 감사를 표하겠네.”

먼 곳으로 불러놓고 믿을 수 없으니 시험을 해봐야겠다는 말이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주호는 이해한다며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그녀는 당정학에게 있어 천금과도 같은 딸일 것이다.

정말로 무형지독을 정화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만일 상태가 더 악화하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졌으니.

으득.

당천유는 이를 악물었다.

교관님에겐 미안할 따름이었다. 이곳까지 고생해서 오게 했는데, 이따위 대접을 받게 하다니.

하지만 그 역시 당가의 소속인 만큼 가주인 당정학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비혈산입니다.”

당천유는 화를 숨기지 않으며 주호에게 비혈산이 든 병을 내밀었다.

핏-.

주호는 이전과 같이 제 왼쪽 손목에 상처를 냈고, 그 위로 병의 마개를 열어 비혈산을 부었다.

곧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 독성이 주호의 상처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

당정학이나 남사일이나 모두 비혈산이 얼마나 악랄한 독인지 알고 있는바.

그렇기에 긴장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취이익-.

피는 시커멓게 물들고, 살은 변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기점에 도달하자 독성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믿을 수가 없군.”

남사일은 입을 쩍 벌리며 주호를 바라보았다.

내공이 심후한 고수는 그것으로 체내에 들어온 독을 태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처럼 독성을 정화하는 것은 생전 처음 본 조화였을 따름이었다.

“…….”

당정학은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내 주호에게 깊게 허리를 숙이며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심해서 미안하네. 내 평생의 부탁이니 제발 내 딸을 살려주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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